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오직 한 우물만 판 조선족 사진작가 최주범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3월31일 15시01분    조회:80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예술촬영이 사치한 노동이라고 간주하면 틀린 생각이다. 한폭의 가치 있는 예술사진을 찍자면 무거운 기재를 짊어지고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정신상, 체력상의 고생을 감당해야 하는 건 물론 심산속에서 홀로 무시무시한 밤을 지새울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근 30년간의 예술촬영 생애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면 어디까지나 극한에 이르는 고생을 동반하면서 얻은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최주범 선생, 시장경제 시대인 오늘날 진짜 이해하기 힘든 “괴짜”다.

일찍 1970년대 말, 중국 동북 사범대학 예술학부 미술전업을 마치고 길림성 훈춘시 문화관에 배치 받은 뒤 자기가 전공한 미술과는 달리 촬영예술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이미 주어진 셈이었다.

그 때로부터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훈춘과 연변의 수많은 거친 산야를 넘나들며 예술촬영이란 오직 한 우물만을 파왔으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위험한 순간과 무서운 고비도 수없이 넘기군 했다.

그 중 그가 백두산 풍경촬영을 하면서 겪은 몇가지 고생담을 들어 본다.

2005년 여름의 어느 날, 그가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가의 멋진 풍경을 발견하고 천지수면쪽으로 내려가서 촬영을 다 하고 나니 자신이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가파로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일한 방법이란 천지가의 길을 따라 폭포쪽으로 걸어오는 것뿐이었다. 헌데 당시 천지의 물높이가 2미터 가량 불어나 원래의 길이 물에 잠긴 구간이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최주범 선생은 20킬로그람 정도가 되는 짐을 지고 바위를 톺으며 그 구간들을 넘기군 했다. 실로 “아차!” 하는 실수만 있어도 천지물에 떨어져 황천객이 될 번한 순간들이었다.

또 한번은 백두산 밀림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워낙 텐트안에서 자려고 하다가 당시 백두산 자연동물원의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는 소문에 온밤 자동차안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렌즈 하나라도 더 갖고 가기 위해선 음식은 아예 배낭속에 넣고 가지 않은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 백두산 등정이란 온도계가 얼어 터질 지경으로 기온이 하강, 카메라도 얼어 작동이 잘 되지 않기에 등정하면서 카메라만은 품속에 껴안고 걸어야 하는 상황, 도보로 7시간 가량 걸어서 정상에 오른 뒤면 진짜 탈진상태가 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일 힘도 없을 때도 많았었다. 하지만 좋은 풍경만 포착하면 초인간적 힘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아마 “정신력”이란 말도 나왔는가 싶다.

그외 촬영 후 귀로에 올랐다가 오토바이 바퀴가 터져 20 여리 밖의 마을에 가서 고무풀을 얻어다가 손수 바퀴를 때며 밤을 지새우던 일, 산에서 길을 잃고 온종일 굶으며 헤매다가 새벽 2~3시경에야 집으로 돌아오던 일, 이러한 고생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절승경개는 험한 봉에 있다”고 최주범 선생이 이렇듯 고생을 자청해서 한 결과 1981년 처음으로 중국의 사진전문 간행물인 「대중촬영」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무려 500 여폭의 예술사진 작품이 연변 주급 이상의 앨범,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 그 중 “그리움(懷念)” 등 22점이 국가급 및 국제 사진전시회와 콩클에 입선 및 수상했고 “독립금추(獨立金秋)” 등 16점이 길림성 사진작품 전시회에 입선 및 수상, “생태와 생명” 등 8점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진 전시회에서 금상, 은상, 동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얼음세계” 등 2점의 촬영작품이 연변 조선족자치주 최고 영예상인 “진달래 문예상”을 획득했다.

더불어 최주범 선생 본인도 중국 예술사진학회와 「중국촬영가」잡지로부터 “중국의 우수 촬영가” 칭호를 수여 받았으며 제1회 연변주 촬영가협회의 “연변 촬영가 10대 걸출인”으로 선정 받아  연변 주에서 유일한 예술사진 연구관원(정교수 직함에 해당)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최주범 선생은 다년간  “유엔관원 (훈춘)지구 고찰단”과 “중국 국가 해양국 두만강 출해 고찰”등 국가의 중대 활동에도 참여, 그 때 찍었던 역사 사진들을 중국 국가 국무원 및 성, 주, 시 해당 투자유치 사업과 소식공개회의 자료로 제공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사업 및 경제건설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2년 봄부터 8월까지의 기간, 중국 장춘 영화촬영소와 연변 TV방송국에서 공동으로 영화 “태양을 따라”를 촬영할 때 촬영팀 성원으로 훈춘, 천진, 북경, 연안, 산서 등지에서 극조 촬영에도 참가하여 그 제작이 성공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했기에 장춘 영화촬영소로부터 영화촬영사업 “기여상”을 타기도 했다.

한편 예술촬영에 종사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풍운변화로 찍으려던 작품을 성공하지 못할 때였고 가장 즐거울 때가 현상된 사진효과가 상상을 초과해 잘 나왔을 때라고 밝히는 최주범 선생, 지금도 늘 그제날에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 보면서 자아위안과 더부러 인생쾌감을 만끽한다는 그었다.

“제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은데는 촬영계의 노선배님들 및 동료들의 도움과 특히 집사람의 이해와 지지가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거둔 성과의 절반 이상을 이런 분들한테 돌리고 싶다.”

현재 최주범 선생은 50대 후반기에 접어들어 오래잖으면 환갑나이를 맞이하게 됐지만 예술촬영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털어 버릴 수가 없어한다. 아직도 자주 백두산에 오르고 싶어하고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명산들도 렌즈속에 담고 싶다고 한다.

30여년의 사업년한에 남은 건 현대 장비와는 많이 뒤떨어진 촬영장비에 숱한 사진자료들 외 거의 평범한 서민층에 불과한 선생이었지만 털끝만한 후회도 없이 살아가는 최주범 선생의 삶의 자세가 어딘가 몰래 돋보이기만 했다.

종합신문/김철균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