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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애 입으로가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8월13일 09시51분    조회: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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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심청송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의 인생철학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설립
2005년 길림 집안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회사 설립
2008년 단동시정협위원
2010년 조선 평양에 별심합작회사 설립
2013년 성정협위원으로 당선
현재 단동시조선족기업가협회 상무부회장 겸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단 부회장

단동항풍상무(恒豊商貿)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에 대한 첫 인상은 듬직하다는것,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드넓은 시야와 명철한 경영철학, 나아가 강렬한 민족애에 큰 감명을 받았고 후배지만 존경심이 들었다. 빈주먹으로 시작해 억대기업을 일구어세운 그의 창업사는 모든 성공한 경영자들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해온 과정이였고 스스로 기회를 창조하고 한번 잡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해 끊임없이 재부를 창조해온 과정이였다. 장사군이 아닌 경영인의 안광으로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단동시정협위원, 성정협위원으로 당선되였고 민족애실천에 앞장서 단동시조선족기업가협회 상무부회장,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부회장직을 맡아오기도 하고있다.

이미지관리는 회사의 생명

지난 1993년 트렁크 하나 달랑 끌고 낯선 단동에 진출한 심청송씨. 약 1년간의 준비를 거쳐 1994년 친구와 동업으로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를 설립했다. 당시는 대외무역권을 민간인에게 개방하지 않은 시기라 정부회사인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의 이름을 빌려쓸수밖에 없었다. 2000년후 국가에서 대외무역권을 민간인에게 풀어놓자 그는 2002년에 독자로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여들었다. 그는 무역업에 종사한지 십여년에 현재 년간 무역액이 3,000만딸라에 달하는 굴지의 무역회사로 립지를 굳혔다.

“항풍”은 종합성무역회사로 대조선 무역품종만 천여종류에 달한다. 무릇 조선측이 수요하는것이면 품종, 가격을 불문하고 거의 모두 제공해줄 능력을 갖추고있다. 이외 상도(商道)를 엄격히 지켜 항상 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아왔다. 이를테면 적지 않은 대조선무역상들이 가격이 싼 물건을 선호하는 조선회사측의 구미에 맞게 싼 제품만 제공해주었지만 심청송사장은 항상 같은 제품의 부동한 견본을 제출하고 품질좋은 제품을 선택할것을 권고했다. 특히 인체건강에 직접 관계되는 식품류를 취급할 때는 더욱 신중을 기해 가짜, 저질 제품은 절대 넘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1, 2원 가격대의 상품에서부터 대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기계설비에 이르기까지 품질문제로 이미지를 떨어뜨린 사례는 한건도 없다고 하였다.

단동지역에는 시소속 변경무역회사만해도 500여개에 달한다.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일부 무역상들은 전문 가짜, 저질 제품으로 대방을 속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동시정협위원으로서 심청송씨는 변경무역회사중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현상에 대해 불법변경무역회사들을 정돈할것을 시정부에 강력하게 제안하였다. 그는 이는 잠시는 조선측에만 피해를 주는것같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해치는 행위라며 절대 홀시할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의 제안은 시정부책임자들의 중시를 받았고 시정부에서는 관계부문에 지역 무역회사들에 대해 정돈할것을 지시하였다. 철저한 회사이미지관리로 하여 “항풍”은 2009년 대련해관으로부터 A류수출입무역회사칭호를 수여받았다. 심청송씨는 단동지역의 수백을 헤아리는 무역회사중 A류기업은 10개 미만, 그만큼 이 간판은 쉽게 오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심청송씨는 원래 대조선무역에만 종사하던데로부터 대조선 직접투자에도 나서 지난 2010년에 평양에 별심합영회사를 설립하였고 2012년에는 평안남도 순천에 합영으로 탄화규소공장을 세웠는데 투자액이 300만원에 달했다. 견본출시를 거쳐 4월부터 본격생산에 들어섰다.

대조선무역노하우€ 정세파악을 잘하고 정책과 법규를 료해해야

중국조선족들중 대조선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그들중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조선무역이야말로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칭송하고 실패한 사람들중에는 이러쿵 저러쿵 대방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심청송씨는 하기에 달렸다며 대조선무역에서는 반드시 정세파악을 잘하고 국내와 대방의 정책과 법규에 대해 깊은 료해가 따라가야 한다고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지피지기, 백전불패”(知彼知己, 百戰不敗)란 말이 있다. 모든 업계가 다 그러하겠지만 대조선무역도 그때그때의 국내와 대방의 정책과 규정,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현황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것이 심청송사장의 불변의 원칙이다. 대조선무역에서는 당시 현황을 제대로 파악못하면 손해볼 확률이 크다. 따라서 대조선무역에서 리윤창출만큼이나 중요한것이 상대방의 처지를 최대한 헤아려야 한다는것이다. 심사장은 조선의 변화에 대해 면밀히 주의하고 상황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이 불변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어느 한번 그는 조선측의 요구에 따라 국내 한 유명브랜드의 대형자동차업체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하게 되였다. 차량을 깐깐히 검사하는 과정에서 심청송씨는 차량들이 모두 중고차를 새 차로 둔갑시킨것임을 발견하였다. 따지고들자 그 업체담당은 조선측에 가격을 얼마간 깎아주면 수출에는 전혀 문제 없을거라며 눈을 감아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대로 내보내면 자신도 큰 돈을 벌수 있었지만 그는 조선측에 손해보게 해서는 안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직원은 회사의 가장 큰 자산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 좌우지된다. 회사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어서 더욱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선행되야 한다.” 심청송리사장은 자기가치 창조에 심혈을 기울였을뿐만아니라 직원들의 소질향상, 기능제고에 더 공력을 들였다.

그는 단동에 진출하기에 앞서 1991년부터 1993년 사이 그는 옹근 2년 시간을 들여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을 견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94년 친구와 동업으로 단동진출시 직원이 고작 3명이였으나 2002년“항풍”을 창립할 때는 7명으로, 현재는 25명으로 불어났는데 이 기간 회사를 리탈한 직원은 한명도 없다.

심리사장이 20여명 직원들을 위해 들인 공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직원들을 륜번으로 청화대학 “사회 새계층”강습반에 보내여 충전하게 하였고 단동시공상련에서 조직한 저명 경제학교수들의 초청강연은 거의 빠짐없이 청취케 하였다. 또한 사내 직원들의 의료보험, 사회보험 등 각종 보험을 다 들어주는 등 백방으로 직원들의 대우개선과 복지향상에도 관심을 돌렸다.

직원들은 심청송씨에게 오로지 직원뿐이 아닌 가족이기도 하다. 그는 “직원들은 돈으로 환산할수 없는 회사의 가장 값진 자산”이라며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주어야 회사도 그만치 발전할수 있다고 하였다.

민족애는 실천하는것

회사 설립초기에는 생존문제로 민족사회에 별로 관심을 돌릴수가 없었던 심청송씨는 회사가 안정된 발전단계에 들어서자 2008년부터 적극적으로 단동지역 조선족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주요책임자의 한사람으로 발탁되였다. 다년간 그는 단동지역의 각종 조선족행사에 수십만원을 후원하였으며 지역조선족활동뿐만아니라 성내, 나아가 전국적인 조선족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영향력을 넓혀가고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조선족민간단체는 현지 조선족사회의 구심점이라며 한 지역의 조선족사회의 문화, 교육의 발전여부는 현지 조선족민간단체의 활약여부에 큰 관계가 된다고 하였다.

조선과 강 하나를 사이둔 변강도시이지만 단동시에는 원래 조선족이 많지 못했고 현재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은 거의가 외지출신들이다. 그만치 지역적련대성이 강하지 못했지만 단동지역의 조선족기업인들은 단합심이 강하기로 소문이 있다. 이에 대해 심청송씨는 김택룡, 한연옥 등 선배기업인들이 토대를 잘 닦아놓았기때문이라며 후배들도 선배들처럼 단합심을 키워갈것이라고 하였다. 다행스러운것은 단동지역에는 현재 40대 한창 나이의 조선족기업인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또한 이들의 조선족활동참여열성도 높은 편이라며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잘 묶어세우고 적극성을 최대한 발휘시키는가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심청송씨는 민족애는 입으로가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는것이라며 자신은 금후에도 단동지역의 조선족사회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갈것이라고 덧붙였다.

료녕신문 리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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