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윤빈-실패를 딛고 꿈을 밝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1월6일 12시14분    조회:674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윤빈

청도 성양구에 가면 《미스터닭갈비》라는 간판이 유표하게 안겨오는 닭갈비한식체인점이 있다.

말그대로 닭갈비에 여러가지 채소와 쌀을 버무려서 만든 미스터닭갈비는 개업한지 두달동안 매일 성업중이다. 손님들이 식사시간대에 조금만 늦게 음식점에 도착해도 빈자리 하나 없어 좌석표를 받고 한참은 대기해야 제차례가 온다.


청도 성양구 미스터닭갈비 체인점의 젊은 사장 최윤빈.

 

《미스터닭갈비》란 바로 우리 말로 바로 당신이 즐기는 닭갈비란 뜻으로서 청춘남녀들이 자주 찾는 이 음식점의 주인은 80년후 태생인 올해 28세의 새파란 나이 최윤빈이란 젊은 사장이다.

 

《오늘처럼 제가 청도라는 타향에 한국의 브랜드체인점을 세우기까지 쉽지않은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비록 아직은 성공이라 단정할수 없지만 그냥 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중입니다.》최윤빈사장의 페부지언으로 흘러나오는 소박하고 겸손한 말이다.

 

첫번째 꿈: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나날에

 

길림성 연길시태생인 최윤빈은 동년시절에 남들처럼 아빠와 엄마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귀여운 어린이로 자랐다. 그러나 어린 최윤빈의 즐거운 동년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학교 4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정불화로 헤여지고 윤빈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슬하에서 힘겹게 자랄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윤빈이는 마이크 젝슨같은 세계적인 명가수로 되는것이 꿈이였다.

 

고객들로 붐비는 청도 미스터닭갈비체인점.

 

그 시절 텔레비죤화면에서 명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올 때면 윤빈이는 따라부르며 마치 자신이 당장 명가수로 된 기분이였다. 그러나 어린 윤빈이의 가수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때 한집에서 다섯식솔이나 생활하다보니 성악강습반 학비를 마련할 능력이 없었던것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감안한 음악과외반 선생님은 윤빈이의 노래싹수를 보아내고 면비로 성악을 가르쳤다. 윤빈이의 노래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바로 이때 성악반 선생님이 뜻밖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러나 윤빈이는 가수의 꿈을 포기할수가 없었다. 밤무대를 전전하며 팝송가요를 부르며 노래실력을 쌓고 또 쌓았다. 뿐만아니라 돈을 벌어 예술학원에 갈 학잡비까지 차곡차곡 마련했다.

 

드디여 2007년에 그는 단연 1등의 성적으로 연변대학예술학원 성악전업에 입학했다.

 

윤빈이가 대학생의 꿈을 안고 미래 가수의 꿈을 바야흐로 무르익히며 희망과 동경에 빠져있을 때 또 다른 애로가 그의 앞에 들이닥쳤다.

 

대학생활은 윤빈이가 그토록 바라는 꿈을 실현하는 유일한 려정만이 아니였다. 그때 윤빈이는 꿈에 대한 동경이 현실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는것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은 학잡비를 마련할 능력이 없었다. 이리하여 오랜 고민끝에 1년 8개월만에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가수의 꿈을 접었다.

 

두번째 꿈: 기획사의 꿈을 꾸며 열심히 실천해가다

 

그토록 갈망하던 가수의 꿈을 접은후 최윤빈은 인테넷에서 연예기획을 배우기시작하였다. 기획사를 선택한데 대해 윤빈이는 밤무대를 뛰면서 생각해낸 방안이였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연예무대는 가수, 무용수 등 연예인과 전반 행사가 조응되지 않고 짜임새가 없고 미리 기획이 없이 전통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허점이 너무 많았던것이다.


그는 밤낮으로 인테넷에서 관련지식을 습득하고 연예기획을 연찬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연예기획사로 변신한 윤빈이에게 손을 펼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한 대형공연을 불과 열흘 앞두고 기획을 맡은 단위와 공연주최측에서 경비문제로 모순이 생겨 기획사측에서 기획을 중지하고 공연주최측에서는 기획사가 없어 애를 태우며 안달아하고있었던것이다.

 

공연주최측에 의해 가수로 요청받은 친구한테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윤빈이는 공연주최단위를 찾아가 과감히 기획을 맡아나설것을 요구했다. 공연주최측에서는 연예기획리론에 대해 일목료연하게 구술하는 윤빈이의 능력을 믿고 과감히 그한테 대형공연기획을 맡겨주었다.

 

평생 처음으로 접촉한 연예기획, 그것도 대형공연기획은 윤빈이한테 있어서 피할수 없는 도전이였다. 윤빈이는 그동안 연예기획을 함께 해온 친구들과 함께 밤낮이 따로없이 분망한 작업에 달라붙었다. 무대설계제작으로부터 시작해 공연의 매 순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되는 바로 전날 무대설계와 제작을 비롯해 일체 연예기획이 막힘없이 완성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그후부터 윤빈이는 연예기획뿐만아니라 조선민족의 전통혼례, 어린이 첫돐잔치, 회갑 등 종합이벤트를 할수 있는《쇼이벤트》라는 명칭으로 유한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하늘의 풍운조화는 예측할수 없듯이 잘 나가던 쇼이벤트유한회사는 윤빈이가 시장경험이 결핍한탓으로 사업을 무작정 확장했다가 오픈 3년만에 기로에 들어서고 회사는 파산되고말았다.

 

세번째 꿈: 민족전통음식으로 부활하다

 

《사실 시작할 때마다 기대와 희망을 갖고 뛰여든 꿈들이 모두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니 처음엔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답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머리속은 온통 텅 빈것만 같았습니다》

 

지나온 역경을 경과하며 느낀 최윤빈씨의 소감이였다.

실패는 나젊은 최윤빈한테 있어서 매우 큰 타격이 아닐수가 없었다.

윤빈이가 기로에서 헤매고 바깥출입조차 절제하며 두문불출하고있을 때 한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경영제1선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최윤빈사장(가운데사람).

 

길림시에 한국전통음식 닭갈비체인점을 경영하고있는 한 친구가 경영부진으로 합작자를 찾고있는중인데 기획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윤빈이가 적합할것같아 합작의향을 전해왔던것이다.

 

순간 윤빈이는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전에 기획사를 운영할 때 부진에 빠진 경영자를 도와주었던 경험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날 바로 길림시에 도착한 윤빈은 본격적으로 미스터닭갈비의 길림체인점의 관리방식과 운영방식, 그리고 고객래원까지 자세히 체크하고 체인점의 기획에 들어갔다.

 

《전에 기획사를 운영한 경험이 닭갈비체인점에 적응되는줄 정말 몰랐습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석달만에 3000원의 적자를 보고있던 닭갈비체인점이 인민페로 29만원이라는 리윤을 보게 되였다. 최윤빈씨에 따르면 비결은 오직 음식질을 높이고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것이였다.

 

구체적으로 기획사를 운영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간단하면서도 빨리 효률있게 운영하겠는가? 어떻게 손님들이 만족하게 하겠는가? 단가를 어떻게 올리겠는가? 》등 시스템을 적합하게 활용했기때문이란다.

 

최윤빈씨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노력은 한국 미스터닭갈비총부 지도층의 중시를 받았다. 지도층에서는 최윤빈을 미스터닭갈비총부의 기획사로 초빙하고 본격적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였다. 그리고 청도지구의 닭갈비체인점을 최운빈씨한테 맡기였다.

 


직원들에게 고객정성에 힘을 넣을것을 강조하는 최윤빈사장(오른쪽첫번째)

 

청도지구의 미스터닭갈비체인점을 맡은 최윤빈은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집거구에 음식점을 차리라는 지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한달기간 청도시장을 고찰한 결과 타민족들이 거주하는 집거구에서 한국음식점이 더욱 적합하다는것을 느꼈다. 영화 《대장금》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족들은 한식에 대해 보편적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즐겨 찾아주었던것이다.

 

바로 한국전통음식인 본가에서 그 답안을 찾아냈다고 한다. 최윤빈씨의 미스터닭갈비점의 바로 옆에는 본가음식점이 영업하고있는데 개업 1년만에 본지역 한족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점으로 각광받고있었던것이다.

 

본가음식점의 관리방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경영모식을 바탕으로 지난 9월 3일, 최윤빈씨는 청도 성양구에 미스터닭갈비체인점을 오픈했다.

 

최사장에 따르면 한 음식점이 살아남자면 언제나 고객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면서 매일 음식점 문을 열기 바쁘게 바로 직원들에게 고객정성에 힘을 넣을것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역경을 보귀한 경험으로 삼아 청도 미스터닭갈비체인점을 중국조선족의 음식맛을 대표하는 중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음식점으로 만드는것이 저의 새로운 꿈입니다.》고 밝힌다.

 

지난 실패를 딛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최윤빈씨의 패기, 비록 아직 성공을 운운하자면 시기상조지만 젊음의 실패를 경험으로 삼고 알찬 노력으로 성공일로를 향해 달리는 그의 꿈은 기필코 실현될것이다.

/ 길림신문 강동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img count='1' width='400' img] 200 5카이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킬로그람급에서 금메달을 딴 조선선수 계순희가 17일 오후 평양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 2005-09-21
  • 고훈(연변세기팀 감독): 오늘 경기는 아주 어렵게 이겼다. 대방팀이 방어를 견고하게 하고 수시로 역습을 노렸기에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난공불락에서 아주 내심했고 끝내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번 승리를 거둔다는것은 정말로 쉬운일이 아니다. 경기에서 위협적인 진공을 많이 했으나 안타까운것은 소...
  • 2005-09-19
  • 주 건설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오기준씨가 4만여원을 내 고향마을인 조양천진 다촌에 다리를 놓아주어 촌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양천진 다촌은 16호세대에 50여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마을인데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촌민들이 외출하려면 마을앞 개울물을 지나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
  • 2005-09-19
  •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경기를 지배하는것을 중시하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의 교과서를 철저히 적용하고있다.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사상 처음으로...
  • 2005-09-19
  •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와 투자한 외국기업이 날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사회,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 있고 서로 융합되고 있습니다. 베이징 석경산구역 영락서구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신기 세라젬 의료계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베이징 석...
  • 2005-09-18
  • [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
  • 2005-09-18
  •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이 최초로 참가한 항일활동은 1919년 룡정에서 있은 《3 13》운동이다. 이 시기 그는 초기 고려공산당활동에 참가, 《3 13》 시위자들이 들었던 태극기 대부분이 한락연이 만든것이다. 1923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은 이때로부터 반제국주의, 반봉건주...
  • 2005-09-18
  • 조선족 작가 장혜영의 저서 가 한국의 인문학계렬의 대학교재로 선정되였다. 흑룡강성 출신인 장혜영씨는 5-6년간 한국에서 장편소설 , 을 출판하였고 2002년에 인문도서 를 펼쳐내였다.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많은것들을 짬짬이 글에 담아온 소설가는 엄연한 로 변신되여 민족문화학과 사회문화학의 시각에서 한...
  • 2005-09-15
  • 조선족민속학자 천수산씨의 일가견- 1952년 9월3일에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시는 구)가설립되였다는 의미는 조선족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조선족의 민족전통을 대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그리하여 많은 유지인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순히 길림성에만 국한되...
  • 2005-09-15
  • 조선족 최군 흑룡강성 '10대걸출한 쳥년'후선인에 당선 흑룡강성 고급인민법원 민사제2재판정 재판장 최군(41세)이 흑룡강성 '10대 걸출한 청년'후선인에 당선되였다. 최군은 사업에 참가한 18년래 부지런히 사업하고 고심히 연찬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전성 법원의 심판수준제고와 량호한 경제법제환경을 조성...
  • 2005-09-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