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성: “다시 태여나도 축구를 하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1월26일 15시10분    조회:858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올시즌 연변팀서 가장 무서운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다.

1989년 8월 21일생, 신장 174센치, 포지션: 미드필드. 연변팀서 가장 나어린 선수다. 년초 고훈감독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선수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선수”라고 극찬하던 장담이 시즌을 경과하며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어린 나이에 비해 경기를 읽는 시야가 탁월하고 그의 발끝에서 터지는 송곳패스는 팬들에게는 무한한 즐거움을 주었고 상대 수비수들에게는 절망만 갖다 주었다.
연변팀 12번 박성선수는 축구를 위해 태여났다.

박성선수는 “축구는 자신이좋아서 시작했고 그 동안도 쭉 좋아서 해왔기때문에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과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면서 “다시 태여나도 축구를 하고싶다”고 말한다.

필자가 본 박성선수는 동그란 얼굴에 머쓱한 미소를 짓고있는 동년배친구들에 비해서 많이 성숙된 모습이였다. 아마 축구의 험난한 길을 고집하는 남아의 배짱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서 일가?

박성선수가 축구에 눈을 뜬 계기는 그의 소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성이 연길시연북소학교 1학년생이였던 그해,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을 굴리는 모습이 우연히 체육선생님이시던 최철구선생님의 시야에 안겨들었다. 이러한 연줄로 축구신동의 축구인생이 시작되였다. 박성이는 최선생님의 지도하에 학교축구팀에 몸담그고 꾸준한 훈련을 견지하면서 축구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한 토대를 착실히 닦아나갔다. 소학교졸업을 마치고 박성이는 당시 연길시 OK축구구락부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축구를 위한 첫 발자국을 대디딘 셈이다. 박성이는 어린 나이지만 또래에 비해 열심히 훈련하며 땀동이를 쏟아갔다. 박성의 이러한 모습은 곧 구락부의 책임을 맡았던 홍순구코치의 눈에 띄였다.  이어 구락부측의 주선으로 박성이는 중경력범 3선팀에서 기량을 더 련마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함께 중경행을 했던 친구들은 박성이를 포함해 도합 4명이였다. 이중 3명은 타향설음을 못이겨 중도하차했지만 박성이만은 홀로 남아 견지를 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타국에서 애면글면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견지를 하리라 결심했다.

박성이는 어릴적부터 량친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생활해왔다. 박성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그를 두고 로씨야장사길에 올랐으며 현재도 어머님만 그의 곁을 지키고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 품을 팔고있다.

고향과 먼 중경땅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애제자 박성이를 항상 주의깊게 눈여겨보아왔던 김영수코치가 그를 연변 2팀에 불러들였다. 그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실로 고마운 부름이였다. 박성이는 곁눈 한번 팔지 않고 2년반가량 연변2팀에서 차곡차곡 기량을 쌓아갔다. 올초 고훈감독의 눈에 들어 연변팀의 조선전지훈련에 합류하며 그는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조선전지훈련서의 기대이상의 활약으로 연변팀감독진의 마음을 앗아간 이 꼬맹이는 드디여 올시즌 연변팀 12번 유니폼을 입게 되는 행운아로 되였다. 시즌 초반 선발출장의 기회는 없었지만 일단 교체멤버로 투입돼서는 감독진이 만족할만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그는 점차 팀에서의 립지가 넓어지며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올시즌 그는 외적용병 김영준선배와 호흡을 맞추며 하프선의 중추역할을 해왔다. 공격진에 수송하는 패스질은 물론 공수를 조률하는 능력도 팬들의 찬탄을 받았다.

이제 박성선수는 겨우 18주세다. 고중생이 되여 교실에 앉아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가야 할 나이다. 하지만 박성선수는 자신이 선택한 축구의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된 수양과 지식은 쌓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박성이는 지금도 틈나는대로 영어와 한어 학습에는 절대 게을리 하지 않고있다.

멀지 않은 장래 우리의 기대주 박성선수가 연변축구는 물론 중국축구를 “호령”하길 기대해본다. 

◎ 프로필

출생년월일: 1989년 8월 21일생
신장: 174센치
포지션: 미드필드
배번:12번
특점: 어린 나이에 비해 경기를 읽는 시야가 넓다
소속: 연변구단서 림시 임대
애호: 음악을 즐겨 감상

리영수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매편의 기사 모두 작품처럼] 《훌륭한 기자, 편집이 되려면 우선 신문사업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사업이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문화대혁명》이전부터 신문 기자, 편집 사업을 해온 김경석선생은 신문사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자, 편집을 하기 어렵다고 력설한다. 김경석선생은 1960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
  • 2005-11-09
  • 중앙 1호문건이 시달되자 농민들의 농사열정이 크게 제고되여 왕년에 버려져있던 묶은 경작지마저 다시 부치고있다. 그런데 경작지 면적에 비해 농촌의 로력이 딸리여 농망철이 되면 모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있다. 이를 감안한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 제2조의 황명선 촌민은 대담하게 7만 5000원의 돈을 들여 종합수확기 ...
  • 2005-11-08
  • [원제: 중국 진출 선진기술 앞세워라] 중국 진출 4년만에 발을 붙였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을 갔더니 대화 첫 머리부터 “중국은 시장이 큰만큼 기회도 많지만 그래도 진출시에는 반드시 선진기술을 앞세우고 들어 와야 한다”며 총화발언을 하는 김인규사장, 그는 건축도료 전문회사인 장춘(주)코미톤건자재유한회사의 주인...
  • 2005-11-08
  • [원제: 인생은 끝없이 일하면 사는것]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란 얼마나 신고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창업의 마음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 퇴직금에 자식들마저 잘 되고있어 아무런 뒤근심이 없다 할수 있는 퇴직자가 창업에 뛰여든다면 리해를 하지...
  • 2005-11-08
  • 상해 미술 전문학교 우등졸업 한낙연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당시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은 항일이란 큰 목표 아래 국공합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낙연에게 상부로부터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것은 국민당에 위장 입당해 대외적으로는 국민당으로 활동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중국공산당당적은 비...
  • 2005-11-07
  • 10월 21일 오전,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 21촌민소조의 조장 문영금씨로부터 시동생 최동원일가에 대한 소개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정말 그들처럼 착실하게 살면 외국에 돈벌러 가려고 아득바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량수촌권복순서기도 문영금조장의 말에 동을 달았다. 《부부가 손잡고 올해 논과 밭을 5헥트를 다루고있...
  • 2005-11-07
  • [원제:12살 연변소년 리소명 하버드대학생으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꿈, 올 대학입시서 660점 6월에 있은 전국고등학교입학통일시험에서 12살밖에 안되는 연변조선족소년 리소명이 6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낸 뒤 7월 그리고 8월에 있은 2차례의 하버드대학 중국류학생선정시험에서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확보해...
  • 2005-11-07
  • [원제:비룡실업의 진로밑에 깔린 《문화감각》] 박성룡총경리의 남다른 속궁리를 적어본다 1997 년 3 월18 일에 중국광전부의 허가를 받고 길림성광전청에서 전문 국내외 위성설비판매설계설치허가증을 취득하여 설립된 길림성비룡실업유한회사(간칭)는 현재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내외위성방송설비 판매, 설계,설치, 권한...
  • 2005-11-05
  • [원제:력사를 알아야 자존심 지킨다] [img count='1' img] 20여년간 조선인혁명가들을 조사연구해온 최룡수교수를 만나 9월중순, 길림대학 조봉빈교수로부터 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가 쓴 글을 받았는데 그것은 혁명과 예술을 결합시킨 한락연의 사적을 담은 글이였다. 그 글에서 우리 민족혁명가들의 사적을 발굴하기 위해 ...
  • 2005-11-05
  • [원제: 79세로인 웅변대회에 참가해] 발표시간: 2005-11-03 오후 3:33:10 주당위 선전부 문명판공실에서 주최한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가 어제(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67세에 나는 훈춘시교육국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량조희가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전...
  • 2005-11-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