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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서 보낸 1년, 하태균은 다시 태어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1월3일 20시36분    조회:6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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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하태균

[풋볼리스트=연길(중국)] 류청 기자= “(하)태균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지난 5월, 취재를 위해 신영록(29, 은퇴)을 만났을 때 질문을 하나 받았다. 신영록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동갑내기 친구이자 수원에서 함께 뛰었던 하태균의 안부를 물었다. 부끄럽게도 기자는 당장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수원삼성에서 뛰고 있을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하태균은 그곳에 없었다. 당시 하태균은 시즌 개막 전이었던 지난 1월에 중국 갑급리그(2부 리그) 연변창바이산으로 임대를 떠나 박태하 감독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영록과 하태균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함과 함께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왜 2007시즌 신인왕을 차지했던 하태균은 중국에서도 변방인 연변 임대를 선택했을까?

지난 10월 말, 그 의문을 직접 풀 기회를 잡았다. 연변이 갑급리그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찾았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연변은 24일 연길인민경기장에서 벌어진 후난시앙타오와의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었고, 하태균은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직접 느낀 연변 축구의 열기는 대단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기 도중 찰튼(외국인선수)이 상대의 거친 태클에 넘어지자 하태균이 태글을 한 선수를 밀친 것이었다. ‘저러다 퇴장 당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몸짓이었다. 걱정도 잠시, 하태균이 지핀 불은 연변 전체를 휘감았고, 후반에만 4골을 넣었다.

경기를 보고 질문 두 개가 남았다. ‘하태균은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연변으로 왔을까?’, ‘하태균은 한국에서도 저렇게 불같은 선수였던가?’ 호텔 로비와 커피숍의 담배연기를 피해 인터뷰 장소로 가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다. 하태균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는 하태균이 전과 같은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1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아래는 하태균과의 인터뷰 전문.
#연변의 우승 그리고 득점왕
-연변의 우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수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나?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 팀에 합류했을 때 감독님도 목표가 10위권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감독님이 첫 해에 이런 성적을 낸 것에 대해 축하하고 싶다. 사실 축구 선수들도 경력 중에 우승경험을 하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 연변 선수들도 우승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니 내게 ‘우승하면 기분이 어떠냐?’, ‘우승이 결정되면 감독님 헹가래를 언제 쳐야 하느냐?’라고 묻더라(웃음). 선수들에게도 고맙다. 기분이 정말 좋다.

-한국에서 챌린지 포함해서 8시즌 동안 30골을 넣었다. 그런데 올 시즌 26골을 터뜨렸다. 2부리그인 것을 고려해도 많은 골이다.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편안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박 감독님은 경기하기 전에도 많은 주문 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골 넣으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마인드가 바뀌었다. 한 골에 만족하지 않고 더 넣고 싶다는 욕심으로 끝까지 노력한 결과 많은 골이 나왔던 것 같다. (질문: 득점왕에 MVP까지 받았는데) 올 시즌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기회를 받아도 아무나 그 기회를 잡는 게 아니다. 게다가 코칭스태프와 다른 선수들은 모두’하태균을 믿는다’고 하더라
초창기에 왔을 때 비디오 분석관 (김)혁중이 형이 ‘골이 곧 답’이라고 조언해줬었다. 나도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었다. 선수들에게 패스를 받아야 하는데, 선수들이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골을 넣고 선수들과 식사도 하면서 관계가 좋아지면서 더 탄력을 받았다. 코칭스태프에서는 선수들이 내게 의지한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운동장에서 열심히 하는 걸 동료들이 잘 봐준 것 같다.

-한국선수가 중국이나 아시아권 리그로 이적했을 때, 경쟁보다는 믿음을 받기 때문에 더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맥락인가?
경기하면서 감독님을 의지하게 됐다. 가끔 한 말씀씩 해주시는데 그게 마음에 와 닿았다. 선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비롯한 선수들이 흔들릴 때마다 그런 한 말씀씩 해주신다. 그게 마음을 다잡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연변 선수와 팬들을 만나보니 전 감독들은 ‘못한다’는 구박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박 감독은 ‘하지마’라는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하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전 감독님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박 감독님은 선수들한테 운동장에서는 플레이에 대해서 주문만 하고 혼을 내지 않는 편이다. 생활면에서 프로선수가 하지 않아야 하는 일에 대해서만 강조한다. 운동장에서도 전술적인 부분만 지시하고, 선수들이 그걸 이행하지 못해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감독님의 인성, 선수들을 다독이는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다. 선수들이 원래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감독님이 그걸 100% 꺼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갑급리그는 에두가 허베이종지에 52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연변은 그런 허베이에 1승 1무를 거뒀다
에두와는 경기 때 만나서 인사했다. 에두도 그렇고, 그 팀의 10번 외국인 선수도 정말 잘한다. 수원에 있을 때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중국 슈퍼리그 팀과 하면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었다. 대신 외국인에 의지하기 때문에 만들기 보다는 전방으로 공을 때리는 일이 많다. 우리는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고 만들어가는 플레이로 맞섰다. 연변 선수들은 ‘조선족이 한족보다 패스를 더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허베이와 경기를 할 때도 우리가 경기를 더 잘했다. 패스가 간결했고, 압박도 우리가 더 잘했다.

-연변의 진정한 힘은 수비(24실점으로 리그 최소실점 2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선수의 80%가 지난 시즌과 같은 상황에서 기적을 일으킨 것은 결국 수비 때문이었나?
골을 안 내주면 1골만 넣어도 이긴다. 여기 선수들이 끈질긴 게 있다. 감독님이 지시하면 끝까지 물어뜯는 게 있다. 감독님도 매 라운드 똑 같은 말을 하셨다. ‘한 발이라도 앞에 나가야 상대가 볼을 못 찬다’고. 감독님이 말씀한 게 경기장에서 나타나니까 선수들이 믿음을 갖게 됐다. 혁중이 형이 경기가 끝나면 선수 개개인이 볼 수 있도록 비디오를 편집해서 주는데, 선수들이 전부 이동하면서 그걸 보고 있다. 선수들이 발전하고 싶어서 노력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연변에서는 시즌 초반에 박 감독이 경기 후 이틀 가량 휴식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동계훈련에서 체력을 만들고 시즌 중에는 회복을 중점으로 하는 훈련법이 한국에서도 일반적인가?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내가 훈련을 많이 안 시킨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훈련량은 경기장에서 보여주면 되고, 나머지는 회복한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그 패턴이 좋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선발로 많이 못 뛰어서 이런 시스템과는 거리가 있었다. 교체 선수는 선발과 운동량 차이가 크다.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경기 다음 날도 100% 운동량을 꾸준히 채워야 했다.

#하태균, 연변을 선택한 이유
수원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2007년 데뷔와 함께 신인상을 받았는데, 그 이후에는 생각보다 기록이 좋지 않다
2007년 신인왕은 생각지 못한 상이었다. 항상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는데 당시에는 ‘내년에 꼭 다른 상이라도 받자’라는 목표를 잡았었다. 그 목표를 8년 동안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시즌을 정리하는 글이 항상 아쉬움 투성이었다.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사실 기회를 잡으려고 해도 뭘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럴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 감독님이 기회를 줬고, 그게 내게 새로운 발판이 된 것 같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주저 없이 연변 임대를 선택했나?
올 시즌 동계훈련을 하면서도 열심히 했는데, 기회를 잡기가 정말 어려워 보였다. 연변에 대해서 별다른 정보가 없었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전하게 됐다.

-이적을 선택했을 때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연변에 대한 편견이 많지 않나
주위 선수들이 농담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밤에 조심해라 등등(웃음). 난 편하고 좋다라고 했는데, 그 선수들은 못 믿었다. 아직까지 선입견이 있으니까. 그런데 우승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까 보기 좋다고 말하는 선배들이 많이 생겼다. 후배들은 ‘부럽다’는 반응이다. 여기 오고 싶다고, 슈퍼리그 올라가는데 수비 안 찾냐고, 감독님께 말씀 좀 드려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웃음).

-어쨌든 이적과 함께 골을 넣기 시작했다. 스스로 많이 올라섰다고 느낀 시기는 언제였나?
그게 북경이공대학과의 5라운드 원정 경기였을 거다. 중국에서는 원정에서 이기기가 정말 어려운데, 당시에 한 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 4골을 넣었다. 선수들의 경기력도 좋았고 골도 많이 넣으면서 나를 비롯한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올라왔다. 자신감이 붙었고, 다음 경기부터 오히려 상대팀들이 처져서 수비를 하고 우리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경기했다.

-득점왕을 차지한 건 얼마 만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19살에 처음 해보고 이번에 10년 만에 다시 받았다(웃음). (질문: 마지막 경기에서 1위에 1골 차로 뒤지고 있었기에 의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생각을 안 하려 해도 생각이 나더라. 2등은 안 알아주니까. 욕심이 생겼다. 페널티킥을 얻었던 순간 꼭 넣어야겠다는 간절함이 들었다. 동료들도 만들어주려고 했다. 외국인선수들까지 ‘1위와 몇 골 차이냐?’고 묻더라. 득점왕을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동료들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족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나? 주된 대화 주제는 뭔가?
선수들이 착하고 순수하고 의리도 좋다. 모든 선수와 다 친하다. 처음에는 경기를 주로 뛰는 선수 중에 유부남들이 많아서 어울릴 기회가 적었는데, 어른 선수들과 밥을 먹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가끔 내가 연변 말투를 쓰면 모두 웃는다(웃음). 대화 주제는 어디든 똑같다(웃음). 20대 후반 남자들이 할법한 이야기다. 선수들이 요즘 차에 관심이 많더라(웃음). 사실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커서, 선수들이 자존심 상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식당에 가면 ‘이런 소고기 먹어봤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여기 친구들이 더 잘 먹는다(웃음).

-24일 경기 중에 상대 선수를 민 것도 그런 유대가 발현된 건가?
선수들과 사이가 되게 좋다. 밀었던 것은 어필을 하려고 했던 거다. 우리 선수들한테도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쪽 팀이 강등 위기라서 강하게 나오더라. 우리도 이겨야 홈에서 축제를 할 수 있는데, 저들이 강하게 나오면서 기에서 밀린다고 느꼈다.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런 행동을 했다.

-여기 와서 가장 놀란 게 경기장에서 안내방송도 한국어(혹은 조선어)로 먼저하고 다음에 중국어로 하는 모습이었다. 조선족들의 자부심을 느꼈다
선수들이 자존심이 강하다. 지난 시즌까지는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뛸 수 없는 환경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6개월 동안 월급이 밀렸었다. 그래서 조선족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고 한다. 타지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박 감독님이 이런 부분을 해결해주면서 선수들이 의지를 되찾았다. 선수들이 감독님을 정말 좋아한다. 생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해도 맞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득점왕과 MVP 수상을 제외하고도 올 시즌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진짜 많이 얻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시즌을 다치지 않고 소화한 것이다. 한 번도 이렇게 다치지 않고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다. 축구선수로서 살아 있다고 느꼈다. 그게 가장 행복하다. 이런 선물은 어디에서도 못 받을 것 같다. 올 시즌을 정리할 때는 긍정적으로 쓸 게 많을 것 같다.

-부모님도 기뻐하셨을 것 같다. 직접 현지에서 경기를 보셨나?
몇 차례 오셨다. 부모님께 좋은 모습 보여드려 기쁘다. 항상 아픈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올 시즌에는 다치지 않았다. 부모님도 다치지 않고 축구 하는 게 보기 좋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이렇게 많이 웃으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휴가 계획과 다음 시즌 준비에 대한 계획은 있나?
휴가계획은 아직 없다. 다음 시즌은 휴가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계훈련이 가장 중요한데, 어떻게 쉬느냐에 따라 동계훈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니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동계훈련을 많이 못했더라. 올해는 동계훈련을 소화해냈고 그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은 또 다른 도전이다. 슈퍼리그를 앞두고 정한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뭘 보여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부상 없이 경기를 마음껏 뛸 수 있다면 좋다. 몇 골을 넣겠다는 목표도 없다. 사실 좀 궁금하다. 슈퍼리그는 어떨 지, 우리가 슈퍼리그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지. 선수들이 감독님을 믿고 열심히 뛴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사진/영상=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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