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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라지 않는 넋으로 무지개인생 가꿔간다-전국로력모범 최인숙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8월10일 12시47분    조회: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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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사는 내내 그는 자신의 일을 더없이 사랑했으며 어려운 이웃을 가족같이 보살펴 주위사람들의 애대를 한몸에 받았다. 연길시 조양천진 승리사회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최인숙 로인, 그는 평범한 일터에서 결코 평범치 않은 성과를 이룩하면서 일찍 1985년도에 전국로력모범의 영예를 따냈다. 퇴직 후 나날에도 당원의 한결같은 가슴으로 그는 남편과 함께 마을의 혁명렬사기념비 관리공작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57년 당령의 전국로력모범
 
올해로 57년 당령을 자랑하는 최인숙 로인은 일찍 1970년대부터 개산툰진 회경문시부에서 광개공급판매합작사를 거쳐 소백화상점, 일잡상점 영업원과 개산툰 철물상점에서 과장으로 사업하였다. 공작기간 그는 남다른 지혜와 드높은 봉사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1980년대에 벌써 21만원이라는 놀라운 영업수익을 창출해내여 1985년도에 전국로력모범으로 표창받았다. 그후 조양천진에 전근하여 와서도 전례없는 18만원의 영업수익을 올려 해마다 선진으로 선정되였다.
 
손님들이 수요하는 상품들을 구입해들이느라 비오는 날이건 눈오는 날이건 가림없이 한몸 내번지며 모든 봉사정신을 공작에 쏟아부은 지난 날들, 그 고난의 길을 그는 평생의 소명처럼 뛰여왔다. 그해 전국로력모범 표창대회에서는 1000여명의 전국로력모범을 표창했는데 길림성에서 31명, 연변에서는 4명이 선정되였다. 그중 녀성은 최인숙 로인 한사람뿐이였다. 
 
그시기 현과 주, 성의 로력모범이 되였을 때보다 더 큰 압력을 느꼈던 그는 며칠간 잠까지 설쳐가면서 두가지의 향후 과제를 찾아냈다고 한다. 하나는 사회가 부여한 이 최고의 영예를 안고 사회를 위해 유감없이 더 잘 복무하는 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수여받은 전국로력메달이 영원히 색바라지 않게금 남김없이 분투하는 것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당대중국조선족녀걸≫에는 1930년부터 1990년까지 60년간의 111명 녀걸이 수록되여있는데 그중에는 <금자탑>을 제목으로 한 최인숙 로인의 사적이 기록되였던 것이다. 이책에 전임 전국정협 조남기 부주석이 직접 제사를 썼으며 전임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 주임은 머리말에서 “본 책에 수록된 이 녀걸들은 모두 우리 당과 우리 조국과 우리 인민에 무한히 충성하여 자기의 모든 힘과 지혜와 지어는 생명까지도 내바치고 일편단심 일해온 혁명가, 사업가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운명을 전 중화민족의 운명과 련계시키고 자기의 전도를 사회주의 조국의 전도와 련계시켜 함께 숨쉬며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습니다”라고 밝혔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공급을 보존하자” 최인숙 로인은 시종 이를 총방침으로 자신의 사업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실로 조련찮은 일들도 많았다. 로인이건 어린이건, 거리가 멀건 가깝건, 직위가 있건 없건 최인숙 선생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손님이던 헤아리지 않고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신용으로써 성심성의껏 일을 대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고 했던가. 그의 앞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기수부지였다고 한다. 
 
1986년, 전국로력모범에 이어 최인숙 로인은 중국공산당광개향대표대회의 선거를 거쳐 공산당룡정현제8차대표대회에 영광스럽게 참가해 특별대표로 주석단좌석에 앉게 되였다. 그 당대표회의에서 또 만장일치로 중국공산당연변조선족자치주당대표로 선거되였다. 당을 위해 어떻게 사업하고, 여생을 마감할 때까지 어떻게 영예가 색바라지 않게 지킬 것인가? 오늘도 최인숙 로인은 당원으로서 이 물음의 초심을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평생을 바쳐가며 그 답을 기록해나가고 있는 것이였다.  
 
로당원 남편과 함께 지켜온 당원 본색
 
조양천은 로혁명근거지로서 항일전쟁시기와 해방전쟁시기에 희생된 렬사들이 많은바 마을 혁명렬사비에 등록된 렬사들은 136명에 달한다.
 
1994년 조양천일잡상점에서 퇴직한 최인숙 로인. 인생 전반생은 봉사성을 위주로 농촌의 뉴대작용을 최고로 발휘해오며 자치주 로력모범, 자치주 당대표, 전국로력모범의 영예를 받으면서 치렬하고도 성취감있는 삶을 살았다면 후반생은 더욱더 당과 사회를 위한 일에 모든 정력을 바치고 싶었단다. 
 
승냥이, 곰, 호랑이 등 산짐승들이 자주 출몰해 사람을 해치던 회경일대가 바로 최인숙 로인의 고향이였으며 학생시절에는 연변유아사범에 입학했음에도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으로 자퇴를 해야만 했었다. 고향에 홀로 둔 어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컸기때문이였다. 자습하여서라도 출세를 하고 말 것이라는 다짐이 생기던 그때부터 그는 독서에 흠뻑 빠졌다. 닥치는 책들은 모조리 읽었으며 황계광, 구소운, 류호란 등 혁명영웅들의 사적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최인숙 로인에 의하면 그의 외가집안에도 항일렬사가 3명이나 계셨다고 한다. 그중 조카는 16세에 삐라를 나르다 적들에게 붙잡혀 지금의 덕신향 금곡에서 불에 타 희생되였다고 그는 뼈저리게 전했다…
 
“선렬들이 피와 목숨으로 지켜온 땅에 살며, 당원으로써 우리는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퇴직후 최인숙 로인은 30년간 남편 남세풍과 함께 자진하여 혁명렬사비 관리를 알뜰히 해왔다. 기념비 주위를 지극정성으로 가꾸어 동네사람들과 사회의 호평은 물론, 이 대오에 동참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부부는 기념비 주위 환경을 미화하기 위하여 부식토를 파다가 소나무 수십그루를 심는가 하면은 꽉지를 들고 나가서는 올라가는 길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기념비 사면에 여러 화초를 심는가 하면은 해마다 청명과 추석, 혁명렬사기념일날에는 빠짐없이 기념비 주위 잡초를 베여주고 렬사들을 추모하였다. 
 
특히 남편과 함께 벽돌 1000장을 20일간이나 나르면서 기념비주위에 보기좋게 깔아준 사연은 많은 이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이들 덕분에 기념비를 찾는 추모인원들이 깨끗한 환경속에서 추모활동을 진행할수 있게 되였다.
 
또 2010년에는 승리사회구역 철남 로년분회를 설립하여 마을의 환경미화에 앞장섰나 하면 “걱정도감”이라는 멋진 별명이 생겨날 정도로 어려운 이웃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었다. 이들은 “우리 마을은 우리가 관리하고 협회가 마을을 이끈다”를 취지로 협회 활동을 줄곧 이어왔으며 이를 에워싸고 봄이면 길가에 꽃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풀을 잡으며 기음을 매고 솎아주고 빈데는 꽃모를 옮겨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는데서 여름과 가을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여 마을은 꽃마을이 되고 잇따라 환경미화와 환경위생도 비교적 잘 되여 살 멋이 있다고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마을 전반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구석구석에 눈길을 돌리기까지, 최인숙 로인네 부부에게는 작은 일이 없었다. 하신장애 아버지와 벙어리 어머니를 둔 한 한족소년의 가난한 생활을 헤아려 그를 성시호구로 넘겨 학교를 보내주는 일을 해결해주나 하면 마을의 한 정신질환자를 동생과도 같은 사랑을 보내주며 하루 두끼 밥반찬을 날라다주며 그가 사망된후에도 유관부문을 알려 후사를 잘 처리해주기도 하였다. 또 마을의 변전소 간암환자의 입원치료를 남편과 번갈아 두달 동안이나 해준 사적은 현재까지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색바라지 않는 넋≫
 
≪색바라지 않는 넋≫은 로동자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남편 남세풍 로인이 아내의 일생을 장편실화로써 남긴 기록물 제1부의 책제목이기도 하다. 2부 ≪색바라지 않는 로력메달≫과 3부 ≪로력메달≫에서는 최인숙 로인의 전반에 거친 파란만장하면서도 보람찬 인생사와 가족사를 소박하고 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인 필치로 그려낸, 특별히 아내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돋보이는 기록물이다.
 
남세풍 로인은 1938년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진에서 출생하여 연변전업국 조양천공전소에서 퇴직했으며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형 남희풍 의 영향을 받아 책보기와 글쓰기를 사랑했으며 동불사초중시절에 처음으로 극본을 써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1964년도에 연변전업국 종업원이 된 후에도 ≪고압선≫, ≪철탑≫, ≪쌍무지개≫, ≪연기없는 굴뚝≫ 등 단편소설을 창작해냈고 민간전설 ≪두꺼비탈을 쓴 셋째사위≫, 현대이야기 ≪무덤에서 맺은 연분≫ 등 수십편의 이야기를 써냈다. 그후 조양천 공전소로 전근되여서도 그는 수십편의 작품을 련속 써냈는바 그중 아동실화 ≪소년영웅 김봉숙이야기≫는 흑룡강신문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남세풍 로인은 또 로인협회 활동실 벽에 노래 ≪공산당이 없으면 새중국이 없다≫와 ≪연변조선족자치주로인권익법조례≫를 친필서예로 한획한획 남겨 소중히 걸어뒀다. 아내는 이를 볼 때마다 문화와 문학에 조예가 깊고 자신의 공작을 평생동안 지지해준 남편에게 큰사랑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편과 큰아들 남철 역시 ‘훌륭한 아내,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최인숙 로인의 일생을 평가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부터 두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랐던 소년가장 큰아들 남철은 일찍 개산툰의 한 공장에서 탄서기로 공작하다가 자제2중학교의 조선어문교원을 거쳐 1995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입사해 보도부와 문예부 주임을 거쳤다. 가정교육의 영향을 받아 남철은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으며 그속의 지식을 하나라도 더 습득하기에 애썼다. 후에는 특히 력사에 깊은 흥미를 느끼면서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력사문화동호회를 무어 대량의 답사활동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다년간 ‘15만엔탈취사건유적지’ , ‘봉오동전투유적지’ , ‘청산리전투유적지’ 등 15차례의 답사를 조직해오면서 당의 숨결을 더한층 고양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민족해체의 현시점에서 남철은 습근평새시대사회주의 특색하의 새농촌건설의 현장을 수십회째 발로 뛰여다니면서 색다른 경력을 쌓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중국공산당 성립 100주년을 맞으면서 가까이로는 연변주, 멀리로는 내몽골과 흑룡강의 농촌기행을 진행하면서 각지역 마을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당의 소수민족정책하에서의 변강시골의 현장 취재길이, 가끔은 오지를 넘으며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쩌면 남철도 부모님의 삶에 연장선을 긋는 뜨거운 마음으로 색바라지 않는 넋의 사명감을 완성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국로력모범과 로당원이라는 영예앞에 하루를 살아도 색바라지 않는 무지개인생을 살고 싶다는 최인숙 로인, 또 그와 평생 동안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여전히 색바라지 않는 채색사진으로 주위에 울림을 전하고 있다.
 
흑룡강신문/류설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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