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걸출한 로케트발사전문가 리상영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9월16일 16시19분    조회:1038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상영

《장정》계렬 로케트발사전문가 리상영

《우르르 쏴》하는 뢰음과 함께 2006년 4월 27일 6시 48분, 환경탐사, 재해방지, 자원탐사 등 데이터를 수집하고 전송하는 역할을 담당한 우리 나라 인공위성-《원격탐지 1호위성》이 태원위성발사기지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 위성을 탑재한것은 《장정4호》 을형로케트, 상해항공우주국에서 연구제조한 길이 45.8메터, 리륙시 무게 250톤, 추진력 300톤급, 운반탑재능력이 1800킬로그람인 이 로케트는 1999년 첫 발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100% 발사에 성공해 국가로부터 《금메달로케트》란 별칭을 수여받았다.

《장정4호》을형로케트를 번마다 성공적으로 발사시킨 주인공은 조선족출신의 로케트발사전문가 리상영이다.

1970년은 우리 나라 우주항공력사의 새 기원을 열어놓은 해이다. 역시 리상영이 《장정》계렬로케트발사연구사업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내게 된 획기적인 해, 이해, 리상영은 《폭풍1호》로케트총체성능설계사 직무를 떠맡았고 1975년 7월 26일, 급기야 그가 이끈 연구팀은 《폭풍1호》로케트로 1톤이 넘는 과학위성 《장공1호》를 주천위성발사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1981년 9월 20일, 그의 연구팀은 3기의 위성을 동시에 발사해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구쏘련과 미국 다음으로 《3위성 동시발사》기술을 보유하게 했다.

《폭풍1호》로케트를 연구개발하는 지난 세기 70년대부터 리상영의 재능은 충분히 과시돼 1996년 《장정4호》을형로케트 총지휘와 총설계사 직무를 맡기전까지 그는 선후로 우리 나라 《장정4호》갑형로케트의 부총설계사, 《장정2호》정(丁)형로케트의 부총설계사, 《신주》비행선의 부총설계사를 력임했다.

리상영

기자들의 취재를 받는 리상영

리상영-가난한 조선족농민가정에서 태여난 걸출한 아들

1941년 9월 리상영은 흑룡강성 오상현의 한 조선족농민가정의 6남매중 둘째로 태여났다.

리상영네 일가는 1940년대초 조선 경상북도 청송군으로부터 이주해왔다. 해방후 리상영은 소학교와 초중은 조선족학교에서 고중은 한족학교를 다녔다.

1957년 10월 4일, 구쏘련에서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를 우주공간에 쏘아올렸다. 이는 당시 오상 1중에 다니며 물리과대표를 맡고있던 리상영에게 장차 로케트전문가가 되려는 꿈을 지니게 하였다.

1959년 리상영은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공업학원(오늘날 북경리공대학) 로케트학과에 붙었다. 당시 새 중국의 첫번째 국방공업대학이였던 북경공업학원은 우리 나라 국방공업분야의 고급인재를 양성하는 5년제 본과대학으로 국방과학기술위원회와 중공업부의 이중령도를 받았다. 1953년말부터 1960년까지 이 학원에서는 구쏘련전문가들을 초청해 화포, 땅크, 레이다, 미사일로케트 등 병기학과를 륙속 창설했는데 리상영에게 학습기회가 마련되였던것이다.

1964년 대학문을 나선 그는 홍색국방 공정사의 신분으로 우리 나라 첫번째 미사일로케트연구기관인 국방부 제5연구원(1982년 항공우주공업부로 개칭) 제2분원에 배치됐다. 제5연구원의 초대원장은 중국우주과학의 정초자인 전학삼이였다.

1965년 리상영이 소속된 연구소가 상해시 기계전기 제2공업국(오늘의 상해항공우주국)과 합병하며 리상영도 상해에 전근돼 지면미사일연구와 로케트발사연구에 전념하게 됐다.

《과학연구에서는 실패란 없다. 성공만 허락한다.》

1996년부터 리상영이 총지휘하고 총설계한 《장정4호》을형로케트는 국가의 존엄이고 얼굴이였다.

1999년 5월 8일 미국을 위시한 나토군이 유고슬라비아주재 중국대사관을 무참히 폭격하고 이틀이 지난 5월 10일, 태원에서 《장정4호》로케트로 《풍운1호》기상위성과 《실천5호》과학위성을 동시에 발사하는 리상영의 어깨는 무거웠다. 《실패는 없다. 성공만을 허용한다.》는 각오아래 리상영은 압력이 컸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두 위성이 정확히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해받은 리상영과 발사팀 전원은 환호했다. 그랬다! 미국과 나토앞에서 보란듯이 중국이, 리상영이 해냈던것이다!

국제형세가 상대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중국의 튼튼한 버팀목이 돼준 리상영의 쾌거는 이뿐만 아니다. 2002년 10월 27일 오전, 태원위성발사기지에서 《장정4호》을형로케트 위성 발사준비가 마무리되였다.

이번에 발사하는 《자원2호》는 리상영이 로케트발사 총지휘를 맡은 다섯번째 위성이였다.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의 개막을 앞둔 특수한 시기에 발사되는 이 위성은 각별한 정치적의의를 띠고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강택민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고 메히꼬 APEC회의에 출석하는 민감한 시기라 의례적인 위성발사는 중국이 국제위상을 제고하는데 중요한 프로젝트였던것이다. 《나는 성공만을 갈망한다!》 발사를 앞둔 동원대회에서 말한 리상영의 짤막한 한마디다. 그는 다시한번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 조국의 명예를 떨치고 싶었다.

《준비발사! 10초, 9초, 8초…》 …리상영은 주먹을 쥐였다! 《…3초,2초,1초…》 …그의 심장은 멎을것 같았다! 《…발사!》 《우르르- 쏴-》 위성이 서서히 하늘로 올라간다! 불줄기가 굵다! 울려퍼지는 발사팀의 환호소리! 발사성공! 리상영은 날듯이 기뻤다. 지하통제실에서 기쁨이 넘치는 지휘대청에 뛰여나온 그를 중국인민해방군 총장비부 부장 조강천상장이 으스러지게 포옹했다! 총장비부와 총참모부 30여명 장군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힘껏 박수를 쳤다!

《과학연구에 실패란 없다! 성공만 허락한다!》 이는 리상영이 입버릇처럼 늘 하던 말이였다.

리상영은 그의 연구팀과 발사팀을 엄격히 관리했다. 팀 성원들은 리상영의 세심함에 탄복할뿐더러 문제를 발견하면 추호의 사정도 두지 않는 그의 성격에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리상영의 엄격한 비평은 옳았다! 그가 종사한 사업은 소수점 아래 몇자리 수치도 오차가 생기면 안되는 로케트발사사업이였던것이다!

과학탐구자의 길은 탐구자 개인 행복과 인생이 포기된 외롭고 힘든 길이였다. 그러나 리상영은 조국을 빛내기 위해 이 길에서 한평생 억척스레 분투했다.

한평생 로케트발사연구에 몰두해온 조선족과학사업일군 리상영에게 당과 정부는 2001년에 《전국우수과학기술사업자》칭호를, 2004년에 《전국5.1로력로동상장》을, 2005년에 《전국로력모범》칭호를, 2006년에 《하량하리 기금상》을 수여했다.

-참고문헌 《탐구자의 길》 민족출판사

길림신문  김웅견습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대학에서 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공기를 마시고 살지만 선생은 연변대학, 연변조선족을 호흡하며 사는구나…》 이는 한국의 중국통 동훈선생이 박문일교수의 80세 생일에 보내온 축사의 한 구절이다. 외유내강형의 평생교수로 불리는 박문일교수는 연변대학의 전임교장으로 중국의...
  • 2013-07-01
  • [고마운 한국인] (주)국제 미다스 스포츠 유승호대표의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 유승호대표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압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기때문에 가능한거지요. 때문에 남을 위하는 일은 돈도 돈이겠지만 우선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주)국제 미다스 스포츠 유승호 대...
  • 2013-07-01
  • 《학급에 가족사랑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어요. 한 학생은…》 말을 채 잇지 못한채 김옥란선생님은 한창이나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학교와 학생들을 항상 첫자리에 놓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학생들의 일이 가장 큰 일, 중요한 일》이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숙사로 이사와 ...
  • 2013-06-30
  • 혼례는 인생의례의 일종으로 신랑, 신부가 사랑의 백년가약을 맹세하는 신성한 자리이다. 사회의 변혁속에서 우리 민족의 혼례는 새로운 변화양상을 보여왔는데 그중 주목해야 할 변화가 결혼사회자의 출현이다. 요즘 행사 사회자를 보는 연변전통례절문화원 홍미숙원장의 시각은 남다르다. 1990년, 도문시가무단에서 공연...
  • 2013-06-28
  • -길림신문 오기활기자와의 인터뷰   오기활 략력 1947년 5월 9일, 왕청현 석현진 달라자촌 출생 1974년 연변농학원 축목수의학부 졸업 1986년 연변대학 정치학부 졸업(통신학부) 1974~1984년 도문시 홍광향축목수의소 소장, 홍광향 당위 선전위원, 조직위원, 경제위원회 부주임, 도문시당위 정책연구실 연구원 1984~20...
  • 2013-06-28
  •      여기, 고래희의 문인 한분이 있다. 본명인 림국웅보다는, 시인 한춘이나 평론가 산천으로 더 익히 알려진 그는, 중국 북방조선족문단의 태두요 중국조선족시단의 현대시 기수이다. 담배와 술과 사랑과 문학만을 고집하며 70 평생을 살아오신 그는, 요즘 암투병 중에도 시집과 수필집을 북경에서 펴내는...
  • 2013-06-28
  • 프로필: 1964년 길림성 사평시 리수현 리수농장 출생, 1988년 동북사범대학 졸업후 심양대학 배치, 공안사업에 대한 애착으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동북사범대학 공안교육학 석사학위 전공, 졸업후 특수인재 신분으로 중국형사경찰학원에 전근, 2003년 공안부에서 주최한 전국경찰실무전술훈련반 참가, 2003년 향항에 가...
  • 2013-06-28
  • 박규찬은 연변대학의 제2임 교장이다.   1955년 5월, 주은래총리는 박규찬을 연변대학 부교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그의 령도재능에 대한 충분한 긍정이고 금후 대학사업에서 더욱 큰 공헌을 할것을 바라는 신임과 기대였다. 박규찬은 연변대학의 교학사업과 연구사업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교육자였다. 박규찬은 조선...
  • 2013-06-28
  • 건축업으로 번 50만원 예술단 창단과 운영에 투입   진달래예술단 총감독 채규억 《저분이 예술에 투자하는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라오. 정말 보통사람이 아니라니깐…》 훈춘사람들은 채규억(62세)씨를 놓고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채규억씨가 바로 2010년 10월에 훈춘시진달래예술단을 창단하고...
  • 2013-06-27
  • #1. 걷기가 목적이 된 시대를 산다   지금 있는 자리와 가서 닿으려는 자리의 간격, 그곳으로 가야 하는 목적이 있을 때 비로소 걷는다. 오랜 역사 동안 걷기는 수단이었다. 걸어가서 말하고 걸어가서 전한 것들이 모여서 세상을 움직였다. 세상은 빠르고 편해졌다. 두 다리를 쓰지 않아도 당신을 저 먼 곳으로 데려다...
  • 2013-06-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