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한조선족성공시대] (16) '여의도의 중국통' 박인금 애널리스트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0월4일 11시11분    조회:76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인금
한족 학교 다닌 조선족 3세, 언어장벽 딛고 서울대서 경제학 석사
중국어 학원강사 거쳐 증권계 입성, 고비 때마다 '포기 대신 끈기'
'차이나 데스크' 팀장으로 中시장 심층분석 "예상 적중때 성취감"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여의도의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증권맨들 사이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출신 애널리스트도 있다.

올해로 여의도 입성 6년 차인 박인금(33)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책임연구원.

그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딱히 계획한 것도 아닌데 한국에 와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여의도에서 일하게 됐다"면서 "지금 돌아보면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연구원은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조선족 3세로 태어났지만 한족 학교에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한국인이나 한국어를 거의 접하지 않고 컸다.

그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지린대(吉林大) 경영학과에 다니다 2004년 교환학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에 들어가 1년 동안 서울 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한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할머니의 나라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관심도 많아졌거든요. 첫 소감요? 물가가 무척 비싸더라고요.(웃음)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처음이라 힘들었죠. 한글이 글자가 아니라 그림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경영학과 수업을 따라가려고 따로 시간을 내 한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박 연구원은 교환학생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엘리트 코스'인 지린대 졸업장을 받고서는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다. 200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기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실제로 박 연구원은 당시 대학원 동기 중 유일한 조선족이어서 '나 홀로' 좌충우돌을 겪어야 했지만 고비가 닥칠 때마다 포기 대신 끈기를 택했다.

"실은 졸업을 3년 만에 했어요.(웃음) 논문 통과를 못 해서 한 학기 정도 늦었죠. 언어장벽이 너무 높았거든요.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고…. 고민 끝에 학교 게시판에 제 소개 글을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선뜻 스터디그룹에 넣어주겠다는 제안이었죠. 덕분에 선후배도 사귀고 한국 생활에 조금씩 적응했어요. 한국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꼈죠."

졸업 후에도 한국의 취업 문턱은 조선족인 그에게 한층 더 높게만 느껴졌다. 2010년 3월 석사학위를 받고 10여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은커녕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곳도 많았다. "언제까지 놀 수만은 없어서" 찾아간 곳이 서울 종로의 중국어 학원.

중국어 강사로 일하던 그에게 5달이 지나서야 전공을 살릴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10월 신영증권에 리서치어시스턴트(RA)로 입사해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한 첫발을 디뎠다.

"당시엔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가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폭발적 성장을 점치는 투자자들이 많았죠.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전략을 분석해 국내 투자자에게 알릴 애널리스트가 필요해졌고, 덕분에 저로서는 중국에서 온 경제학 석사라는 게 유리하게 작용했죠. 그렇게 시작한 여의도 생활이 벌써 6년이 됐네요."

새내기 RA의 하루는 녹록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고, 서툰 한국어로 보고서를 쓰느라 남몰래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한국 특유의 수직적 조직 문화도 낯설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없지 않았죠.(웃음)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한국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버티다 보니 RA를 거쳐 애널리스트로 승진했고, 이직도 두 번 했고…. 2012년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가정도 꾸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 모든 게 인연이었나보다' 싶어요."

박 연구원은 여의도 애널리스트 중에서 '중국통'으로 꼽힌다. 당연히 그의 눈과 귀는 온통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있다 사무실 컴퓨터로는 늘 중국 정부·기업 홈페이지, 중국어 포털사이트를 띄워놓고, 정기적으로 베이징·선전 등으로 출장도 다녀온다.

"중국 투자 전망을 보고서로 쓰려면 중국의 경제 정책부터 금리, 통화량, 환율, 제조업 지수 같은 거시 경제 지표까지 샅샅이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시장이라는 게 정치,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움직이거든요. 저도 중국에 있을 땐 '중앙경제공작회의'(중국 정부가 연말마다 개최하는 거시경제 정책 회의)가 뭔지 잘 몰랐는데, 정작 한국에 와서 아주 자세히 알게 됐죠.(웃음)"

그는 지난해 12월 중국 경제공작회의에서 다뤄질 내용을 미리 점친 보고서를 발표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보고서는 2016년 중국 정부가 '공급 과잉 업종', 즉 철강·석탄·시멘트 등에서 구조조정을 강화할 것이라는 한발 빠른 '점괘'를 내놓기도 했다.

"중국 투자 전망을 조금 미리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애널리스트로서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중국어가 모국어인 만큼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데 시간이 덜 걸리겠죠. 그렇다고 엄청나게 빠른 건 아니지만, 다만 한걸음이라도 앞서야겠다는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의도를 통틀어 조선족 출신 애널리스트는 박 연구원을 포함해 3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연구원이 증권맨에게 '꿈의 도시'인 홍콩이나 상하이로 옮기지 않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도 애널리스트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중국 시장은 2021년 완전 개방을 목표로 말 그대로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거든요. 복잡한 시장 흐름을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알릴 때, 제가 내놓은 예상이 적중했을 때 무엇보다도 큰 성취감을 얻죠. 한국에서 여전히 제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복을 타고난 그답게 최근엔 새로운 미션을 하나 맡았다. NH투자증권 내 중국 전담 리서치 조직인 '차이나 데스크'에서 팀장 역할이 주어진 것.

"중국인 또는 중국어에 능숙한 애널리스트가 7명 참가해 중국 시장과 기업을 심층 분석합니다. 중국의 선강퉁(深港通·선전과 홍콩 주식시장의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제도) 시행안이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개방 폭이 컸거든요. 앞으로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가속할 것이란 뜻이죠. 이에 대응해 중국 시장을 빠르게, 깊숙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팀장은 공식적인 직책은 아니고요, 회식 장소를 정하는 일을 주로 해요.(웃음)"

4살 아들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박 연구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야근할 게 좀 남았다"며 다시 16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여의도 빌딩 숲에는 꺼질 줄 모르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기계대학을 나오고 연변의 한 대기업에서 기계공정사로 중용받던 최금철(45세)씨, 상해리공대학 화공전업을 졸업하고 역시 연변늄업 화학공정사로 활약하던 김홍녀씨(42세) 부부가 성보청사의  2층57호매대에서 청바지장사를 한지 이미 만 3년철을 잡는다. 그동안 그들부부는 현대마케팅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 2007-07-17
  • 《바이올린 신동》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고있는 다섯살짜리 한인소녀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유경(5세, 미국명 엘리 최)양은 6월 28일 저녁 필라델피아 《만 뮤직쎈터》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앞서 《현악기 국제음악페스티벌》 입상자자격으로 바이올린을 연주...
  • 2007-07-16
  • 장원수선생은 룡정시룡정중학교 체육교원이다. 그는 국가급 심판원이며 길림성 《특장전시 10대 최우수교원》이다. 꾸준한 학습 고심한 연구 장원수교원은 다년간 축구코치 사업을 맡아하면서 《소년축구훈련》, 《과학화축구훈련》 등 잡지들을 꾸준히 학습하고 축구훈련지도에 유익한 VCD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연구하면서...
  • 2007-07-12
  • 해빛찬연한 지난 6월29일 오전, 기자는 주청도 대한민국 총령사관 김선흥총령사를 찾았다. 제남으로 향발해야 하는 와중에도 김선흥총령사는 한시간을 내여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자한 얼굴에는 후더운 미소가 흘렀고 길게 뻗은 덩실한 코마루와 날카로운 눈매에는 완력과  결단으로 점철됐을 지난 력사가...
  • 2007-07-09
  • 단동시 부동산업계에는 요즘 《피여나는 꽃봉오리》로 불리는 《미녀스타》 한명이 신선한 경영전략으로 동업계와 매체의 주목을 끌며 인기를 모으고있다. 바로 단동백양(佰陽)건설그룹 판매총감 박심찬(녀, 28, 애명 향분)이다.그가 부동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수 있었다. 2002년에 상해교통대학...
  • 2007-07-06
  • 오늘 우리는 더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김호근선생을 추모하게 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2007년 7월 2일 아침 4시 15분 의외의 사고로 59세를 일기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벗이며 자애로운 선배를 잃었습니다. 김호근선생은  1948년 1월 5일, 화룡의 가난한 교육가의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소...
  • 2007-07-06
  • 장춘시 홍기가 부금로에 자리잡고있는 안동슈퍼는 장춘에서 규모가 제일 큰 한국상품 전문점중의 하나, 이 슈퍼의 주인 리광록사장은 꾸준한 장인정신으로 경영에서 매 일보를 다져가는 참다운 당원사업가다. 경영에 앞서 신뢰를 줄 때 고객은 따라준다 리광록사장의 창업스타드는 지난세기 90년대 초반에 시작된다. 그는 상...
  • 2007-07-05
  • 300딸라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전설적인 인물인 미주 한인회 남문기회장(54세)을 만난것은 지난 6월 25일 연길 백산호텔에서였다. 미주 한인 최대의 부동산기업인 뉴스타부동산그룹 및 부동산경제채널 KNT CEO이자 로스안젤레스 한인회장인 남문기회장은 22일 세계서울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후 투자고찰의향으로 잠간 연변...
  • 2007-07-05
  • 시작되는 순간부터 뭔가 가슴이 벅차오른다. 보고 있노라면 광야를 말 타고 달리는 여인의 강인한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 여인의 힘차게 뛰는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고(風鼓)춤이 주는 느낌이다. "광대한 평야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기마민족이었던 여인족의 기상을 살려 한국여인의 내면에 흐르는 강...
  • 2007-07-04
  • 안해에 대한 남다른 사랑동희철선생의 평범한 가정이야기                  프로필1929년 4월 13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상동에서 출생1934년 중국 간도에 이주1944년 연길간도사도학교 본과 입학1946년 중국인민해방군 길...
  • 2007-07-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