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노력하는 인생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8월5일 08시02분    조회:65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옥선
오는 9월 16일~19일, 한국에서 세계평화포럼이 열린다. 1천명의 외국손님이 한국에 온다. 한나여행사 박옥선 대표가 1천명의 외국인들의 항공권, 호텔, 식사, 국내 차량 등 담당해야 한다. 백 명 접대도 엄청 힘든데 천명이라니! 또 7.8월에는 한국인 중국 장가계, 백두산, 태항산, 보라카이, 세부 등등 단체관광 인솔을 직접 나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여행사 하나만 운영한다면 그나마 외골수로 전념할 수 있어 괜찮을 텐데 학원도 경영하고 있고, 국제라이온스 활동, 장애인센터 봉사, 학교폭력근절대책위원회 활동, 동포연합중앙회 여성위원장으로 활동, 동포산악연맹 위원장, 동포여성위원회 회장을 맡고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고 게다가 강의도 자주 하고 있어 투잡이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에서 지칠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지칠 줄 모르는 철녀라 부른다.

흑룡강성 가목사에서 출생한 박옥선 씨는 인근에 마땅한 조선족학교가 없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 떠나 기차로 5시간 거리인 타지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민족교육을 잊지 않고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유년기 어린이에게 객지 생활은 잔인했다. 그러나 잔인한 환경이 강한 인간을 탄생시키듯 한창 엄마아빠에게 응석부리고 재롱 떨 나이에 집 떠나 외지 생활을 겪게 되어 조숙하고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흑룡강성 사범대학을 나와 탕원현 동선중학교에서 국어교사 겸 담임을 맡으면서 ‘인류영혼의 공정사’ 직업에 최선을 다해 우수교사로 평가받았다. 20대 초반에 몸소 겪은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중편소설을 써 흑룡강신문에 연재할 만큼 문학재질도 뛰어났다. 그러던 그녀는 잘나가던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역시 당시에 거세게 불어쳤던 하해 바람의 물결에 의해서였다.

1991년 박옥선씨는 공장생활체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대련금주부룡주식회사에서 2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관리하는 공장장으로 추천받아 2년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공장장으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 덕분에 믿음을 얻어 1993년 한국 부산소재 (주)부일피혁회사 산업연수생 관리대표자로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2년 뒤 중국과 러시아에 자동차, 화장품, 속옷 수출하는 (주)대운무역회사에서 중국부 담당 겸 사무경리를 맡게 되었다. 또 1999년부터 4년간 (주)대진무역회사에서 통역담당 겸 경리로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동포밀집지역인 가리봉동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동포들이 고향음식을 즐겨 먹는데 가게 주인이 동포라는 것을 목격하고 저도 모르게 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것이 기회이다”고 판단하고 2002년부터 처음으로 한중식품도매업체를 꾸러 자영업을 시작하였다. 처음엔 하루 매출 5~10만원 직원 월급은 고사하고 가게 집세도 못 낼 판이었다. 매일 한 집씩 발로 뛰는 찾아가는 영업을 시작했고 서비스로 청경채(3천원) 10박스도 선물하고 처음 찾아가는 가게는 방울토마토, 붕어빵 등 선물을 챙겨갔다. 냉대도 많이 받아보고 심지어 문전박대도 당해보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안 되면 두 번 두 번 안 되면 세 번 끈질기게 달라붙어 끝내 감동되어 물품을 주문해주기 시작하였고 나중에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장사가 번성했다.

한국인들이 중국투어에 많이 나서고 중국관광객이 한국에 오는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고 2004년부터 하나투어강서대리점을 취득하여 한나여행사를 차렸다. 2006년 동포밀집지역인 구로구에 한중관 음식점을 오픈하였다. 또 한국학생들의 중국어배우기 열풍이 불자 2009년부터 신도림역 부근에 중국어학원을 개원하였다.

박옥선 씨는 “노력하는 인생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신조로 사업에 임하니 하는 일마다 장사가 잘 되어 돈도 꽤 벌었다. 그러나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을 통해 번 돈은 한국사회에 환원해야 사업의 보람이 있다. 그래서 국제라이온스에 가입하였고 회장까지 지녔다. 동포들을 통해 번 돈은 동포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안고 2010년 박옥선씨는 한나협회를 설립하고 사비를 털어 축구단과 봉사단을 운영하였다. 지난 12월부터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려고 여성단체연맹을 설립하여 위원장을 맡고 있고, 동포들이 주말이면 술 마시고 노래방만 가고 하는 등 여가문화를 즐길 줄 모르는 상황이 안타까워 건강을 높이고 삶의 질을 제고하고자 산악연맹을 결성하였는데 불과 한 달 사이 200여 명의 회원이 모인 방대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구로구 소재 (사)중소상공협의회 봉사단체에서 간사를 맡고 있고 또 신구로 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동포여성연맹 조직을 결성하고 왕성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동포여성연맹 조직 취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박옥선 회장은 “우리 여성이 뭉쳐 조선족의 이미지를 바꾸기에 노력을 해야 한다. 외적인 의상이미지는 물론 사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예의범절회도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 CKWOMAN여성위원회는 봉사~교육~창업~시스템으로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력하는 인생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박옥선 회장에게서 배운 말이다. 그녀는 확실히 그 누구보다 밤잠을 덜 자고 노력하고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한 가기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그녀는 두 가지도 아니고 대여섯 가지 일을 동시에 벌리고 진행하고 있다. 착한 심성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하는 일마다 딴딴한 열매를 맺고 있다.

돈이 많아서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신조가 올바른 사람만이 사회에 환원할 줄 안다. 박옥선 회장은 번 돈을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에 양쪽에 모두 환원하고 있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금전만능 자본주의사회에서 박옥선 회장처럼 특히 여성인 신분으로서 더욱 쉬운 일 아니다.

과거에도 사비를 많이 털어 사회봉사에 기여하였고 이번 8월 31일 동포민속장기대회에 메인스폰으로 나섰고 오는 9월 7일 제1회 중국동포민속문화대축제에도 후원자로 나설 계획이다.

사람들은 흔히 동포사회라면 머리를 가로저으며 부정적인 측면만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박옥선 회장 같은 훌륭한 인재가 있으므로 하여 재한조선족사회는 밝아질 것이라 믿어마지 않는다.

동북아신문/ 김정룡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기술원과 함께 제품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박권률 씨(왼쪽).   민족음식문화를 선도해가는 조선족청년기업가 – 박권률 씨‏ (흑룡강신문=연길) 윤완주 특약기자=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소문난 룡정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로투구진 렴명촌에 가게 되면 부지면적이 1만 7000평방미터, 공...
  • 2013-05-14
  •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16)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우수한 민족사업 지도자 문정일은 1914년 음력 3월 20일에 조선 함경도 회령군에서 태여났다. 문정일의 원명은 리운룡이다. 문정일은 일찍 1940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로 조선의용군 제2지대 분대장, 중공연길현위 부서기, 현장...
  • 2013-05-14
  •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시병원정보과에 취직하였던 남편은 자투리시간을 모아 컴퓨터를 자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120의료응급쎈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였습니다. 당시 남편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의료분야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2003년에 병원을 사직하고 컴퓨터프로...
  • 2013-05-14
  • -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의 이야기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학생들과 함께 있고 학생들이 기뻐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1986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래 선후로 조선어문교원, 학급담임, 교무주임, 부교장,교장직을 맡아오면서 27년간 시종 강...
  • 2013-05-13
  • 주덕해(1911-1972), 그의 원명은 오기섭(吴基涉),그는 1911년 음력 3월 5일, 로씨야 원동 연해주 우쑤리스크부근의 산간마을에 한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1920년 3월부터 길림성 화룡현 수동촌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부터 선후로 흑룡강성의 동녕, 동경성, 림구, 밀산 등 북만일대에서 항일에 투신하면...
  • 2013-05-13
  • 잭 마 ‘알리바바’ 회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일주일 전, 잭 마 회장(48)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야외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들고 있었다. 자산이 42억달러로 추정되는 마 회장의 재산은 알리바바가 상장되고나면 더 불어날지도 모른다. 마 회장은 1...
  • 2013-05-13
  • 하루 8시간 연습하지만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셰익스피어 문학이었다 [사람 속으로] 중국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朗朗)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한 랑랑이 2010년 발매된 ‘랑랑 라이브 인 비엔나’ 앨범 수록곡을...
  • 2013-05-11
  • ㅡ료녕성과학협회 김태원부주석 인터뷰 김태원프로필 1954년 환인현 환인진출생, 1979년 중앙민족대학 중문학부 졸업후 성민위 배치, 이듬해 성위정책연구실로 전근해 선후로 경제처, 농촌처 처장, 1994년 보람점시 시위부서기, 1997년 성위정책연구실 부주임 력임, 2005년 성과학협회 부주석 담임, 성사회과학원 특약연구...
  • 2013-05-10
  • 칭다오 우리어린이병원 오픈한 이계화 원장  김명숙 기자= 칭다오 청양구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우리어린이병원이 정식 오픈했다.  원 칭다오시 제8병원 소아과 주임이었던 이계화(조선족, 57세, 길림성 교하시) 원장은 일찍 1977년 대학입시가 회복되는 첫해에 우수한 성적으로 지린(吉林)의학원 의료학과에 입학했다. 졸...
  • 2013-05-10
  •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김염 프로필 원명 김덕린, 1910년 4월 한국 서울에서 태여남, 1912년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 김필순을 따라 두만강을 거너와 중국 통화에 정착을 했다가 후에 치치할로 이주, 1927년 상해로 간다. 이듬해 《카먼》등 극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연극인으로 기량을 선보인다. 1929년 손유...
  • 2013-05-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