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교원으로부터 기업가로 탈변한 강진성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7월23일 08시56분    조회:411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강진성
청도창득전자유한회사 강진성 사장.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탐방의 일환으로 만난 강진성씨(1974년생)는  지식형 기업인이였다.

고향이 길림성 교하인 강진성씨는 일찍 길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하조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박봉을 받으면서 교단에 올라서고 보니 부푼 마음도 잠간이였다. 가슴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표출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공간 앞에서 강진성은 ‘탈출’을 시도했다.

1997년 10월, 강진성은 국경휴일을 빌미로 청도에 왔다. 침대차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제남을 거쳐서 청도에 도착하니 새벽 5시였다.

그러나 그를 맞아준 건 시원한 바다바람과 생소한 얼굴들 뿐이였다.

“친구도 출근하니까 마중 나오지 못했어요. 지금처럼 자가용을 갖고 있는 시대도 아니니까 공공뻐스를 어떻게 어떻게 타고 오면 된다고 했는데 사실 막막했습니다…”

강진성은 그 순간 ‘홀로서기’가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은 것 같다고 했다. 청도에서 취직이 안되면 교단으로 되돌아가려던 생각이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명품대학교 졸업생이 직장을 찾는 일은 그리 힘든 건 아니였다. 그는 한국기업인 청도대성전자에 취직해 자재구매를 담당했다.

“1997년부터 시작해 2006년까지 줄곧 대성전자에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하고 특유의 섬세함과 신중한 성격으로 회사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은 그는 대성전자의 관리층에 근 10년 있으면서 대내외로 탄탄한 인맥을 구축했다. 날개가 굳었다고 생각하여 날려고 하였지만 그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지묵시에 사두었던 살림집까지 팔아서 창업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사장은 아무나 하나’라는 말의 깊이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강진성은 창업 초기를 돌이키며 쑥스럽게 웃었다.

회사는 답보했고 그는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힘들면 다시 찾아오라던 대성전자의 한국인 총경리가 떠올랐다. 그는 다시 대성전자의 한국인 총경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강진성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갖고 있던 한국인 총경리가 강진성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의 도움으로 강진성의 청도창득(创得)전자유한회사는 기사회생의 봄을 맞게 됐다.

“제 인생의 귀인을 말하라면 한국인 총경리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강진성씨는 한국인 총경리와의 인연은 축복이였다고 했다.

주문이 들어오고 일감이 생기자 창득전자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현재 창득전자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길리(吉利)자동차에 사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사출기계, 포장라인, 레이저인쇄 등 종합적인 시스템을 가동시켜 각종 주문을 소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TS 16949 자격증과 현대자동차로부터 SQ기술인정서를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설비에만 해도 천만원 이상 투자했다.

“지금까지는 부품 생산이 위주였습니다만 다음 단계에는 자체 브랜드 완제품 생산에 올인하렵니다.”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부회장, 청도교하향우회 명예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자기만의 뚜렷한 족적을 남겨가고 있는 강진성, 혈혈단신으로 청도에 진출하여 무에서 유를 일궈 낸 자수성가한 기업인 강진성의 인생궤적은 여전히 상승선이다.

연변일보 글·사진 허강일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img count='1' width='400' img] 200 5카이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킬로그람급에서 금메달을 딴 조선선수 계순희가 17일 오후 평양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 2005-09-21
  • 고훈(연변세기팀 감독): 오늘 경기는 아주 어렵게 이겼다. 대방팀이 방어를 견고하게 하고 수시로 역습을 노렸기에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난공불락에서 아주 내심했고 끝내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번 승리를 거둔다는것은 정말로 쉬운일이 아니다. 경기에서 위협적인 진공을 많이 했으나 안타까운것은 소...
  • 2005-09-19
  • 주 건설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오기준씨가 4만여원을 내 고향마을인 조양천진 다촌에 다리를 놓아주어 촌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양천진 다촌은 16호세대에 50여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마을인데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촌민들이 외출하려면 마을앞 개울물을 지나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
  • 2005-09-19
  •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경기를 지배하는것을 중시하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의 교과서를 철저히 적용하고있다.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사상 처음으로...
  • 2005-09-19
  •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와 투자한 외국기업이 날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사회,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 있고 서로 융합되고 있습니다. 베이징 석경산구역 영락서구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신기 세라젬 의료계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베이징 석...
  • 2005-09-18
  • [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
  • 2005-09-18
  •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이 최초로 참가한 항일활동은 1919년 룡정에서 있은 《3 13》운동이다. 이 시기 그는 초기 고려공산당활동에 참가, 《3 13》 시위자들이 들었던 태극기 대부분이 한락연이 만든것이다. 1923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은 이때로부터 반제국주의, 반봉건주...
  • 2005-09-18
  • 조선족 작가 장혜영의 저서 가 한국의 인문학계렬의 대학교재로 선정되였다. 흑룡강성 출신인 장혜영씨는 5-6년간 한국에서 장편소설 , 을 출판하였고 2002년에 인문도서 를 펼쳐내였다.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많은것들을 짬짬이 글에 담아온 소설가는 엄연한 로 변신되여 민족문화학과 사회문화학의 시각에서 한...
  • 2005-09-15
  • 조선족민속학자 천수산씨의 일가견- 1952년 9월3일에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시는 구)가설립되였다는 의미는 조선족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조선족의 민족전통을 대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그리하여 많은 유지인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순히 길림성에만 국한되...
  • 2005-09-15
  • 조선족 최군 흑룡강성 '10대걸출한 쳥년'후선인에 당선 흑룡강성 고급인민법원 민사제2재판정 재판장 최군(41세)이 흑룡강성 '10대 걸출한 청년'후선인에 당선되였다. 최군은 사업에 참가한 18년래 부지런히 사업하고 고심히 연찬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전성 법원의 심판수준제고와 량호한 경제법제환경을 조성...
  • 2005-09-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