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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보배로인’ 서명훈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21일 08시28분    조회:8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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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빛 좋고 바람 좋았던 날의 저녁노을은 그날의 원숙으로서 아롱지며 붉게 타올라 사람들의 찬미를 자아낸다. 조선민족의 얼을 지키는 한길에서 인격, 지식, 경험이 원숙한 서명훈 로인의 인생 황혼이 바로 자연경관이 보여주는  석양노을의 황홀한 빛발 그대로이다.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전임 부국장 서명훈(리직, 76세)선생은 할빈시에서 우리 민족의 ‘보배로인’이라고 파다히 소문이 나고 있다.

‘보배로인’의 뿌리

서명훈 선생은 중공 당지도하의 반일구국 투쟁에 일떠난 한 농가에서(연길현) 태여나 당시 동만과 북만의 이곳 저곳으로 타향살이를 하는 역경속에서 어른들의 농사일을 도왔고 엿과 해바라기씨장사를 하며 중학공부까지 마쳤다. 그것은 어린 그에게 민족의 투쟁정신, 겨레의 불행과 고난에 대한 동정, 민족을 사랑하는 씨를 가슴에 묻어 주었다.

그는 목단강시에서 건국 전17세에 혁명사업에 참가하고 건국이 되자마자 입당하고 민족사업을 맡아 나섰다. 20세 좌우에 당과 국가 및 인민을 사랑하는것과 민족을 사랑하는것을 유기적으로 결부시키려는 자신의 사상방법을 두편의 글로 써서 당시 성신문인 ‘송강일보’에 발표했다.

그는 소수민족골간간부 양성추천을 받아 중앙민족학원 정치학부 제1기생으로, 그 직전과 그 후에는 성민족사무위원회 1등 과원으로 10여년간 순탄하게 발전했다.

‘일이란 갈래갈래 천만갈래’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1957년 10월 사업의 긴급수요로 할빈시민족사무위원회로 전근될때, 또 1962년 두 차례나 령도간부로 발탁시키려는 명단에 올랐으나 둘째 삼촌의 ‘력사문제’에 련루되여 상급 당위조직부의 심사에 걸려 ‘제한사용’이란 딱지가 붙어 계속 과원으로만 눌리여 있게되였다. 어떤 사람들이 그에게 처급이상 지도간부로 승진되지 못한것은 ‘조선족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아쉬워할때마다 그는 당의 민족정책의 현명성과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칭송하고 나서 “나는 당을 따르는 조선족이다.”라고 자신의 자부감과 긍지감을 표달했다. 한편 그는 우리 당의 력사는 그릇된것을 바로 잡아가고 완벽해지고 있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고지식하다고할만치 직심스럽게 성품이 깨끗하고 세파에 찌들지 않았다.

당 11기 3중 전회에서 봄바람이 불어 왔다.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그는 선후로 시 당위통전부 민족처 부처장, 시민족사무위원회 민족처 처장, 시민족종교사무국(원 시민족사무위원회) 부국장으로 발탁되였다.

민족사업에 충직

서명훈 선생은 1993년 ‘민족사업 40여년’’이란 영예증서를 받고 정년리직하였다. 지도간부로 되였을 때나 되기 전에나, 리직전이나 후에나 할것없이 오로지 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당의 민족사업에 중칙하였다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할빈시 교외인 성고자, 신향방과 동과수 지역에서 논농사 관개수가 부족하여 조선족농촌과 한족촌이 논물을 륜류로 관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시와 구 해당부문의 결정을 집행한것이다. 서명훈 선생은 조선족농촌을 고찰하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지역의 구체문제를 세밀하게 조사한 끝에 당지 해당부문을 찾아가 조선족촌의 수전관개에 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조선족촌은 오랜 수전농사촌이며 나라에 납부판매하는 벼수량이 한족들보다 몇배나 많을분만 아니라 벼생산에 커다란 기여가 있다고 피력하면서 이런 조선족촌과 한족촌이 륜류로 물을 관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선족촌의 벼생산에 커다란 지장을 주고있으며 종당엔 국가에 납부판매하는 벼의 량도 퍽 줄어 들고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초에서 관개수를 륜류사용하는것은 합리하지 못하다고 결론지으며 이를 개선할것을 촉구했다. 마침내 할빈시에서는 그의 건의를 존중하여 조선족촌의 논물관개를 우선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4250평방미터 되는 멋진 4층 새 교사가 일떠서고 거기에 ‘할빈시도리구 조선족소학교’, ‘할빈시조선족제1유치원’이란 간판을 눈에 띠우게 내 걸었다. 리직후 시조선민족사업촉진회 회장을 맡은 서명훈선생은 좋은 자리에 교사터를 잡아주기위해 큰 수고를 한 일을 내놓고도 교사건축 총 투자금 255만원을 조달하기 위해 시조선족사회의 성원모금과 시교육국, 도리구 정부 등 부문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그 얼마나 뛰고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른다.

그는 조선족의 직접적인 민생에 관련된 일을 챙기기로부터 체계적으로 정체적인 생활과 사업의 공간을 이룩하는 사업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 풀어 나왔다. 물론 기타 소수민족에 대한 사업에도 충직하였다.

원숙한 인생황혼

서명훈 선생은 리직한후 이렇게 생각, 실천해왔다.

‘리직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 대를 이어 세상에 내텨날 후대들을 위하여 세대적인 사명과 지성을 이어나가야 한다. 여생에 할일이 많다.’ 

조선민족사회는 호소력과 응집력이 강한 그에게 민족사회를 떠메고 가는 중임을 맡겼다. 그는 할빈시조선민족사업촉진회 회장, 시조선민족로년문화협회 명예 회장, 시조선족로년대학 고문, 중국조선족력사학회 리사 등 직책을 알심들여 수행하였다. 한편 그는 펴낸 책에서 이미 피력한것처럼 ‘민족의 지위를 찾으려고 후대들에게 민족문화와 우수한 전통을 전해주려는 마음에서 수십년간 수집, 발굴, 보관하여 온 력사자료들을 글로 정리하여 놓으므로서 조선족 리직간부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생명의 꼬리를 잡아쥐고 사료를 정리’하였다.

그는 ‘흑룡강성지’ 민족지에 조선족, ‘안중근 할빈에서 열하루’ 등 책자를 집필 출판했으며 신생도시 할빈시 100년력사와 함게 숨쉬며 걸어온 이곳 조선민족의 발자취를 력력히 보여주는 108편, 27만자의 이야기인 (력사사료사진 120장) ‘할빈시조선족100사화’(史話)를 신문에 련재한 뒤를 이어 단행본으로 펴냈다.

력사는 전설이 아니고 진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서명훈 선생은 금싸라기를 모으는 심정으로 진실한 사료를 수집하기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료정리에서 문헌, 자료에만 의거한것이 아니라 현실에 생전인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알고 잇는 구체적 력사사건과 력사인물의 활동을 조사했고  력사에 살아 있을수 있는 사람들의 실제적 체험도 중시했다. 

서명훈 선생은 이처럼 인생황혼에도 ‘강행군’하고 있다.

‘보배로인’의 겸허하고 범상한 삶

지난해 겨울철에 접어들어 할빈시안에 국내외 관광객, 더욱기 한국의 참관단과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왔다. 이에 대응하여 ‘할빈시조선족발전사’ 전시관이 할빈시조선족예술관 새 청사안 넓은 전시청에 버젖히 차려졌다.. 전시관의 ‘맺는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번에 전시한 자료는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전임 부국장 서명훈 선생이 쓴 ‘할빈조선족 100년사회’에서 발취한것이다…”

그 건관은 시 당정지도부의 지지와 시조선민족예술관의 기획하에 할빈시내 조선족의 지성인, 문화인, 10여명이 낮에 밤을 이어 일한 보람이지만 서명훈선생의 큰 기여가 없었더라면 12월 한달동안에 원만하게 성사될수 없었을것이다.

이에 앞서 당해 상반년 석달동안에 ‘안중근의사기념전’, ‘할빈조선족민속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하여 손님들을 맞이했다. 서명훈 선생은 이 사업에도 아주 큰 공헌을 기여했다.

서명훈 선생은 50년대 중반기를 이어 80년대와 90년대에 들어설때 무려 세차례나 ‘전국민족사업선진일군’, ‘전국민족단결 및 진보선진개인’으로 선정되여 각기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등 3대 수령의 최견을 받았다. 또한 리직후 ‘흑룡강성로간부선진개인’, ‘할빈시선진리직간부당원’ 증서와 메달을 받았다. 이런 일들로 하여 그에게 존경과 찬사가 날아들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가 당의 사업에서 유익한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해당 부문과 해당인원, 상급의 지지, 더우기 성과 시의 똘똘 뭉친 소전족간부들이 도와주어 실제에서 출발하여 실제문제를 해결하느라 노력했을뿐입니다.”

서명훈 선생은 할빈지 조선족려년협회의 한 분회인 ‘아리랑친목회’의 자원 입회한 일반회원이며 로년활동의 열성자이다. 그는 로년활동에서 우수한 재담과 만담도 엮어내고 함께 한담도 하고 회원들과 식사도 나누면서 로인들속에서 많이 웃고 유쾌히 보내는 범상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리직할때까지 안경을 모르던 좋은 눈을 가졌는데 나이가 들면서 ‘황반성 병변’ 이라는 불치의 눈병으로 왼쪽눈이 이미 실명하다시피 했으며 오른쪽 눈도 ‘황반병변’때문에 시력에 큰 장애를 가져다 주고 있다. 밤낮을 모르고 글을 쓰고 있는 그가 일을 좀 쉽게하게하기위해 늙으막이지만 컴퓨터를 배워 그의 글을 입력정리해주는 그의 안해가 자주 눈물이 글썽하여 좀 쉬라고 권유했고 동료와 로인협회 회원들도 이제는 우리와 함께 휴식을 위주로 하면서 푹 쉬라고 권하기도 했다.

서명훈 선생은 그러나 알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것은 하나의 숙명이라며 달관성, 락관성을 앞세워 있는 힘까지 민족의 얼을 지키는 길에서 할일이 많기 때문에 물러설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한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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