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가족에게 대접한다는 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25일 09시21분    조회:82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성술
칭다오 대게왕국, 참치명가 김성술 사장

  프로필:

  이름: 김성술 (38세)

  1976년 생, 하얼빈시 출신

  현재 참치명가, 독도참치, 대게왕국, 샤브샤브 등 4개 음식점 운영

  1993년 하얼빈제1조선족중학교 졸업

  1993년 7월~1995년 베이징서 부모와 함께 식당 운영

  1995년~1999년 식당 봉무원, 경리 , 하얼빈 모 한국회사 근무

  1999년 한국에 출국, 현장 일, LG트윈시스텀 1년 근무

  2001년 10월~2004년 4월 한국 일식집 과장, 부장으로 근무

  2004년 귀국후 베이징과 상하이서 일식집 동업 운영

  2006년 3월 칭다오 진출, 식당 독립 운영

김성술 사장이 칭다오 해변가에 위치한 참치명가와 대게왕국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기자 = 현재 칭다오의 '노란자위'로 불리우는 해변가에 위치한 대게왕국, 참치명가 등 4개 식당을 운영하는 김성술 사장은 고중 졸업후 식당을 운영하다 불경기로 부도났고 또 한국 가서 현장일을 어렵게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여왔다. 중국에 돌아와서 음식점 운영으로 다시 재기해 보려고 일식집에 근무하며 어깨넘어로 기술을 배웠다. 귀가후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어 자신이 다니던 일식집 한국 사장과 함께 동업해 재기를 선언했다. 2년후 자신감이 생겨 베이징, 상하이에서의 동업을 정리하고 칭다오로 진출해 독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현재 4개 식당의 매출이 2500만위안을 웃돌아 이젠 어느정도 안정된 시스텀을 구축했다.

  식당 복무원으로 출발해서 식당 사장이 된 김씨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수 있는 마음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꿈이 흔들리면 안된다

  김사장은 고등학교 졸업후 베이징에서 부모들이 운영하는 생계형 식당에 가서 일을 도왔다. 그런데 식당이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마땅히 할수 있는 일이 없어 다른 식당에서 복무원으로 일했다.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사장의 마음에 들어 경리로 승진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터로 옮겨 일하다가 한국 길에 올랐다. 그가 한국에 가서 할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적응력이 강한 그는 현장일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지금은 나한테 차례진것이 이것 뿐이야. 나한테는 최상의 선택이다"며 현실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한국 생활이 어느정도 적응되자 김사장은 현장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다가 귀가해서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꿈이 생겨났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술을 배우려는 목적으로 일식집을 선택했다. 일식집에서 약 4년간 근무하며 요리기술을 배웠다. 소스를 만드는 것을 배우기 위해 남몰래 어깨 넘어로 쳐다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주방에서 감자, 무우를 썰며 칼 쓰는 기본공을 연마했다. 후에 회를 썰게 됐다. 김사장은 "칼에 혼이 있다"며 "정성을 다해야 맛이 있다. 그래서 칼을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김사장은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면서도 한가지 꿈만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꿈이었다. 그는 "직장을 옮기더라도 꿈이 흔들리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 현실에 다가갈수 있는 꿈을 가지라. 또 한우물을 파야 물을 마실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음에서 나온 서비스를 제공하라

  김사장은 "머리에서 나온 서비스와 마음에서 나온 서비스가 있다"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음식을 만들때 부모님과 마누라한테 대접하는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깔끔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음상태 준비가 제대로 돼야 좋은 음식을 만들수 있다고 한다.

  김사장은 2011년 대게왕국을 인수 후 관리에 전념하게 되면서 칼을 놓았다고 한다. 고객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고 차마 칼을 놓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손님들이 나가면서 "돈을 쓰지만 이렇게 좋은 가게가 있다는게 얼마나 좋아"하고 말하는것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음식을 인정해주고 또 자신을 인정해주는것이 기쁘다며 그래서 더 열심히 달려온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복무원으로부터 시작했기때문에 현재 사장이 됐어도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직원들이 잘 먹고 편안이 휴식을 취해 컨디션이 좋아야 손님들한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수 있다면서 직원들이 항상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이런 배려가 나중에는 100%로 돌아온다고 한다.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말라

  김사장은 "8~9년동안 식당을 독립 운영, 확장하면서도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았다"며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쳐나거나 과욕을 부리게 되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식당을 10개 오픈한 사람과 비교하면 불만족스럽지만 반대로 하나도 없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만족을 느낀다고 조언했다.

  김사장은 2006년 5월 칭다오시내 홍콩화원에 1호점을 오픈했고, 2007년 5월에는 홀리데이 맞은 켠에 독도참치 2호점을 오픈했다. 홍콩화원 1호점이 성업 중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인들이 많이 떠나가는것을 직감하고 위기감이 들었다. 또 바다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참치회를 먹는 기분이 최고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사장은 비싼 임대료를 감안하면서 단연 홍콩화원 1호점을 2009년 11월 바다가의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주차공간도 널직하고 앞이 바다이기 때문에 확 뜨이는것이 좋았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처음에는 참치명가를 찾는 손님들 가운데서 70~80%는 한국인과 조선족이었고 20~30%가 현지 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0년 초부터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줄어들었고 매출이 갑자기 떨어졌다. 김사장은 "위기는 누구한테나 온다"는 점을 실감하며 현지 중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참치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부폐식으로 경영방식을 바뀌었다. 맥주, 음료수, 술 무제한 제공했다. 대박이었다. 그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그래서 손님 비중이 현지 중국인 70~80%, 한국인과 조선족 20~30%로 역전되었다. 현지화를 실현하여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김사장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장인정신이 없으면 참치 장사를 못한다"며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연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또 참치가 불포화산 체내지방 축적이 안되는 장수 음식으로 각광 받으면서 대박났다"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 된다

  참치명가가 성공하면서 김사장은 이웃 고기집과 2010년 10월부터 동업을 하게 되었고 고기집이 불경기에 처해 동업자가 손을 들고 나앉자 참치명가 면적의 4배 되는 1200제곱미터짜리 큰 식당을 인수했다. 그리고 대게왕국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대게왕국은 처음부터 현지 중국인이 70~80%를 차지했고 20~30%가 한국인과 조선족들이었다. 처음부터 현지화를 실현하여 안정경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사장은 상황에 따라 식당을 더 오픈할 예정이란다. 브랜드를 만들어 체인점을 경영할 타산이다. 또 "성공한 사람의 말이 통한다"며 다른 사람이 체인점을 하도록 하려면 내가 직영하는 식당이 잘 돼야 신심을 심어줄수 있다고 말한다.

  김사장은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사장은 '둥지', '바위섬' 노래를 선호한다며 가정의 내조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고, 설상 성공했더라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한테 행복을 줄수 없으며 또 마음에서 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성격이며 섣불리 화를 내지 않으며 적응력이 강하다고 자평했다.

  한편 성공에 대해서란 물음에는 “돈을 많이 버는것 보다 남의 인정을 받는것이 성공이다”고 답했다.

  hljcfb@163.com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류미옥(53살)씨,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줄 모른다.그래서 그녀는 “웃음아줌마”로 소문났다. 그는 연길 예스마일치과병원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치과의사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귀맛 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그녀에게 몇년전부터는“노래부르는 치과의사”라는 새...
  • 2013-08-21
  • 석희만은 연변대학 미술학부의 창시자이자 조선족 서양화단을 이끈 선구자의 일원이다. 아울러서 그는 중국현대미술의 변화와 전개라는 력사적인 맥락에서 주목되는 화가이며 미술교육가로 명망이 높다.   석희만은 거의 한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인생과정에서 격변하는 력사적사건들과 미술사조를 거치면서 중국조선...
  • 2013-08-20
  •   저명한 농민벼재배전문가 최죽송 1964년도에 있은 전국농업회의에서 당시 국무원 총리 주은래는 《중국의 남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진영강이 있고 북방에는 벼재배전문가 최죽송이 있다》고 높이 평가한적이 있다. 이때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벼재배전문가를 평함에 있어서 《남진북최(南陈北崔)》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 2013-08-19
  •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사업담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 우리 민족교육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30년을 묵묵히 기여해온 사람, 넓은 흉금과 후더운 사랑으로 사생들을 감화시키며 민족전통문화를 고양하면서 민족특색있는 학교건설을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여온 사람, 그가 바로 장...
  • 2013-08-19
  •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LIG그룹 손해보험 '글로벌팀' 하광호 팀장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저의 세대는 대부분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해주었죠.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부모님들이 겪은 시련과 아픔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도 고된 노동과 차가...
  • 2013-08-19
  •   연변방송음악사상 살아있는 전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고향산기슭에》 의젓하게 서 계신다. 백발을 이고 지팽이를 짚고선채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을 굽어 저 멀리 산야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고향산기슭에 올라서니 사철푸른 소나무 반겨주고 유유히 해란강은 흘러가누나 아- 사랑스런 산...
  • 2013-08-16
  •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인터뷰   연변민족복장학교 김영희교장.   "한가지 기술을 장악하게 되면 평생직업을 찾은것과 다를바 없다" 이는 연변민족복장학교의 김영희교장이 한 의미심장한 말이다. 연변에서 지정한 연변로무송출분야의 복장양성기지인 연변민족복장학교(교장 김영희)에서는 20여간 1만여명의...
  • 2013-08-14
  • 장춘조선족기업가협회 김용규회장은 성공도 즐거운 일이지만 베푸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 대우중공업 중국지사에 일반사원으로부터 길림성두산공정기계유한회사의 사장(총경리)으로 자기 자리를 굳힌 그는 기업가로서 부를 축적하는데만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많은 조선족기업가...
  • 2013-08-14
  •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짜기 노래》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가수 방초선은 중국조선족이 배출한 성악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방초선은 중국지역에서뿐만아니라 국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있으며 예술단체, 정치분야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국가1급 성악가이다. 국무원에서 수...
  • 2013-08-14
  • ㅡ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심청송리사장의 인생철학 1968년 흑룡강성 녕안현 출생 1991년€1993년 중국대외경제무역대학 통신학습 1994년 심양시대외경제무역회사 단동분회사 설립(합작) 2002년 단동항풍상무유한회사 설립 2005년 길림 집안국제화물운송대리유한회사 설립 2008년 단동시정협위원 2010년 조선 평양에 별심합작...
  • 2013-08-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