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녕일 원사, '바이러스 연구는 나의 숙명'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월15일 20시52분    조회:49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녕일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의학과학원 군사수의연구소 바이러스학 전문가 김녕일 원사

김녕일(金宁一), 세간에 별로 흔치 않는 이름이었다.

김녕일은 그의 이 이름에 명인의 영상이 비껴 있다고 말했다.

"저의 생일이 러시아공산당의 수령 레닌(列宁)과 하루 차이가 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인데요."

그래서일까, 김녕일의 이름은 시초부터 그만의 독특한 기운을 뿜고 있는 듯 했다.

어릴 때 그는 골목대장으로 동네 곳곳을 누비던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훗날 그는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의학과학원 군사수의연구소 바이러스학 연구원이자 전문가로 된다.

정말로 이름에 담은 부모님의 서원(誓願)이 발현된 걸까? 김녕일은 60 고개를 앞둔 지난해 말 중국공정원 원사로 선정된다. 원사는 국가에서 설립한 과학기술 영역의 최고의 학술칭호로 종신영예이다.

사스, 조류독감, 에볼라, 메르스 등등. 인류는 거듭되는 전염병을 치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충분히 실감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인류가 안고 가야할 지속적인 과제로 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강한 백신을 만들어서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석사공부 할 때부터 연구방향을 이쪽으로 선정했습니다."

김녕일은 바이러스와 시작된 그의 특이한 인연을 이렇게 말한다. 그때부터 김녕일은 연구실에 터를 잡고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발견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세계 3 대 과학저널인 '네이처 (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에 논문을 싣는 것은 모든 과학자들의 소원이다. 김녕일은 상기 간행물에 유수의 논문을 수록하면서 일찌감치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김녕일이 그동안 각종 전문 간행물에 발표한 논문은 무려 600여편에 달한다. 그러나 원사를 신청할 때는 줄여서 400여편으로 줄이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논문 숫자가 너무 많아 제 자랑을 떠들썩하게 늘여놓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길림성 성장과 당위서기의 회견을 받고 있는 길림성 籍  원사들(김녕일 원사 우3)

지난 32년 동안 김녕일은 18종 바이러스의 특성과 병원체 특성, 면역기능 등을 연구했으며 3종 바이러스 단백질발현 벡터 계통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런 실적으로 하여 김녕일은 2012년 국가과학기술진보 1등상을 수상하며, 2014년 8월 습근평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서명과 지시로 2등공을 기입받았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은 것은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과 계몽교사를 포함해 바른 가르침을 준 모든 은사들, 그리고 든든한 친구들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김녕일은 원사 칭호를 받는 순간 눈앞에 떠오른 건 부모님과 은사, 친구들이였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김녕일은 대자연의 이런저런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부친으로부터 문제의 해답을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도그럴 것이 부친은 연변대학 물리학과 제1기 졸업생으로 통화(通化)에 물리교원으로 있었다. 교사인 부모는 엄격한 훈육으로 개구쟁이 아들을 학문의 길로 인도했다. 1974년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마친 김녕일은 그때 그 시절의 하향 붐에 떠밀려 통화 부근의 마을에 '재교육'을 받으려 내려갔다.

그는 집체호 친구들과 다락밭을 만들고 관개수로를 뚫으면서 손에 진흙이 마를새없이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릴 때 '골목대장'을 하듯 민병 중대장을 맡던 이야기는 이때 생긴 에피소드이다.

에피소드는 그런 '자랑' 뿐만 아니었다.

"옥수수밥으로 끼니를 에우던 때였는데요, 돌아서면 금방 허기가 졌죠."

육체의 배고픔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허기는 쉽게 배불릴 수 없었다. 김녕일은 그때 그 시절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모택동선집", '레닌전집', '반듀링론' 등을 걸신처럼 밤늦도록 통독했다.

"사회과학은 임의성이 강하지만 자연과학은 증거로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학문이죠."

이런 도서는 종국적으로 김녕일에게 학문적으로 자연과학을 선택하는 방향판으로 되고 있었다.

1977년 김녕일은 연변대학 농학원 수의학과에 입학, 소망대로 자연과학 학문의 길에 들어선다. 졸업 후 김녕일은 농학원의 조교로 배치를 받았다. 그런데 불과 반년 만에 김녕일은 사직서를 내고 군사수의대학의 석사과정을 밟는다. 사실상 80년대 초는 대학생도 흔치 않을 때였다.

"부모님들이 학문을 더 깊이 닦았으면 하는 바램이었고, 저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김녕일은 본격적으로 바이러스학 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강화를 할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바로 이맘때라고 한다.

"석사과정으로 바이러스학을 기본적으로 습득했지만 학술의 선두주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였습니다.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에는 더 심도있는 학습이 필요했습니다."

1990년 김녕일은 일본교토대학 바이러스연구소에 초빙되어 에이즈백신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두(牛痘)에서 추출한 바이러스에 에이즈 유전자를 넣어 만든 바이러스가 에이즈의 예방에 가능한가를 검증하는 프로젝트였다.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래 바이러스 유전자가 삽입되면 어떻게 고효율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시종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되고 있었다. 이에 앞서 일본 박사 2명이 이 난제에 걸려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녕일은 중국에서 1985년부터 새로운 백신 개발에 종사하면서 유전자와 관련한 각종 소프트웨어 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가 일본에 가서 공동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은 것도 실은 논문에 드러난 그의 이런 연구능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일본 연구소에서는 김녕일을 수석과학자로 초빙할 의향을 내놓았다. 연구소 소장과 동일한 수준의 노임, 저택 제공 등 '유혹적인' 대우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김녕일은 일언지하에 연구소의 제안을 거절한다. 한마디로 자가기 즐기는 연구대상에 집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프로젝트는 연구자의 주관의향과 상관없이 피동적으로 선정된 분야만 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김녕일은 이번 일본행을 계기로 또 한국 서울에서 에이즈백신 공동연구를 진행했지만, 최종적으로 군사의학과학원 군사수의연구소에 돌아온다.

본 방송국 기자 인터뷰를 받고 있는 김녕일 원사

수십년간의 과학연구 생활을 뒤돌아보면서 그는 과학에 대한 일가견을 이렇게 말한다.

"과학연구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학과가 교차된 시기에 아주 작은 변화가 쌓여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과학연구는 갈수록 여러 학과의 교차와 융합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녕일은 최근에도 생물, 화학, 유전공학, 분자물리학 등 여러 가지 학과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면서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학문연구 외에도 김녕일은 후학의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총 390명의 제자를 양성, 제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스승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제자들에게 과학에 대해 신중하고 증거에 입각한 진실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과학을 존중해야 합니다. 과학은 그 어떤 거짓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원사는 공식적인 정년퇴직이 70세이다. 김녕일은 나중에 퇴직하게 되면 학문에서 대를 이을 더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한 인격체가 완성되고 승격되려면 꼭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 연구'라는 이 '바이러스'는 그에게 있어서 어떤 '백신'도 억제할 수 없는 '전염병'으로 되고 있는 듯 했다.

글:  권향화 기자

중국국제방송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멀리 연변에서 찾아온 취재에 응하기 위해 복단대학 김재근(45세) 교수는 강소성 해문시에서 회의를 끝내자마자 부랴부랴 2시간 넘게 달려서 약속장소인 상해 민항구에 도착했다. 8월 22일 그날은 금요일이였고 우리는 편하게 커피숍에 마주앉아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전에 복단대학 공회 부주석으로 소개받았기에...
  • 2015-09-18
  • [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어른들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모든 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판단을 내리라는 말이다. 지도자의 꽃이라는 감독직도, 팀과 상황을 봐가며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로 바꿀 수 있겠다. 지난 시즌 중국 2부리그 최하위에 머물고도 다른 구단들의 징계 덕분에 잔류한 팀을 맡는 것...
  • 2015-09-16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흔 기자 = 남들이 부러워하는 철밥통 직장도 박차고 한참 젊음을 누리는 나이에 창업길을 선택하여 '기업의 량심이 곧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량심'이라는 신조를 굳건히 지켜와 '형서설(邢瑞雪)'이라는 자신의 브랜드에 회사는 물론 재배기지와 공장까지 모두 소유하고 재배부터 생...
  • 2015-09-16
  • (흑룡강신문=하얼빈) 최광엽 윤선미 기자=세계 빙설대왕 조선족 김송호씨가 13일 저녁 CCTV '불가능에 도전'프로그램에 참가해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을 다시 경신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에서 김송호씨는 2.5미터 높이의 유리통에 들어갔으며 관계자들은 얼음을 그의 목부위까지 채워 넣었다.얼굴...
  • 2015-09-15
  • 료녕신문소식 9월10일에 있은 영구시 제15기인대제18차상무회의에서윤성복씨91961년, 조선족)가 9월 10일 영구시 부시장에 임명되였다.    윤성복씨는 대석교시 태생으로 1979년 참군, 제대한후 대석교시민정국 간부로 활약하면서 석사과정(MBA)을 마쳤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그는 선후로 공청단대석교...
  • 2015-09-14
  • "방송 분야 확대 등 글로벌화 통해 한중 관계 발전에 앞장서겠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동북 3성에 모여 살던 조선족이 중국의 개혁 개방과 한·중 수교의 영향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조선족 언론도 글로벌화해야 합니다." 10일 연합뉴스와 콘텐츠 교류, 공동 취재, 기자 연수...
  • 2015-09-11
  • [연변을 클릭하는 사람들 -17] 기업의 법률관련문제 진맥…사전예방 중요 ‘길림권철변호사사무소’ 권철주임과의 인터뷰   “사람이 오래 살려면 건강해야 하듯 기업도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분규발생을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룡정시법원 맞은편에 위치해있는 ‘길림권철...
  • 2015-09-09
  •   칭다오통상완구유한공사 김창복 동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장학규 특약기자=김창복 동사장은 가장 일찍 칭다오에 투자한 한국기업인중 한사람이다.   일찍 1993년에 칭다오시 청양구 시푸진에 칭다오통상완구유한공사를 설립하고 봉제 완구를 생산하기 시작해서부터 노동밀집형 기업으로서 노동력 자원의...
  • 2015-09-08
  • [일류학생3]꿈과 함께 아버지의 유지를 이룩한 녀성 일본 려행호텔전문학교 언어학 전임강사 방정화와 만남 지난 6월 21일 《예쁜 녀자되기》클럽에서 조직한 《와인》주제모임에서 일본의 모려행호텔전문 방정화원장  학교 언어학전임(專任)강사 방정화(42)를 만났다.   《예쁜 녀자되기》 클럽은 방정화가 13년...
  • 2015-09-08
  • 해외 한식당협의체 수장에 뽑힌 김순옥 씨 "세계인의 밥상에 한식 오르도록 세계화에 앞장서겠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한식 세계화의 첨병은 전 세계에서 현지인을 직접 고객으로 맞는 한식당입니다. 한식당을 즐겨 찾는 것을 넘어서 현지인 식탁에 한식이 오를 수 있도록 음식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겠습니...
  • 2015-09-01
‹처음  이전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