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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감독 장률을 만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13일 10시07분    조회: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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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장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감독 장률을 만나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감독 장률은 일상에서 영화를 길어 올린다.

장률이라는 이름이 마치 현악기 같다고 생각했다. ‘장’이라는 음절의 팽팽함과 ‘률’이라는 음절의 울림이 공존하는, 손으로 튕기거나 활로 켜서 소리낸 듯한 느낌의 이름. 그리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장률이라는 이름 안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불협화음과 장률이라는 이름 안에서 익숙한 협화음의 앙상블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유연한 변주와 신명한 반전 속에서 생경한 인상과 평안한 흐름이 느껴진다. 확실한 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장률의 지난 세계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온 작품이면서도 여전히 그 세계들로부터 동떨어지지 않은 세계라는 사실일 것이다.

베이징에서 촬영한 장편 데뷔작 <당시> 이후로 장률 감독은 연변과 중국 대륙에서 영화를 찍어왔다. <망종>은 중국의 변방 도시에서, <경계>는 몽골에서, <중경>은 중국의 충칭에서 그리고 <중경>의 이란성쌍둥이 같은 작품인 <이리>는 한국의 익산에서 촬영했지만 다시 연변으로 나아가 <두만강>을 찍었다. 그 뒤로 4년간의 공백 끝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주목한 다큐멘터리 <풍경>을 발표한 뒤 <경주>, <필름시대사랑>, <춘몽>을 차례로 발표해왔다. 대륙에서 시작된 영화적 여정이 한국으로 이어졌다. 퍼석하게 부서질 것만 같았던 영화의 질감 또한 보다 유려하고 선명하게 변모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장률이라는 감독의 세계관의 변화를 대변하는 최전선에 놓인 작품이면서도 세상의 이면과 구석에 주목하는 창작자의 중력을 체감하게 만드는 최신작이다. 유연한 웃음을 내보이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일상성과 영화적 세계관의 관계성을 되짚는 장률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영화가 그와 닮았다고 느꼈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는 원래 군산이 아니라 목포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고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제목부터 다른 영화가 됐을 거 같은데, 주요 촬영지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목포의 민박집을 촬영지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목포 촬영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군산을 선택하게 됐다.
처음 목포 촬영을 구상했을 때, 많은 준비가 된 상황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민박집이 목포에 있었던 것 정도라 장소를 옮기는 것 자체에 어려움은 없었다. 딱히 고집해야 할 조건도 없었고, 알다시피 워낙 규모가 작은 영화이기도 하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됐는데 결과적으론 잘된 거 같다. 목포보다도 군산에 일제시대 건물들이 더 많이 남아있기도 하고, 그래서 영화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아마 목포에서 찍었다면 <군산>과는 질감 자체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거다.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이 잔존한 도시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목포에서 봐 둔 민박집에서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촬영지를 옮겨야 할 정도였다면 민박집의 구조나 형태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군산에서도 원하는 집을 찾지 못했다면 이 영화의 제작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
물론이다. 세트를 만들어서 찍을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니까 결국 그런 장소를 못 찾았다면 이 영화 자체를 찍을 수 없었을 거다. 다행히도 결국 군산에서 찾아냈는데 목포에 비해 군산이라는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느꼈다. 그래서 남녀 감정을 그리는 게 맞지 않겠나 싶어 졌고. 실제로 요즘 연애하는 친구들이 군산을 많이 찾는 도시라고도 하더라. 서울 사람들도 많이 가고.

<군산>은 장률 감독이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 가운데 가장 세속적인 남녀 관계를 그리는 작품 같다. “남자들이 왜 이 세상에 온 줄 아세요? 여자들에게 상처 주러 온 거 같아요”라는 대사는 이전의 작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사였다. 심지어 치정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신도 등장하고. 동시에 남녀의 이야기로만 국한시키기엔 그 주변부의 인물들과 풍경의 의미를 읽고 싶게 만드는 점에서는 장률 감독의 인장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남녀 관계를 그린 영화라는 것이 너무 드러나 보이는 영화를 찍으면 관객들이 그 관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실제 일상에서는 그 관계에만 집중하며 살지 않는다. 물론 어떤 연령대까지는 일상에서 남녀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클 거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부분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거기에만 집중하며 살 수는 없지. 그래서 영화에서는 그런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자리한 남녀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에 더 눈길이 가기도 했고.

송현(문소리)과 윤영(박해일)이 군산에 도착해 표지판의 지도를 보는 모습에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대략 1시간 10여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흐른 뒤 그것이 이 영화의 서사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제야 영화의 타이틀이 떠오르기도 하고. 서사를 분절해 재구성한 의도가 궁금하다.
< 군산>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윤영이 선배의 아내였던 송현을 조금 좋아하는 감정도 있는 거 같고, 결국 그렇게 만나서 군산까지 가게 된 셈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계라는 게 중간쯤 가봐야 알게 되는 거 같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다들 시작과 결말을 중시하지만 시작과 결말은 중간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꼭 시작이 어디여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이런 정서라면 이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따른 결과 같다.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군산에 가게 되는 과정이 극의 후반부에 등장하고 영화의 시작점에서 영화가 끝나게 되니까 끝없이 반복되고 재생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우리 삶이라 비유한다면 영화의 순서란 결국 기억의 순서인 거 같다. 개개인마다 기억의 순서는 다르지 않나. 저마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기억은 달라질 수 있는 거고. 영화가 군산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다시 군산으로 오는데 주인공 두 사람이 그 순간을 추억할 때에는 그 순서가 맞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사귀고 있든, 사귀고 있지 않든. 물론 내가 보기엔 갈라섰을 거 같지만.(웃음)

<군산>의 윤영이 처음 보는 인물이나 지역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는 것 또한 불명확한 기억의 착시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기억의 순서라는 게 저마다 다르다고 했는데 영화 속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기시감 또한 기억의 불명확함에 대한 관념이 투영된 것일까?
젊은 시절에는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 그런데 어느 연령대부터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송현과 윤영은 대략 40대 전후의 나이 대에 있는 인물인데 그 나이부터는 그런 감이 오는 것 같다. 어디서 본 거 같다는 느낌. 그게 어느 연령대부터 오는 거 같다. 그런데 정말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정말 그 이후에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묘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다고 할까? 물론 특별한 종교가 있는 건 아니다, (웃음) 어쨌든 모든 게 다 내 일상에서 비롯된 것이란 거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 지금이야 30대가 젊은 축에 속하지만 옛날에는 30대도 중년이라고 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변화도 다 일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평소에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기시감을 자주 느끼는 편인가?
점점 더해진다. 자꾸 어디서 본 것 같다. 물론 윤영처럼 여자한테 그러는 건 아니지만.(웃음)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갔다가 숙소 옆 카페에서 앉아있는데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분명 아는 사람 같더라. 그런데 누군지 도통 생각이 안 나는 거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웃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카페에 앉아있는 나한테 오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물어보는 거다. 혹시 아는 사람 닮았냐고, 그런데 아마 아닐 거라고.(웃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지.

현실이 더 영화 같다.
사실 영화에서 아름답게 그리는 사랑도 진짜 현실의 일상처럼 찍어보면 되게 낯설어 보일 거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영화가 일상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런 쪽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일상에서 찾은 느낌을 영화에 확실히 반영하는 쪽이고.

<군산>에서 전투기 비행소음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군산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걸 촬영지로 선택하기 전에 알고 있었나?
몰랐다. 5~6분에 비행기가 한 대씩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컷’했다가 찍고, 그래서 영화 찍는 내내 너무 짜증이 났다.(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과거에 참혹한 역사가 있던 땅이라지만 지금은 연애하는 남녀가 찾는 도시가 됐고,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미군 전투기의 소음이 내려온다. 그래서 저 소리도 이 공간의 일상이구나, 피할 수가 없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길을 거닐면서도 전투기 소음이 지나가는 게 군산에서는 일상인 거다.(웃음)

<군산>을 찍으면서 발견하게 된 군산의 일상성인 셈인데.
피할 수 없었지.(웃음)

적산가옥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을 환기시키는 풍경 위로는 미군 전투기가 날아다닌다. 그리고 연변 출신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군산>은 여러 면에서 한반도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지층처럼 공존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일상을 반영한다고 만들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북아 역사와 밀접한 현실이 있더라. 생각해보면 요즘은 한국 어디를 가도 조선족 출신 사람들이 있다. 말투도 잘 못 알아듣고, 생활방식도 다르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일상이 있을 거다.

윤영이 이미자의 ‘님 떠난 군산항’을 부른다. 아무래도 군산과 관련된 노래를 쓰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군산과 관련된 노래 중 그 노래가 제일 유명하다.(웃음) 게다가 이미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군산이라는 도시가 윤영이의 어머니 고향이기도 하니까 옛날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럽게 옛날을 생각하게 될 거라 생각해서 선택했다.

만약 목포에서 촬영했다면 ‘목포의 눈물’을 불렀을까?
그랬겠지.(웃음)

전작에서도 노래하거나 누군가에게 노래를 시키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심지어 <두만강>에서는 할아버지끼리 술 마시다가 노래를 시키는 장면도 나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노래들이 등장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어떤 감정을 갖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남다른 느낌을 받는다. 감동이 온다고 할까. <군산>만 놓고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윤영이가 노래를 한다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하는 노래를 한다면 영화와 어울리지 않은 거니까 당연한 거지. 그리고 내가 말하는 노래는 스태프들이 다들 모른다. 이젠 나나 아는 노래들인 거지. 반대로 내 주변에는 요즘 노래하는 사람이 없다. 모를 수밖에 없고.

‘님 떠난 군산항’은 영화 속에서 들려지는 노래라기 보단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기 위해 초대한 생경한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쁘든, 슬프든, 노래하는 순간 어떤 감정이 작동된다고 느껴지는 건 좋다. 사실 유일하게 <경주>에서만 썼지, 내 영화에는 음악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음악이란 것이 어떤 공간을 찾았을 때 들려지는 것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카페에서는 카페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노래방에서는 노래방이니까 부르고, 듣고. 극의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게 되는 영화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 결국 내 영화에서 등장하는 노래란 일상의 리듬을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결국 내 취향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의 유명함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관객들에게 ‘님 떠난 군산항’은 생경하게 들릴 거 같다. 낯설어서 그만큼 신선하게 들릴 수도 있고.
그렇다면 너무 좋겠다. 옛날 노래라고 다 없어지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 아름다운 게 왜 없어져야 하나 싶고. 너무 빨리 변하고 사라지는 게 너무 싫다. 정신없이 시대 흐름을 좇아가는 건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감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남기고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지금껏 연출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긴 제목이다. 제목이 떠오르는 타이틀 시퀀스에서 ‘영아(咏鹅)’라는 한자어가 함께 등장되기도 하는데 이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 낙빈왕이 쓴 시의 제목이라고 알려져 있고, 부제인 ‘거위를 노래하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군산’보다는 ‘영아’가 <군산>이라는 영화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궁금했다.
보통은 촬영을 다 마치고 나서 제목을 생각하는 편인데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제목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영화는 극장에 걸려야 하는 거니까 관객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하고, 투자사나 배급사에서도 의견을 제시한다. 그런데 군산을 제목에 넣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군산이라는 공간을 잘 담아내기도 했고, 지명을 제목에 넣은 전작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군산’이라 제목을 붙이는 게 딱히 사기 치는 일도 아닌 거 같고.(웃음) 그래서 수락하고 대신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첫 장편 데뷔작인 <당시>에서는 제목처럼 당나라 시가 여럿 등장하기도 하는데, ‘거위를 노래하다’를 의미하는 ‘영아’라는 당시 제목이 등장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윤영이 중국집에서 춤을 추면서 낙빈왕의 ‘영아’를 읊기도 하고.
당나라 시를 좋아한다.(웃음) 간결하기도 하고, 암송하기도 좋다. 몇 번만 외우면 기억이 난다. ‘영아’는 낙빈왕이 일곱 살에 쓴 시인데 중국에서는 서너 살만 돼도 알게 되는 시다. <군산>에서 윤영의 집이 연희동이라 화교가 많고, 화교 학교도 있고, 심지어 윤영은 2년 동안 화교 학교를 다녔다고도 하니 이 시를 무조건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시는 한번 외우면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다. 시라는 건 운율이고, 리듬이라 그걸 기억하는 사람의 감정에 끊임없이 작용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그리고 내가 술을 자주 먹는 편인데 술 먹고 저 시를 춤추면서 외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결국 <군산>이라는 영화를 구체화시키기 전부터 그 장면을 생각했던 셈이다.

군산은 윤영의 어머니 고향이다. 윤영은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의 고향에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군산의 민박집주인(정진영)도 사별한 아내의 고향인 군산에서 사는 재일교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민박집주인의 딸 주은(박소담)의 어머니 고향이기도 한 셈이고.
결국 군산이 직접적인 고향인 사람은 없지만 결국 누군가의 고향인 셈이다. 그리고 다들 그런 사연이 있어서 그곳으로 오게 된 셈이고.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 가게 되면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재미있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하도 떠돌아다니는 인생을 살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민박집주인의 아내가 끔찍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알게 된다. 동시에 윤영도 자신의 어머니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음을 암시하는 행동과 말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군산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들의 고향인 셈인데.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찍어 놓고 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군산이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소환된 이들이 찾게 된 망자의 도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고향이 모든 이들에게 생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환기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실 지난 작품들 속에서도 죽음은 늘 중요한 모티프가 되거나 끊임없이 등장해 환기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이지 않나. 어떤 나이가 되면 나와 깊은 관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가는 걸을 경험 한다. 떠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진다. 그게 일상이 된다. 죽음이 계속 내 삶과 같이 가는 거다.

<경주>에서는 과거의 만행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이 등장한다. <군산> 역시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감독 장률의 연출 경력 안에서 일본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 두 번째 영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모든 작품에서 조선족이나 중국과 연관된 인물이나 어떤 요소가 등장하는데 이는 일본과 연결되는 흐름은 동북아시아의 근대 역사와 무관한 일이 아닌 거 같다.
1995년에 처음으로 경주를 찾았을 때 그때에도 경주를 찾는 일본 사람이 있었다. 군산에는 여전히 일제시대 건물이 많아서 거기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후손이 지금도 많이 찾아온다고 하더라. 할아버지 집을 찾아오는 거지. 결국 일상에서 과거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공간인 거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딜 가나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이 있다. 그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게 자리하는데도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게다가 내가 그쪽 출신이다 보니 내 눈에는 그런 게 더 잘 들어온다.

<군산>에서 송현이 “여기 너무 좋다. 진짜 일본 같아. 나 일본 진짜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니까 윤영이 “윤동주 시인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윤동주 시인이 일본 형무소에서 죽었잖아”라고 대꾸한다. 일본을 향한 경외심과 적개심이 공존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느낌이랄까. 어쩌면 한국에 들어와 제3자로서 관찰하게 된 관념들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원래 촬영지로 생각했던 목포부터 시작해서 군산에 가서도 계속 일본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일지도 모르고, 그 지역에 가면 결국 그 시대의 정서가 여전하고. 그 지역의 노인들은 여전히 그 시절의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일제시대 때 만든 수도꼭지나 하수도나 여전히 쓸 만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감탄하기도 하고. 그런 개념이 서로 충돌하니까 따로 가둬 두고 말한다. 그런데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탄탄한 삶의 기반을 만들려면 일상을 잊어서도 안될 거 같고, 결국 지금의 일본인들과의 소통도 너무 중요하다. 어쩌면 내가 워낙 비주류로 살아온 인생이라 그런 것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군산>의 윤영은 10년 전에 시를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영아’라는 시를 쓴 낙빈왕은 이 시를 일곱 살 때 쓴 천재였다고 하고, 윤영이 흠모하는 시인 윤동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떠난 시인이었다. 이 영화가 직간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시인들의 비범함과 윤영의 범상함의 대비가 느껴진다.
시인에 대해 좀 더 폭넓게 말하고 싶었다. 시를 쓰는 사람만이 시인이 아니고, 시의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도 시인이라고. 사실 시 쓰는 사람 중에서도 정서는 다 잊고 시만 쓰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었다는 낙빈왕에게 서울의 한 중국집에서 자기 시를 읊는 미친놈이 있다고 알려주면 제일 기뻐하지 않을까 싶었다. 시인 입장에서는 저 사람과 소통이 됐구나,라고 느낄 거 같아서. 그런 면에서 윤영은 아직 시의 리듬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다. 10년 전에 시를 썼다고 하지만 아직 윤영에게 시인의 삶은 진행 중인 거다. 그러니 어느 날 유명한 시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 누구나 살면서 백수의 시기를 살 때가 있는 법이니까.

<군산>에서 윤영이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정부가 윤동주의 집안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굉장히 감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주>에서 주인공인 최현(박해일)이 찻집의 주인인 공윤희(신민아)가 공자의 78대 후손임을 알고 감격하는 장면과 유사한 인상이다. 두 작품에서 감격하는 인물을 박해일이 연기했다는 공통점도 있고.
공윤희는 원래 지인의 이름이다. 인사동에서 종종 술 먹는 사이인데 실제로 공자의 78대 후손이다. 그런데 어감이 여자 이름 같아서 한번 빌리자고 부탁했다. 그리고 윤동주의 고향이 내 고향과 멀지 않다. 지금도 거기 가면 윤동주 시인의 친척들이 많다. 대부분 농부로 사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버는 돈이 더 쏠쏠하니까 이리 와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윤동주의 친척들이 와서 일하고 있는 셈인데 그걸 알면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그저 연변에서 온 조선족일 뿐이지. 윤동주도 후쿠오카에 가지 않고 계속 연변에서 살았다면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지금처럼 위대한 시인처럼 여겨질지. 그저 연변의 조선족에 불과할 수도 있고.

실제로 <군산>에서 “윤동주가 연변 출신이잖아. 근데 그쪽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송현이 물으니까 윤영이 담담하게 “어, 뭐, 조선족이지, 뭐”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조선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한데, 지금까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조선족 출신 인물들이 거듭 등장하는 것도 그런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존재들의 일상을 환기시키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저 일상에서 보이는 파편적인 풍경을 굳이 치울 필요가 없으니까 일정한 영화적 리듬을 생각하며 반영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주류 계층의 사람들을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들 불쌍하다, 저 사람들 중에 범죄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디서든 비주류는 다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게 아니다. 특정한 관념이나 사건을 통해 개개인을 판단해버리는 거지. 그런 게 좀 안타깝다.

연변 태생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그런 선입견의 대상이 된다고 느낀 적도 있을 거 같다.
자주 당한다.(웃음) 출신지역을 얘기하면 대부분 나를 가르치려고 하더라. 그래서 예전에는 짜증 날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냥 귀여워 보인다. <경주>에서 백현진이 연기하는 교수도 처음에는 짜증 나게 굴지만 나중에는 좀 불쌍해 보이지 않나. 노래방에서 쪼그려 자기도 하고. 다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있고, 그래서 서로 상처를 주지만 결국 그 사람만의 외로움이 있다. 많이 당해보니까 그런 게 보여서 귀엽더라.(웃음) 물론 개중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경주>와 <군산>이라는 영화가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이용해 반복적인 농담을 던진다고 생각했다. 박해일의 캐릭터는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변태’라는 단어로 규정되기도 하고, ‘잘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감독이 배우와의 사적인 관계로부터 얻은 인상을 캐릭터에 짓궂게 반영한 결과처럼 보인다.
스타에게는 스타만의 생활이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입장이니 삶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이 친구는 스타의 생활과 정말 무관한 일상을 사는 것 같다.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하면 팬들이 싫어할지 모르겠는데 정서적으로 그렇다. 모자를 눌러쓰고 버스를 타고 다니고, 비싼 데를 찾아다니는 편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진지하다. 그런데 사람이 진지하면 변태처럼 보일 수 있거든.(웃음) 하지만 결국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잘 생겼다는 말을 늘 듣는다. 허름한 식당에 앉아있어도 다들 박해일을 알아보고는 그렇게 말한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며 느낀 질투가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웃음)

송현의 지인인 치과의사 지영(이미숙)이 박해일의 충치를 치료하면서 눈에 선과 악이 같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와 아무리 친해도 배우는 배우다. 그런데 가끔 혼동이 될 때가 있다. 그 친구가 선악을 다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는, 묘한 특징이 있지 않나. 그만큼 신비롭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거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그런 면에서 윤영이라는 사람도 영화 속의 캐릭터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작들에서 순희나 창호라는 이름을 자주 써왔다. <군산>에서도 조선족 가정부 이름이 순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우의 본명을 캐릭터 이름으로 자주 쓰곤 한다. <이리>에서는 윤진서와 엄태웅의 이름을 그대로 캐릭터의 이름으로 썼고, <춘몽>에서도 한예리와 세 감독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이 그랬다. 그런데 박해일은 <경주>와 <군산>에서 한 번도 자기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음에 한 번 써야겠다.(웃음) 사실 너무 게을러서 그렇다. 이름을 지을 줄 모르니까 쓰던 이름이나 익숙한 이름을 쓴다. 아니면 그냥 배우나 스태프들 이름을 갖다 붙이거나.

윤영은 어릴 때 엄마가 자신을 영아라고 불렀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윤영이라는 이름이 ‘영아’라는 단어를 활용하기 위해 마련된 이름 아니었을까?
내가 아는 영화과 교수의 이름이 윤영인데 항상 그 교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여자 교수인 줄 알고 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생각나는 이름도 없어서 그 이름 좀 빌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아’라는 해석도 가능한 이름이었다. 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캐릭터와 어울리는 느낌이기도 하고.

첫 장편 연출작이었던 <당시>와 비교하면 <군산>은 전혀 다른 감독의 영화처럼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만강>까지는 황량하고 황폐한 정서의 영화를 만들어온 것 같은데 <경주>부터는 영화에 여유가 생긴 인상이다. 위트와 리듬감을 비롯해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내 삶이 변해서 그런 거 같다. 삶이 변하니까 정서도 변하고, 그런 변화를 따라온 거 같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어떤 공간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카메라를 추운 겨울의 두만강에 두고 있으면 <두만강>처럼 황량하고 추운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초기작들은 그런 공간이 주는 질감에 충실한 작품들이었다. <이리> 같은 경우에도 과거 폭발사고가 있었던 역 주변 동네는 황폐한 느낌이 있다. <군산>에서도 황량한 폐가가 등장하는 건 그런 공간에 주목하는 내 습성 때문일 거다. 다만 예전보다는 시선이 좀 더 따뜻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인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거 같고. 아무래도 세월이 작용한 결과일 거다. 점점 늙어가니까, 날카로움도 무뎌지는 거 같다.

영화적 공간성과 감독의 일상성이 변화하면서 창작적 세계관 또한 변화한 셈이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세월을 보낸 공간에 쌓이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 부드러운 품성을 지니게 된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에는 지랄 같은 성격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결국 세월과 깊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군산>에서 윤영이 꿈을 꾸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일종의 예지몽 같기도 한데, 전작인 <춘몽>은 제목부터 꿈이라는 단어와 연관성을 지닌 작품이고, <경주>에서도 최현이 찻집에 앉아서 꿈을 꾸는 듯한 경험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언제부턴가 영화 속에서 꿈이라는 요소가 특별한 장치 노릇을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에는 꿈과 현실을 잘 구분한 것 같다. 어젯밤에 꾼 꿈과 오늘 아침의 행동이 잘 구분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잘 구분이 안 되는 것 같다. 내 현실이 꿈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런 생각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은데.

<군산>에서 언급되는 죽음은 모두 다 과거형이다. 지금까지의 연출작 가운데 현재 시제에서의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 첫 작품인 것 같다. 대신 주인공들이 한 번씩 살아있는 사람을 마음으로 죽이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송현은 전남편을 마음속으로 죽였다고 하고, 윤영 역시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덕분에 위트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전작들과의 차이가 느껴지는 작품 같다.
사실 그런 생각까지 해보진 않았는데 살다 보면 누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를 두고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고. 그냥 일상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만든 <경주>와 <춘몽> 그리고 <군산>까지, 그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부드러운 꿈 혹은 초현실적인 상상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이미지적으로도 보다 유려해진 느낌이고. 감독으로서 예전과 다른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른 걸 보고 싶기보단 삶이 여기까지 흘러온 덕분인 거 같다. 서울에서 6년을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 때문일 수도 있고, 공간의 질감이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을 가게 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관성 같다. 그게 더 잘 보이는 입장이니까.

2001년에 발표한 단편영화 <11세>가 첫 연출작이다. 이 작품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됐고, 그 이후로 영화감독의 삶이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 원래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소설을 썼다고 들었는데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이 적성에 맞았던 걸까?
내 감정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호기심이 생기니까 영화를 계속 찍게 되더라. 사실 처음에 찍고 싶었던 영화가 <두만강>이었다. <당시>를 찍기 전부터. 그러다가 결국 <두만강>을 찍게 됐고, 만들고 싶었던 걸 만들었으니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감독이 꿈이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연세대에서 영화과 교수를 맡아 달라고 제안하길래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해보자 싶었다. 언제나 한국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게 있어서는 할아버지의 나라니까. 그런데 영화과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항상 묻는다. 영화는 언제 찍냐고. 그런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찾아와서 영화 연출을 제안하길래 결국 <풍경>을 찍게 된 거다. 그러다가 <경주>를 찍고,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두만강> 이후로 4년 만에 발표한 <풍경>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 연출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의 일환으로 연출을 제안하길래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사실 내가 다큐를 꽤 좋아한다. 하지만 직접 찍겠다는 생각까진 못했다. 다큐는 정말 좋은 사람들만 찍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과 직접 부딪혀야 하니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궁금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한번 찍어볼까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아니었고.(웃음) 실제로 촬영을 하려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의 사장에게도 허락을 맡아야 한다. 그래서 어려웠다. 허락을 받고 찍었음에도 나중에 노동자가 불합리한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래서 원칙적으로 제대로 허락을 받지 못하면 찍지 않았다. 그런 동의를 구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연변과 중국 일대에서 영화를 촬영하다가 한국을 무대로 영화를 찍게 됐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차기작은 일본에서 촬영했다. 연변이라는 출신지로부터 점점 남하하고 있는 셈인데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영화를 찍을 날이 올까?
예측하긴 어렵다. 워낙 계획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처럼 찍었으니까. 그냥 느끼는 대로 찍고, 안되면 말아야지.

연변이라는 출신지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느끼고 있진 않은가?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에 대한 경험과 정서가 내 몸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정도다. 끊임없이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사는 거 같진 않다.

이미 <후쿠오카>라는 차기작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후쿠오카는 <군산>에서 재일교포인 민박집주인이 군산으로 넘어오기 전에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윤동주가 사망한 형무소가 있는 곳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 군산> 촬영을 마친 뒤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갑작스럽게 진행했다. 10회 차 정도의 작은 규모로 찍은 영화고, 지금은 후반 작업 중이다. 후쿠오카를 처음 간 게 한 10년 전이고 그 뒤로도 종종 갔는데 한 10년 정도 다녀보니까 이젠 그 지역의 공간들이 눈에 제법 들어온다. 내 동네 같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고 찍은 건 아니다. 일본에서 나한테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는 도시이고, 재일교포들도 많이 살고, 한국과 가깝기도 하고. <군산>의 민박집주인이 후쿠오카에서 온 사람이라고 설정한 것도 그래서고. 어떤 지역이나 공간에서 세월을 보내며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되면 거기서 영화를 찍게 되는 것 같다.

<군산>에서 윤동주 문학관이 등장하는데 처음 <군산>을 구상할 때부터 계획된 촬영지였을까?
맞다. 실은 내가 자주 다니는 공간이다. 윤동주를 생각해서 가기보단 공간이 너무 좋아서. 그쪽에 있는 언덕이 실제로 윤동주 시인이 산책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한눈에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데 이런 풍경을 보니까 큰 시인이 된 걸까 싶기도 했다.

윤동주의 시처럼 영화 역시 감독의 일상적인 시선이 반영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을 거다. 장률이라는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끝내 반영하고자 하는 풍경이란 게 있을까?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건 역시 관객의 몫인 것처럼 나는 그저 창작자로서 그저 공간의 질감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 같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는 것 같다. 워낙 계획 없이 떠돌아다니듯이 영화를 찍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냥 느끼는 대로 찍는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다가 안되면 말아야지. 결국 그 역시 내 일상일 테니까.

에디터 민 용준   사진 장성용  
허스트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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