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마음의 부자' 김성규씨의 사전 사랑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13일 11시00분    조회:532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성규

 

“숙명이라 할가…”

 

1983년 21세 때다. 중앙민족대학 조선어학과 3학년생 김성규(1962년 생)는 시간 날 때마다 훑어보는 《조선말사전(6권사전)》 속의 낯선 외래어에 점차 호기심을 갖게 되였다. 그 호기심을 해결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사전 속 외래어들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베껴보는 것.

 

무작정 베끼다 보니 어느새 3, 4천개 외래어를 접하게 됐다. 워낙 언어에 애착이 있어서 그는 그 외래어에 상응한 중국어도 알고 싶어 외래어 단어 번역을 취미삼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훗날의 사전편찬으로 이어지고 평생직업으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학교 4학년 때다. 우연 속에도 필연이 있다고 했던가? 졸업실습을 출판사에서 하게 되였고 출판 업무를 접촉하면서 외래어사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마음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출판계통이 아닌 정부기관에 배치받았다. 그러나 사전에 대한 애착은 가셔지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김성규씨는 낮에는 맡은 바 사업을 착실히 완수하는 한편 저녁시간을 리용하여 사전편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사전 편찬은 인내력과의 싸움이였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문학작품과 달리 사전 편찬은 티끌 만한 상상력도 용납할 수가 없다. 무미건조하게 기계적으로 한페지 한페지씩 쌓아가는 과정이 혹독한 마음 수련의 과정이였다. 출근시간을 제외하곤 매일 6~7시간 정도 사전편찬에 심혈을 몰부은 결과 1년 만에 원고를 마무리지었다.

 

이내 들뜬 마음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했으나 결국 ‘퇴짜’를 맞았다. 무어라 간곡하게 당부하던 편집선생의 말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공든 탑이 일조일석에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이런 헛고생을 하지 않겠다고 원고를 트렁크 속에 처박아두고 몇년 동안 필을 놓았다.

 

그런 와중에 중국과 한국간 민간래왕의 문이 차츰 열리면서 그는 신문과 간행물을 통해 다시 낯설은 외래어를 접촉하게 되였다. 마음 속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사전 편찬’이란 소망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중한 교류에 외래어사전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금 사전 편찬 작업에 뛰여들었다.

 

원고 작성에 이어 조판까지 스스로 마쳤다. 리유는 단순했다. 활자조판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모은 돈으로 ‘386 컴퓨터’ 한대를 마련하고 조판프로그램을 깐 후 직접 조판에 들어갔다. 드디여 《한중외래어사전》이 1996년 료녕민족출판사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150만자 되는 이 사전은 국내 여러 대학 조선어(한국어)학과로부터 필수 공구책으로 선정되여 각광을 받았다.

 

사전 편찬에서 행복감, 획득감을 느낀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출판사로 자리 옮겨 매일매일 사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2001년 출판사에서 사직하고 지금까지 자유작가로 지내오고 있다.

 

《한중외래어사전》을 시작으로 그는 계속해서 2000년에 《한중외래어사전(중한대조편)》, 2001년에 《영-한-중 컴퓨터용어사전》(공저), 2005년에 《뉴밀레니엄 한국어외래어사전》, 2011년에 《신편 한국어외래어사전》, 2019년에 《포켓 한국어외래어사전》 등을 펴냈으며 큰 공을 들인 《중한대사전》(공저)도 출판을 앞두고 있다.

 

 

총 천여만자에 달하는 사전들을 펴낸 그는 지금도 매일 사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휴식 삼아 텔레비죤 방송을 시청할 때도 새 단어들이 나타나면 꼭꼭 메모하군 한다. 사전이 나오는 순간에도 세상에 새로운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사전 편찬은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남자의 성공 절반은 녀자의 공로”라는 말은 김성규씨에게 너무나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모든 정력을 사전 편찬에만 쏟아붓는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아내는 소리없이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았고 짬만 나면 책상에 마주 앉아 원고를 정리해 주기도 했다. 아내의 든든한 뒤바라지가 그에게 큰 조력임이 틀림없다.

 

사전과 수십년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비록 부와 지위 등 세속적인 성공을 얻지 못했지만 그는 "후대들에게 무언가 남겨줄 수 있는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며 ‘마음의 부자’라 자칭했다.

 

료녕신문 최동승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해마다 5월에 열리는 칸 영화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망이 높은 영화제의 하나다. 레드카펫을 밟으며 등장하는 배우들의 드레스 또한 80년 력사를 가진 칸 영화제의 볼거리다. 지난해 5월 12일 열린 칸 영화제는 좀 특별했다고 말하고 싶다. 최아자 (본명 최옥)양이 조선족 인터넷스타 최초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
  • 2019-08-05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 료녕성안산경제개발구에 위치한 안산신자전자유한회사, 부지면적이 24000평방미터에 달하며 년매출액 1억2천만원을 돌파한 본 기업은 2003년에 설립하여서부터 오늘날까지 신재생에너지업계에서 굳건한 립지를 자랑하고 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과감히 창업에 뛰여들어 오...
  • 2019-08-05
  • 최동단 변강 도시에서 태어난 조선족 소설가           (흑룡강신문=하얼빈) 김련옥 기자 = 흑룡강성 동북부에는 가목사라는 조그마한 소도시가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인 하바롭스크와 비로비잔과 린접해 있는 변경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특별한 력사배경하에 항일전쟁 정신이 형성되고 계승된 곳이였...
  • 2019-08-05
  •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미용기술원 원장 한다 메구미(半田 惠)씨 인터뷰  한다 메구미(半田 惠)씨 분위기 좋은 재즈음악이 흐르는 신쥬쿠의 한 우아한 커피집에서 한다 메구미(半田 惠)씨를 처음 만났다. 차분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치는 세련된 패션, 처음 만났는데 달콤한 향기처럼 부드럽게 다가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 2019-08-03
  • [국경 70돍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14)     제1자동차공장 로일대 건설자 채동휘로인 1953년 장춘에서 제1자동차공장이 일떠선 후 3년간의 노력을 거쳐 1953년 7월 13일 드디여 우리 나라에서 생산한 첫 패 트럭이 생산선에서 내려왔다. CA10형이라고 명명한 이 트럭은 당시 쏘련의 150형 트...
  • 2019-07-31
  • 번숙근이 세운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 민족문화예술의 전파자로 상해지식청년진달래무용단의 성원들 두터운 민족문화감정을 잊지 못해 저절로 어깨춤이 흘러나오는 흥겨운 가락과 함께 신들린 듯 우아하고 절주감이 넘치는 춤사위, 거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복장에까지 눈길을 빼앗기다보면 저도 몰래 엄지손가락을...
  • 2019-07-29
  •     랑시주식유한회사 신동일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호 기자 = 중국조선족기업 가운데서 제일 처음, 중국 녀성 고급 의류 브랜드 가운데서 가장 먼저 상장한 랑시주식유한회사 신동일(47. 사진) 회장은 늘 이런 말을 한다.   “랑시는 의류 브랜드로 자기 패션문화 정립과 함께 중국문화를 계승하...
  • 2019-07-29
  • 진달래 고향에서 키운 꿈을  사쿠라 나라에서 펼쳐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부회장이며 농학박사인 최우림씨 인터뷰 최우림 박사 프로필 1984.7월 연변농학원 (지금의 연변대학농학원)졸업 1991.7월 길림농업대학 석사연구원 졸업 1995.7월 북경농업대학 (지금의 중국농업대학) 박사연구생 졸업 ...
  • 2019-07-27
  • 전임 연변대학 농학학부 김수철교수에 대한 이야기 편집자의 말: 연변대학이 올해 학교창립 70돐을 맞이했다.연변지역 최고학부로서의 연변대학은 그동안 수많은 우수한 민족인재들을 양성해 조국건설과 사회번영을 위한 사업에 적극 기여했다. 오늘날 그 인재들을 키운 연변대학의 원로 교수님들은 자랑찬 연대인들의 빛나...
  • 2019-07-26
  •          최윤갑(崔允甲),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학창시절 때의 교재들, 책장에 꽂힌 우리말 도서, 신문잡지에서 본 문장, 대학입시때 작성한 답안지...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중국 조선어 표준문법의 기틀을 마련한 선배가 바로 최윤갑 연변대학 원로교...
  • 2019-07-25
‹처음  이전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