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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실내악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9월6일 16시52분    조회:7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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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약룡


'국혼(國魂)이 부르는 국수(國粹)' 실내악단 창시자인 조선족 작곡가 약룡(躍龍)

2016년 4월19일 저녁, 수도 북경의 중국음악학원 국음당에는 황홀한 무대조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란한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내 최정상급의 클래식 뮤지선들이 실내악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유명 취관연주 예술가이며 '아시아 배소의 1인자'로 불리는 두총(杜聰) 국가 1급 연주자, 양소용(楊小勇) 국가 1급 배우, 국가 1급 배우인 왕정(王靜) 소프라노, 중국 10대 테너의 한 사람인 한봉(韓蓬)…

"모두 TV에서 볼 수 있던 유명인인데요. 어떻게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대요?" 장내의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물음이었다.

악단 창시자인 조선족 작곡가 약룡(躍龍)은 인터뷰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최고는 바뀌어도 최초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중국 실내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예술가들의 시도라고 할까요?"

약룡과 그의 유명한 '친구들'은 모두 실내악단 '국혼(國魂)이 부르는 국수(國粹)' 구성원이었다. 이 실내악단은 그 규모나 퀄리티 면에서 중국에서 선례로 꼽힌다고 한다.

실내악(Chamber music)은 최초 '가정식'음악의 형식으로 귀족의 객실에서 연주되던 음악으로 현재는 한 가지나 몇 가지 악기로 실내 등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가리킨다. 선진국에서는 실내음악교육과정의 필수전공으로 지정해 과정이수 및 졸업의 필수조건으로 삼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부수적 장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며 또 곡목이 적고 작품이 성숙되지 않아 큰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해 지은 예명인데요. '평지이기, 일약성룡(平地而起,一躍成龍)' 다시 말하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최고로 발돋음을 한다는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열창중인 왕정(좌)과 양소용(우)은  '국혼(國魂)이 부르는 국수(國粹)'  구성원이다.

 

첫 예명, 음악의 진수를 찾으라

기실 약룡의 본명은 채일석(蔡日錫), 호적에는 채동진(蔡東眞)으로 기입되어 있단다. 약룡이라는 예명을 갖기까지 이름이 일곱 번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 자체가 한 장의 오선지처럼 그의 다양한 음표의 성장기를 담고 있었다.

그가 음악의 전당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6살 꼬마의 부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사촌 형제들이 모두 손풍금(아코디언)을 배우고 있었는데요,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뚝심과 승벽이 대단한 이 연변 훈춘의 골목대장도 이때만큼은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을 뿐 뾰족한 수가 없었다. 농사소득이 전부인 농촌가정에 손풍금 한대의 가격은 웬만해서는 넘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어느 날인가 그의 앞에 불쑥 손풍금이 나타났다. 1050원이나 호가하는 앵무새표 96베이스 손풍금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이지만, 아들의 속마음을 알게 된 아버지가 무작정 쌀 수레를 시내로 몰고 갔던 것이다.

그 후 약룡은 6년간 손풍금을 배웠다. 그러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연변대학예술학원 부원장인 최순덕(崔順德) 등 은사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나중에는 북경에서 열린 전국 손풍금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또 그들의 소개로 작곡가 최삼명(崔三明)과 인연이 닿는다.

최삼명은 국가1급 작곡가로 선후로 연변가무단 창작편집실 주임, 예술위원회 부주임을 지냈던 연변의 명망 높은 예술가이다. 약룡은 최삼명을 스승으로 모시고 몇 년간 악리(樂理)와 선율 등 작곡의 기본지식을 전수 받았다.

채동진이라는 이름은 최삼명이 지어준 첫 예명이다. 음악 명인과의 만남은 약룡에게 변화를 가져왔고 또 그의 인생을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와중에 약룡은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듣는다. "국내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 운집한 곳이 중앙음악학원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한시바삐 거장들을 만나 음악의 전당으로 인도를 받고 싶었다. 막상 처음으로 인연이 닿은 것은 중앙음악학원이 아닌 상해음악학원이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상해음악학원 작곡학부 교원을 소개 받았던 것. 약룡은 전기밥솥과 누룽지, 음악 CD를 한데 꿍져메고 무작정 상해행 열차에 올랐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약룡에게는 뜻하지 않던 판정이 내렸다. 현재의 실력으로는 1년을 더 준비해도 상해음악학원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어 약룡은 중앙음악학원 작곡학부 학부장 당건평(唐建平) 교수의 문하에 들어가서 3개월간 전문교육과 훈련을 받지만 시험 결과는 낙방이었다. 오랫동안 작곡 훈련을 전문 받은 학생들과 벌어진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저는 당건평 교수님께 한두 달 후 다시 와서 배우겠다고 말했지요. 1년간 준비해 명년에는 꼭 중앙음악학원에 입학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약룡 자신과의 약속이자 맹세이기도 했다. 그 후의 1년은 하루하루가 불면불휴, 피와 땀으로 얽힌 이야기로 연속되었다. 약룡은 마침내 작곡학부 2001년 신입생으로 되어 최고의 예술전당인 중앙음악학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건평 교수(좌)를 모시고

 

얼굴 없는 작곡가의 '성장통'

약룡은 지도교사가 학생을 지목해 가르치는 교학형식에 따라 교수 학유아(郝維亞)의 제자로 되었다. 학유아의 러시아방문학자 계획이 잡히면서 또 국내 유명 작곡가인 두명심(杜鳴心)의 문하에 들어가 격주로 학유아와 두문중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두 교수는 서로 다른 작곡세계의 경지를 약룡에게 펼쳐주고 있었다.

학유아는 '천리마'를 알아본 '백락'이었다. 신입생 약룡을 지명해 직접 가르쳤고 또 약룡을 자택으로 불러 '동거'를 했다. 학유아는 한 작품을 완성하면 약룡에게 보여줬고 또 늘 약룡에게 주제를 주고 곡을 주문했다. 약룡은 곡을 완성할 때마다 학유아의 평가를 받았다. 비록 약룡의 이름은 작품에 실리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널리 전해졌다.

"저 친구는 무엇을 작곡하든지 음악이 그림처럼 한눈에 안겨 오는구먼."

그때 약룡은 작곡 작업에 몰두하면서 부스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이 때문에 이름대신 '부스벌레(棚蟲)'라고 불렸다. '명문겁(名門劫)', '팔백리 동정(東征)-나의 집' 등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와 드라마, 무용의 삽입곡은 바로 그가 만든 것이다. 와중에 그가 창작한 종합무대극 '연안보육원(延安保育院)'과'중국에 모택동이 나왔네'는 5~6년째 연간 150여차, 300여차 공연되는 호황을 누렸다.

시초에는 한 곡에 2천원의 작곡료를 받았던 얼굴 없는 이 작곡가에게는 어느덧 5만원을 호가하는 작곡료가 매겨져 있었다. 약룡은 이른바 '업계관행'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준재 작곡가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명의 작곡가가 오매불망 바라는 꿈은 따로 있었다.

"저는 장안거리를 지날 때마다 국가대극장에서 저의 작품이 공연되는 그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았습니다."

스승 학유아가 계속창작(续创)을 맡은 이탈리아 오페라 '투란도트(图兰朵)'는 국가대극장의 개원 후 공연된 첫 작품이었다. 스승과 함께 많은 작품작곡에 관여했던 약룡은 작품만큼은 스승을 따를 수 있다는 신심이 서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도 국가대극장의 무대에 올려보겠다는 오기를 가지는 것.

꿈은 가진 자가 이룬다. 2013년, 약룡의 현관음악 작품이 국가대극장 청년작곡가계획 쇼케이스목록에 편입돼 국가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한 봉우리 올라서면 그 앞에는 또 더 높은 봉우리가 나선다. 이때 약룡의 꿈도 더 큰 날개를 달고 있었다. 국가대극장의 소속 작곡가가 되고 싶었던 것. 이 꿈도 2년 후 현실로 되었다. 2015년 2월, 약룡은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 중국 최고예술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가대극장의 전문 소속 작곡가가 되었다.

드디어 약룡은 "중국 CCTV 제15차 전국 청년가수 TV콩쿠르"등 굵직굵직한 사회예술행사에서 작곡과 편곡을 맡는 등 준재 작곡가로 되어 음악의 전당에서 꿈의 날개를 한껏 펴고 있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결코 흔치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약룡은 그의 인고와 인내, 고독의 순간들은 의미 있고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떨칠 그 한순간을 위해서는 10년, 20년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룡의 '일상'들

 

'약룡과 그의 친구들'

"솔직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명성을 얻자면 선율 작곡에 종사하는 게 훨씬 빠르겠지요."

그러나 약룡이 먼저 선택한 것은 작곡이 아니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중국의 첫 고품격 실내악단을 창설할 구상을 익히고 있었다. 수준급의 예술가들을 모아 악단을 자체운영하면서 보다 많은 고품격의 중국 실내음악작품을 창작, 연출하려 했다. 공연을 통해 차세대 예술학도들이 전국의 유명 예술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예술대가들과 함께 무대에 설수 있는 전문화한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무대를 함께 만들 수 있는 수준급의 예술가들이 있어야 한다.

약룡은 십여 년간 북경에서 구축한 모든 인맥과 자원을 동원해 한명 또 한명의 예술가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악단가입을 설득했다. 하지만 상대는 모두 출연료가 어마어마한 국보급 예술가들로서 어려움은 애초부터 자초한 것이었다. 심지어 주변에는 젊은 사람이 망언을 한다고 손사래를 홰홰 치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가 정상에 서있는 음악대가와 대선배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진심 하나 뿐이었습니다."

음악대가들이 하나 둘 마음을 열고 악단 가입을 약속했다. 심지어 악단운영에 흔쾌히 사비를 털기도 했다. 약룡의 몸에서 보이는 예술 본연에 대한 추구와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약룡은 북경에 오기 전 인사차 다녀올 때 스승 최삼명이 거듭 부탁하던 말을 자주 머리에 떠올린다고 말한다.

"그날 선생님은 민족 작곡가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작품은 민족의 특색과 민족의 영혼이 담겨져 있다고 거듭 말씀하셨지요."

약룡은 그때는 잘 몰랐던 이 말의 함의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알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 그의 실내악단은 '56개 민족, 56개 음악회'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향후 3년간의 시간을 들여 조선족과 몽골족, 위구르족 등 음악적 대표성과 특점이 있는 10개 민족의 가장 우수한 음악을 개편, 창작하고 3-4개월에 한 번씩 도합 12세트의 계렬 실내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민요, 민가를 원유의 정화를 보류한 기초에서 실내악의 형식으로 탈바꿈 시킨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부호'가 선명한 중국의 실내음악작품들을 널리 보급할 타산이라는 것.

현재 '약룡과 그의 친구'들의 실내악단은 그 어떤 외부의 지원 없이 전적으로 예술가들의 사비로 운영된다. 시작단계에 있는 여느 악단과 마찬가지로 운영자금을 걱정하고 인지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최정상급의 예술가들을 멤버로 둔 악단 창시자 약룡의 압력도 적지 않다.

와중에 약룡은 예술가의 낭만이 묻어나는 꿈이 있다. 몇 년간의 노력을 거쳐 해외에서도 영향력 있는 수준급의 실내악단으로 거듭나며 또 그때면 자신은 작곡가 약룡으로 돌아가 국내 실내악 작품 창작에 몰입하고 싶다는 것.

"중국의 실내악이 발전했을 때 이를 위해 한패의 사람들이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했고 그들이 바로 '약룡과 그의 친구들'이었다고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약룡과 그의 친구들'-'국혼(國魂)이 부르는 국수(國粹)' 실내악단 구성원들

글/중국국제방송국 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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