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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녀투강》전설의 주인공 안순복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27일 09시15분    조회: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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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안순복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1)

 
1938년 10월, 1000여명의 일위군과 가렬처절한 격전을 벌이다 마지막까지 적들에게 굴복하지않고 차디찬 우스훈하에 뛰여들어 장렬히 최후를 마친 《팔녀투강》(八女投江)의 영웅적 전설이 있다. 그8명 녀전사들속에는 2명의 조선족녀전사가 들어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안순복렬사이다.

안순복렬사는 1915년 초봄, 흑룡강성 목릉현 신안툰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1926년 한형도, 김찬, 장한필 등 조선공산당 당원들이 신안툰에서 조선구국청년회, 부녀회, 구국소년단 등 반일지하조직들을 세웠는데 안순복의 아버지 안덕인, 큰 오빠 안일산, 둘째오빠 안광섭은 모두 신안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책임자들이였다.

안순복은 어려서부터 혁명적가정에서 성장했기에 항일구국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소년단원으로 되여 늘 반일표어를 붙이고 삐라를 뿌리는 등 반일선전활동에 참가하였다.

1931년 《9.18》사변후 형세는 날따라 긴장해졌다. 일본군이 심양, 장춘, 할빈 등지에 침입했고 1932년 5월말부터 6월초까지 녕안, 목단강, 해림 등지도 잇따라 일본군에게 점령되였다. 이런 형세하에서 지하당조직은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여 적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1933년 1월 일본군이 목릉을 진공하자 항일부대는 마도석, 대마하 일대에서 적과 접전을 벌여 많은 적들을 살상하였다. 그번 전투에서 승리한후 항일명장 리연록이 지휘하는 유격대는 《동만항일유격총대》로 개칭되였으며 후에 또 《동북항일구국군》으로 재편성 되였다. 이해 2월 안순복은 동북항일구국군 제 4퇀 정치위원인 박덕산과 결혼하였다.

1932년 3월, 일본헌병대에서는 신안툰의 지하조직을 말살하려고 미쳐 날뛰면서 마을사람 30여명을 붙잡아갔는데 안순복의 아버지와 둘째오빠 등 7명의 동지들이 생매장당했으며 근 50세대 남짓한 신안툰도 적들이 질러놓은 불에 타 삽시에 재더미로 되였다.

친인들과 삶의 터전을 잃고 복수의 불길로 타오르는 마음을 억누를길 없었던 안순복은 결연히 외로운 어머니를 리별하고 남편인 박덕산을 찾아가 항일명장 리연록의 부대에 참가하였다.

당시 항일유격근거지와 항일부대에 대한 토벌이 창궐하여 항일부대는 소분대로 무어가지고 신출귀몰하면서 적을 타격하였다. 그때 이미 임신한 몸이여서 부대를 따라 행동하기 어려웠던 안순복은 고산촌에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왔다. 1935년 6월 안순복의 남편 박덕산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불행히 희생되였다. 아직 배속의 아이가 태여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먼저 떠나가다니…안순복은 가슴속의 분노를 모조리 눈물로 쏟았고 불행앞에서 상심할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철천지원쑤 일제놈들과 끝까지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삼복철의 어느날 더위에 쩔쩔매던 류동수비대 10여명의 놈들이 고산촌 동쪽의 소석하 기슭에서 총을 벗어놓고 목욕하는 틈을 타서 안순복과 몇몇 촌부녀회 녀성들은 놈들이 주의 하지않는 틈을 타서 총 몇자루를 빼앗아가지고 쥐도새도 모르게 잠적했다. 미쳐날뛰는 적들의 대수색이 지난뒤 안순복은 깊은 밤에 고산촌지하조직의 도움을 받아 왜놈들에게서 빼앗은 총과 군복을 가지고 리연록, 박봉남이 령도하는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리연록동지는 안순복의 회보를 듣고 나서 그녀를 《고려녀성의 본보기》라고 높이 치하하였다. 그해 초가을 안순복은 심산밀영에서 딸애를 낳았다.

1936년 2월,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은 동북항일련군 제4군으로 개칭되였다. 부대에서는 안순복을 피복공장 공장장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피복공장에는 10여명의 녀성과 4명의 남성이 있었는데 그들은 손재봉기 3대로 군복을 만들었다. 일본군과 경찰, 특무들의 끊임없는 소란때문에 부대는 늘 자리를 옮겨야했는데 그때마다 안순복은 아이를 업고 재봉기를 이고는 동지들을 거느리고 산과 령을 넘나 들었으며 짬만 나면 재봉기를 돌려 군복을 짓군 했다.

로구교사변후 일제는 후방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삼강지구에 대한 토벌을 강화하였다. 1938년에 중공길동성위에서는 제4군과 제5군이 제8군 제9군과 련합하여 오상, 서란방면으로 진군하여 항일련군 제1로군, 제3군과 함께 새로운 유격구를 개척할것을 결정했다.

안순복 등 9명의 녀성동지들은 어린애가 있어 부대를 따라 서정하기가 아주 불편하였다. 이런 실정에서 부대지휘부에서는 애들을 밀산현의 한 농민집에 맡기기로했다.

안순복 등 3명의 녀성동지들은 아이들을 맡긴후 인차 부대로 돌아왔다. 이 일을 안 마을사람들은 안순복이네를 《자식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는 녀호걸》이라고들 불렀다. (그때 맡겼던 아이들중 한명만 찾고 나머지는 행방불명임)

1938년 5월 제4군과 제5군은 서정을 시작하였다. 전진가운데서 적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고 폭격을 가해댔다. 아군의 손실은 아주 커서 제5군의 주력은 100여명밖에 남지 않았으며 부녀퇀은 안순복, 랭운 등 8명의 동지들밖에 남지 않았다.

10월하순, 안순복이 소속된 제5군 제1사 부녀퇀은 주력부대를 따라 림구현 경내의 우스훈하 강변에 이르렀다. 부대는 그곳에서 우등불을 피워 로숙하고 이튿날 새벽에 강을 건느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밤 양자구의 특무 갈해록이 우등불을 발견하고 일본군수비대에 고발하였다. 일본군과 위만군 1000여명이 즉각 출동되여 항일부대의 숙영지를 삼면으로 포위하였다.

새벽에 적들은 강을 건느려는 아군 주력을 향하여 삼면으로 되는 돌연습격을 시작했다. 주요진지와 1.5킬로메터 떨어진 우스훈하 강옆 버들숲에 매복해있던 녀전사들은 부대의 위급한 관두에 결연히 적들을 끌어들여 주력부대를 무사히 전이시키기로 했다.

안순복의 사격명령과 함께 녀전사들의 총탄이 적무리로 날아갔다. 강변에서 총소리가 울리자 일본군은 항일부대의 주력이 강변에 있는줄 알고 다수의 병력을 강변으로 내몰았다. 적들이 녀전사들의 진지로 일제히 쓸어가는 기회를 타서 아군 주력은 끝내 포위를 돌파하고 재빨리 전이하였다. 그러나 주력부대가 전이한후 살펴보니 8명의 녀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들을 구출하려고 원래 지점으로 돌격해나가려 할때는 이미 적들에게 완전히 통제된 뒤여서 더는 되쳐 들어갈수 없게 되였다.

강변의 진지에서는 단지 8명의 녀전사들이 자기들보다 수백배나 더 많은 적들과 맞받아 영용히 싸우고있었다.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에서 탄알마저 깡그리 떨어졌다. 아득바득 다가드는 적들을 눈앞에 둔 녀전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울부짖으면서 세차게 흘러내려가는 우스훈하를 돌아다 보았다.



《팔녀투강》렬사 조각상
《동지들, 우리는 포로가 될수 없습니다. 적들이 우리를 쏴죽이게 가만있을수도 없습니다. 날 따라 함께 강물에 뛰여듭시다! 》 안순복의 이 말에 녀전사들은 어깨 나란히 손에 손잡고 강심으로 들어갔다. 적들이 30메터를 사이둔 강심에 있는 녀전사들에게 기관총과 박격포를 마구 쏘아댔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딸이며 불요불굴의 공산주의전사인 안순복과 그의 일곱 전우들은 자기들의 보귀한 청춘을 민족의 해방사업에 장렬히 바쳤다. 희생될때 안순복은 23세밖에 안되였다.

《팔녀투강》의 장렬한 최후는 중화의 아들딸들이 민족해방사업을 위해 일제와 끝까지 목숨바쳐 싸운 영웅적인 기개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총지휘였던 주보중장군은 《팔녀투강》의 이야기들을 들은후 당장에서 《우스훈하강변 목단강가의 렬녀》라는 제사를 남겼으며 해방후 중국공산당은 《팔녀투강》을 제재로 한 영화 《중화의 아들딸》들을 제작했는데 녀영웅들의 고상한 절개는 수천수만 인민대중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있다.

1986년 9월7일,《여덟녀영웅》을 기념하기 위해 《팔녀투강》(八女投江)기념비가 세워졌는데 전국정협부주석 강극청이 친히 《여덟녀영웅의 영령은 영생불멸하리》라는 제자를 남겼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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