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득히 뻗은 레루 따라 20여년 삶 걷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6일 10시03분    조회:789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웅철

 
  
10월의 끝자락, 만추다.

바람의 느낌도 코구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느낌도 그렇고 완연한 가을이다. 살인적인 폭염의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있는데 첫 서리가 내렸다는 일기뉴스를 들은지도 이윽한 요즘, 오래지 않아 겨울이 도래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코스모스숲길에 녹슨 철로가 나란히 누워있다. 육중한 렬차의 묵직한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철길이다.

늦가을의 철길을 어제도 오늘도 래일에도 어김없이 걷는게 김웅철씨의 일이다. 겨울엔 눈을 맞으며 여름엔 선로의 뜨거운 열을 받으며 철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인제 20년 흘쩍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냥 걷는게 아니다.

눈으로는 쉴새없이 선로를 살핀다. 그러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기관사에게 손신호를 보낸다. “이상없음”을 알리는 신호다.

신호를 뒤로하고 렬차는 달린다.

도문철도분국 도문공무단 철길(룡정-화룡 구간) 철도선로공(巡道工)인 김웅철(53살)씨는 요즘 바쁘다. 꼼꼼하게 철길을 살펴야 한다. 해빛에 찌들어 느슨해졌을 라사를 조이고 약해진 지반이나 옹벽이 없는지 찾아내는것이다.

“하루에 최소한 20킬로메터 이상을 걷습니다. 룡정역에서 출발해서 화룡시 룡수역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옵니다. 다리가 뻐근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걸어다녀야 선로가 안전하고 제가 안심할수 있습니다”

기차는 그의 곁을 지나간다. 바람을 가르며 무서운 굉음을 낸다.

사실 늘 불안불안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는 일이다. 눈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혹은 뜨거운 여름 땡볕아래가 아니면 쩡쩡 얼어들듯한 강추위에도 철길을 걸었다. 장애물, 이물질이거나 오물을 치우는건 기본이였다.

레일에, 침목에, 그리고 침목과 레일을 받치는 로반의 자갈과 흙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핀다. 이상을 발견하면 바로 상부에 보고를 하고 바로 고쳐놓는다. 벌어진 레일장을 제때에 보수하지 못할때에는 기차는 영락없이 탈선이다. 또 기차가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 서면 무슨 사고가 일어났다는 신호다. 그럴 땐 섬뜩함에 몸을 떤다. 그런 일이 생길가 늘 눈이 아프도록 철길 선로를 꼼꼼히 들여다 본다. 그 덕분에 그가 맡은 구간은 단 한번도 사고가 난적이 없다고 한다.

철도선로공인 그가 하는 선로작업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험한 일이다.

“추워도 불안하고 더워도 불안합니다.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마음은 항상 철도에 있어야 합니다”

자나깨나 마음 편치않은 김웅철씨이다.

철로 된 레일은 여름철 땡볕 아래 달구어지면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겨울에는 오그라든다고 한다. 하절기를 위해 간격을 둔다 해도 공기가 잘 안통하는 취약로선에선 달궈진 레일의 온도를 낮추느라 물을 뿌리기도 했단다.

고물라지오가 람루한 외모와 다르게 쾌청한 목소리로 세상이야기와 노래를 흘려놓고있다. 두줄 레일이 침목을 베고 누운 기차길 바로 옆 좁은 길이 일터인 그에게 고물라지오는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친구가 돼준다.

인생의 절반을 철길우에서 보낸 사람이다.

레일우에서 잔뼈가 굵어진 그라지만 늘 어깨와 목이 욱신거린다. 어깨에 둘러멘 쇠망치같은 도구가 들어있는 가방만 10㎏이 넘는다.

겨울 한철은 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가장 많은 저녁 12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이튿날 아침 8시에 작업을 끝낸다.

솜옷을 두겹, 세겹 껴입어도 뼈속까지 얼어드는 추위를 막을수가 없다. 눈만 내놓고 꽁꽁 싸맨 머리는 입김으로 새하얀 서리가 폭 내려앉는다.

추위도 추위지만 겨울밤의 찬 공기를 아츨하게 가르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에 소름이 쫙 돋는다.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그럴수 없었다고 한다. 철도선로공들만 가질수 있는 정과 믿음이 그를 붙잡았다고 한다.

“배운게 별루 없으니깐요. 먹고 살아야 할거구요. 편한걸 해서 돈벌 생각은 지금까지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고된만큼 보람도 큽니다”

오늘도 김웅철씨는 철길을 걷는다.

“렬차가 무사히 달리것뿐”이라는 그의 소망이 잔잔히 슴배여있는 레루우로 렬차가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달린다.        

연변일보 글 사진/ 정영철 신연희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지난 2001년 10월 7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정판룡교수는20세기 중국 조선족이 낳은 가장 우수한 문화지성인중의 한사람이며 저명한 문학교수, 교육가이고 문학평론가, 산문작가이자 사회활동가였다.   정판룡 프로필:     1931년 10월 2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항교리에서 출생 1949년 연변대...
  • 2013-07-24
  • "결혼이주여성들은 늘 도움을 받고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주민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제 몫을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남편을 만나 정착한 중국 국적의 조선족 박경희(40) 씨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주민...
  • 2013-07-23
  • -개원시조선족중심소학교 남춘매교원의 교육리념 학생들을 지도하고있는 남춘매선생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더 잘해주었더라면 더 훌륭하게 자랐을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과거 못다한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주려 합니다.》 이는 료녕성 개원시조선족중심소학교 1학년 담임교원 남춘매선생...
  • 2013-07-23
  • 실험의기를 소개하고있는 료양시조선족학교 정옥향선생님 《우리 학교, 우리 학생을 위한 일이라면 누가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또한 한푼의 보수도 따지지 않고 선뜻 나서는 선생님이십니다.》료녕성 료양시조선족학교 정옥향선생님에 대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한족학교에서 조선족학교로 전근 1992년...
  • 2013-07-22
  • 로기순박사 고명한 의술과 고상한 의덕을 갖춘 의학가로 살아 생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의—로박사》로 불리우면서 존경을 받았고 세상뜬후에는 자신의 유체까지 연변의학원 병리표본실에 바쳐 의학연구에 헌신한 사람, 그가 바로 세계 조선족의 제1대 생화학자이며 중국조선족 의학교육의 선구자인 로기순박사이...
  • 2013-07-22
  • ㅇ2006년 3월 7일 길림신문사를 찾은 성인대 전임 부주임 리정문(중간사람). ㅇ2006년 3월 7일 장백산잡지사를 찾은 성인대 전임 부주임 리정문(중간사람). ㅇ길림신문 장춘이주 좌담회에 참가한 리정문부주임(왼쪽사람). 리정문 프로필 1940년 5월, 길림성 부여현에서 출생. 1961년 9월-1968년 2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학...
  • 2013-07-22
  • 정규창교수   일요일 발표예정 정규창교수는 유명한 진단학전문가이며 연변의학계 원로이며 룡정의과대학(후에 연변의학원으로 발전했음)의 주요창시자이다. 정규창은 1917년 10월 1일 조선 평안남도 숙천의 한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세살때 부모를 따라 오늘의 룡정시 세린하 수북촌에 와서 자리잡았다. 그가 ...
  • 2013-07-22
  •   —세계스포츠낚시연합 윤태근회장 일가견 (흑룡강신문=하얼빈) 진종호기자= 방대하고 무질서하며 무조직상태에 처한 세계 낚시계를 하나로 묶어 세계 5억 낚시 동호인들의 최대 축제인 낚시월드컵을 5회째 개최해온 세계스포츠낚시연합(WSFF) 윤태근 회장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통일된 조국에서 낚시...
  • 2013-07-19
  • ㅡ한국 하나은행 심양 서탑지행 태영화지점장 흑룡강성 밀산태생인 태영화(1969년 생)는 소학교 4학년때 부모따라 료녕으로 이주, 1991년 심양사범대학 국제무역전공학부를 마치고 심양 교통은행 국제부에 배치받아 업무골간으로 활약했다. 지난 2004년 외국계은행으로는 최초로 심양에 진출한 한국 하나은행의 지성규 초대...
  • 2013-07-19
  • 오태호선생오태호선생은 1928년 12월 24일, 길림성 연길현(현 룡정시)광개향 후동촌에서 출생했으며 1944년 룡정제2국고를 거쳐 1950년 10월에 연변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연변대학을 졸업한 후 오태호선생은 연변일보사의 기자로 취직하면서 1986년 4월 정년리직하기까지 장장 36년간 연변일보사, 연변인민...
  • 2013-07-1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