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경영신화] 1000원짜리 밥버거로 2000억을 번 자퇴"문제아"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11일 07시48분    조회:942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세린

봉구스밥버거 대표 오세린 씨는 한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한 ‘문제아’였지만 학생들의 입맛과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밥버거 하나로 전국에 903개 점포를 낸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0년 겨울.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대로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던 청년은 입김을 불어가며 꽁꽁 언 두 손을 연신 비비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먹밥 장사에 나선 지 사흘째. 아직 개시도 못했다. 이틀 동안 목청을 높여가며 손님을 불렀더니 이제 호객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 오늘도 빈손으로 집에 가야 하나.” 청년이 한숨을 연방 내쉬던 그때, 길을 지나던 한 학생이 좌판 앞에 멈춰 섰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 안에 담긴 동그란 주먹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하나에 얼마예요?”

“1000원이야. 하나 줄까?”

소년이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는 순간 청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든 주먹밥을 팔게 되는구나.’ 청년은 가슴이 북받쳤다. 청년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한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먹밥을 받아들고는 달아나듯 대로를 달려갔다. 소년이 건넨 1000원짜리 한 장은 청년의 비상(飛上)을 가능케 한 작은 발판이었다.


○ 부모 기대와 어긋난 삶

청년은 장사와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학원강사인 어머니의 ‘똑똑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머리는 좋았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술, 담배를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패싸움을 벌이다 경찰서에 잡혀 가기도 했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로 성공하길 바랐지만 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공부가 하기 싫었고 장사나 하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좀 해보라고 권유하는 부모에게 “앞으로 난 장사할 건데 공부를 왜 하느냐”고 반항했다. 부모와의 갈등이 갈수록 커졌고 청년은 집 밖으로 나돌았다.

그는 집을 떠나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공부도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경남 거창고로 전학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우등생이던 친구가 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여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승낙해 주시더군요.”

당시 거창고는 기숙형 명문학교로 부상하고 있었다. 교복과 두발 규제, 학교 울타리가 없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끌린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학교를 옮겼지만 부모 감시를 받으면서도 안 하던 공부가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잘되진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을 잡고 학업에 열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졸업장이라도 받겠다던 생각은 점점 없어졌고 결국 그는 자퇴를 결정했다. 극구 말리던 부모와 선생님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학교를 떠난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출한 친구 3명과 함께 대구 서부터미널 근처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을 잡았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장사 밑천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중국집 배달원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 들고 집으로 돌아가 검정고시를 봤고 홍익대에 합격했다. 부모에게는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했지만 장사로 성공하려는 욕심이 더 컸다. 등록금으로 낸 돈을 부모 몰래 학교에서 환불받았다. 4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 고교 자퇴생의 비상(飛上)

그렇게 장사 밑천을 마련한 오세린 씨(29)는 대학이 아닌 중고교 앞을 떠돌며 떡볶이와 어묵을 팔았다. 서울, 경기, 대전, 대구, 전주 등 6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혼자 분식장사를 했다. 장사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며칠 돈이 모이는가 싶으면 금세 까먹는 날이 찾아왔다. 돈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4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는 미래가 불확실한 그의 곁을 떠났다. 장사 밑천이 10만 원쯤 남았을 무렵 오 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낼 곳이 없던 오 씨는 고향인 수원에서 주먹밥을 변형한 밥버거 장사를 하기로 했다. 수원 시내에서 학생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좌판을 깔았다. “수원 장안대로 주변에는 중·고등학교 세 곳이 몰려 있어요. 하루 지나다니는 학생만 4000명이나 됐죠. 당시 이 지역 학교 급식이 맛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학생들을 공략하면 장사가 되겠다 싶었죠.”

동네 형이나 오빠 같은 친근함이 그의 무기였다. 이름을 묻는 학생들에게 본명 대신 ‘봉구’라는 가명을 댔다.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란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은 그를 봉구 형, 봉구 오빠라고 불렀다. 봉구는 학생들의 고민 해결사였다. 때론 불량 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고민을 들어줬다. 임신한 여학생이 “수술할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여학생을 설득해 부모에게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게 했다.

봉구의 사업전략은 적중했다. 밥버거가 싸고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은 학교 급식대가 아닌 봉구의 좌판으로 몰려들었다. 입소문이 쫙 퍼지자 밥버거는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됐다. 인력사무소에서 파출부 6명을 고용해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밥버거를 만들었다. 하루 판매량이 1000개를 훌쩍 넘어섰다. 많을 때는 1700개까지 팔았다. 밤새 밥버거를 만드느라 잠을 거의 못 잤지만 힘이 펄펄 솟았다.

아예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밥버거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봉구는 인근 학교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이 됐다. 한 학교 측이 불법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구청과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1년 만에 학교 앞 장사를 접었지만 학생들로부터 문자메시지 1000여 개를 받았다. ‘봉구 형, 힘내요! 응원할게요.’


○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변신

학교 앞에서 쫓겨난 봉구는 2012년 3월 수원역 뒤편에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작은 가게를 차렸다. 가게 이름은 ‘봉구스(Bon Gousse) 밥버거’. 프랑스어로 ‘맛있는 한입거리’란 뜻이었다. 장소를 옮겨도 학생 손님들은 봉구의 밥버거를 찾아왔다. 하루 수입이 1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잘되자 주위에서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봉구는 그해 8월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순조로웠다. 월세 30만 원짜리 가게를 운영하던 봉구는 2호점을 낼 때 비싼 임차료를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입지가 좋은 만큼 매출도 크게 늘었다. 7호점까지 직접 운영하거나 가까운 지인에게 운영을 맡겼던 봉구는 사업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생기자 8호점부터 가맹점을 내줬다.

가맹점은 경기 안양, 안산시 등지로 확대됐고 광주, 부산까지 뻗어나갔다. 1호점을 세운 지 5개월 만인 같은 해 8월에 100호점을 돌파했다. 올해 9월 현재 전국에 903개 점포가 봉구스밥버거 간판을 달고 있다. 지난해 전체 가맹점이 올린 매출은 2000억 원이나 됐다.

중국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봉구스밥버거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에 올해 11월 입점할 예정이다. 봉구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신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 “너희들의 부자이웃이 될게”

힘든 일도 적지 않았다. 한 업체가 밥버거 제조 방식을 베껴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돈이 없을 때 쌓았던 우정도 잃었다. 오 씨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고 어릴 적 가장 친했던 동네 친구를 사업에 끌어들였다가 돈 문제로 갈라섰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건강도 잃었다. 올해 2월에는 간밤에 찾아온 뇌졸중 때문에 몸 오른쪽이 마비됐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이송된 오 씨는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잦은 음주와 과도한 흡연, 회사 경영에 대한 압박감이 갑작스러운 발병의 원인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오 씨는 4년 전 자신의 밥버거를 처음 사간 유모 씨(22)와의 인연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당시 봉구스밥버거 단골이던 학생 수십 명과 ‘번개 모임’을 갖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오봉구의 호소문’ 덕분이었다. 봉구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이 청년사업가로 성공한 그와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었다.

“봉구 형, 술 한잔 사주세요ㅋㅋ”

“물론이지. 날 기억하는 사람은 전부 모여라!”

어느덧 성인이 된 유 씨가 메시지를 보내자 봉구 형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번개’ 요청을 했다. 지금의 봉구스밥버거를 있게 한 단골 70여 명이 모이자 그는 좌판에서 밥버거를 처음 팔았던 그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돈을 많이 벌어 그런가…. 요즘 내가 변했다는 얘길 많이 들어. 하지만 난 아직 학교 앞에서 너희들과 장난치고 고민하며 밥버거를 팔던 봉구 모습 그대로야. 예전처럼 매일 보진 못하지만 항상 기억하고 있어. 너희들의 부자이웃이 될게.”

오 씨의 이름은 세상 세(世), 이웃 린((린,인)) 자를 쓴다. 세상의 이웃이 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오 씨는 봉구스밥버거의 법인명을 ‘부자이웃’으로 지었다.

동아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흑룡강신문=하얼빈)사람들은 가끔 하늘을 보며 “나도 저 새처럼 자유로이 날아 어디든 가고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자유로이 산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새가 부러워졌을거다. 오늘은 새처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분을 쫓아가보자.   ▲아부다비 황궁   두바이 려행이 성...
  • 2017-05-05
  • 해변도시 청도에서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는 기업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있다. 주구회전자상거래유한회사 사장 김철수(33세)가 회사를 이끌어온 주인공이다.   지난 4월 26일, 기자는 청도시 주구회전자상거래유한회사를 찾았다. 사장 김철수(33세)의 소개에 따르면 시중에 류통...
  • 2017-05-05
  • 기획시리즈 - 멘토들 조선족대학생 진로 말한다(3) -류학을 선택한 리유: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싶었다 -류학에 대한 조언: 류학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와 련결시켜서 결정하라 -취업 비결: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취업에 대한 조언: 인턴 경력은 취직에 도움이 되지만 본업엔 충실하라 -대학교 재학생에 대한 조언...
  • 2017-04-27
  • [연변을 클릭하는 사람들 24] 길림성10대서비스브랜드기업으로 성장한 풍무식품 윤룡철 대표   풍무식품유한회사 윤룡철 대표 최근 풍무식품유한회사는(이하 풍무, 대표 윤룡철) 길림성브랜제품추진위원회로부터 2016년 길림성10대서비스브랜드기업이란 영예칭호를 받았다. 이는 최근년 풍무에서 브랜드서비스와...
  • 2017-04-24
  •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 사랑하는 문화 고착에 전력할 터 한성일 이사장이 원단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허강일 기자=“왕청사람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는 재칭다오 왕청향우회 신임회장 한성일(1973년생)씨가 항상 입에 떠올리는 말이다.   왕청현 라자구에서 태어나 부모를...
  • 2017-04-23
  • “우리 소리와 친숙해진다는것이 참 쉬운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신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1996년에 연변가무단에서 장고연주자로 퇴...
  • 2017-04-21
  • 조선족 첫사람으로 남극주, 북극주에 등륙한 64세 영화감독 함명철선생 조선어학습에 열성 조선어학습반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함명철선생./ 본사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류대식 기자=지난3월 22일부터 할빈시조선족예술관이 주관하여 진행하고 있는 조선어학습반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예술인의 풍채가 넘치고 정...
  • 2017-04-21
  • 기획시리즈 - 멘토들 조선족대학생 진로 말한다(2) 주소란 프로필: 대외경제무역대학 공상관리 학사 영국런던대학원 발전관리학 석사 청화대학 공상관리석사 MBA 현재 기업경영컨설턴트, 프로강사, 중한기업겸병(M&A)고문 천진위성 취직프로 《非你莫属》HR고문 청화대학리더십센터 HR고문 《掘金大数据(빅데이터)》번역...
  • 2017-04-17
  •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오사까’스시 레스토랑트 전태호 사장의 이야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샬롯에서 ‘오사까’스시 레스토랑트를 운영하고 있는 전태호 스시맨(초밥스푸) 는 20여년간 ‘스시’라는 한 우물만 꾸준히 파고 있다. 그동안 그는 크고 작은 가게를 무...
  • 2017-04-08
  • 윤동범 회장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윤동범 회장 하면 골프를 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5년전에 옌타이 라이양시(莱阳)와 칭다오 라이시 (莱西)두개 지역을 합병한 라이후골프팀((莱虎队)을 창립하였고 3년전에는 50세이상 기업가들로 조직된 칭다오 오성(五星)골프협회를 창설하...
  • 2017-04-05
‹처음  이전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