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색구역의 맑스주의자 —리철부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9일 14시42분    조회:311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철부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7)

 

모택동동지께서는 일찍 연안에서《화북당에서 림시중앙의 좌경모험주의로선에 대해 일찍 예리한 반대의견을 내놓았는데 그 수령은 리철부동지이다》라고 지적한바 있다.

 

조선공산당 조기 당원이며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인 리철부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일찍 하북성당위원회 선전부장과 조직부장 및 천진시당위 서기로 활동하던 걸출한 혁명가이다.

리철부의 원명은 한위건(韩伟键), 1901년 조선 함경북도 홍원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리철부는 13살때인 1914년에 경성에 올라가 조선의 애국지사들이 꾸리는 오성중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진보적인 교원들의 가르침을 받아 반일사상이 싹트게 되였다. 1917년 오성중학을 졸업한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전공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조선독립운동의 선배들과 손잡고 비밀리에 학생운동을 벌여나갔다.

《3.1운동》후 일제는 혁명자들에 대해 잔혹한 탄압을 감행하였다. 1919년 4월, 리철부는 적들의 탄압을 피해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 망명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쏘련에 갔다가 후에 조선독립지사들이 집중되여있던 상해로 왔으며 1920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4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리철부는 다시 조선 경성으로 돌아가 《동아일보》의 기자로 있으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과 련계하여 공산주의운동을 하였다.

1926년, 리철부는 조선공산당《맑스-레닌주의동맹》에 가입하고 조선공산당 제3차위원회 중앙위원으로 당선, 1928년 조선공산당 제3차 체포사건이 발생한 후 수사를 피해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에 도착한 리철부는 중국공산당과 련계를 가지고 공산당에 가입하며 당중앙의 지시에 의해 북평으로 가 당사업의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이 시기 그는 선후로 북평시 반제동맹 당, 단 서기, 중공하북성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30년대초, 북평은 일제의 동북강점으로 말미암아 항일구국의 노도가 세차게 일고있었다. 북평에서 리철부는 림풍 등 동지들과 손잡고 반일투쟁을 령도해나갔다.

1933년 5월 18일, 리철부는 성당위 대표로 북평반제독맹 당, 단 회의에 출석하는 기간 동지들과 접선을 하다가 불행히 국민당특무들에게 체포되였다. 철창속에서 리철부는 자기의 신분과 당의 비밀을 폭로시키지 않았다. 리철부한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적들은 그를 남경으로 압송하였다. 중국공산당 지하조직과 조선혁명단체들은 리철부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고 협상끝에 보증을 서고 그를 보석출옥시킬수 있었다.

리철부는 출옥후 한동안 남경에 있다가 또다시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천진으로 갔다. 당조직에서는 리철부동지의 안전을 고려하여 장수암이라고 부르는 녀성동지와 부부로 가장하고 혁명사업을 진행하게 하였는데 후에 이들의 혁명적우의는 진정한 혁명적사랑으로 승화되여 정식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되였다.

당시 북평과 천진의 지하당조직은 엄중한 파괴를 받았으며 많은 동지들이 체포되여 희생되였다. 중공하북성위 선전부장이였던 리철부는 당조직이 파괴되는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당조직에 자기의 견해를 표명하기로 작심했다.

이러한 글에서 리철부는 당의 좌경로선의 오유를 비판하고 하루빨리 전당을 볼쉐위크화해 진정으로 혁명리론으로 무장하여 좌경로선을 청산하고 무모한 희생을 피하며 자기 혁명력량을 더욱 키워야만 중국혁명이 승리할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에서 파견한 북방국의 좌경모험주의자들은 리철부동지가 써낸 의견서를 보고 노발대발하면서 하북성당위와 전체 당원들에게 《잔혹한 로선투쟁을 전개하라》고 지시하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리철부동지는 당에서 축출되였다. 장수암동지도 리철부의 주장을 지지했으므로 같은 타격을 받았으며 성당위에서는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리철부동지를 지지하던 성당위의 주요책임자들도 타격을 받았다.

1935년 1월에 열린 준의회의는 왕명의 《좌》경기회주의로선을 청산하였다. 준의회의후 당중앙에서는 류소기동지를 천진에 파견, 중공북방국 서기로 임명하였다. 류소기동지는 와요보회의정신에 따라 좌경오유를 시정하였으며 직접 리철부동지와 면담하였다. 당조직에서는 리철부와 장수암의 조직관계를 회복시키며 이때로부터 리철부동지는 천진시당위 서기를 맡고 류소기, 팽진 동지와 함께 사업하게 됐다.

리철부는 팽진동지의 《고모부》이다. 장수암의 조카 장결청이 바로 팽진의 부인이였다. 당시 팽진동지는 천진에서 적들에 의해 체포되였다가 출옥후 당조직을 찾아온것이 바로 리철부였다.

일찍 지난세기 80년대에 팽진동지는 리철부와 장수암 부부를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적이 있다.

《나는 그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처럼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그들은 남을 도왔으며 더구나 가난한 당원들을 도왔습니다. 적들의 백색테로하에서 많은 당원들이 당과의 련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철부와 수암 동지를 찾자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도 어려우면서도 돈을 내여 구차한 당원들을 구제했지요. 》

리철부는 천진시위 사업을 책임진 후 조직우세를 충분히 발휘하여 당원과 기층지부사업을 틀어쥐는것으로 부단히 혁명력량을 육성하였으며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했을뿐만아니라 천진에서의 우리 당의 새로운 사업국면을 개척하였다. 리철부는 법상학원, 남개대학 등에 당지부를 세우도록 이끌었고 민중구국회, 로동자구국회, 농민구국회 등 구국회를 세웠으며 천진시의 다양한 항일구국운동의 활발한 전개를 위해 마멸할수 없는 업적과 기여를 하였다.

1937년 5월, 당중앙에서는 연안에서 당전국대표대회와 백색구역 사업회의를 열었다. 당시 천진시당위 서기였던 리철부는 류소기, 팽진 등과 함께 화북국을 대표하여 연안으로 가게 되였다.

떠날 림박 리철부는 사랑하는 안해와 사진을 찍자고 제의했다. 평소에 자신이 못났다고 사진찍기를 싫어하던 장수암이였건만 사랑하는 남편과의 석별을 앞두고 흔연히 동의했다. 지금 우리가 볼수 있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리철부의 사진이 바로 그때 찍었던 사진이다. 당시 장수암이 어찌 이 사진이 리별의 사진이였고 고난많던 남편의 마지막 길이였다고 생각이나 하였을가?

 
연안으로 떠나기전 장수암과 남긴 리철부동지의 마지막 사진(1937년)

연안시기 로동지들의 회억과 자료 그리고 팽진위원장의 회억에 따르면 당시 연안에서도 당의 백색지구사업에 대한 론쟁이 있었는데 최후 당중앙에서 결의를 지으면서 모택동동지가 《철부동지가 반영한 의견서는 기본적으로 정확하며 철부동지는 훌륭한 동지이다. 소기동지는 백색지구의 대표이며 철부동지는 백색구역의 맑스주의자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류소기, 팽진, 리철부 등은 연안에서 모택동동지의 접견을 받았으며 중앙에서는 리철부가 장기간 백색지구에서 지하투쟁을 하느라고 고생하였고 결핵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것을 보고 그를 섬감녕 서북국에 남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가혹한 심문과 당내 불공정한 대우로 심신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리철부동지는 몸져눕고말았다. 장기적인 페결핵에 장질부사까지 겹친 그는 1937년 7월 10일 연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36살이였다.

급보를 받고 장수암이 천진에서 불원천리 연안으로 달려왔을 때는 리철부가 서거한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당중앙에서는 당과 인민의 훌륭한 아들 리철부동지가 서거한 후 성대한 추도대회를 열었으며 《신중화보》는 리철부동지의 략전과 추도회보도를 실었다. 리철부의 유체는 연안 청량산마루에 안장되였다.

1945년 4월에 당의 제7차대표대회를 앞두고 중공중앙 판공청에서는 리철부의 묘지에 대리석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에는 《조선공산당 창시자의 한사람이며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중공천진시위원회 서기인 리철부동지의 묘》라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그러나 청량산에 세웠던 리철부의 묘소는 아쉽게도 국민당이 연안을 점령할 때 파괴되였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사진= 김석봉 변호사가 베이징잉커(광저우)율사사무소 상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봉 김호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변호사는 법률로 사회의 병폐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가며 정의를 신장한다. 어려서부터 많은 꿈을 가진 김석봉(43)씨는 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아시아 ...
  • 2018-03-27
  • 해바라기장사가 꿈이였던 한 농촌소녀의 성장이야기 새로 나온 건강식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김기옥 리사장. “왜서인지 어릴 때부터 해바라기장사나 얼음과자장사를 하고 싶었죠.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항상 반장이 되고 싶었는데 위생위원이나 학습위원밖에 못했어요.” 어린 시절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으면...
  • 2018-03-22
  •    선전시디바이텍 실업유한회사 이대홍 이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월드옥타 제4대 선전지회장으로 활약하다 지난해 연말에 이임한 선전시디바이텍 실업유한회사 이대홍(56) 이사장은 성격이 활달하고 아주 소탈한 기업인이다.   "개혁개방이 없으면 오늘이 없지요"   우리 특별취재팀이...
  • 2018-03-20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최창규 연변에서는 어디를 가나 봇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춥고 황량한 벌판일 수록 더욱 꿋꿋하게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봇나무는 아름다운 자태와 굳센 의지가 회자되면서 세인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지난 1월 29일에 만난 최창규옹(84세), 그가 창작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관현악곡작품...
  • 2018-03-16
  • ‘2017년 흑룡강을 감동시킨 인물’ 계동현인민법원 려선화 재판장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소송 당사자와 사건에 책임지고 공정 공평하게 일하여 인민이 만족하는 법관이 되겠습니다.”   지난 2월 6일, 흑룡강성위 선전부, 성정신문명판공실, 성총공회, 성부녀련합회 등 단위에서 공...
  • 2018-03-08
  • 30년 넘게 민족무용과 하나되여 군중예술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안무가 고성옥(55세)씨를 지난 1일, 그가 부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길시문화관에서 만났다.   안도현 장흥촌에서 태여난 고성옥씨는 어릴적부터 예술적 재능과 끼가 다분했던 문예소녀였다. 어쩌다 마을에서 하향공연이...
  • 2018-03-07
  •     ▲ 박사학위 수여식을 마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용선 박사   중국동포 출신인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이 20일 ‘대림동 중국동포타운 지역 활성화 연구’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길림성 용정시 태생인 김...
  • 2018-02-26
  • 미국 조지아주 중화침술의사협회 회장,아틀란타 북경중의원 원장 박두봉 인터뷰 박두봉과 부인 고복자씨 설날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 필자는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자리 잡고있는 아담하고 정갈한 북경중의원을 찾아갔다. 은은히 풍기는 약초 향기를 맡으며 저녁에 열릴 조지아주 중의사협회 음력설련환회 준비때문에 바쁘...
  • 2018-02-24
  •       광둥예지아전자과학기술유한그룹 남기학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 것이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웰리엄 G 쉐드의 명언처럼 대학교수라는 사회 촉망을 받는 유망한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 더 넓은...
  • 2018-02-13
  •      일본전승무역주식회사 전동선 이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38세 되던 해인 2006년 연초에 일본 요코하마(横滨)에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중국의 건축자재를 일본으로 수입, 매년 1억 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일본전승무역주식회사 전동선(50) 이사장은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아마 우창(五常)거리를...
  • 2018-02-06
‹처음  이전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