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77개 항일렬사기념비 수건한 퇴직로당원 김춘섭: 기념비는 령혼이 있어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8월25일 08시11분    조회:66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춘섭
 

인민넷 종합보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서 김춘섭의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기념비를 련상하는 외에 엄지손가락도 함께 내민다. 10년 동안 60여세의 이 퇴직로당원은 여러곳을 돌아니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77개 항일렬사기념비를 수건하였다.

왕청현 명월저수지를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면 하나하나의 묘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깊은 산속에 있는것이 바로 중국공산당 동만특위소재지-소왕청항일근거지이다. 항일전쟁시기, 연변지역의 제일 큰 전장으로서 왕청현 경내에는 105차례의 전투가 일어났다. 김춘섭은 현인대 상무위원 부주임에서 퇴직한후 현의 후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그는 많은 아이들이 력사를 모르것을 발견하였다.

"항일렬사들은 우리의 곁에 있으나 많은 아이들을 모르고있다"고 김춘섭은 말했다. 이중에는 적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중공왕청현위 서기 김상화, 자살로 평화의 소원을 표달하고 유격대에 대량의 탄알을 남겨준 일본공산당원 스케오 등이 있지만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비수가 꽂히기라도 한듯 마음 아팠다.

어느 한번, 고향으로 내려가던중 김춘섭은 중공동만지역특별위원회 서기 동장영의 묘에 들렸다. 이 작은 무덤은 20, 30개의 돌로 둘러싸여있었고 잡초로 뒤덮여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동장영은 안휘에서 이 먼곳 동북까지 와서 항일을 하면서 27세에 희생되였지만 변변한 기념비마저 없었다." 그때부터 김춘섭은 현지에서 희생된 항일 렬사의 묘비를 수건하려고 결심했다.

왕청현은 국가에서 중점적으로 보조하는 빈곤현이기에 기념비를 수건하려면 가장 힘든것이 자금부족이였다. 김춘섭은 매 단위, 매 기업에 직접 가서 자금을 모았다. 매번 모금하러 가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이 땅에서 희생된 600여명의 렬사들을 대신해 감사드린다"였다.

자금을 모으기 힘들었기에 돈을 쓸 때는 각별히 신중할수 밖에 없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김춘섭은 직접 기념비를 설계하고 시공했다. 김춘섭은 제한된 자금으로 더 많은 기념비를 건축하기 위해 현에서 몇백킬로메터 떨어진 채석장에만100여차례 다녀왔다. 그는 당날 갔다가 당날로 돌아왔으며 배가 고프면 차에서 물을 마시고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렬사묘비의 부지는 당시 렬사가 희생되였거나 혹은 전투했던 곳으로 선정했는데 대부분이 산골짜기에 있어 차도 들어갈수 없었다. 로동자를 찾으면 돈도 많이 들어 김춘섭과 후대관심사업위원회 몇몇 로동지들은 직접 팔을 걷고 나서서 미장이 일을 했다. 밀림의 풀숲에서 그는 야생진드기한테 물리기도 하고 말벌에게 쏘이기도 했다.

시공의 편리를 위해 그는 원래의 로부하에게서 지게차 한대를 빌렸는데 그것으로 일도 하고 산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도 사용하여 차비를 많이 절약하였다. 하지만 지게차의 조종실에는 두사람밖에 탑승하지 못하였기에 김춘섭은 두말 하지 않고 담요를 걸치고 버킷에 앉았다. 그때 산의 온도는 령하 20, 30섭씨도에 달했다.

2010년 김춘섭은C형 간염에 걸려 정기적으로 인터페론을 맞아야 했는데 그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때가 바로 동장영렬사릉원 건설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시공날자를 지체해서는 안되였기에 김춘섭은 저녁에 주사를 맞고 아침에는 평소대로 현장에 가서 시공을 조직했다. 식욕이 감퇴되고 온 몸이 가렵고 머리가 한웅큼씩 빠졌다... 13개월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공에는 하루도 영향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살고싶지 않은가?"라고도 물어봤더니 김춘섭은 "동장영은 27세에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렬사들과 비하면 이런 병이 무슨 대수인가!" 라고 대답했다. 2011년 6월, 동장영렬사릉원이 준공되였다. 이때 김춘섭의 체중은 72kg에서 60kg으로 내려갔다.

동장영렬사릉원의 면적은 270평방메터이다. 김춘섭은 이 면적은 동장영이 27세의 젊은 생명을 항일투쟁과 민족해방의 신성한 사업에 바쳤음을 상징한다고 했다. "동장영렬사생평비"와 "중공동만특위소개비"의 길이는 321센치메터인데 이는 동장영 렬사가 1934년 3월 21일에 희생되였음을 상징한다.

몇년동안 김춘섭이 가장 많이 간 곳은 바로 렬사릉원이다. 매번 기념비앞에 설 때마다 그는 손으로 만져보면서 "기념비는 차거운 돌이 아니라 령혼이 있다. 기념비에는 중화민족의 강인하고 불굴의 혁명정신과 위대한 추구가 응집되여있다"고 말했다.

10년간 김춘섭은 더 많은 기념비를 선렬들이 당시 피로 물들인 토지에 세웠을뿐만아니라 더우기는 력사에 대한 존중과 렬사에 대한 경의를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넣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단체급식은 고도의 책임감이 필요한 업종입니다. 늘 직원들한테 책임을 다해 학생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느낄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담아 일하라고 요구합니다.” 22일에 찾은 연변천통식품유한회사(이하 천통회사) 회의실에서 임정옥(57살 )사장이 기자에게 한 첫마디이다. 중소학생들의 맛갈스런 점심식사를 책...
  • 2014-12-31
  • 다음 달 개소…"버려지는 이주민 아기, 외면할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자리한 5층짜리 건물. 말끔하게 새 단장을 마친 건물 안에 크고 작은 방들이 자리했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원과 영아원,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룹홈까지 모두 기댈 곳 없는 이...
  • 2014-12-29
  • 안무가 손룡규 교수와 제자들 한겨울의 12월이 막가는 날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이징무용학원의 작은 극장은 무용수들이 흘리는 땀으로 여름 같은 열기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20명은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묘족 복장을 하고 손에는 특이한 무늬가 알록달록하게 장...
  • 2014-12-28
  •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 정만흥 명예회장  -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 정만흥 명예회장 인터뷰 우리는 살면서 무한한 기회와 부딪치게 되고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기회는 사람들에게 모두 평등하게 차례지지만 선택은 각자의 손에 달려있다. 선택의 결과 혹자는 탄탄대로 혹자는 가시덤불로 이어질 수 있으며...
  • 2014-12-28
  • 남상복 간력 1945년 2월, 길림성 돈화 출생 1965년 8월, 사업에 참가 1966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 돈화현계획위원회 과원(科员), 돈화현당위 조직부 간부 력임 길림농업대학 졸업, 경제관리 전공, 석사연구생 학력 돈화현 돈화진당위 부서기, 돈화현 사하교공사 당위서기, 돈화현당위 농공부 부부장, 돈화시 부시장, 돈...
  • 2014-12-26
  •   90세를 앞두고있는 동희철(87세)옹은 외출할 때면 항상 수수하고 색이 바래진 참대지팽이를 갖고다닌다. 부인보다도 더 사랑스럽다는 그 지팽이는 동희철옹이 1987년에 아미산을 오르면서 1원을 주고 산것인데 몇해전 허리를 다치면서 사용해서부터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있다. 당구에 푹 매료된지도 십년이 가...
  • 2014-12-12
  • 룡정시 룡문사회구역에 거주하고있는 최근갑(89세)옹은 20여년간 자신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무주고혼들의 묘지를 지키면서 민족의 력사를 발굴하여 사람들로부터 “산지기”라 불리우고있다. “여태까지 포기하고싶은 생각 한번도 가져본적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발굴하는것을 사명으로 간주하...
  • 2014-12-12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88) 대형계렬보도 《백년백인》평의위원회는 조선족의 우수한 지도자의 한분인 전철수동지를 100명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본사기자가 직접 취재를 다녀오지 못한 상황하에서 오늘 원 길림신문사 사장,《장백산》잡지사 사장인 남영전선생의 특별기고로 전철수동지...
  • 2014-12-09
  •   ▲ 강향옥 교장 [서울=동북아신문]전국에서 단일 동으로는 유일하게 거주민의 절반이상이 중국동포인 대림2동에는 대림, 영림 이렇게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이들 두 학교는 거주민 중 중국동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학생 중 중국동포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 그 중 대동초등학교의 중국동포 자녀...
  • 2014-12-09
  •   첫눈을 뒤집어쓴채 전통장맛을 익혀내고있는 500여개 장독들 넓은 농가집마당이 말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장독대가 되여있었다. 올 겨울들어 내린 하얀 첫눈을 뒤집어 쓰고 근 500개나 되는 크고작은 옹기들마다 재래식 방법으로 구수한 장맛을 익혀내고있는 모습은 진정 가관이였다. 이곳은 화룡시 팔가자진 중남촌...
  • 2014-12-08
‹처음  이전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