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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호가 만난 사람 - 이임원 연변포석회 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18일 16시05분    조회:4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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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임원
“중국 동포들은 포석의 ‘낙동강’으로 민족혼 되새겼지요”


중국 연변동포들이 조명희 선생의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연변포석조명희문학제’를 17년 동안 자체적으로 열고 있다. ‘연변포석조명희문학제’에서 이임원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포석抱石조명희趙明熙(1894~1938) 선생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일본에서 공부했고 러시아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문학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꾀했고, 한글로 민족문학의 혼을 일깨우는데 향도역嚮導役을 맡았다. 농민학교와 사범대학에서 후진들을 키워냈고, 조국을 등진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을 받았다. 그래서 고려인들은 포석을 ‘항일 독립영웅 59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소련 스탈린은 소수민족 압살 정책의 일환으로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 직전, 소수민족 지도자들을 숙청했다. 그 표적 중 한사람이 바로 포석이었고 KGB(소련비밀경찰)는 그를 연행하여 간첩죄로 처형했다. 그의 나이 44세.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였고, 독립운동가였으며, 러시아 땅에 한글문학의 씨를 뿌렸던 한 걸출한 조선 사내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조국은 해방을 맞았고, 잃어버렸던 선각자들의 위업을 뒤늦게나마 찾기 시작했다.

포석 조명희- 그가 꿈에서도 그리던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은 1938년 5월11일. 올 해로 꼭 80년이 됐다.

지난 1988년 해금과 더불어 이름을 찾은 포석은 한국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로, 최근 들어 ‘국민작가’로 부활했다. 그 사이 그의 탄신 100주년을 앞두고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엔 ‘조명희기념실’과 ‘조명희거리’가 생겼고, 중국 연변자치주의 수부인 옌지연길시에선 ‘연변포석조명희문학제’가 매년 막을 올렸다.

생전의 포석은 우즈베키스탄이나 연변자치주에 단 한 차례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음에도 그곳의 동포들은 매년 그를 깍듯하게 기리고 있다.

지난 해 부터 중국의 사드 보복이 전 방위적으로 행하여지는 가운데 한국과 연변의 포석회는 연변의 문화예술인들과 청소년들에게 격조 있는 무대를 마련하여 포석의 얼을 전했던 행사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깊이와 의미가 있는 학문적 접근으로 포석을 조명키로 했다.

지난 7월초, 연변포석회는 ‘포석조명희문학학술세미나’를 마련했다. 17년째 연변포석회를 이끌고 있는 이임원(61·시인) 회장이 주도했다. 나는 연변에서 포석의 발자취를 찾는 그를 만나러 연길로 달려갔다.

연길 공항에 마중 나온 이 회장은 반팔 남방셔츠 차림이었다.



-연길 날씨는 무더운 듯한데, 한·중 기온은 아직도 냉랭하지요?

“아직은 해빙 전입니다.”

-충북도를 방문했던 분들 모두 잘 계신가요?

“대체적으로 잘들 있지요.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난 분들이 상당수이지요. 그러나 워낙 많이 갔었기 때문에 현직에 있는 이들이 더 많지요.”

-모두 몇 명이나 방문했던가요.?

“1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7명에서 12명 정도가 초청받아 충북방문을 했으니까 연인원 110명 쯤으로 봅니다.”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나요?

“동양일보의 초청자 대상 주문이 문화예술인이나 교육자나 언론인이나 출판인 중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여 거의가 한국방문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지요. 문명과 문화의 격차에서 오는 괴리감이랄까, 가벼운 공포감 같은 것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맞는 분들이 성심성의껏 도와 주셨고, ‘순회명사시낭송회’라는 낯선 행사에 참가하면서 이런 고급문화를 배워가야겠다는 욕심도 생겨 불편한 것을 열심히 극복하려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귀국 후 한국의 시낭송을 따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지역마다 각계각층의 책임자들이 서슴없이 무대에 올라와 열심히 시낭송을 하는 모습이 한마디로 눈부셨습니다. 더구나 시·군 지역에서 사단장이나 경찰서장들이 멋진 제복을 입고 나와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요. 귀국하는 사람들마다 ‘한국에 갔더니 장군이나 경찰서장들이 시낭송을 하더라’라며 신기한 듯 이야기들을 했어요.”

-그 행사에 잊을 수 없는 분이 청주 서원경교회를 창립하여 담임목사로 계시던 장석연 목사 이셨지요.

“그렇지요. 10여 일간의 순회행사가 끝나는 날엔 언제나 2박3일간의 제주도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연변에서 온 우리들로는 익숙하지 않은 행사에 참여하느라 심신이 피곤하였어도 꿈에 그리던 제주도 여행을 한다는 황홀한 꿈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지요. 그 아름다운 제주도 여행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어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과 맛있는 음식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장 목사님 부부께서 시종 함께하시며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시려고 애쓰시던 모습도 선해요.”

-그 장 목사님이 은퇴 후 세종시에 가셔서 세종 서원경교회를 세우셨어요. 아직 아주 건강하시고 명 설교도 여전하십니다.

-이 회장께선 오랫동안 봉직하던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직에서 퇴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지난 3월 말까지로 13년간이 소장 직에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매년 해오는 포석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은 올 해도 잘 되었나요?

“여러가지로 여건이 힘들었지만, 매년 십 수 년을 두고 중단 없이 해오는 행사여서 정치적인 기상도가 좋지 않다 해도 매년 때가되면 당연하게 작품공모를 하는 것으로 알아서 학교별로 응모작품들이 들어오곤 하지요. 올 해도 이미 새해가 되면서부터 응모작품들이 들어 왔습니다. 심사를 거쳐 시상식을 마친 것이 6월 24일이었습니다. 마침 이를 알고 동양일보에서도 보도를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동양일보에서 보도한 것을 알고 계셨나요?

“아시듯이 이 곳(연변)에서는 동양일보 독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초청해 한국의 문화예술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곳이 동양일보 였고, 또 연길에서 매년 ‘연변포석문학제’를 열도록 후원해 주신 곳도 동양일보여서 우리는 일과처럼 인터넷으로 동양일보를 꼼꼼하게 보고 있지요. 지난 6.13 지방선거도 열심히 보았어요. 우리들이 만났던 시장·군수님들이 어떻게 되는가가 큰 관심들이었습니다. 이시종 지사님이나 김병우 교육감님을 비롯한 낯익은 시장 군수님들이 다시 당선된 것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포석선생의 고향인 진천의 송기섭 군수님은 큰 표 차이로 재선이 되셨더군요. 전에 포석회장을 하셨던 진천의 박양규 의원은 의장이 되셔서 우리가 기뻤습니다.”

-왜 연변에서 포석 선생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을까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곳 연변은 조선족 동포들의 집거集居지역입니다. 해방과 더불어 조선동포들은 자녀들의 학교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지요. 해방 직후부터 중국조선족은 중국의 학교편제인 소학교(5년),중학교(고급중학교 포함-5년),대학(2년과 4년)을 다닙니다. 그중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교 교과서 조선어문 제1단원에 포석 조명희 선생의 소설 ‘낙동강’(1927년 발표)이 최서해의 ‘탈출기’와 라도향의 ‘벙어리 삼룡’과 함께 나옵니다. 이 때 우리는 조명희 선생이 어디 출신 인지, 호가 무엇인지는 모르되 이 작품을 통해 민족민중문학에 관해, 소설문학에 관해,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란 말도 알고 있어요?

“근래 들어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어서 익혀 두었지요. 사전적 풀이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살던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산재해 살면서도 정체성과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오는 공동체를 이른다고 알고 있어요. 이국땅을 떠돌던 이들과 그들의 후손이 쓴 문학작품을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하더군요.”

-그렇다면 포석은 망명의 땅 러시아에서, 이 형과 같은 연변의 시인 작가들은 틀림없는 ‘코리라 디아스포라 문학가’들이라 칭해도 되는 것이군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포석 선생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문학가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생이 태어난 1894년은 이 나라 근대문화-개화기가 비롯되는 때이고,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부터 러시아로 망명하면서 발표된 모든 문학 작품들은 장르마다 거의 개척 적이거나 선구적인 창작활동을 펼쳐 온 사실이지요. 일본 도쿄에서의 ‘극예술협회’ 참가(1920년)-한국 최초의 희곡 ‘김영일의 사死’(1921)발표-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봄 잔디밭 위에’(1924) 발간- 소설 ‘낙동강’ 발표(1927) 등을 보아도 소설 ‘임꺽정’만을 쓴 벽초 홍명희나 시 창작에만 몰입했던 정지용과는 달리 문학의 여러 장르를 뛰어넘으면서 그 분야의 영토에 새로운 길을 낸 선구자임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연변 동포들이 포석 선생에 대한 인식이 해방이 되자마자 부터 이제까지 70년이 넘도록 연모의 정을 이어오는 것이라 생각이듭니다.”

-이 회장은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나요?

“연변대 사범대 조문학과(현재의 한국어과)를 졸업하면서 소학교 교사를 잠시하고는 약관 23세에 연변일보 기자가 됐습니다. 정치 생활부-문화체육부 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2006년 5월부터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이 된 때는 몇 살 때였는지요.

“40세 때였습니다. 작가협회 주석단에 마흔 살짜리가 낀 것이 처음일 것입니다. 2007년까지 9년간을 활동했습니다.”

-이 회장은 매년 한국과 평양 방문을 한 차례씩 해 온 것이 10년이 넘지요?

“예. 10년 쯤 되나 봐요. 한국방문은 매년 동양일보의 초청에 따라 연변동포방문단의 인솔책임자로, 평양엔 매년 친선예술축전 참가 연변문화예술단 단장으로 다녀오곤 하지요.”

-무엇이 크게 다르던가요.

“한국은 문명이 앞서고 모든 것이 서구화 되었다면, 조선은 사는 것은 다소 궁핍해도 소박하고 당당해요. 최근 몇 년 간은 주민들이 전에 없던 활기가 보이고 축전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 통제지역도 많이 풀어 보여주는 등 변화가 느껴져요. 몇 년 전에는 평양의 한 노 시인이 저녁 식사자리에서 슬며시 옆에 와 앉더니 ‘조선에는 지금도 거지가 그리 많으냐’고 묻더군요. 그저 ‘여러 해 다녔지만 거지는 보지 못 했습니다’라 말하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군요. 한국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장마당이라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돈이 있으면 웬만한 것을 거의 구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자본주의 사회현상이 밀어닥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지요.”

-이 회장의 시가 연변 동포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렸다고 들었는데요.

“몇 년 전부터 ‘진달래’ 등 3편이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 조선어문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서정시의 본보기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시집도 여러 권이지요?

“첫 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1997)를 낸 이후 3,4년 만에 한 권꼴로 한글시집 3권, 중문시집 1권 등 4권을 발간했습니다.”

-해마다 연변포석문학제를 치르면서 가장 보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포석청소년문학상’이겠지요. 올 해로 17년간을 중국 전역에 살고 있는 동포 청소년을 대상으로하다보니 완전히 뿌리를 내린 사업입니다. 중국대륙의 넓은 지역에서 많이 응모해 오지요. 그 중에 우리 민족의 삶의 양태가 다양하게 묻어나고 청소년들이 중국 속의 조선족 동포로써 겪는 많은 일들을 우리말로 정제시키고 정리하여 보내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으나 포석의 고향 충북 진천군에서 지원하는 일부 시상금이 입상한 청소년들에겐 교통비와 상품비로 쓰이고 있어 큰 위로가 되지요. 하얼빈 같은 곳에서 입상자가 시상식에 오려면 오는데 하루, 가는데 하루 열차를 타야합니다. 꼬박 사흘이 걸리지요. 수상자 혼자만 오지 못합니다. 가족이나 지도교사가 동행을 하면 교통비와 숙박비와 식사비가 수월치가 않지요. 이것을 주최 측이 부담하지 못하면 시상식 참석은 엄두를 내지 못하지요. 중국에서의 행사 비용은 한국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있어도 동포 청소년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얼의 존엄하고 훌륭함을 깨우치기 위한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마치 포석 선생이 이국(소련)에서 한글과 문학을 통해 조국광복에 이바지하고 민족정신을 고양高揚하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에 성의를 다 합니다.”

-지난해부터 요즘까지의 한·중 관계의 어려움이 더 계속된다면 과거처럼의 연변포석문학제를 개최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숙면熟眠의 시기로 봅니다. 포석청소년문학상 공무와 시상식은 지속하되 문학제는 학술적인 접근을 꾀해 포석에 대한 이해와 기개와 예지를 익히는 기간으로 활용한다면 포석문학에 대한 이론적인 무장이 될 것으로 봅니다.”

-오랜시간 고맙습니다. 중국의 동포들에게 포석 선생의 선각적인 삶이 또 하나의 에너지 원源으로 전해졌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 와 주심에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이런 우정의 감동을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 동양일보 회장·시인



■ 이임원李任遠 시인은…

*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시 출생

* 1979년 연변대 사범대 조문학과 졸업

* 1981년 연변일보사 입사

정치생활부 부부장-문화체육부 부장- 편집국 국장

* 1989년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 수상

* 1997년 초대 연변정지용시문학상 수상

* 1998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 2001년 해란강문학상 수상

* 2001년 연변 포석회 회장

* 2003년 윤동주문학상 수상

* 2004년 장백산문학상 수상

* 2006년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 2018년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퇴직

현 연변포석회 회장.

현 연변향토문화연구회 회장



* 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1997)

‘작은 시 한 수로 살아간다는 것은’(2001)

‘바다가 육지로되지 않는 까닭은’(2014)

‘사랑의 꽃’(2015)



동양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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