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성이야기 31] 인생을 막걸리와 함께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8월1일 09시25분    조회:90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안정금

안정금아줌마 “애령막걸리”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해볼 타산 가져

 

막걸리항아리를 여는 순간의 짜릿함에 승부를 거는 안씨아줌마.

며칠전, 모아산기슭에 자리잡은 중국조선족민속원에 전시매장을 차린 50대의 안씨아줌마는 손수 빚은 막걸리를 차려놓고 고객들에게 맛부터 보라며 팔고있었다. 이때 80대의 웬 할머니 한분이 반색을 하며 다가섰다.

“아줌마, 오명촌의 안학만의 딸이 아니오? ” 녜- 그런데요...어마나 뒤집할머니!” 두사람은 반가움에 두손을 맞잡고 고향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술을 반가와하고 막걸리도 잘 빚더니 딸이 또 그 막걸리를 만들고있구만.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에게 술도 많이 대접했지…”

안씨아줌마는 지금도 아버지를 알아주고 아버지를 외우는이가 있다는것이 그토록 고마울수가 없었다. “그래요. 저 지금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막걸리를 빚고있습니다. 어서 맛보세요.” 안씨아줌마는 대뜸 큰잔에 막걸리를 넘쳐나게 부어올렸다.

“야— 진짜 옛날 맛이 살아있네.” 할머니는 입맛을 다시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라소니” 딸의 도전

안씨아줌마네는 워낙 화룡현 토산진 오명촌에 살고있었다. 아버지는 오명탄광 로동자였는데 쩍하면 막걸리를 빚어놓고 온 동네사람들을 불러들여 술판을 벌리군 하였다. 그것이 막장로동의 과로를 푸는 아버지의 유일한 락이였는지는 모르나 쌀이 귀한 세월에 다섯남매를 거느린 대가정에서 때거리도 풍족치 못한 형편에 량곡으로 막걸리를 빚어 없앤다는것은 어머니로서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다투었고 자식들도 아버지께서 막걸리를 빚는다거나 술판을 벌리는것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밥상에서 식구들과 마주하고 앉아서도 자식들에게 쩍하면 먹걸리기술을 배우라고 권유하였다. 그때마다 오빠네는 들던 밥술을 덜렁 내려놓고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군 했다.

이때면 여라문살나는 셋째딸 정금이가 자기가 배우겠다고 자진해나섰다. 나름대로 호기심에서였겠지만 아버지는 무슨 일에나 물덤벙술덤벙 덤벼드는 딸을 못 마땅해하며 “시라소니 같은 계집애가 뭘 배운다고.” 하면서 뒤로 밀어놓군 했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권유를 귀등으로 듣는 자식들을 제쳐놓고 고집스레 달라붙는 정금이가 “가문의 비법”을 전수받게 되였다.

“잘 배워두었다가 내가 맥이 없어 더는 막걸리를 빚지 못할 때 네가 만들어 실컷 마실수 있게 해주렴. 알겟니? ” 정금이는 좋아라고 손벽치며 아버지앞에서 장담을 하였다. “그럼요. 제가 꼭 맛갈스런 막걸리를 빚어 아버지께 대접하겠습니다. 두고보세요!”

어린 시절부터 어깨너머로 아버지의 막걸리기술을 눈에 익혀온 그였지만 제대로 된 막걸리를 빚기 위해서는 정성스럽게 소책자에 적고 또 적으며 일일이 익혀나갔다. 때론 아버지 몰래 혼자 막걸리를 빚어서는 쨩-한 맛과 깊고 향긋한 맛이 감도는 막걸리를 아버지앞에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때면 아버지는 “음, 그 까다로운 기술을 네가 정말 다 배워냈구나! 우리 정금이 참말 장하다.”라고 기뻐하시며 대견스럽게 딸을 바라보시군 하였다. 그러나 그런 날도 길지는 않았다. 정금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얼마후 멀리 북경으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아버지는 그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정금이는 시집을 간후 딸애를 낳아키우면서 남편과 함께 크고작은 장사도, 무역업도 벌리며 열심히 살아가고있었다. 그러던 하루 아버지께서 위태롭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고향집으로 뛰여왔다. 정금이는 운명을 앞둔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불효를 참회하며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는 힘겹게 딸의 손을 잡고 띄염띄염 말씀을 하셨다. “너 막걸리 하는걸 잊지는 않았겠지? ”, "그럼요. 그때 적어놓은 책자도 고이 간직하고있는데요.", "그것이 언젠가는 꼭 너희들 삶에 보탬이 되는 날이 올거다. 앞으로 자식들에게도 잘 가르치면서 대를 이어 전해가거라. 이 기술은 너희 증조할머니께서 직접 나한테 가르쳐준거란다…. 증조할머니 이름은 박애령… ” 아버지는 뒤말을 채 잇지 못한채 손맥을 놓고말았다.

다시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으며 아버지를 부르고 또 불러도 아버지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것이 2009년의 일이였다.

다시 “애령막걸리”를 빚으며

안씨아줌마는 2011년에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연변으로 돌아왔다. 귀여운 외손자를 한품에 안고 유심히 들여다보다말고 불현듯 “대를 이어 전해가거라”고 당부하시던 아버지의 유언이 가슴 뭉클하게 안겨왔다. 안씨아줌마는 아버지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앞섰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토록 즐겨마시던 막걸리도 한번 못해드리고 아버지한테 한 약속도 지켜드리지 못하고있는것이 죄송스럽기 그지없었다.

안씨아줌마 초가집마루에 엿싹이며 누룩을 널어 말리면서 알알이 정선하고있다.

당시 연변에서는 또 한창 민속촌바람이 불면서 민간의 각종 민속 기물과 기능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민속인들은 문화재로 떠받들리고있었다.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이런 날이 올것을 미리 내다보고 계신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이제나마 아버지께 한 약속을 지켜드리고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자신은 모든것을 접어놓고 막걸리를 만들겠다는 의향을 털어놓았다. 자식들은 “죽은 사람앞에 약속을 지킨다"는것이 그다지 달통되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작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막걸리작업에 달라붙었으나 시장가에는 제대로 된 누룩도 엿싹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만큼 옛것이 사라지고있음을 실감하며 손수 엿싹을 틔워 말린다 누룩을 잡는다 하며 정성스레 막걸리를 빚었다. 때가 되여 항아리덮개를 열 때면 긴장으로 가슴이 들뛰기도 하였다.

혀끝이 그 맛에 접하는 순간 어쩔수 없이 오만상이 찌프러졌다. 기대했던 옛날 그 맛이 아니였다. 미련없이 한항아리 두항아리 다 쏟아버리고 다시 또다시 버린것이 30항아리도 더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혀끝이 옛날 그 맛을 느끼는 순간, 그는 마치 로케트 발사에라도 성공한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시 막걸리를 빚은지 6년해를 잡으면서 저는 지금까지 하루 4시간이상 자본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막걸리 균종의 변화는 까다로와 마치 갓난애를 돌보듯 보살펴야 합니다.” 안씨는 늘 피발이 선 눈빛으로 매장에 나선다.

“증조할머니 이름을 내건 우리 가문의 대표작인데요. 절대로 소홀히 할수가 없습니다. 증조할머니께서는 왜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한테는 이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꼭 저희 아버지에게만 전수해주셨는지 그 리유를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왜 또 저희들에게 증조할머니 이름까지 밝혀주셨는지 역시 영문을 알수 없으나 막상 막걸리에 상표를 달자고 보니 자연스럽게 증조할머니의 이름자가 떠올라 그대로 '애령막걸리'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안씨아줌마는 “가문의 영광”을 지켜선 녀주인이였다. “애령막걸리”의 순도를 지키고 그에 기초하여 딸기며 뽕을 넣어 야생의 순맛 종류를 개발하기에 또 얼마나 많은 실면과 실패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드디여 바라보기에만도 뿌듯한 야생의 맛과 향과 색이 어우러진 막걸리를 완성해내였다.

이젠 딸과 사위도 “애령막걸리”의 원맛을 잘 살려내고있고 또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수요자가 늘고있지만 상품으로 류통하기에는 생산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민속수공상품으로서는 우선 그 규모가 요구조건에 부합될수 없어 크게 우려하고있었다.

실상 막걸리는 우리 조선족 집집들에서 백여년을 빚어내려온 술로서 국가에서는 민속제품생산을 고무하는 차원으로 생산허가증 발급에 푸른등을 켜주어야 하지 않겠냐며 안씨는 기대 반 원망 반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이제 막걸리기술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해볼 타산도 가져본다.

“전 여태까지 전통이 무엇인지 문화유산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딸로 태여나 그 유언만이라도 지켜드리기 위해 막걸리를 빚다보니 우리 집 같은 평민가정에도 지키고 전해가야 할 문화자원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안씨는 자신의 깨달음을 구김없이 터놓았다. 그는 결국 사회문화를 말하고있었던것이다.

길림신문 김청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흑룡강신문=하얼빈)정봉길 기자 = 중국에서 어린시절부터 한족(汉族) 초등학교를 다니고 한족 고등학교를 졸업한 가운데, 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다닌 후 현재는 한국의 명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재외동포재단초청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는 조선족 유학생이 있다. 주인공은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1학...
  • 2014-02-21
  • 장독속에서 장이 뭉근히 숙성된다. 발효냄새 모락모락 나는 이 장독들옆에서 송편을 빚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도모르게  고향집 할머니, 어머니 모습이  그리워진다...  구수하게 장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한 이 50평방메터 남짓한 가게의 주인장인 리미선(52살)씨, 남들 모두 부러워 하는 공무원으로...
  • 2014-02-19
  • 조선족을 위한 정인갑교수의 독특한 일가견 정인갑프로필 1947년 8월 료녕성 무순시에서 출생. 1969년-1975년 군 복무. 1976.10-1978,ㅣ “연변문예”(현 연변문학)편집. 1982,1 북경대학 중문학부 졸업. 1982.1-2007.8 중화서국에서 근무, 편집부 주임.(정년퇴직) 현재 청화대학 중문학부 객좌교수, 한국 황하문...
  • 2014-02-19
  • —흑룡강성 목단강시 금약그룹 김춘학회장 흑룡강성 인대회의에 참석한 목단강시 금약그룹 김춘학회장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인류는 꿈이 있기에 위대하고 인간은 분투로 하여 멋집니다.》 지난 9월 23일, 한국에서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국립 전남대 경영대학 강...
  • 2014-02-18
  •   사무실에서 자료를 정리하고있는 리형도농업전문가 2012년말에 퇴직한 흑룡강성농업기술보급소 리형도(61)부소장은 장장 40년동안 대지의 풍작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온 농업전문가이다. 그는 벼농사의 새 기술을 끊임없이 보급시켜 지난세기 70년대 흑룡강성의 평균 무당 생산량을 300킬로그람에서 지금의 600킬로그...
  • 2014-02-18
  • -조선족 선박기업가 정성우 인터뷰   (정성우 대표) 한달에 97원을 받던 직장인에서 연 매출이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선박회사 대표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바로 베이징대우시대경제무역회사 정성우 대표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팩스기 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정성우 대표, 지금은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전세계 시장...
  • 2014-02-17
  • —중국 첫 조선족상장기업 랑시주식유한회사 신동일리사장     랑시주식유한회사 신동일리사장/(자료사진) 북경시 인대대표, 중국복장협회 부회장, 북경방직업종협회 부회장, 중국청년기업가협회 리사, 북경청년기업가협회 상무리사, 잡지《패션북경》 부리사...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하나도 이루기 힘든...
  • 2014-02-17
  • 동포산악연맹 박옥선 위원장 중국 흑룡강성 가목사에서 출생한 박옥선씨. 그는 중국에서 기자와 같은 교사출신이고 하해 바람에 의해 상업의 바다에 뛰어든 경력과 그 뒤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하면서 동포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인터뷰 대상자로 만나 무척 반가웠다. 흑룡강성 사범대학을 나와 탕...
  • 2014-02-07
  • 특별기획- 감동조선족걸출인물 (1)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65) 광주모드모아그룹 리성일회장 리성일(李成日) 프로필: 1956년 길림성 왕청현 하마탕향 출생 1972년 길림성 송원시 전고르로스3중 졸업, 선풍촌에서 농사일, 유전일 등 종사 1975년 길림성 영길현 이도소학교 교사 1977년 길림성 교하탄광학교(현...
  • 2014-02-05
  •  베이징신홍광고유한회사 이춘일 사장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은 언제나 스스로 부딛혀 경험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더 큰 영광을 안겨준다"는 도리를 깨닫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베이징신홍(新弘)광고유한회사 이춘일(李春日) 사장이다...
  • 2014-02-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