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당년의 힘장사 마동일 요즘 뭘 할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2월27일 17시38분    조회:810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당년의 힘장사로 연변을 들썽하였던 마동일씨를 찾아간 그날은 겨울치고 유난히 밝고 따뜻한 날씨였다. 전에 없이 정결한 거리량켠으로 어느새 붉은 초롱들이 줄느런히 걸려있고 길로타리가운데로 사람들에게 새해 만복을 안겨줄 《황금돼지》들이 상큼하니 지켜서서 길손들을 반긴다. 이제 곧 구정을 맞게 되는 화룡시는 벌써부터 명절기분이 짙어가며 활기로 넘쳐난다. 

《이젠 낡은터에서 이밥을 먹던 옛말입니다.》

시내 매화다방에서 자리를 같이 한 마동일씨는 그 우람한 체양과는 달리 쑥스러운 기분이다. 그는 솥뚜껑같이 큰 손으로 날렵하게 엽초를 굵게 말아문다.호함진 흰 담배연기가 세월의 자취가 남긴 그의 주름진 얼굴과 반백이 된 머리를 스쳐 위로 타래쳐오른다. 하지만, 예이제없이 걸걸한 목소리,예지로 빛나는 눈, 억센 손, 장대한 키꼴...정력과 힘이 넘쳐나는 그의 일신에서 아직도 격정시대의 그 장사의 호기를 보아낼수 있었다. 

창밖에서 문득 성급하게 설쳐대는 몇몇 조무래기들이 터쳐대는 폭죽소리가 요란스레 귀청을 때린다. 철없는 애들의 장난에 마음의 긴장이 어연간히 풀리며 자기의 동년을 떠올리는듯 마동일씨는 두툼한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짓는다. 

《저 어릴 때 완전히 개구쟁이구 장난꾸러기였습니다.》

화룡시 서성향 룡포촌의 한 농민가정에서 칠남매중 셋째 (위로 누나 둘,아래로 녀동생,남동생 셋)로 태여난 마동일은 어릴 때부터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려 공부에 뒤전이였다. 그의 마을 앞으로 푸르른 해란강이 굽이굽이 흘렀다. 그때는 해란강에 고기들도 많았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를 집구석에 팽개치고 강가와 논판을 헤매며 낚시미끼로 쓸 새끼개구리잡이에 여념이 없었다.저녁이면 낮에 잡은 미끼를 달아 해란강에 줄낚시를 늘이고 신새벽에 나가 거두면 숱한 버들치가 주렁주렁 달려 푸들거렸고 이면수 한두마리쯤도 걸려나왔다. 거기에 해란강 모래톱에서 즐기는 친구들과의 씨름판에까지 재미를 붙이다보니 숙제 한번 제대로 한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하여서부터 철이 들어 씨름, 배구, 스케트 등 여러 가지 운동에 참가하면서도 공부에 전력하여 반급에서 내내 1등, 초중 3년간 련속 최우등을 하여 졸업시 현장상까지 수상하였다.

1958년부터 크고 작은 씨름판에서 마동일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하였다.그는 선후로 향씨름대회1등,전국소수민족경기의 씨름2등,길림성국제씨름대회1등을 하였다. 그후 그는 길림성국제씨름직업대, 돈화스케트훈련반, 룡정씨름훈련반에 참가하여 전문훈련을 받기도 했다. 

1962년 가을, 연길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10돐기념운동대회가 열리였다. 당시 고중1학년생인 마동일은 화룡현청년배구대의 일원으로 이 운동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런데 집체씨름 성원이 5명이 되여야 하는데 화룡팀의 씨름선수는 겨우 3명,2명이 부족하였다. 하여 축구팀의 키퍼 한사람과 배구대의 마동일이 씨름팀에 보충되였다. 

《그때 저는  구멍막기로 준비없는 후보선수와 마찬가지였는데 언제 1등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막상 우리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당년의 씨름을 놓고 오가자 마동일씨는 애초의 어색함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저으기 흥분되여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화룡의 집체씨름은 등수에 오르지 못하였다. 개인씨름이 시작되자 의외로 림시로 씨름팀에 보충된 마동일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거침없이 준결승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그가 맞다들 선수들은 이름난 씨름군들인 황소를 17번이나 탔다는 왕청의 김창록, 룡정씨름훈련반에서 마동일을 가르치던 지도스승 지창운, 소문난 오랜 씨름군인 안도의 김봉남, 준결승 소조1등으로 올라온 훈춘의 학생씨름군...실로 만만치 않은 적수들이였다. 

소를 17마리나 탔다는 왕청의 김창록이 슬그머니 마동일에게 사정했다.

《난 이젠 48살로 이번 씨름이 졸업인데 앞길이 창창한 당신이 좀 양보해주오.》

《전 경험도 없고 기술도 약해 아바이를 이길것 같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마동일은 화룡현의 총지휘인 두현장의 눈치를 살폈다. 

《시합에 무슨 양보라는게 있는가? 화룡현 인민들앞에 어떻게 교대하겠는가? 이겨야 한다!》 

두현장의 태도는 단호했다. 

결과 마동일은 2대0으로 김창록을 이겼다. 이번에는 자기의 스승인 룡정의 40넘는 지창운과의 대결이였다.

《지창운은 나의 스승인데다가 안도 김봉남한테 졌으니 내가 져주어야 올라갈수 있지 않는가?》

마동일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첫번째판에 마동일은 로선수인 지창운의 안손치기에 넘어졌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판이 모두 락판으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마동일은 스승을 이겨야 하는가 스승한테 져야 하는가 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실수하면 안된다. 이겨야 한다! 화룡현인민들이 너를 보고있다!》

두현장의 명령같은  힘찬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세차게 쳤다.

《시합에 양보가 없다...》

드디여 용단을 내린 마동일은 다섯번째판이 시작되자 샅바를 제꺽 벗어버리고 안손치기로 들이미는 지창운의 손을 왼손으로 덥석 움켜쥐고 겨드랑이에 꽉 낀채 왼쪽으로 쓰러눕혔다.여섯번째도 같은 동작으로 불이 펄나게 대방을 꺼구러뜨렸다. 

고중 1학년생 마동일이 용약 전 주 씨름1등, 시상식에서 주덕해동지가 《동일아,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친히 황소고삐를 넘겨주고 마동일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한바퀴 돌면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답례하게 하였다. 

그후 고중을 졸업하고 연변대학 정치학부에 입학, 《문화대혁명》 때문에 1970년 뒤늦게야 대학을 졸업한 마동일은 길림성 서란광무국에 배치받았다. 거기서 마동일은 갱속에서 11년 탄광일을 하였고 나중에 광무국공회에서 사업하였다.

마동일은 우람진 체격과는 달리 성품이 너그럽고 온순하고 착하여 누구와 한번 싸운적이 없고 조직의 배치에도 불평없이 맡은바 일을 꾸준히 하였을뿐만 아니라 운동대회의 선수, 심판원, 조직자로 분주히 돌아쳐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하루일과가 끝나 저녁녘이 되면 고향 연변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부모형제가 그립고 정들은 고향산천이 그리웠다. 힘장사인 억센 사나이도 고향이 그리워 타향의 달밤에 담배와 술로 향수를 달래며 잠 못이룬 밤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고향인 연변에 돌아가 민족 교육과 체육사업을 발전시키고 싶었다. 마침 그때 사촌동생이 화룡현의 주요책임자로 있어 무난히 좋은 직장으로 전근할수 있고 자기의 타고난 재질과 우월한 배경으로 일장월취, 크게 성공할수도 있었다. 

마동일은 어느 한번 조직에 정식으로 《연변전근》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인재를 아끼고 운동을 중시하는 광무국지도부에서는 대내외에 소문 짜하고 일 잘하고 심성이 착하고 운동 잘하는 《마장군》을 놓을리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연변전근》을 접을수밖에 없었다.  

1983년 43세 나이로 마동일은 길림지구소수민족운동대회1등으로 마지막으로 씨름선수에서의 퇴진을 선포, 후로는 심판원, 조직자의 신분으로 배구, 씨름 경기에 뻔질나게 나타났다. 

《나이 들수록 더 그리워지는것이 고향입니다.천리타향에서 기차의 고동소리만 들어도,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것이 고향생각이고 부모형제 생각이였습니다. 실로 한시도 고향을 잊은적이 없었습니다.》 

락엽귀근(쭝秊백根)이란 나무잎은 꼭 나무밑둥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타향살이를 아무리 오래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것을 비겨이르는 말이다. 고향이 무엇이길래 자기가 태여난 집과 항시 기다려주던 어머니도 창살같은 세월이 흘러 이제 모두 떠났건만 억대우같은 사나이는 기어이 귀향길을 택하는것일가. 1992년 5월 정년퇴직하자바람으로 일가식솔을 거느리고 22년만에 고향 연변으로 돌아온 마동일씨는 화룡시 춘화촌에 130평방 되는 집을 짓고 부인 엄순희씨와 이미 성가한 큰아들 마문수,둘째 마문혁과 손자-3대가 한집에서 오붓하게 살면서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누리고있다. 360평방되는 정원에 포도, 앵두, 오얏, 사과 등 과일나무를 심고 여러가지 남새를 심었다.기년(耆年)에 이른 나이지만 몸에 잔병 하나 없이 건강하고 부지런한 마동일씨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쉴사이가 없었다.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새밭을 가꾸고 낮이면 자전거를 타고 해란강으로 나간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 오염이 많고 물이 줄어 강에 별로 고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가면 어김없이 몇사발은 붙잡아온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들려주는 고기잡이이야기가 구수하게 귀맛을 돋구어준다.어릴 때부터 몸에 배인 고기잡이재간이여서인지 다른 고기잡이군들이 한마리도 못잡을 때도 마동일의 투망에는 한시간이면 물고기 몇사발씩은 걸려들었다. 

때로는 친구들과 남비같은 취사도구와 술병을 들고 해란강에 가서 즐거운 여가를 보낸다는 천렵이야기를 듣노라니 저도 모르게 배속에서 꼬르륵 초기가 울어댄다. 젊어서는 50도짜리 술 3,4근을 마시기도 했다는 마동일은 지금도 하루삼시 반주가 끊기지 않는다. 홍경천같은 약재를 불군 50도짜리 약술 아니면 가을에 정원의 포도를 따서 50도짜리 배갈을 넣어만든 자작포도주를 아침 점심에는 두어냥씩, 저녁이면 석냥, 기분좋을 때는 반근내지 한근 마시기도 일쑤라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맞는 열다섯번째 설이 되는군요. 사랑하는 고향에서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단란히 모여 설명절을 쇤다는것이 얼마나 즐거운 감격입니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여집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는 마동일씨, 억대우같은 사나이는 너무나 다정다감했고 애향심이 자별하였다. 황금돼지해에 당년의 장사 마동일씨의 전원생활에 백화가 만발하고 일가에 행운이 깃들기를 축복한다.

/ 리선근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청년작곡가 박광춘 신미디음악회가 10월 28일 연변TV방송국 스튜디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박광춘이 최근년간 창작한 새로운 가요와 음악작품들을 신미디음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상은 우리것이야”“청춘스타트”“오아시스” 등 17수의 음악으로 구성되였고 열정 사랑 찬미 등 세 부분...
  • 2005-10-31
  •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
  • 2005-10-31
  • [원제:할빈시고려회관 안중근의거96주년기념좌담모임 소집] 2005년 10월 27일 10월26일 안중근의사 의거 96주년에 즈음해 할빈시고려회관은 안중근의사 기념좌담모임을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위원회 부주석이 기증한 ,이란 글발의 휘호족자 두폭을 전달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
  • 2005-10-28
  • 《퉁소마을》인 훈춘시 밀강향에서 태여나 자라 꾸준한 탁마로 중국 문화예술부상인 문화(文華)예술학원상 제2회민족악기연주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최민(25살)이다. 1993년, 훈춘시문화관에서 《퉁소마을》조성을 위해 밀강향에 퉁소 100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마을 로인...
  • 2005-10-28
  • 효자효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5세밖에 안되는 초중생이 학교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초중 2학년 4반의 류춘길학생이다. 춘길학생은 학습성적도 우수하거니와 학우간에 우애단결하고 학교 각항 제도도 모범적으로 ...
  • 2005-10-27
  •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시세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여난 연부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공대를 류학한후 로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조선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찌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
  • 2005-10-26
  • 1983년. 중국작가협회 길림성 분회 부주석, 상무위원회 위원이던 그는 베이징으로 전근한다. 이어 중국 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민족문학'주필이 된다. 그때만 해도 조선족은 북경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5년 만에 베이징 호적(시민)이 된다. '베이징 시민'은 특혜였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베이징 명예시민이 된 것이다. 등...
  • 2005-10-26
  • [원제:《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호평속에 다카쿠라켄 장예모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제18차동경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른 영화 《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는 장예모감독과 다카쿠라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개막식에서 이 작품은 세계영화인들과 일본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의 중국영화...
  • 2005-10-25
  • [원제: 중국조선족항일사 연구하는 만족당사학자-조문기] - 다련래 조선족항일사에 관한 저서, 론문 대량 발표 다년간 신빈현 당사지방사연구판공실 주임직을 담임했던 조문기(만족 57세)씨는중국조선족항일사연구에 조예가 깊어 중국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꽤 알려졌다. 조문기씨가 중국조선족항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 2005-10-25
  •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정률성선생(1914~1976)의 출생지와 관련,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한국 광주남구의회 유 순남 의원이 지난 17일 정률성선생의 호적과 화순 능주소학교 제적부, 정률성아버지 정해업씨의 토지소유대장자료 등을 토대로 정률성선생의 출생지가 화순이라고 주장하면...
  • 2005-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