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내가 연변의 최고가수 '제비할머니'올씨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2월21일 05시07분    조회:97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한민족처럼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구정 하루 전인 6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설날큰잔치는 가무족(歌舞族)의 진면목을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조상들이 춤과 노래로 애환을 극복했듯이 재중동포들도 냉대와 차별에 의한 응어리를 풀었습니다.

저 어깨춤과 춤사위는 영락없이 오천년 넘도록 이어져 내려 온 것인데 누가 저 이들을 외국인 취급하며 강제추방 합니까? 법보다 진한 한 핏줄의 춤사위를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

뇌출혈로 쓰러진 막내딸(40·길림) 간병에 바쁜 김영자(여·69)씨는 관중석을 박차고 나와 무대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습니다. 임금체불 때문에 암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가지 못한 김희숙(여·63·흑룡강)씨는 춤사위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꼽추 할머니 차월겸(여·63)씨는 손뼉으로 동참했고, 박춘근(58·흑룡강) 중국동포악단 단장은 장구를 두드리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번 설날큰잔치는 국민은행 후원으로 진행됐습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외국인 여성노동자 및 결혼이민 여성과 자녀들을 위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의료비 1억원을 기탁하기도 했습니다.
ⓒ 조호진

(사)지구촌 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재중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7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초반엔 구경만 하던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외국인노동자들도 체조경기장이 열기로 달궈지자 춤판에 가세했습니다.

민투 꾸바다시(35·방글라데시)씨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노래와 춤을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들처럼 이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며 "저렇게 열광적으로 춤추며 노는 것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며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30분간 리사이틀 한 '제비할머니'…동포에겐 동포 가수가 최고!

구름떼 같이 몰려든 재중동포들이 제비할머니의 손이라도 한 번 잡기 위해 앞다투어 몰려 나왔습니다. 주최 측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 조호진

탈북 예술인들로 구성된 '평양민속예술단'과 나이지리아 사람 등으로 구성된 '스트롱 아프리카'(Strong Africa)의 공연도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코 일흔 일곱 살의 연변 최고가수 김인숙, 일명 '제비할머니'였습니다.

제비할머니는 출연진 명단에 없었습니다. 행사 하루 전날인 5일 이선희(목사) 지구촌 사랑나눔 부대표를 찾아와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가져온 노래테이프를 들어본 뒤, 행사 말미에 무대에 잠깐 서시라고 했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제비할머니는 행사 끝 무렵이 되도록 무대 한쪽에서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형국이어서 할머니에게 다가가 누구신가 여쭈었더니 눈웃음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연변의 가수 '제비할머니'입니다. 곧 무대에 올라갈 테니 노래 한 번 들어보시오!"

제비가 돌아왔네

푸른 하늘 헤치면서 봄편지 전하려고

지지배배 나래펴며 제비는 돌아왔네

물어보자 제비야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고향의 진달래가 보고싶어 돌아왔다네

횐구름 헤쳐오니 고향이 변했다고

지지배배 노래하며 제비는 돌아왔네

물어보자 제비야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인심좋은 고향사람 그리워서 돌아왔다네

(작사 김경련 작곡 박학림 가수 김인숙)

할머니가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에 있던 수 백 명이 "제비 할머니다!"라고 연호하면서 무대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할머니 발치까지 모여든 관중들은 손을 한 번이라도 잡으려고 앞을 다투었습니다. 일부 관중들은 '디카'와 '폰카'를 꺼내들고 할머니를 찍으려고 경쟁을 벌였고, 1천명에 이른 무대 앞 관중들은 춤사위로 대동놀이 판을 연출했습니다.

'제비가 돌아왔네'와 '강남 멋쟁이'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려던 제비할머니는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재청에 의해 30여 분 동안 리사이틀을 하고 말았습니다. 고향을 잃기 전의 그 때, 천막극장과 가설무대에서 불리던 그 가락과 노래가 이어지면서 타국의 설움과 아픔은 흥과 신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월 13일 ‘한국교회희망연대’ 주최 희망축제에 트로트 가수 주현미씨가 무대에 섰지만 이날 ‘제비할머니’ 인기에는 못 미쳤습니다. 동포들에겐 동포들의 가수가 최고인 것입니다. 이제 동포들에겐 일자리와 밥만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놀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쉰일곱에 가수된 연변 할머니 "군중을 위해 노래하다가 죽었으면…"

두 곡을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제비할머니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재청에 30분 가량 리사이틀을 하고 말았습니다.
ⓒ 조호진

13일 '제비할머니'를 만났습니다. 80-9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가리봉의 '닭장집'에서 막내딸(42)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연변의 최고 가수를 몰라보고 '닭장집 할머니'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웃 '닭장집'의 재중동포 40대 여성은 "혹시 제비할머니 아니세요?"라며 단박에 알아보더군요.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잘했는데 아바이(남편)가 남자들 손 탄다고 가수를 하지 못하게 해서 쉰일곱 노년에 가수가 됐어요. 젊었을 적에는 소학교 교원질을 했는데, 손풍금을 치면서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하면 동네 사람들이 '김 선생 노래를 듣겠다'고 교실 문 앞까지 모여들기도 했어요."

할머니는 자신을 '군중 가수'라고 했습니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가수로 훈련 받은 적도 없는데 그만 군중들의 입소문에 의해 '떴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노래 솜씨를 전해들은 연변방송국에 의해 가요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만 1등을 먹고는 그 길로 가수가 됐다는 것입니다.

62세 되던 1995년 '제비가 돌아왔네'를 부르면서 연변의 최고가수가 된 '제비할머니'. 이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당시 연변방송국 아내운서 왈(曰) "학생, 중년, 노년들 사이에 감기 마냥 노래가 퍼지고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뜬' 뒤로 북경, 청도, 길림 등 중국 각지는 물론 구소련까지 공연을 다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면 '제비할머니 나온다'고 소리치며 군중들이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비할머니'가 됐어요. 다른 가수들이 노래 부를 때는 가만히 있던 군중들이 내가 노래를 부르면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고, 사진을 찍고, 노래가 끝나면 업어주고, 하였든 인기 최고였어요!"

팔순이 멀지 않음에도 허리가 꼿꼿한 제비할머니에게 비결을 여쭈었더니 "노래를 하면 숨차지 않고 가사도 안 까먹는다"면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기쁘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하니 몸이 건강한 것 같다"며 노익장을 과시합니다.

할머니는 지난해 석달 머문 뒤 귀국했다가 올해 1월 30일 재입국했습니다. 이번에는 오래 좀 눌러 있을 작정입니다. 제비할머니에게 한국에서의 꿈을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어디가든지 춤추고 노래하길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동포들이 한국에 돈 벌러 왔다가 아주 고생이 많아서 심신이 지친 것 같습니다. 동포들의 지친 심신을 노래로 풀어주고 싶습니다. 군중 속에서 나와서 군중과 함께 한 가수이니 군중을 위해 노래하다 죽었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가리봉 '닭장집'에서 막내딸과 지내고 있는 제비할머니. 할머니의 꿈은 군중 속에서 군중을 위해 노래하는 것입니다. 곧, 동포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 조호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한국 세계음식문화연구원 남용진 기획리사 “음식문화로부터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등 많은것들이 파생됩니다. 그러므로 나라와 나라간의 교류에서 음식문화교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음식문화교류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음식문화교류로 중한우의를 다지는데 기여하겠다는 한국 세계음식문화연구...
  • 2006-07-20
  • 미주 한인 굴곡진 삶 단편작으로 풀어내 "미국 속에 사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후손들에게 알리려면 이민의 뿌리부터 알아야겠죠." 하버드, 예일 등 소위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만 해도 한국에서 유명 인사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다거나 졸업해서도 예전...
  • 2006-07-17
  • [원제:뉴질랜드 조숙현씨 "어려움 겪는 한인 위해 변호할터"] 뉴질랜드 최연소 변호사 조숙현씨 조숙현(26세)씨는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최년소 변호사가 됐다. 서울에서 태여나 소학교 6학년때 아버지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 간 조변호사는 오클랜드법대를 나와 변호사시험에 통과했다. 11일부터 4일간 열리는 '2006년 세계...
  • 2006-07-17
  • 룡정시 조양천진승리가에 거주하는 퇴직공인 한족 배전신(61세)과 퇴직교원인 조선족 최영순(60세) 두 부부는 여생을 후대교양사업에 바치고있다. 청년시절인 60년대, 화룡시농기계학교와 연변한어사범학교를 각각 졸업한 배전신과 최영순은 화룡시변강에 자리잡은 숭성진에 사업분배를 받았다. 낯선 두 청춘남녀는 자주 만...
  • 2006-07-17
  • 故김창근 초대 오클랜드한글학교장 10주기 추모식 거행 ▲ 뉴질랜드 초기 교민사회에서 2세 교육을 위해 노력하다가 별세한 故 김창근 오클랜드 한글학교 초대 교장의 영정이 추도식을 가지면서 10년만에 다시 일반에 공개되었다. 뉴질랜드 교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故 김창근 초대 오클랜드 한글학교장의 10...
  • 2006-07-17
  • 키는 195.6㎝, 특기는 먼거리던져넣기 지난 5월 말에 진행된 평양시청소년체육학교 학생롱구경기대회에서는 류달리 키가 큰 선수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 그를 자기 단위에 입단시키려는 전문체육단들의 움직임도 표면화되고있다. 큰 키에 세련된 던져넣기기술을 소유한 나어린 《거인선수》를 먼저 쟁...
  • 2006-07-13
  • 40세의 한인 여성이 후천적 장애와 각종 시련으로 점철된 삶에서 비롯된 분노를 시(詩)로 극복하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시집을 내고 오는 15일(이하 현지시간) 사인회를 갖는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라미라다에 살고 있는 김현정(40)씨. 한살때 열병을 앓은 김씨는 왼쪽 뇌에 이...
  • 2006-07-13
  • 23년만에 귀국, 한국여성 소재로 작품활동 "한국적 미 기준 세계에 심어 나가는 것 중요" 세계 한민족 여성들의 축제의 장인 2006 세계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행사에서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가장 눈에 띄는 여성이 있다. 바로 재미동포 여성 아티스티 데비 한(37)씨다. 하늘을 찌를 듯이 헤어젤로 머리를 삐쭉 세운 ...
  • 2006-07-13
  • 중국류행음악 20년 려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6SuperLive음악현장운동'이 15일 북경에서 열린다. 수석으로 등장하게 되는 록음악가수 최건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록음악은 사실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중국 록음악은 언론에만 존재할뿐 중국에는 진정한 팬이 부족하기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 2006-07-12
  • 과학탐구와 문학비평 그 평행선 달려 연변대학 교수 문학비평가 임범송 인터뷰 임범송 략력: 1934년 룡정시 백금에서 출생. 1960년 동북사범대학 중문학부 졸업. 1963년부터 현재까지 연변대학 중문학부에서 《문예학》과 《미학》을 강의. 연구생 지도교수.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국제동방시화학회 리사...
  • 2006-07-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