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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剛, 20년 붓을 따라 간남자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5일 08시56분    조회:6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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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강
[이미옥 탐방]李剛, 20년 붓을 따라 간남자의 이야기

 
▲ 리강 화백의 작품(위), 혜화동 자신의 화실에서유마불이도(維摩不二圖) 작품을 보여주는 이강 화백(아래).
[서울=동북아신문]3월의 혜화동 골목은 이미 계절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는 젊은이들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성균관 거리는 연신 그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젊은이 못지않은 산뜻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싱싱한 봄기운을 품은 한 남자가 있다.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에서는 최고의 선배로 불리며, 20년 동안 지치지 않는 뚝심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공필화 전문가, 이강(李剛) 화백이다. 이강 선생님은 한국에 유학 온 15년 동안, 2003년 한국-평택 국제아트 페스티벌 초대작가, 2009 광화문 국제아트 페스티벌 초대작가를 비롯하여 국제전과 단체전에 여러 번 참여하였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림책 30여 권을 출판하고 개인전을 3회 여는 등 현장에서 잔뼈를 굳혀 오신 분이다.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공필화 전문가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온전하게 구축해 왔다.

 1968, 이강 선생님은 부모님 두 분 모두 연변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엘리트 집안의 독자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받고 자란 그는 어렸을 적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들켜서 아버지한테 맞은 기억이 유일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특별히 아쉬울 것 없는 청소년기는 중국어와 역사, 철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왕성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나간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풍족함 속에서도 무언가 계속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유 없이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20년 예술가의 길로 이끈 첫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위아래 동네인 왕청, 도문 등을 가보긴 했으나 정작 혼자 길을 떠난 것은 대학에 입학한 19살 여름이었다. 입학이 확인되고 풋사랑의 설렘을 안은 채, 처음으로 온전히 고향을 벗어나 북경이라는대도시에 첫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그 두근거리는 걸음을 시작으로 그의 20대는 더욱 팽창하고 확장되어 갔다.
 
행복은 늘 짧게 표현된다. 행복할 때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는 대학교에서 같은 전공을 하는 미모의 여인을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여 예쁜 딸을 낳았고 연변대학에서는 7년 교수 경력도 쌓았다. 행복한 시간은 빠른 속도로 그의 삶을 통과해 갔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 가운데서도 알수 없는 불안과 열망이 그를 추동(推動)했다. 2001, 한국이라는 나라, 고국으로 유학을 결심한 것은 순전히 그의 선택이었다.
 
   
 
 
# loneliness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겪은 절대 고독의 시간은 그의 삼십 여년 삶을 뒤흔드는 강열한 내·외적 체험이었다. 단순히 정신적인 고독만이 아니었다. 서울대에서 시작된 유학생활은 첫 시작부터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였다. 풍족한 환경에서 여태껏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그에게 닥쳐온 생활고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지원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등록금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유학길에 올랐다. 가장으로서 누군가에게 손 내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www.kcn21.com 당시 조선족사회를 사로잡은 코리안 드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가 한국에서 당연히 잘 벌 거라 생각했다
 
그 시선의 격차 속에서 현실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차비를 아끼려고 먼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럼에도 딸애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전집을 거금 몇 십 만원을 주고 사 준 것은 치기 아닌 진지함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시절에 한 달 생활비에 가까운 거금을 들여 사준 로마 전 집을 딸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학(苦學)을 온 몸으로 겪어 내면서도 정작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또 다른 데 있었다. 고국의 최고 학부인 서울대에서 배우는 것들이 그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예술세계와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궤도가 다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맞춰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는 서울대가 다 옳은 것이 아니며 자신 또한 그것을 무조건 쫓아가야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 미술계는 전통이라는 거대한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으며 동시에 현대에 대한 강박 관념이 너무 강했고 서울대는 그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해 왔기 때문이다. 그 또한 환골탈퇴하려고 했던 처음의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강렬하게 자신의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고독과 가난의 정점에서 오히려 전환점을 얻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 직접 그림을 그려 보이는 리강 화백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2004년 석사학위를 받으며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최고의 학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이, 고향의 초로(初老) 교수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더 적었기 때문이다. 생활고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알바로 시작한 일러스트 작업은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던 그에게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못지않은 풍성한 일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서울대에서는 매듭을 지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은 계속 남아있던 터라 그는 만학도로서 성균관대 예술철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 art
이강 선생님은 동양화 중에서도 공필화를 전공했다. 고대 회화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공필 기법은 중국의 가장 전통적인 기법으로 사실주의 채색화시대에 주를 이룬다. 공이라 함은 공교(工巧)하다, 공묘(工妙)하다란 의미로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공들여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대상을 외형상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연상 작용을 통해 그 대상과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정확히 묘사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자연과의 교류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종류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때문에 이강 선생님도 그림을 그릴 때 디테일과 전체를 같이 다룬다. 주름 하나, 머리 한 올도 놓치지 않는가 하면 눈동자 하나를 핍진하게 묘사하기 위해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다. 섬세함과 조화를 함께 생각하면서 공력을 들이고 긴 시간을 호흡해야 한다.
 
또한 동양화는 실물의 묘사보다 그림의 정신에 무게를 둔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필화사의화든 중국회화는 서양회화와는 달리 사실적인 묘사보다 인물의 내면과 정신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이른바 신운(神韻)’이라 하여 운치와 이미지를 중시하여 그림 속에 뜻을 담아내는데 공력을 기울인 것이다. 회화의 최고 경지는 경물[]을 묘사함으로써 정신[]을 드러내거나, 경물과 정신을 융합시키는 경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강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예술이란 도()와 다름없다. 예술은 도이고 결국 인생이다.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할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이 자기화되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2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려온 대가이지만 아직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없다고 한다. 마음에 들도록 계속 그리는 것, 영원한 만족을 모르는 것이 그가 오늘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 한국조형학회 국제미술전에서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이강 화백.
# vision
스승의 어깨 너머로 배운 청마 그림으로 지난 한 해, 각종 전시와 그림 시연을 통해 동양화의 매력을 선보였던 이강 선생님은 명실공히 한국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동양화 작가이다. 조선족 출신으로, 한국을 무대로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온 그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한국에는 아직 공필화 기법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기법을 체계화하여 가르칠 만한 마땅한 교재도 없기 때문이다. 수년간 혜화동에서 공필화 강의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강 선생님은 올해 드디어 세 권의 기법 책을 출간하려고 한다. 두 권은 화서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인물에 관한 것이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밤에 잠을 설칠 때도 많지만 자신의 예술인생을 생각하면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기도 하는 천생(千生) 예술가이다.
 
늘 유쾌하고 호방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도 자아와 고뇌하는 불멸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하고 침잠(沈潛)하면서도 그는 사회적 공동체와 타인과의 공생(共生)적 삶에 대한 고민을 멈추어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 삶의 정수는 늘 타인과의 무수한 접점 속에서 생겨나는 상호 교감적인 것으로 그의 예술 또한 그 분화구 속에서 피어나는 감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계간지 '맥( )' 3호/
 
   
▲ 이미옥 / 저자


    [이미옥 프로필]
 
1983년 길림성 화룡시에서 출생. 17살에 한국으로 유학을 와 거창고등학교,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거쳐 동 대학원 국문학 석·박사를 수료.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 부장.  수필, 평론 등 다수.  
현재 수원과학대학교 강사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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