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23현 7성음계 가야금, 40년 세월 함께 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3월16일 15시23분    조회:1026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성삼
제자를 가르치고있는 김성삼선생.
손끝이 선우에서 춤을 춘다. 둥기당당 둥당당… 아름다운 선률은 이내 공간을 가득 메운다. 15일, 국가급무형문화재 가야금전승인 김성삼선생(62세)을 만나 우리의 전통악기 가야금의 흥미로운 세계를 엿볼수 있었다.

■ 우리의 정서를 품은 악기
김성삼선생은 모든 민족악기가 그러하겠지만 가야금은 특히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이 잘 담겨져있는 악기라고 소개했다. 특히 선을 타고 울리는 애달픈 곡조는 언제 들어도 심금을 울린다. 망국노의 슬픔을 가슴에 담고 괴나리보짐을 지고 두만강을 넘어섰던 우리 선조들, 이 땅에서 황무지를 개척하며 새롭게 민족문화를 꽃피운 우리의 정서가 어쩌면 가야금의 소리와 닮지 않았는가! 관악기와 활을 사용하는 현악기들과 달리 가야금은 선의 자유진동에 의해 소리가 울려나오며 부드럽고 우아하며 구성진 가락이 뽑아낸다.

김성삼선생이 처음으로 가야금을 접하게 된것은 지난 1973년, 예술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녀성연주자가 타는 악기로만 알고있었던 가야금을 연주하라니, 그는 전공이 맞지 않다고 불평을 부리다 종내는 이불짐을 싸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가야금선생님이였던 조순희선생의 질긴 설득끝에 마지못해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배우다보니 그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렇게 내처 가야금과 함께 한 40여년의 세월동안, 그는 선배들과 함께 가야금의 개량에도 참가했고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공연에 참가하거나 자신의 개인연주회를 가지면서 영예를 빛냈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내 연변의 가야금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중국조선족가야금발전의 현주소를 대표하는, 연변가야금발전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가야금
이날 기자는 김성삼선생으로부터 연변 가야금의 개량에 대해 그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초기, 연변지역에서는 가야금에 관해 정규적인 연주기록이 불투명했다. 그러다가 1952년이 되여 작곡가이며 지휘가인 안국민선생이 연길에서 가야금을 타는 권번출신인 할머니 한분을 발견했다. 그 이듬해에는 또 훈춘에서 한분을 발견, 이렇게 되여 안국민선생은 그들로부터 가야금연주를 배워 본격적으로 가야금이 정규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후 민족악기개량, 연구의 장인인 리정도선생이 연변에서 첫 가야금 두대를 제작했다.

전통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된 판우에 명주실로 꼬아만든 12개의 선을 괘우에 얹었으며 1950년대초부터 시작된 민족악기개량을 통해 연변에서는 5성음계의 13현, 15현 가야금을 주로 썼다. 하지만 이와 같은 5성음계는 중국음악환경에 썩 맞지가 않았다. 우선 악기 자체가 명주실로 되여 음이 온정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화성이 풍부하지 못했으며 음역도 좁고 음량이 적은 등 제한성을 갖고있었다.

이때 조선에서는 “초소의 봄”이라는 가야금곡이 류행이였는데 김성삼선생은 가야금으로 변조까지 소화해내는걸 보아 그것은 절대 5성음계의 악기가 아님을 직감으로 느꼈다.

1978년, 김성삼선생은 종전까지 쓰던 15현가야금을 7성음계의 가야금으로 개량하려고 맘 먹었으며 스승인 조순희선생과 함께 12현, 13현, 15현 가야금을 23현 7성음계로 개량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조선에서는 21현 7성음계 가야금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답습하려 했으나 그것으로 웬지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21현은 음이 ‘파’로 끝나는데 두줄만 더 보태서 ‘라’로 끝나면 소조음악도 잘 소화해낼수 있기때문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김성삼선생이 설명했다. 즉 라로 끝나면 소리가 밝아 듣기에도 좋으며 전조를 하더라해도 “미”로 끝나기에 역시 소조음악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대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원인인즉 23현 가야금은 너무 넓어 보기에 싫다는것이다. 그러나 연주실정에 어울리는 악기로 개량해야 한다는 의견이 앞서면서 끝내는 23현 가야금의 개량이 시작되였다. 너비 33센치, 두께 3.3센치, 길이 153센치의 23현 7성음계 가야금이 새롭게 탄생했다.

“1978년 5월 23일”, 새 가야금으로 연주를 하던 어느날 김성삼선생은 문득 가야금에 그날의 날자를 새겨 드디여 자기만의 가야금이 생긴 기쁨을 간직했으며 이 가야금은 지금까지 줄곧 40년 가까이 그와 함께 세월을 보냈다.
“그때 모두 5대를 만들었는데 제가 가지고있는것을 내놓고 나머지 4대는 모두 사라져 아쉽습니다.”
이후에 김성삼선생은 상해음악학원에서 자신의 가야금종목의 록음을 마치고 그 보수로 받은 3000원의 돈을 투자해 나이론으로 되여있던 워낙의 가야금선을 상해음악학원 악기공장에서 생산하는 질 좋은 복합선으로 교체했다. 이로써 음이 어둡고 불온정하며 자꾸만 늘어나 번마다 조절이 필요했던 나이론선의 불편함을 해결할수 있었다.

■ 활발한 보급과 계승
현재 우리 주, 나아가 각 조선족산재지역에서는 가야금의 보급이 아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는 대학전업과정은 물론 지난 2000년부터는 가야금석사학위점까지 설치해 가야금 관련 교육을 아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뿐만아니라 전국에는 약 25개의 중소학교들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치고있으며 가야금을 통한 여러 과외활동을 진행하고있다. 사회적인 중시도 전보다 훨씬 높아져 여러 예술단체와 사회구역에도 가야금이 잘 보급된 상태다.

특히 지난 2013년, 룡정시에서는 “가야금병창 기네스세계기록”을 창조하면서 “중국조선족가야금의 고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이날 연주에 참가한 854명 연주자가운데는 9살 나는 최연소 연주자로부터 7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의 연주자까지 있어 가야금이 군중문화생활과의 융합정도를 잘 보여주었다.

연변일보 박진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우란호트시 삼합촌 김명만당지부서기 내몽골자치구 우란호트시 우란하달진 삼합촌은 1937년에 건립, 현재 700농가(그중 조선족 370농가)에 1454명(조선족 인구 90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현임 김명만당지부서기 겸 촌주임은 조선족들의 연해도시 진출과 출국으로 조선족 인구가 격감하는 추세라...
  • 2006-05-19
  • [원제:在獨 바이올리니스트 김사라양, 월드컵 홍보모델]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사라(오른쪽)양이 독일 건설교통부가 제작한 경기장 홍보물의 모델로 월드컵을 홍보하고 있어 화제다./팬카페 '바이올리니스트 김사라를 주목하라' 제공/민족뉴스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 2006-05-18
  • [원제: 뉴질랜드 동포, 스페인 국제피아노 콩쿠르 3위] 뉴질랜드 동포 이미연(23.여)씨가 지난 4-1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타르니아 음악당에서 열린 제52회 마리아 카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씨는 또 청중과 스폰서가 뽑은 가장 뛰어난 연주인으로 선정돼 5천 유로(6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 2006-05-18
  • [원제:금호타이어 장춘공장건설단 민경용총경리 《자동차도시에서 동북시장 공략》] 지난해 동북아무역박람회기간 금호타이어 량해각서를 체결한후 길림성당위 왕운곤서기, 왕민성장이 금호그룹 박삼구회장 등과 축하를 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장춘공장 조감도 금호타이어(장춘)유한회사는 총 투자 1.5억딸라로서 길림성에 ...
  • 2006-05-18
  • 연예인 하리수 언젠가 변성신분으로 연예권에 진입한 한국 연예인 하리수는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때 그의 통통한 얼굴과 섹시한 몸매, 사랑스런 움직임 등은 많은 팬들의 눈길을 모았고 모델, 영화, 음반 등 각 분야를 휩쓸기도 했다. 최근 하리수는 두번째 앨범 '무법자발(舞发自拔)'을 갖고...
  • 2006-05-17
  • [원제:민족교육, 학생회를 통하여 조선사람으로 오귀순, 오영순청년] 올해 스무살을 맞은 오귀순, 오영순청년은 불고기점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산다. 귀순청년은 현재 하프를 배우면서 보육원에서 일한다. 영순청년은 올해 3월에 단기대학을 졸업하여 지역의 회사에 사무원으로 취직하였다. 초급부까지 민족교육을 받은 ...
  • 2006-05-17
  • [원제:고령동포를 위한 복지전문가로 준비할터! 리선화청년] 취미는 운동. 초급부시기에는 축구, 중급부부터 대학까지 배구를 즐겼다는 선화청년은 《어서어서 자라라》 50번째에 게재되였다. 《나는 고집이 셉니다. 무슨 일이든 알기 쉬운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조대까지의 14년간 최우등성적을 받았다. 선화청년은 입을...
  • 2006-05-17
  • [원제:허순애 민족복장으로 전통문화 계승에 일조] 최근 목단강시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거리가 있다. 바로 목단강시 코리아타운인 조선민족거리이다. 약동하는 봄기상과 함께 이 거리는 민족의 멋, 특히 우리 민족의 전통 의상이 남달리 눈길을 끌군 한다. 이 민속거리와 이웃하고있는 서목단가 한복점 '영순복장'은 봄철...
  • 2006-05-17
  • 남문기 뉴스타그룹 회장, 성공스토리 출간 미주 한인 최대 부동산회사 뉴스타그룹의 남문기 회장이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책 미국 땅을 울린 한 마디 잘 하겠습니다를 발간했다.//문화/ 2006.3.7 (서울 D연합뉴스) 남문기(53) 뉴스타그룹 회장이 제28대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으로 당선됐다. 남 회장은 13일(이하 현지...
  • 2006-05-15
  • 《일본사람들과 동등한 권리를》 재일동포고령자의 무년금문제소송 제7차재판이 11일 교또지방재판소에서 진행되였다. 이번 소송에서는 원고인 현순임씨(78살)와 정복지씨(88살)가 증인심문에 나섰다. 현순임씨는 1살 8개월때 살길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 건너온 후 11살때부터 일하기 시작하여 갖은 민족적멸시와 차...
  • 2006-05-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