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동포 성공시대> ② 양꼬치로 대박 터뜨린 서용규 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27일 08시03분    조회:110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서용규
직영점 6개, 가맹점 15개 '미각' 대표…직영점만 연 매출 60억원
"현지화 메뉴로 한국인 입맛 공략 성공, 3년 내 200호점 낼 것"
한중창업경영협회 회장…창업 노하우·경험 전수하며 '성공 나눔'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TV 예능프로에 출연한 배우가 "양꼬치엔 칭따오"라고 한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양꼬치 열풍이 뜨겁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동포(조선족)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양꼬치는 초창기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안산, 수원 등 조선족 집단 거주지에서만 성행하다 지금은 어엿한 '전국구 음식'으로 부상했다.

20∼30대가 즐겨 찾는 양꼬치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족 기업가가 있다. 서울과 수도권 등에 6개 직영점과 15개 가맹점을 가진 '미각'의 서용규(42) 대표가 주인공이다.

24일 서울 종로 피아노 거리의 직영점에서 만난 서 대표는 '미각'의 인기 비결을 "한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현지화한 메뉴를 개발한 덕분"으로 돌렸다.

직영점에서만 연 매출 60억 원을 올리고 있다는 그는 "직영·가맹점 모두 매장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연 매출이 평균 7억 원 이상으로 국내 양꼬치 점 중에서 평당 매출이 제일 높다"고 자부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쑤이화(綏化)시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후 톈진에 있는 한국 무선호출기 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통역과 기지국 AS를 담당하며 모은 돈으로 1998년 하얼빈(哈爾濱)시에서 한식당을 개업했다.

당시 조선족의 월급이 평균 150달러인 상황에서 무려 750달러의 월급을 받는데 왜 그만두느냐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어 망설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고교 시절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던 경험을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얼빈체육대 앞에 식당을 차렸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점심때는 손님이 줄서기도 했다.

그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경영하려니 눈코 뜰새 없이 바빴지만, 손님들의 '맛있다'는 칭찬에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식당에 주류를 납품하는 폭력조직이 무리한 요구를 해와 시비와 함께 싸움이 벌어지면서 더는 현지에서 식당업을 지속하기 힘들게 됐다. 신변에 위협마저 느낀 서 씨는 사업을 제대로 정리도 못 한 채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99년 말 서울에 도착했을 때 몸에 지닌 것은 달랑 여권뿐이었다. 익숙한 일에서부터 시작해보자며 중식당에 취직해 요리를 배웠다. 요리 자격증을 취득해 2001년 고덕동에 배달전문 중화요리 전문점을 차렸고, 3년 뒤에는 대치동에 홀을 갖춘 전문 요리점을 냈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되던 2006년에 또다시 사업을 접어야 했다. 불법체류자였는데 합법체류로 신분을 바꿀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방문 취업비자(H2) 제도를 시행하면서 '불법체류자 양성을 위한 자진귀국' 제도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에 비자 만기에도 남아 있었죠. 그러다 보니 가게 명의도 차명으로 해야 했고 늘 단속에 가슴 졸여야 했습니다. 자진 귀국하면 나중에 H2 비자로 재입국할 수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보따리를 쌌습니다."

2008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사업계획을 세워 2009년 노량진에 매운 짜장·짬뽕을 주요리로 내세운 중화요리점을 냈다. 4번째 창업이라서 자신이 있었고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해보자는 의욕도 넘쳤다.

마침 매운맛이 인기를 끌기 시작할 때여서 1년 만에 월 매출 4천만 원을 넘어섰다. 가게를 더 키우려면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운 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그때 만난 것이 양꼬치였다.

"2010년 고향친구 모임을 위해 동대문에 있는 양꼬치 점에 갔는데 깜짝 놀랐죠. 월 매출이 1억 원이라는데 손님 중에 조선족이 거의 없더군요. 양고기는 한국에서는 익숙한 음식이 아니어서 중국 출신자만 즐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죠."

서 대표는 양꼬치와 중화요리를 접목한 가게를 내보자며 신중히 준비했다. 승부처는 차별화라고 생각했다. 우선 생후 6개월 전후로 도축해 육질이 부드러운 호주산 양고기를 들여왔고,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밑간에서부터 구운 후 찍어 먹는 소스 등 전부 새로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미각'이다. 첫 점포는 조선족 거리가 아닌 고려대 앞 먹자골목에 차렸다.

"한국인을 주 고객으로 잡고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을 없애면서 고소함과 단맛을 내세웠죠. 한국의 젊은 층이 몰리는 곳에서 정면대결해야 크게 키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매장은 고객의 99%가 한국인입니다. 덕분에 고대 앞의 1∼2호점은 연 매출 합계 25억 원을 올리는 먹자골목의 명물이 됐습니다."

이후 종로와 판교, 안양 범계역 주변에도 직영점을 냈다. 15개 가맹점 사장은 모두 서 대표 친인척과 지인이다. 가맹비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메뉴도 무료로 전수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가게를 차릴 때마다 지인들이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선뜻 돈을 빌려준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죠. 나만 챙기며 살자는 생각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경험에서 배웠거든요. 성공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에 자신이 붙은 그는 최근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려고 '미각 푸드'로 상호 등록을 하고 사무실과 교육장을 마련했다. 자신이 50% 비용을 냈고 가맹점을 하는 친구들 6명이 동참했다. 다음 달에는 직영점 1개와 가맹점 2개를 추가로 오픈한다.

"부산 등 지방에도 가맹점을 냈는데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전국으로 확대해 3년 안에 200호점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소비자 입맛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생각에 지금도 틈나는 대로 주방에 들어가 메뉴를 개발합니다."

서 대표는 지난 4월 한중창업경영협회의 2대 회장에 올랐다. 한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조선족들이 모여 2014년에 설립한 협회는 후배들이 창업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취임 첫 사업으로 9월부터 창업 예비스쿨을 열어 '성공 나눔'에 나설 계획이다.

재한조선족이 과거와 달리 한국에 정주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하는 서 대표는 2세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게 하려면 1세대가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한국 사회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예전과 달리 가족이 함께 들어와 사는 조선족이 늘고 있습니다. 저와 친인척도 마찬가지라서 이젠 명절이 돌아와도 외롭지 않습니다. 여기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적응 노력과 봉사활동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주변 인식도 바뀔 겁니다."

서 대표는 틈나는 대로 요리사들과 함께 신 메뉴 개발에 몰두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현지인 말에 귀 기울여야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어"  "중국에서는 법보다 친구가 중요할 정도로 신용관계가 사업의 핵심요소입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한국인끼리 모여 있어서는 중국 사회 깊숙이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허영수(53)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일본 지바(千葉)지회 회장은 17일 해외 시장에 진출하...
  • 2013-06-18
  • 중경에 있을 때의 청년시절 리화림(좌)과 로년의 리화림 리화림, 그녀의 본명은 리춘실, 1905년 1월 6일 조선 평양시 경창리에서 태여났다.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원학교에 다닐무렵, 평양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력사문학연구회에 들어가 사회주의사상을 익혔다. 열네살 때 《3.1》운동에 참가했으며 1927년...
  • 2013-06-17
  • 특별기획- 연변을 빛낸 조선족무역인 (6) 가비양 중국총판 김향란사장의 이야기   가비양 중국총판 김향란사장 가비양커피 중국총판 김향란사장이 6월말 상해에 제3호점을 오픈한다.기자는 일전에 가비양커피 중국총판 첫 본점을 시작으로 짧디짧은 2년사이에 연길과 훈춘 등 곳에 각각 분점 하나와 상해 1,2호점 등 ...
  • 2013-06-17
  • -봉산전통장체험관 김봉산 허봉숙 부부의 창업일화 모아산동남쪽기슭에 자리잡은 봉산전통장체험관(锋山朝鲜族传统酱体验馆)은 《6.1》아동절을 맞으면서 큰잔치라도 치르듯 들썽하였다. 학부모들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찾아온 어린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메주를 만드느라 야단법석이고들있었다. 손매돌을 돌리...
  • 2013-06-16
  • 한국 영문월간 잡지사 임덕규회장 인터뷰 임덕규 지난 4월 26일 필자는 한국 영문월간 (디플로머시)잡지사 임덕규회장을 인터뷰했다. 올해 79세인 임덕규회장은 역시 4년 전에 필자가 만났을 때의 건강한 그 모습이였고 예지로 넘친 그의 실눈은 이어지는 웃음으로 눈을 떴는지 감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번도 임회...
  • 2013-06-14
  • 길림성정진광고유한회사 최정학 리사장             15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전국 160여개 도시에 분회사를 세운 한 기업가가 있습니다. 올해 59살인 최정학은 안도현에서 공무원으로 있던중 1995년에 국가민족사업위원회의 초청으로 미국시찰을 가게 됐습니다. 당시 광고회사에서 견습하...
  • 2013-06-13
  • 아리랑방송서 '바로 쓰는 우리말' 프로그램 제작  "청취자 여러분,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본따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한 표현은 '본따다'가 아니라 '본뜨다'입니다." 중국 옌지(延吉)인민방송국의 우리말 라디오 방송 채널인 '아리랑방송&#...
  • 2013-06-13
  • -연변기림병원 침구골과재활센터 리철호주임의 일가견 《뇌성마비어린이들을 구하는것은 의사로서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입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뇌성마비어린이들을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하는것입니다.》 연변기림병원(延边祺林医院)침구골과재활센터 리철호주임이 기자에게 하는 말이다. 현재 연변기림병원 8층 ...
  • 2013-06-13
  • 류건봉(1865-1952, 산동성 안구현 사람)은 청나라가 1909년 12월에 안도에 지방행정기구인 현을 세운 후에 임명한 제1임 지사--오늘날의 현장이다. 류건봉기념비는 안도현 명월구에서 장백산으로 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맞은 켠 송전탑 밑으로 뻗은 도로가 안도 외곽에서 직접 장백산으로 통하는 관광도로이다.   ...
  • 2013-06-13
  • 한국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 정미화단장의 남다른 중국정 중한문화교류음악회서 25현가야금연주를 하고있는 정미화단장. 중국의 조선족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국연예인이 있다. 바로 한국 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 정미화단장이다. 정미화단장은 《로사가야금앙상블예술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지원을 받...
  • 2013-06-1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