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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제빵사로 될터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7월6일 10시41분    조회: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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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최영화
연길시 ‘엘림빙고’처녀사장 최영화의 창업스토리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삶은 도전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당찬 처녀사 장 한분이 계시는데요.
바로  <<엘림빙고>>가게의 최영화사장이랍니다.  
빵하나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수 있다는 깨달음 하나로 제과제 빵사가 되려는 꿈을 안고 혈혈단신 한국으로 떠난 최영화사장은 3년간 제빵기술과 팥빙수 등 음식기술을 배워냈습니다.
연길시신흥소학교 맞은켠에  <<엘림빙고>>가게를 꾸린지 이제 겨우 두달, 그녀의 야무진 손끝에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맛나는 빵과 팥빙수의 환 상적인 만남의 조화는 단번에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답니다.


아래 <<엘림빙고>>가게의 최영화처녀사장과의 인터뷰내용을 보내 드리려 합니다.
 
기자;처녀사장이 꾸리는 가게여서인지 아이들과 젊은 고객들의 발길이 끊 이질 않네요. 홀로 주방과 홀을 뛰여다니면서도 힘든 기색하나없이 밝게 맞아주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인상적입니다.!  
최영화; 네, 가게를 꾸린지 이제 두달밖에 안되였지만 이제 아이들과 젊은 고객층으로 단골을 확보했어요. 낮에는 더 많다보니 여러모로 신경쓸 일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빵과 팥빙수로 행복해하는 고객들을 볼때면 정말 보람을 느낄때가 많습니다. 특히 우유 로 갈아만든 눈꽃빙수도 신기한데 진열장에 제가 직접 만들어놓은 빵들 을 보시고 직접 만들었냐고 하시면서  맛보시고 참 맛있게 만들었다고 반응하시는 고객님들때문에 힘든것도 잠시뿐이고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나의 노력과 부지런한 두손에 의해 내가 꿈꾸던 꿈들이 이뤄져간다는 생각에  감사한 생각이 정말 많이 듭니다.
 
기자:어릴적 꿈은 제빵사가 되는것이 아니였다는데요. 어떤 계기로 제빵사 로 되려는 꿈을 갖게 되였는지요?
최영화; 어릴적 꿈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쯤 제가 작가가 되여있을줄 알 았습니다. 글짓기에 각별한 취미가 있어서 작문지도를 받으면서 각종 콩클에서 좋은 성적도 따냈구요. 취재나 혹은 글을 써서 투고하는 등 문학방면으로 많이 노력했었어요. 졸업후 연변과기대에서 일하면서 그 꿈을 잃지 않았는데 과기대 사모님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제과제빵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였어요. 사모님들께서 종종  맛있는 쿠키나 빵을 만들어서 맛보시라고 갖다 주셨는데 저는 그때 나누면서 사는 삶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고, 특히 수제로 만들어서 주셨던 빵과 쿠키들이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어요. 과기대에서 5년정도 근무 를 하면서 제과제빵에 빠지게 되였고, 나도 사랑담고 정성담은 수제쿠키빵들을 만들어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굳혀졋던 것 같습니다.

기자:제빵사가 되려는 꿈이 정해지자 바람으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행 을 선택하였다는데요. 한국행을 고집한 리유가 있었다면은요?
최영화; 저의 연변에도 부지기수인 빵집과 유명브랜들이 많았지만 한국분들 이  만들어주셨던 빵과 비교했을때 맛의 차이가 확연이 났고 한국의 제과제 빵 기술을 배우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마침 기술교육비 자로  한국에 나갈수 있는 정책이 시작되여 있었어요. 기술교육프로그 램중에 제과제빵학 과가 있는걸 알고 바로  이거구나. 기술배우러 가야 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 께 한치의 주저도 없이 기술교육비자로 꿈을 이 루기 위해 행동에 옮겼습 니다. 그리고 빵집 하나만 하기보다 빵과 함께 음료수나 커피나 함께 곁들여서 쉼터같은 공간, 작지만 아담한 나만의 작은 가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특히 한국은 맛의 깔끔함도 있지만 서비스업이 발달돼 있기때문에 서비스방면에서도 배워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한국에 나갔습니다.
 
기자:정작 제과제빵기술을 배우는 삶의 현장에서 그 기술을 배우기까지는 이루다 말할수없는 고생이 뒤따랐을지 않았을가요?
최영화;한국에 가서 바로 학원에 등록하고 제과제빵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 3개월을 정말 충실하게 필기공부와 현장실무에 빠져서 공부했더니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한방에 따내고 학원의 소개로 엄격하기로 이름있는 롯데백화점 제과제빵점에 취직하게 되였어요. 저는 제과점에 가서도 열 심히만 하면 다 되는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일하면서 부딪쳐보니까 생각 했던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어요. 빵만든일은 새벽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였고 집에서 제과점 가는데만 전철로 1시간 거리라 새벽 5시 기상해서 5:3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6:30분부터 일을 시작해야죠.  첨엔 눈 을 집어뜯으면서 아침잠과 싸우느라 애먹었어요. 과학기술대학에서 일하면서 한국분들과 많이 접촉해서 문화적차이는 극복할수 있겠다 했는데 언어라던지 생각의 차이는 어쩔수 없이 다른 부분들이 많드라구요. 씨다발이란 용어를 한국가기전에는 욕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빵집 공장에 가니까 제가 씨다발 이라고 하더라구요. 일본말로 설겆이 하고 잔신부름 하는 사람을 일걷는 얘기더군요. 그렇게 저는 학 교사무실에서 업무보는 일을 하던데로부터  씨다발이가 되여서  설겆이 로부터 이런저런 잔신부름 다하면서 일하게 되였는데 며칠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고달펐어요. 게다가 제과점 내부에 들어와보니 계급이란게 째여있어서 저보다 경력이 몇년 앞선 어린 친구한테도 굽신거려야 했고 또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저랑 어울리는걸 싫어하는 눈치라서 힘들었어요.
 
기자;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포연없는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눈물 흘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면서요?
최영화; 제가 시다발이 하면서 첨에 맡았던 일은 가마를 보는 일이였어요. 오븐담당이였죠.제 키도 훨씬 넘는3층짜리 큰 오븐에 컨벡션 오븐 2대를 봐야했는데 동시에 빵들을 구울때가 많아서 자칫 신경을 못쓰면 색상이 짙게 나거나 빵을 태우거나 하는 등 실수를 연발했어요. 실수는 금전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기에 저를 가르쳤던 기능장이셨던 상무님이 계셨는데 얼마나 엄격하셨는지 철판째로 빵도 날라가고 철판도 날라가고 난리도 아니였어요. 빵을 만들기까지 반죽을 만들고, 발효하고, 성형을 하고, 또 발효하고, 구워서 온전한 제품이 나오는데 마지막 굽는데서 실수를 해버리면 그 전의 노력과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여버리고 고객과 약속한 시간대에 빵을 내놓을수가 없으니 저는 혼나도 할말이 없었고,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야속한 마음도 생기고,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기자;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을터인데 혹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 는지요? 더우기 기술을 배워야 하는 립장에서 월급도 높지 못했을터인데요. 혹 지인들은 만류하지 않았는지요?
최영화; 네. 날마다 일 끝나면 녹초가 되여서 집에 들어오는 저를 보고 엄마가 제일 안쓰러워하셨어요. 기술직에서 일하다보니 월급도 낮았어요. 100만부터 시작을 해서 휴식도 제대로 못 취하고, 또 일하다 실수하면 혼나기도 하고, 서러워서 눈물 떨구며는 반죽에 눈물이 들어간다느니, 눈물 들어가면 반죽이 짜거워지지 않겠느냐니 하면서, 울지도 못하게 했어요. 정말 고되게 일하다보니 보따리 싸들고 집에 오고싶은 마음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들더라구요.  그때 제 친구들중에는 회사통역하는 일이나 회사 다니면서 주말을 즐기고, 월급도 150만 이상 받으면서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없지않아 그 친구들이 부러울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할수 없었던 것은 기술을 배워서 고향에 돌아가야겠다는 처음 마음을 잃지 않았기때문에 견지할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기자;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어떤 또다른 깨달음을 갖게 되였는지요?
최영화;혼나고 몸이 힘들때면 억울하고 벅차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엄격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된 습관과 교육을 받는게 차라리 나중을 위해서 유익이 될거라는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일터에서 책임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에는 나를 위한 일이고 일을 해도 성취감이 있으면 보람도 더 느끼고 기쁘게 일할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한국은 서비스업이 정말 잘 되여있어서 고객과의 신용을 지키고, 위생서비스도 철저히 하다보니 고객들의 반응도 좋고 새벽부터 하는 노동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에 감사했어요.
 
기자; 엄한 스승인 기능장한테서 인격적으로 배운 점들은 현재 가게를 경영하는데 아마 큰 도움으로 되지 않았을가 싶네요?
최영화;가게 상무님은 한국에서도 10사람안에 드는 기능장님이셨는데 비록 일에서는 엄격하고 성격도 완벽주의형이였지만 공장밖에서는 마음이 따뜻하고 정에 약했던 분이셨어요. 기능장님한테서 2년간 함께 배운 것들이 오늘날 제가 고향에 가게를 운영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거뜬히 이겨나갈수 있는데에 큰 도움이 되였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분도 공장안에서 혼내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 먼 훗날에 가서 고맙다고 전화할거라고 하셨는데 꼭 맞는거 같애요. 엄격한 스승이 있었음에 지금은 고마운 마음이 더 많아요.
 
기자;특히 기술분야에서는 기술은 잘 가르치려 하지 않고 보수하려는것이 어려운점이라고 하겠는데요. 그만큼 본인 노력이 필요한것이 아닐가요?  
최영화;학원은 돈내고 느슨하게 배워도 되는 입장이지만 현장에 들어오며는 일의 절주가 빨라서 제가 배우고싶은것을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배우는게 힘들었어요. 게다가 앞선 분들도 기술을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의 노력과 정성과 피땀이 있기에 기술을 순순히 가르쳐주는데 인색했어요. 배울려고 열정적으로 뛰여들어야했고  갑절로 노력해야 했고, 게다가 저는 눈썰미가 지지리도 없어서 보고 따라하라해도 손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순 노력파의 근성으로 연습을 해보고 또 해보고 그러면서 기술을 내꺼로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였어요. 1년정도 지나니 상무님께서도 이를 고려해서 퇴근후 제가 못해본 부분에 대해서 반죽연습도 해보라고 하시고, 케익도 연습하도록 배려를 해주셔서 거의 매일이다싶이 연습하면서 기술을 익혔어요.
 
기자;2년간 제과제빵기술을 확실히 배운후 다른 가게에서 새로운 음식기술 을 배우게 될때는 아주 받들려 일했다면서요?
최영화; 엄한 기능장밑에서 2년간 제과제빵기술, 케익, 샌드위치 등 기술을 배우게 되자 기능장님께서 다른곳에 옮겨서 그 곳의 기술을 배우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권고하셔서 한국에서 한창 열풍을 일으킨 우유눈꽃팥 빙수와 서비스업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명동의 유명한 팥빙수가게인 “설빙” 체인매장에 취직하게 되였어요. 한국의 우유눈꽃팥빙수는 기존에 먹어봤던 얼음팥빙수랑 빙질의 차이가 확연히 틀렸고 정말 입에서 살살 녹고 맛이 좋았어요. 그때 당시 지병으로 앓고 계셨던 아버지 건강때문 에 고향에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우유눈꽃팥빙수를 고향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에게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고 생각했어요. 한어, 조선어, 영어까지 알다보니 주방과 홀사이를 오가면서 팥빙수 기술도 배우고 서비스와 음료기술도 배우면서 충실하게 늘 그랬 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늘 저에게 충실한 시간이였어요.
 
기자;귀국후 한국에서부터 목표했던 아이템을 주메뉴로 가게를 내려고 하려 했지만 경쟁력이 심해 고민이 많았다면서요?
최영화; 제과제빵기술과 팥빙수기술을 배워 귀국한후 바로 꿈꿔왔던 가게를 꾸리려 했지만 몇곳에만 있던 팥빙수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빙수전쟁이 시작된 느낌이 들어서 과연 가게를 오픈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긴 했어요.  
 

 

기자;과감히 가게를 낸지 얼마 안되여 많은 고객들의 선호를 받기까지는 아마 처녀사장님만의 남다른 경영비결이 있었겠지요?
최영화; 젊을때 고생은 천금주고도 못산다고 저는 가게를 오픈하기로 결심 하고 추진했어요. 연길에 다른 우유눈꽃빙수 가게는 가격대가 오십원 이상이였던 터라 저는 어린애들을 겨냥해서 미니컵빙수를 내놓기로 하 고, 가게위치를 신흥소학교랑 또 학원들이 모여있는 가까운 곳에 정했 구요. 또 제빵과 팥빙수를 그 누구보다 맛있게 만들수 있다는 든든한 배심과 신심이 컷기에 대박예감을 안고 가게를 오픈하였는데 과연 어린 애들이 엄청 환호했어요. 아이들이 가격도 착하고 맛좋은 빙수를 먹고 친구들을 데려오고 학부모님들을 데려오고 련쇄반응으로 얼마 안되는 사이에 단골을 확보하였구요. 우유눈꽃빙수가 작은 사이즈로 돼있어서 각자 드시는걸 선호하시는 어른들도 저의 집에 종종 들려주시곤 또 좋은 평을 남겨주시곤 하셔요. 이 자리를 빌어 찾아주시고, 애용해주신 고객분들한테 고맙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기자;홀로 경영하다보면 하루종일 눈코뜰새가 없이 바삐 보내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힘든건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 아닐가요?
최영화; 가게규모가 작다보니 혼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다 챙겨야 하고, 손이 닿아야할데가 많고, 또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저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한국행을 결정했을때와 한국에서 흘렸던 피땀과 눈물삼키면서 일해왔던 수고들이 열매를 맺은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힘든건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일할수 있는게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맛있는 빵과 빙수로 기쁘게 할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제 꿈을 더 이뤄간다는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기자;당차게 창업에 도전하여 이제 꿈을 향한 첫발자국을 내디뎠는데요.  앞으로 어떤 타산을 갖고 있는지요?
최영화 ;엘림빙고는 제가 처음으로 시작한 가게인만큼 저에게는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은 가게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고, 경험쌓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할수 있는 가게로 더 키우고 싶어요. 그리고 이 가게를 꾸릴수 있게 도와주셨던 여러 지인들의 고마운 마음을 이어받아서 선한 일, 유익된 일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구요. 청년기업들이 많이 일어날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꿈을 안고 도전하는 여성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자신이 만든 부드러운 빵하나로 시원한 팥빙수로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한 순간을 안겨주면서 꿈의 경지를 향해가고 있는 <<엘림빙고>> 처녀사장 최영화씨의 도전은 오늘도 진행형입니다.  

엘림빙고 찾아오시는 길: 연길시 신흥소학교 정문 앞골목
련계전화: 155-2674-9495


----연길인민방송국 아리랑방송 강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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