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일류학생10]《조선족, 중국서 3위에 드는 선진민족으로 ...》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1월12일 13시41분    조회:692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ㅡ주식회사ASK TRADING 김동림회장을 만나서

 

 
 
김동림회장
이번 계렬보도 취지의 하나가 바로 사업과 활동에서 그리고 생활에서의 각 주인공들의 스토리를 기록하는것이다. 한 개인의 사업, 활동, 생활면에서 주변의 인정을 받는 인물들을 만났는데 이들중의 한사람이 ㈜ASK TRADING 회사 김동림회장이다.

 

《인정을 받는 외국인으로 되라》

김동림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2008년 8월, 동경도세다가야구에 자리잡은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였다. 자녀를 일본류학을 보낸 부모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북아청년련의회 축구팀을 찾았을 때였다. 축구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찾아온 김동림은 한동안 경기를 지켜보다가 경기가 끝나자 한마디했다.

《우리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 조선족으로서 자기가 소속한 팀만이 아닌, 앞으로 더욱 큰 꿈을 품고 힘을 합쳐야 한다. 축구란 이 매개물을 잘 활용하여 일본사회에 튼튼하게 발을 붙이고 조선족사회를 발전시키자.》

그다지 축구운동을 즐기지는 않지만 재일 조선족사회의 형성을 위해 이런 부탁을 하고저 일부러 찾았다며 대중을 선동하는 김동림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부언에서 필자는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와의 두번째 만남은 지난 7월11일에 오오미야겐포그랜드에서 있은 재일 조선족《SKYNET》컵 축구경기장이고 세번째 만남은 7월18일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일본치바지회 《2015년 제13기 재외동포차세 대무역스쿨》때였다.

두번째로 만났을 때의 동림씨는 겸손하고 친절한 모습의 인상을 주고 세번째로 만났을 때는 취재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려는 봉사의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7월 11일 축구경기가 한창일 때 필자는 짬시간을 빌어 김동림회장을 인터뷰하였다.

조용한 곳을 찾아 운동장 남쪽 이름모를 대나무숲 그늘아래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냥 선대로 인터뷰했다. 아무런 탈없이 웃으면서 응해주는 그의 마음자세가 고마웠다.

《이분은 사업가이자 활동가입니다.》동반한 안내자의 소개다.

안내자의 소개대로 그가 하는 사업이 활약적인 국제무역업이고 그는 재일 조선족축구협회 초대회장, 월드옥타치바지회 제3 대 회장을 지녔고 지금도 고문으로 있으니 그는 명실공한 사업가이며 활동가임이 분명했다.

1968년 흑룡강성에서 출생한 김동림은 1991년 동북재경대학을 졸업하고 4년간 대련에 있는 료녕성축산수출입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1995년에 일본류학을 떠났고 2004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국제무역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주로 중국과 대만에서 경기용바이크(脚踏车)와 전자제품을 수입하여 일본시장에 판매하고있다.

《일본땅에서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더한층 키우며 일본의 선진문화를 배웠다. 주류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사회에서 수요하는 가치 있는 인간으로 되기에 열심히 노력하였다.》이는 일본생활 20년의 수확이란다.

《재일 조선족은 외국인으로 주류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특히 외국인이 주류사회의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으려면 우선 세금을 잘 납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모이면 세금을 잘 내라고 항상 당부한다. 비록 힘들게 번 돈이 아깝다지만 세금만은 여실하게 제때에 내야 한다.》

조선족들의 모임에서 늘 《세금을 잘 내라》고 당부한다는 김동림의 언행에서 사회의 책임을 다 하는 기업인의 기본 자세를 읽을수 있었다.

《나를 수요하고 찾아주니 행복하다》

《행복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리하십니까? 동림씨는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아주 어려운 질문이네요. 평소에 행복에 대해 특별히 생각했거나 고민까지는 안했는데요. 허나 현재 내가 일을 할수 있고 부모, 아들, 회사, 사회에서 나를 수요하니 행복하지요!》로 답하는 동림씨이다.

《남이 나를 수요하고 남이 나를 찾는데서 행복하다.》는 답만으로 동림씨의 성실한 몸가짐과 인정미가 넘치는 마음가짐 그리고 사회에서 그를 부지런히 찾게 되는 인지도를 가늠할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수요와 공급을 이어준다》는 리더들의 필수적인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확정했다.

동림씨는 한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집을 사드리니 부모들이 좋아했고 아들이 대련서 조선족학교를 다녔고 2년전에 20살난 아들이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대학을 진학한것을 계기로 독립시킴으로 하여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휴가나 명절때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가 되고보니 스스로 부모에게 더 잘 효도해야 하겠다는 효심이 굳어진다고 동림씨는 말한다. 김동림의 아들도 평균 두달에 한번씩 부모집에 들린다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우세만 보지 말고 재일 한족들보다 인문관계가 약하다는것을 알아야》

《일본에 온 대부분 조선족들은 지역파벌이 없으며 아주 문명하다. 재일 조선족은 일본의 좋은 문화를 배웠고 중국의 좋은 점들을 보면서 새로운 문화를 키우고있다. 조선족은 독립적인 문화도 있고 여러 가지 문화를 흡수할 능력도 있다.》,《그러나 재일 조선족은 우세만을 생각할것이 아니라 재일 한족들보다 인문관계가 약하다는 렬세도 알아 두어야 한다.》

김동림은 좀 불편하더라도 돈을 팔때 조선족들이 꾸리는 가게를 찾아가며 종업원 채용에서도 먼저 조선족을 채용하고 특히 젊은이들을 아주 아낀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끼리 서로 아끼고 존중해주지 않으면 다른 민족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것이다.》고 견해를 밝힌다.

그는 재일 조선족축구발족의 원로로서 주말축구를 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만이 아닌 조선족들의 문화로 만들려는 꿈을 키우고있다 한다.

사업상으로 거의 매달마다 중국에 한두번씩 다닌다는 동림씨는 21세기 중국발전이 그렇게 빠른데 많은 재일 조선족들이 중국의 발전과 변화속도에 따를수 있겠는가를 걱정한다 했다.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듯이 일본에서 잃는것도 많다고 말하는 김동림, 그는 중화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천지진 재해복구에 헌금도 했다.

《중국조선족사회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여러 지방의 조선족들이 잘 하고있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지금처럼 조선족의 정체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면서 조선족이 중국의 56개 민족가운데 반드시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선진민족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화자의 물음에 답자의 말이다.

리성과 감정의 평형이 잡힌 김동림의 민족애에 필자는 머리가 숙여진다. / 오기활

 재일 조선족축구 리더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왼쪽으로부터 김동림, 리호, 필자, 정걸, 마홍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저에게 있어서 무자년인 2008년은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사진전과 수상 그리고 촬영가협회 사업 등 여러 면에서 모두 결실을 이루었지요.” 남개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사진작가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쌓았고 또 성촬영가협회 부주석의 자리에 오른 리종걸씨이지만 지난해 거둔 성과들은 의미...
  • 2009-01-22
  • 흑룡강성 (黑龙江省) 닝안(宁安) 출신으로 한국에서 12년을 생활한 박춘근 씨(57). 껑충한 키에 길쭉한 얼굴이 인상적인 그에게서는 타향살이로 지친 기색은커녕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눈빛만이 반짝인다. 꿈을 가진 그는 재한 조선족들에게는 귀감이 될만한 '성공한 인물'임에 틀림없다.'외래어사전' ...
  • 2009-01-21
  • 함순녀 그녀가 선택한 무용인생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후에도 출중한 무용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독차지하던 이름난 무용배우 함순녀-연변의 첫 국가1급무용배우로 활약을 펼쳐가던 그녀는 지금 연변가무단의 단장조리로 사업하는 한편 전국인대 대표, 길림성인대 대표로 나라를 위한 사업에서 한몫을 톡톡히 담당해가고있...
  • 2009-01-21
  • 평범한 회사일군이 외화벌이 능수로●년간 수출액 600만딸라 ●550호 농가에 치부기회 제공● <<회사+기지+농호>> 경영모식 형성 불경기로 파산의 변두리에 처했던 민영기업을 왕청현에서 외화벌이 중점기업으로 부상시킨 녀강자가 있다.그녀가 바로 올해 51세에 나는 허춘희씨이다. 30년전 왕청현 토산과일회사...
  • 2009-01-19
  • 중국인민은행 연변주중심지행의 조사통계과에 근무하는 리선자씨가 중국 유수의 금융잡지 -《중국금융》2009년도 제2호 표지인물로 나왔다. 《중국금융》잡지는 1950년에 설립된 잡지로서 중국인민은행,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중국보험감독관리위원회의 관리감독하에 중국금융출판사가...
  • 2009-01-17
  • 우리 학계에서 《신문학》 하면 금방 떠오르는 한분이 계신다. 바로 연변대학의 신문학교수이며 우리 《신문학교육의 개척자》인 최상철교수(70세)이다. 청춘시절에는 작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연변대학 조문학부만을 선택해 연변에로 왔고 졸업후에는 15년간 문학교수와 창작 및 평론에 전념, 왕성기를 맞다가 돌연 신문학...
  • 2009-01-16
  • 14일,중국국가체육총국 남용을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으로 정식 임명조선족 사나이 남용, 과연 중국축구를 낭떠러지에서 구해낼수 있을가?1월 14일, 중국국가축구대표팀이 2011년까타르아세아컵축구대회 예선 제1륜경기에서 D조중 가장 약팀이라 불리는 수리아에 2:3으로 무릎을 꿇어 팬들의 비난이 빛발쳤다.2009년 들...
  • 2009-01-15
  • 중국 저명한 조선족 시인이며 길림일보신문업그룹 길림조선문신문사, 장백산잡지사 사장 겸 총편집인 남영전씨는 줄곧 토템문화연구와 토템시가작품창작성과로 문단에서 이름을 크게 떨치고있다. 최근년래 남영전씨는 새로운 연구와 창작성과로 갈수록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2008년 10월, 그의 론문 "토템문화가 현대...
  • 2009-01-15
  • 산재법 몰라 불이익 당한 재한중국동포 위한 킬러“한국에 입국하는 80%이상의 중국동포들이 한국의 산업재해법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고 또 회사측은 형사,법률책임을 지지않기 위해 협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더욱이는 산재로 인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달에 서울에...
  • 2009-01-15
  •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 조선족 강 연 양학비 부족 중국 명문 연변 제1고 자퇴민족사관고 특례입학 학업의지 다져“한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고 중국을 이끌어 나가는 조선족이 되고 싶습니다.”동해시와 자매 도시인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의 조선족으로 민족사관고로 유학온 강 연(18·사진)학생. 강 양...
  • 2009-01-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