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해기업서 《15년 한우물 판》 최영복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7월2일 08시05분    조회:106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매하구시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한 최영복(36세)은최초의 한국가발회사의 보통일군에서 오늘은 중국 가발업계에서 서로 쟁탈하는 발군의 가발디자이너로 성장하였다.

1992년 미술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생활이 너무 구차하여 대학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매하구시 영승촌의 최영복. 그의 재능을 몹시 아끼던 중학시절의 담임교원은 최영복을 천진에 있는 한국가발업체에 추천하였다.

최영복은 성공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품고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천진시 한국가발기업을 찾아 취직하였다.

한국사장은 열심히 일하는 최영복에게 무역담당을 시켰다가 의외로 그의 미술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가발디자인개발팀에 배치하였다.

최영복은 이 기회를 극히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실무를 익혔다. 2년후 최영복은 청도의 북방가발회사의 가발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대형국영기업으로 직원이 2000명이 넘었는데 최영복이 가발디자인개발을 담당하였다.

그러다보니 전국의 여러 가발회사와 서로 련락이 통하고 세계적 가발패션과도 접촉할수 있어 최영복의 디자인실력은 괄목할만한 제고를 가져왔다.

그러자 청도에 진출한 한국가발업계에서도 부지런히 최영복을 찾아 디자인개발을 위탁했다.1998년 청도시의 가발업체인 다나산업주식회사의 한국인 사장이 소문을 듣고 최영복에게 회사의 리사대우를 주겠으니 기업을 함께 꾸리지 않겠냐고 문의해왔다.

협상끝에 최영복은 다나산업주식회사에 리사 겸 가발디자인개발실장으로 초빙되여 줄곧 그 회사와 고락을 함께 하면서 회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초창기 직원이 150명이던 회사가 지금은 500여명 직원을 두고있으며 년간 수출액은 500만딸라에 달하여 국내에서 가발업체가 비교적 집중되여있는 청도시의 10여개 규모화가발공장중 두번째로 가는 가발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영복의 손을 거쳐 개발된 200여종의 가발은 전부 미국으로 수출된다.

15년간의 각고의 노력을 거쳐 최영복은 현재 조선족 최고의 가발디자이너로, 나아가 국내 가발업계에서도 발군의 디자이너로 거듭났다.

지금 많은 가발업체에서 높은 대우로 최영복을 유혹하고있지만 최영복은 덮어놓고 《NO!》다.

그만큼 다년간 고락을 함께 해온 다나회사를 아끼고 사랑한다.

연해지역에 진출한 조선족젊은이들 가운데서 기업인, 외자기업의 중요한 관리인원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공동점은 모두 한개 기업 혹은 한개 분야에서 10여년간 한우물을 파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오늘날의 성공의 길에 오른것이다.

《다나산업주식회사에도 원래 조선족이 많았는데 3년을 견지한 조선족은 최영복씨뿐이다》고 회사 사장은 감개무량이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음악과 함께 하는 인생지휘 겸 작곡가 리하수선생에 대한 이야기《엄마 곱니 아빠 곱니/누가 누가 더 곱니/엄마 곱니 아빠 곱니/누가 누가 더 곱니/엄마 없던 날 하루종일 비빔밥만 먹었구요/아빠 없던 날 밤새도록 도깨비꿈만 꾸었대요…》독자들은 1990년대중반부터 소년아동들은 물론 성인들가운데서도 광범위하게...
  • 2009-04-20
  • “북경아가씨”의  작곡가 정원수씨일전 기자는 심양에서 조선족가수 김월녀를 한국가수계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한국작곡가 정원수씨(1960)를 만났다. 한 무명 조선족가수의 음반취입을 위해 심양을 방문한 그는 “생각외로 조선족가수들의 음악기초와 자질이 좋았다. 더 많은 조선족가수들을 한국에...
  • 2009-04-18
  • 안중근 의사를 연구하는 中조선족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서명훈 명예회장(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조선민족사업촉진회 서명훈(78) 명예회장은 조선족 사회에서 '안중근 연구 전문가'로 불린다. 서 회장은 1989년 고국을 방문해 당시 독립기념관 안춘생 관장(안중근...
  • 2009-04-18
  • 《사업과 가정 두마리 토끼 다 잡아야죠》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안겨주는 아나운서 김춘희가 6월 2일 3.4킬로그람되는 딸을 보아 행복한 엄마로 되였다.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후 고통이 몰려올 때마다 아기를 들여다보면 그 아픔이 가신듯 사라진다는 김춘희는 엄마로 된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 2009-04-17
  • 창작과 리론연구에서의 성과그리고 지도력—연변대학예술학원 부원장 리승룡씨 현대식고층건물들이 숲을 이룬 도심속에서 고색이 창연한 연변대학예술학원 미술청사는 옛모습 그대로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있다. 우리 민족의 미술력사를 차곡차곡 쌓아오며 미술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빛을 발하는 미술학부청사...
  • 2009-04-16
  • 분장예술을 꽃피워가는 사람분장예술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생소하게 생각할것이고어떤 사람은 알쏭달쏭하게 여길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미용원에서 하는 화장이나 무대화장을 떠올릴수도 있겠지만 분장은 미용원에서 하는 일반 화장보다 한차원이 더 높은 예술이다. 분장예술은 배우들을 극중인물의 성격과 모습에 맞게...
  • 2009-04-16
  • 약물부당사용 위해성 크다—연변대학부속병원 약학전문가 김영순건강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어떻게 안전하고도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약을 사용할것인가는 전 사회적으로 관심하는 열점문제이다. 세계위생조직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사망된 환자중 약 1/3이 약물부당사용으로 숨졌다. 우리 나라에도 약물...
  • 2009-04-16
  • 연기생활은 내 생명의 전부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2008년 음력설야회에서 청춘파인기배우 채용과 더불어 소품 《장모님의 소원》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각광을 받고 《채용의 가시어머니》로 소문놓은 김해란 ?지금까지의 30여년 연기생애에 100여부의 장막연극,단막극, 소품에 출연하면서 성격이 판이한 여러가지 인물형상...
  • 2009-04-15
  • ~노래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를 깔며~ 지금 들려오는 이 노래는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노래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입니다. 20세기 70년대 말에 창작된 이 노래는 약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고 있고 전국 10대 금곡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노래의 작사...
  • 2009-04-14
  •    《얼굴》 없는 성우의 외길인생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 연출 주춘복에 대한 이야기주춘복은 라지오방송이나 텔레비죤역제프로에 출연하면서 목소리로 청취자들과 가까와진 우수한 성우중의 한사람이다.꼬박 30년간 성우의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는 자칫하면 세월의 안방에 묻혀 영영 《얼굴없는 사람》...
  • 2009-04-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