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왕청 10번》-손군과 그의 든든한《슈퍼팬》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9월24일 08시33분    조회:57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손군
 
-연변팀 손군선수(33번)의 부친 손덕호 아들의 성장기를 말하다
 
 
26라운드 경기까지 15승 9무 2패, 54점, 현재 순위 1위. 연변장백산축구팀은 갑급리그 2015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해가고있다.

팀의 출중한 성적에는 외적선수 3인방의 돋보이는 배합 하모니가 큰몫을 하고있다. 동시에 연변팀 본토 선수들이 하나같이 똘똘 뭉쳐 수비에 나서는 동시에 공격선의 외적선수들에게 공을 수송해준것과도 큰 관계가 있다.

그중 33번 손군(1993년 4월 29일생)선수는 22살의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로련한 기술과 탄탄한 개인기 및 뛰여난 조직력으로 연변팀의 하프선 조직자로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다.
 
 
손군의 《슈퍼팬》 손덕호, 홈장때마다 응원차 연길행
 

최근 몇년간 연변팀의 홈장경기 당일마다 연길시려객운수소 사업일군들은 왕청-연길행 뻐스를 타고 연길뻐스역에 도착하자마자 공공뻐스를 갈아타고 연길시체육장으로 달려가는 한 조선족사나이를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그는 바로 연변팀 33번, 《왕청 10번》 손군서수의 아버지인 손덕호씨(55세)이다.
 
 
 
가족사진
 
손군은 2012년에 연변1팀에 가입, 이듬해부터 경기에서 얼굴을 내비치다가 2014년 시즌에는 한국 동계훈련때 입은 다리부상으로 안타깝게 시즌내내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덕호는 연변팀의 홈장경기때마다 일손을 제쳐놓고 연길시체육장으로 달려가서 관중석에서 손에 땀을 쥐며 연변팀을 응원했다. 작년말 팀의 강급소식에 그는 묵묵히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올시즌 팀이 극적으로 갑급리그에 귀환한후 박태하감독은 지난 시즌 경기에 한껨도 참가하지 못한 손군을 《포기》하지 않았다. 년초에 연변2팀까지 근 50명의 선수를 동계훈련에 참가시켰다가 최종 26명의 선수명단을 확정했는데 그중에는 훈련기간 내내 후보석에만 앉아있던 손군도 포함됐다. 

170센치메터의 신장에 70키로그람의 몸무게, 축구선수치고는 가냘프다고 할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졌지만 박태하감독은 그의 비전을 보고 줄곧 팀에 남겼다가 올 5월부터 부상이 완쾌된 손군을 주력으로 기용했던것이다.
 
 
소학교시절의 손군

손군은 박태하감독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줄곧 주력선수로 참전하다가 7월 26일 심수우항팀과의 원정경기에서 선제꼴을 터뜨리며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3000여명 연변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왕청 10번》에서 연변팀 주력선수로

아직도 많은 팬들이 한족인줄로 알고있는 손군선수, 그는 1993년 왕청현 하마탕진 조선족촌인 영안촌에서 태여난 조선족이다.

손덕호에 따르면 손군은 걸음마를 타기 시작해서부터 뽈만 보면 울음도 뚝 그치고 금시 해시시해졌다고 한다. 촌운동회때마다 생산대 축구팀의 주력공격수로 하마탕 축구계를 《호령》하던 손덕호는 어린 아들 손군에게서 싹수를 발견하고 축구공과 운동복을 안겨주었다.
 
 
아들 손군선수를 응원하고있는 아버지 손덕호씨(오른쪽)와 친척들
 
유치원때, 밖에서 친구들과 온나절 뽈을 차고 집에 돌아와서도 지칠줄 모르던 손군, 집안에서도 축구공은 그의 발을 떠날새 없었다. 숙제공부하는 8살 많은 친누나 손영화의 뒤통수도 축구공의 《습격》을 피해가지 못했고 옷장, 이불장과 창문 유리는 성한것 없이 다 깨졌다. 하지만 손덕호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한번도 꾸중한적이 없다.

당시 단층 줄집에서 살았는데 손군이 날마다 시도때도 없이 벽에다 대고 뽈을 차대는 통에 이웃집은 《텅~텅~텅~》 뽈이 벽을 강타하는 소리에 조용할새가 없었다.

《하지만 이웃집에서는 손군을 꾸중하기는커녕 장차 연변축구계의 큰 〈대목〉이 될거라며 상냥하게 손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고 말하는 손덕호의 얼굴에는 옛 이웃에 대한 고마운 표정이 력력했다.

1996년 손덕호는 자식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려는 속셈으로 왕청현성에 이사갔다. 그후 자식들은 왕청현제2소학교에 입학했고 손군은 자연스럽게 학교축구팀의 주력공격수로 활약했다.

손군이 소학교시절 학교축구팀에서 10번 유니폼을 입고 공격수로 활약하였기에 손덕호에게는 《왕청 10번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5년 왕청현중소학생체육운동대회에서 우승을 한후(첫줄 상패를 든 손군선수).

한번은 연변주체육학교 황길남감독이 훈춘에서 열린 연변주소학생축구경기에서 축구장을 종횡무진하는 손군에게 눈독을 들이고 《왕청 10번 아버지》를 수소문해서 찾아왔다. 연변주체육학교에 보내서 체계화된 축구교육을 시키자는 황감독의 제의에 손덕호는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리유로 거절했지만 《애만 보내달라》는 말에 소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을 황감독에게 맡겼고 손군의 등판은 《9번》으로 바뀌였다.

손군이 황길남감독의 휘하에 있을때 장춘에서 전국 18개 중점도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40명 선발팀에 연변팀의 기타 2명 선수와 함께 선정됐다. 열흘동안 집중훈련을 받고있는 손군에게 북경, 산동 등 국내 여러 축구구락부에서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손군은 거절했다. 그후에도 여러번 타구락부의 가입요청을 보내왔지만 번마다 《매정》하게 뿌리쳤다.

윤명호감독 휘하에 들어간 다음에도 여러 축구구락부로부터 《유혹》적인 제의를 여러번 받았지만 고향에 남으려는 손군의 의지는 굽히지 못했다. 이에는 아버지 손덕호의 영향이 아주 컸다.  
 
 
아버지, 어머니, 누님과 함께 있는 손군선수.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하여 손군에 대한 지원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손덕호는 연변팀을 위해, 연변을 위해 이름을 떨쳐야 한다며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손군의 뒤바라지를 위해 어머니 김순금은 한국에 갔고 한국에 류학간 누나 손영화도 평소 아껴모았던 돈을 선뜻 부쳐보냈다.

《슈퍼팬》부친의 소박한 바람

손군을 발굴해준 박태하감독과 구락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손덕호씨, 그에 따르면 손군의 계약은 2016년말까지이다. 아들이 더 유명한 거물급스타로 성장한다 하더라도 천리마를 알아봐준 백락이나 다름없는 연변팀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손덕호씨는 홈장경기때마다 연길에 와서 공공뻐스로 연길시체육장에 간다. 오매불망 바라던 《망자성룡》의 꿈이 이뤄져서 이젠 택시를 탈법도 하지만 그는 아들이 부상을 당하며 번 돈은 한푼도 허투로 쓰지 않는다는 고집이다. 그는 주석대나 관례대에 가본적이 한번도 없다. 축구팬들속에 티나지 않게 앉아서 묵묵히 아들을 응원하고 연변팀의 승리를 기원한다.

아들이 수입을 많이 올려도 지금까지 해온 장식일을 계속하겠다는 손덕호씨, 그의 바람은 아주 소박하다.

아들 손군이 상하지 않고 연변팀을 위해 혼신의 정력을 다 쏟아붓는것이다. 더 큰 욕심이 있다면 2016시즌부터 슈퍼리그에서 맹활약을 하여 연변팀의 위용을 떨치는것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시영결쿠크도구경영판매부 전복녀경리의 창업이야기 1990년대초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가기 위해 갈팡질팡할 때 심양시 황고구 명렴지역의 전복녀(56)씨는 남편과 함께 15평방메터의 영결쿠크도구생산공장을 꾸리고 부지런히 기업을 키워 지금은 여러개의 경영판매부를 가진 경리로 활약하고있다. 영결쿠크도구공장...
  • 2008-04-08
  • 두 발과 오른손까지 잃은 1급장애인 조화녀의 창업담 왕청현 시가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있는 조화녀성은 두 발과 오른손을 잃고 왼손밖에 없는 1급장애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활에 대한 더없는 열애와 용기, 완강한 의지력과 끈질긴 노력으로 장애자라는 담벽을 뛰여넘고 대학공부까지 마쳤으며 또한 간거한 창업을 ...
  • 2008-04-03
  •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환영식 및 성화봉송가동식에 이어 우리 나라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의 113개 도시가 성화봉송행사로 들끓고있는 가운데 연길시지체장애인 협회 회장 정영철﹙49살﹚씨도 우리 주 성화봉송행렬에 참가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짊어지게 됐다.어려서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지체장애자가 된 정...
  • 2008-04-03
  • 룡정시 덕신향 숭민촌 제6촌민소조의 리산옥(48세)녀성은 1998년에 남편과 함께  향공급판매합작사에서 정리실업당하였다. 밭 한뙈기 없이 도시에서 공부하는 딸애와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한다는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손에 쥔 돈도 없는 그녀는 한동...
  • 2008-03-31
  • 【서울=뉴시스】 " 어렸을 적 꿈은 병아리 감별사, 바퀴벌레가 무섭다... "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 등의 별명으로 한국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솔직담백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정대세의 소속팀인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
  • 2008-03-29
  •    훈춘시 화원세통경제무역유한회사 총경리 고련숙은 우리 주 대 로씨야무역분야에 녀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3년, 고련숙녀성은 다니던 무역회사가 불경기에 처해 정리실업 할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남들이 현실을 비관할 때 고련숙녀성은 직접 무역회사를 차려보려고 마음을 먹고 대...
  • 2008-03-28
  • ——— 아성직업교육중심 차미자부교장 사업실적 할빈시 아성직업교육중심에는 '벽돌공장'교정을 '화원식'교정으로, 학생을 '못생긴 오리에서 '고니'로 변신하게한 공신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성직업교육중심(한족학교) 200여명 교원 가운데 '우뚝' 선 조선족 부교장 차미자씨(46세) 이다. 그가 학교건...
  • 2008-03-25
  • "형님, 제 스윙 좀 봐주십시요"사상 처음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와 중국프로골프 오메가차이나투어가 공동으로 치르는 KEB인비테이셔널골프대회 2라운드가 열리고 있는 21일 중국 상하이 실포트골프장 연습장에서 투박한 북쪽 사투리를 쓰는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 청년 최...
  • 2008-03-23
  •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은 중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조선어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일전 기자는 200명의 방대한 “량회”문건 번역팀을 주야 진두지휘하고있는 중국민족어문번역국(아래 번역국으로 략칭) 오수자국장(57세)을 인터뷰하였다. 1975년 중앙민족대학(전 중앙민족학원)을 졸...
  • 2008-03-21
  • 강철원씨(21)는 중국 조선족이다. 2001년에 귀화한 뒤 국내에서 대전에서 공업고를 졸업한 뒤 올 9월에 중국 10대 명문대 중 하나인 하얼빈공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강철씨(20)는 중학교때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뒤늦게 정신 차려(?)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꿈꾼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전문계고에서 ...
  • 2008-03-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