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룡범씨 두부장사로 경영인의 꿈 실현
'두부장사는 눈에 차지 않는 항목인데 신문에 내면 남들이 웃지 않을가요?'목단강시 목단시장에서 '방심(放心)두부방'을 경영하는 허룡범(37세)경리의 익살궂은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두부를 사느라 매대앞에 줄지어선 소비자들을 바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허룡범씨는 정리실업을 당하자 한국에 가서 호텔에서 일하면서 경영을 배우게 되였다. 3년만에 목단강에 돌아온후 2001년에는 주택단지의 자전거관리를 도맡고 소매점도 겸해 벌렸다.
아침시장에 가면 두부장사들을 볼수 있는데 특히 겨울철이면 장사가 괜찮았다.시장조사를 해보니 두부장사에 돈벌이 기회가 숨겨있었다. 그당시 맥주 한병에 1원 60전, 질좋은 두부 한모에 1원 50전이였다. 원가와 리윤을 따져보니 두부편이 훨씬 나았다.
허룡범씨는 2002년 10만원으로 두부방을 시작했다. 신문에서 한국두부기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후 두부기계를 한대 사오고 아침시장주변에다 두부방을 차렸다.
그런데 정작 일을 시작하고보니 생각과는 판 달랐다. 두부기계에 콩만 넣으며 두부가 나오려니 생각했는데 정작 나온 두부를 보면 땅땅하지 않으면 너무 물렁해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수만원을 투자한 두부기계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얼마 안되는 사이에 수천원을 밑졌다. 화가 난김에 벽돌장같은 두부를 판채로 땅에 둘러메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를 가라않히고 두부실험을 계속했다. 서슬사용은 까다롭고 서슬치는 시간도 잘 잡아야 했다. 반복적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실천한데서 독특한 두부가공비결을 터득했다. 1년이 넘도록 애쓴데서 하들하면서도 모가 선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 낼수가 있었다.
두부가공 고비를 넘자 경영방식에 머리를 썻다. 2003년 3월달에는 두부방을 번화한 목단시장으로 옮겨 앞쪽은 매대를 설치하고 안쪽에는 두부기계를 앉혀 두부가공과 판매를 련결시켰다.'방심두부'라고 큼직하게 간판을 걸고 콩제품 홍보물도 만들어 세웠다. '방심두부'를 사먹어 본 사람은 단골손님이 되였고 그들의 입을 통해 두부맛이 좋다고 한집두집 소문이 자자해 손님들이 줄을 서게 되였다.
목단시장안에 원래 두부매대가 2개 있었는데 모두 경쟁에서 물러서고야 말았다. 이상한 일이였다. '방심두부'는 한모에 2원씩 해도 소비자들이 줄을 서는데 저질두부는 한모에 1원씩 해도 잘 팔리지 않는다.
허룡범경리는 "두부장사도 비결이 있습니다. 우선 소비자에 대한 책임적인 마음가짐이지요. 심보나쁜 두부장사군들이 눈앞 리익에 눈이 어두어 신체를 해치는 석고로 두부를 가공하니 소비자들이 그런 두부를 살리가 없지요"라고 말했다. 콩선택에서 가공위생, 매대위생에 이르기 까지 탓할곳이 없다. 일군들은 개인위생을 주의하고 언제나 산뜻한 작업복을 입고나서 밝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방심두부'는 명성이 높아가며 시내는 물론 교외 농촌 지어는 외현 소비자들도 찾아온다. 두부에 이어 건두부, 콩물 등 계렬제품도 내놓았다.특히 채소가 비싼 겨울철에는 두부가 불티 나게 팔리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6명 일군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 그만큼 판매량도 늘고 수입도 늘어났다. 많이 팔릴때면 하루 콩가공량이 200킬로그램을 넘겼다.
경영이 제궤도에 들어서자 허룡범경리는 관리만 하고 구체 경영은 판매량에 따라 보수를 주는 방식으로 책임자를 선택해 맡겼다.허룡범경리는 "두부장사는 자리만 잡으면 장기적 항목입니다.두부야 대중식품으로 두부를 먹지 않은 집이 어디 있습니까? 작은 항목이라고 얏잡아볼것이 아닙니다."고 말하면서 또 다른 항목을 잡아야 되겠다며 신심가득했다.
2006/05/25 흑룡강신문 김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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