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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병원을 사랑방처럼 친근한 지역민건강지킴이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3월6일 10시06분    조회:9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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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철호


학자형 전문가형 일인자 연변대학부속병원
(연변병원) 김철호원장

연변대학부속병원(연변병원)의 이 몇년간의 눈부신 활약과 성장에는 다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환자와 가족이 100% 만족하는 명품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언제나 온 힘을 쏟아부으며 아름다운 “항행”을 주도하는 “연변병원호” “선장” 김철호교수(50세)가 있기때문이다.

김철호원장은 연변병원의 새로운 발전과 변화를 주도해오며 발전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연변병원을 “친절한 병원 연구하는 병원”으로 꿈꾸며 지역의료를 선도해나감으로써 연변인민의 충실한 건강지킴이로 나서고있는것이다.

평범한 피부과전문의가 전문가, 학자형 일인자로 되기까지…
연변병원의 일인자로 된지도 근 4년이 흘러가지만 김원장은 지금도 하얀 가운을 입기만 하면 너무나 편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의사라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자신의 일터인 연변병원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만약 내가 의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하면서 이러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병마로 삶의 의욕마저 잃어가던 환자들이 자기의 두손을 거쳐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김철호원장, 그래서 그는 다시 태여나도 더 멋진 의사로 되고싶다고 한다.

김철호는 1962년 길림성 돈화시의 한 조선족간부가정에서 태여났다. 1980년 연변의학원 의료학부에 입학한 그는 학문도 뛰여나고 품행도 우수한 학교의 모범생이였다. 하여 재학기간인 1984년에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85년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학원을 졸업하고 학교의 병리생리학연구실에 배치받게 되였다. 그는 또 1991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그 이듬해에는 연변병원 피부성병과 주치의로 근무하면서 환자들 진료에도 나섰다. 그때로부터 김철호는 피부병에 대한 연구와 진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병행하면서 하루도 제시간에 퇴근한적이 없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꺼리는 피부성병과에 근무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환자들과 소통하면서 불안해하는 그들의 두손을 잡아주고 달래주면서 환자들의 마음까지도 치료해주었다. “웃는 의사”, “마음이 따뜻한 의사”, “의술이 높은 의사”로 소문이 높았던 그의 진료실에는 하냥 그를 찾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하였다.

내가 잠을 덜 자고 연구에 정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환자들 진료가 끝나면 곧바로 피부병에 대한 여러가지 림상실험과 연구에 달라붙었다. 다년간의 림상속에서 김철호원장은 풍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그는 피부미용, 색소성질병, 피부병 및 각종 성병진료에서 신기술, 신프로젝트의 림상응용연구를 진행했으며 특히 피부외과의 악성종양 및 흉터치료 등 신기술을 리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환자들의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의술과 의덕이 뛰여난 피부전문의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그는 1999년 피부과 주임으로 되였으며 2년후에는 연변대학부속병원 부원장으로 되였다. 또 2009년에는 길림성피부의학회를 이끄는 주임으로 추대되였고 결국은 뛰여난 의술과 탁월한 리더의 행정력을 인정받아 2008년에는 연변대학부속병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특히 2001년부터 병원의 부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는 병원의 일인자로 된 김원장은 병원의 드바쁜 행정업무로 눈코뜰새없이 보내면서도 피부과전문의라는 자신의 천직을 한시각도 잊은적이 없다. 그는 짬만 나면 병실에 내려가 환자들을 돌아보고 병원 내부와 외부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의난병에 대한 합동진찰도 주도하면서 앞장서 위중한 환자 치료에 두팔 걷고 나섰다. 학문연구에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는 2007년에는 박사학위를 따냈으며 선후로 “특수두드러기에 대한 조기 매독진단에서의 의의 및 림상분석” 등 론문 40여편을 발표하였고 《피부미용과학》,《피부성병학》등 16부에 달하는 의료 전문교재편찬을 조직 혹은 주필을 담당했다.

병원의 “문턱”을 낮추고 수금표준을 낮추다
의사는 언제나 환자의 립장에서 생각해야 하고 병원은 어느때나 환자들이 편안하게 찾아올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김원장은 때로는 환자의 기분이 어떨지 느끼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환자실에 누워보기도 한다. 또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만약 원장이 된다면 병원을 환자들이 가장 편안하게 찾을수 있고 신뢰할수 있는 병원으로 만들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한테 기회가 왔다. 2008년 7월 연변병원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사회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연변병원에 와 병보이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문제를 료해하게 됐다.

이는 한시도 미룰수 없는 핵심문제라고 생각한 김원장은 “병원의 문턱을 낮추고 수금표준을 조절하여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방안을 모색하고 직접 해결에 나섰다. 환자들의 병에 따라 치료하고 약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며 실제에 근거하여 비용을 수금하도록 하기 위해 병원제도, 기속기제와 상벌조치를 다시 보완하고 병원에서 새로 반포한 의료비용수금기준을 엄격히 지키도록 했다. 이런 집행을 토대로 지역경제실제를 감안하고 약품가격을 선후로 3차례 인하하여 환자들로부터 근 1000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적게 수금했다. 또한 심혈관, 항생소 관련 약품을 25%나 낮추는 등 약품비례를 40% 이하로 낮추어 연변병원은 길림성 3급갑등병원에서 약품비례가 가장 낮은 병원으로 됐다.

또 예전부터 생활이 어려운 일부 신장기능쇠약환자들이 비싼 혈액투석비용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김철호원장은 혈액투석비용수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하고 성물가국에서 규정한 매인 매차 420원의 수금표준을 290원으로 조정하여 이 한가지 조치만으로 환자들에게 근 800만원이라는 의료비용을 삭감해주어 경제난으로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들에게 삶의 기쁨을 되찾게 해주었다.

김철호원장은 부임해서부터 지금까지 근 400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생활이 가장 어려운 빈곤한 지역주민들이 연변병원에 와 지체없이 구급받고 치료받고 호리받도록 보장해주어 병원이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도 부담없이 찾아올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었다.

환자들이 더욱 편안하게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그는 200여만원을 들여 근 100여개에 달하는 병실을 보수했다.환자들이 병원에서도 호텔에 온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그는 병실마다 정수기를 놓아주고 세면실에는 손을 씻는 비누, 손말리우는 소독기, 위생종이 등 세세한것까지도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환자들에 대한 이러한 무료제공으로 연변병원에서는 해마다 환자들을 위한 공익적인 항목으로 200만원의 자금을 더 지불하고있다.

2010년 그는 또 60만원을 투입하여 병원 입원구에 24시간 동안 뜨거운 물을 공급하도록 하여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하여서도 매일 샤와할수 있도록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환자들의 믿음은 최고의 의료실력에서 온다
김철호원장은 의사의 친절한 진료와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다져진 탄탄한 실력만이 환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원장으로 당선된 그날부터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실력이 탄탄한 의료대오를 양성하고 구축하여 연변병원을 북경, 상해 등 국내 일류수준의 병원을 따라잡는 국가급병원으로 건설하리라…그러려면 남들이 한발자국씩 내디딜 때 우리는 몇발자국씩 달려야 한다.”

병원의 실력을 높이려면 인재를 양성하고 인재를 영입하는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 그는 병원인재양성계획을 직접 작성하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인사제도와 분배제도 개혁을 보완하였다. 연변병원내에서 전 성 나아가 전국에서도 유명한 학과중견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기 위해 병원에 청장년우수인재양성기금을 설치하고 진정한 재능과 학문만 있다면 대대적으로 지원해주고 대담하게 발탁하여 등용했다.

국내뿐만아니라 국외로 류학간 우수인재들을 병원으로 영입하기 위하여 그는 직접 그들과 련락하고 그들이 연변병원에서 일할수 있는 여러가지 우대조건을 제시하면서 설득하고 권고했다. 김철호원장의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짧은 3년 사이에 근 46명에 달하는 박사를 연변병원으로 영입하였는데 그중에서 미국, 일본, 한국 등 나라를 비롯하여 해외에서 돌아온 박사가 35명에 달한다.

좋은 환경과 비전이 있는 사업으로 인재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는 의료일군들이 재직중에 석사, 박사 공부를 하는것을 고무격려하였으며 이들을 선두로 의료일군 모두가 부단히 배우고 자기개발에 열중하는 농후한 학습분위기를 형성했다.

연변대학부속병원으로서의 연변병원이 의학인재양성의 중임을 짊어져야 한다는것을 언제나 념두에 두었던 김철호원장은 “과학기술에 의한 병원진흥”방침을 제정하고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그 방침을 실천에 옮겼다.

연변대학의 박사생지도교수인 그는 바쁜 행정관리와 림상의료업무에도 불구하고 이 몇년간 10여명의 박사생과 석사생을 지도, 양성했다. 병원 원장, 연구와 진료 교수로서 가르치는 일까지 하니 너무 바빠서 처음 시작할 때는 새벽 2~3시안에 집에 들어간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것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는 학생의 립장에서 생각하며 강의준비도 열심히 했고 학생들의 론문을 내용에서 형식까지 일일이 참답게 수정하며 지도했다.

김철호원장의 솔선수범으로 지금 연변병원에는 200여명에 달하는 의료진이 연변대학 학부강의를 맡고있으며 해마다 2만 5000교시의 교수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고있다. 최근 몇년간 연변병원은 선후로 성급, 부급 과학연구과제 및 성과상 60여개를 획득했으며 지난해에는 특히 7개항목이 국가자연과학기금회의 특별항목자금지원을 받았다.
의사가 존재하는 리유는 환자가 있기때문이고 병원이 존재하는 리유는 환자들의 병을 치료할수 있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사랑방"이 필요하기때문이다. 김철호원장은 바로 연변병원을 사랑방처럼 친근한 지역민 건강지킴이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오래동안 "휴식"이라는 두글자를 잊고 살아온 김철호원장, 남들이 다 휴가를 보내는 설명절에도 그는 아침일찍 일어나 병원을 돌아보고 환자들을 위문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일군을 위문하고 격려하면서 어느때나 환자들과 의료일군들과 함께 한다. 병원의 일인자로 공평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청렴하고 겸허한 김철호원장은 사회의 높은 찬사와 영예를 받았다. 그는 조선족으로 처음으로 "중국의사상"을 획득했고 또 전국"5.1"로력메달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국무원특수수당금을 향수받고있다.

연변병원을 사랑방처럼 친근한 지역민 건강지킴이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거액을 투입하여 현대화시설을 갖춘 급진외과청사를 세우는데 동분서주하는 김철호원장, 이 모든것이 연변병원을 국가급병원으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자부심을 안고 시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입, 환자들을 위한 최선의 봉사로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지역내 대표의료기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김철호원장, 연변병원의 미래을 향한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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