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철의 녀인"으로 력사에 남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9일 10시52분    조회:384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마거릿 대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반공·반노조 내건 신자유주의 기수
‘자유경제’ 대중지지로 최장기 집권

공기업 민영화 등이 빈부차 키워
대처리즘, 세계금융위기 뒤 논란

“다른 길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신의 삶을 웅변하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신념은 일관됐으나,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다”(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는 반대자·비판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반공주의를 내걸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맞섰다. 반노조주의를 내걸고 영국의 공공부문 노조를 무력화했다.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한 아르헨티나를 무력으로 격퇴시키고, 북아일랜드 독립군을 진압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내건 그의 경제 이념은 1980년대 이후 세계를 ‘금융자유주의 체제’로 변모시켰다.

 그를 ‘철의 여인’으로 불리게 한 핵심은 일련의 사영화 정책이다. 1979년 11월 영국석유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항공, 전신전화, 화물, 항만, 통신, 호텔, 가스 등 국영기업을 줄줄이 매각했다. 1980년 178만여명에 이르렀던 공기업 노동자는 1992년 47만명으로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4차례나 노동법을 바꿔가며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물리쳤다.

 대처 전 총리는 대신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를 택했다. 하층민과 중산층에게 공기업의 주식을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기업 사영화를 명분으로 외국 자본에 경영권을 넘기는 한국 정부와 비교된다.

 복지와 노조의 자리를 주식배당과 국민주주로 대체하고, 그들의 수익을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해 극대화하겠다는 게 그가 꿈꾼 보수정치의 원형질인 셈이다. 대처 전 총리는 이를 ‘대중자본주의’라 불렀다. 그가 영국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에 환호한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 영국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은 이러한 ‘대처리즘’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러 얼굴을 포장해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그의 정치는 21세기 들어 파산 선고를 맞았다. ‘대중자본주의’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빈부 격차는 더 극심해졌다. 그의 방식을 본받은 공기업 사영화가 1980년대 이후 미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한국 등 전세계로 번졌다. 이를 통해 부를 얻은 것은 일반 주주가 아닌 금융자본가였고, 극심한 빈부 격차도 영국에서 세계로 확산됐다.

 동시다발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는 대처 전 총리가 주도한 광범위한 사영화 및 긴축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다. 21세기 들어 유럽 각국의 보수정당조차 ‘작은 정부’와 ‘카지노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금융 규제 및 빈부격차 해소를 역설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가 남긴 이념은 21세기 들어 세계적 금융위기와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비평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孫文 만난 뒤 중국공산당 입당 사해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재정형편이 취약해 그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취직하던 전차회사의 차장노릇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어릴 때 잠시 접어두었...
  • 2005-11-04
  • [원제:동포 1.5세 여성 미 해군 부대장 `우뚝'''' ]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인사지원부대(PSA)장이 동포 1.5세 이연미(40. 미국명 앤리 쿠베라) 중령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30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5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이 중령은 뉴저 지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버지니아대 국제관계학을...
  • 2005-11-04
  •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
  • 2005-11-03
  • 본사소식(윤선일)" 최근 단동출입경 검험검역국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단동랑두항구로 무연탄을 싣고 입항하는 조선 화물선이 부쩍 늘고 있다. 해당인사의 소개에 의하면 10월부터 겨울 난방기에 들어서고 국내 화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석탄을 수요로 하며 질 좋은 조선의 무연탄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으면...
  • 2005-11-02
  • 흑룡강동원상업무역유한회사 —망규동원화원주점 개업 선언 본사소식( 기자 최계철) 조선족청년기업가 박광종(39세)이 이끄는 흑룡강동원(同源)상업무역유한회사는 상업,무역, 부동산업을 병진시켜 창업 12년만에 총자산 1억 2000만원에 7개 자회사를 둔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 산하 흑룡강 망규화원주점이 10월...
  • 2005-11-02
  •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
  • 2005-11-02
  • 클린턴과 골프 친 뒤 성금 50만불 쾌척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위성미)가 지난 3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던하일랜즈골프클럽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미셸 위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 날 골프 만남은 프로 전향 때 발표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 돕기 성금 5...
  • 2005-11-02
  •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굼꾸다 총이 아닌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다는 한낙연. 최용수교수도 한낙연이 중국에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긴 그런 인물이 어디 한둘이랴. 널리 알려진 스타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 2005-11-01
  • [원제:홍광정신 실천으로 조선족 명예 찾겠다 ]  “한국정부에 리홍광장군의 명예회복을 수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응이 없다.”  지린성 반석시 홍광중 교장을 역임한 이주산(李柱山·72)선생은 오랫동안 항일운동가 리홍광장군을 연구해온 인물. 아마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그 만큼 리홍광장군에 대해 잘 알...
  • 2005-10-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