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함순녀 인대대표 민족문화발전 담론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3월5일 23시23분    조회:76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된 연변가무단 일급 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는 함순녀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서 두 회의와 관련해 그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기"는 기자, "함"은 함순녀 대표를 지칭합니다.) 

기: 안녕하십니까?

함: 안녕하십니까?

기: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직에 당선된것을 축하드립니다. 한편 어떤 심정일까도 궁금합니다.

함: 당연히 기쁘고 격동된 심정이지요. 제가 이번에 전국인대 대표로 된데 대해서 한편으로는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깨에 놓여진 무게를 가늠하게 되거든요.

기: 녜, 그렇겠지요. 이력서에 보면 1981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길림성의 연변가무단에서 무용예술 사업에 종사해 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공연무대를 가졌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함: 제일 인상이 깊었던것은 제가 무용무대를 그만두고 지금은 후대양성 사업에 종사하고 있거든요. 제가 2001년에 무용 서사시 "장백정"의 주연을 담당했습니다. 그때는 연꽃컵 콩클이였는데 그때 제가 38살정도 되였는데 무용 배우로 놓고 말하면 나이가 많은 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당시 주연을 담당했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제가 한편으로는 인물의 내심세계에 빠지는것은 둘째치고 거의 25년간 무용배우로 일해오면서 인제는 이 무대를 떠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제가 울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아끼는 직업이 됐는데 이걸 그만두고 교육사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는거예요. 그런데 그날 공연이 그렇게 진실하고 그렇게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날 두가지 심정을 가지고 공여에 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했습니다.

기: 가장 진실한 공연이였다고 봐야 겠네요.?

함: 그렇지요. 그런데 그때는 우리 무용계를 놓고 말하면 가장 큰 연?컵 무용콩클이거든요. 그번에 제가 여 주연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입니다.

기: 국가 일급 배우의 영예를 안고 계신데 성장과정에서 가장 용기와 신심을 얻었을때가 언제였습니까?

함: 제가 1981년도에 연변예술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무용천부도 있고 또 조건도 좋고 해서 직장에서 상해무용학교에 저를 강습을 보냈습니다. 북경해방군 예술학원에서도 공부했습니다. 이 두곳에서 저는 모두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약 1년반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와 가무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곤난이 많았습니다. 저를 인정해 주지 않는것이였습니다. 제 생각엔 선배들보다 능력도 기능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다른 사람보다 공부를 더 했으니깐요. 하지만 경험부족이라든가 등 원인으로 선배님들보다는 차이가 있었지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 있어도 저에게 주연을 주지 않고 했지요. 업무회보나 기능 시험에선 항상 일등을 하는데 왜서 저를 써주지 않느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저는 항상 자신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 기회는 한번뿐이 아니므로 꾸준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자기의 기량도 키우고 연기력도 키우느라면 아무때건 기회가 꼭 올거라는 신념을 갖고 훈련을 강화해 왔지요.

기: 그렇다면 무용예술가의 꿈은 언제부터 키우셨습니까? 가정의 영향이라도 있었습니까?

함: 가정의 영향이란 없고 하지만 제가 어린시절부터 뛰여난 무용 자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릴때 항상 춤을 추면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지요. 그리고 또 제가 소학교에 다닐때 한번은 연변가무단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게 되였습니다. 그때 무용가이신 이록순 선생님의 장고춤을 봤는데 그때 선생님의 공연이 너무나 황홀하고 해서 밤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도 커서 저런 훌륭한 무용배우가 되리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아마 무용을 배우려는 싹이 튼것 같습니다.

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인민대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많은 제의를 가지고 오셨을텐데 어떤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지요?

함: 저는 물론 문화예술사업에 종사하는 전문인원으로서 우리 민족문화에 대해서 정부로 부터 많은 중시를 돌려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제의를 갖고 왔습니다. 한 민족의 문화는 한 민족의 영혼과 혈맥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습니까? 최근 몇년간 각 민족들은 당의 정확한 영도하에서 단결하고 창업하여 사회경제 발전에서도 거대한 성과를 이루었을뿐만아니라 문예 창작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는것은 부유한 강국으로 건설하는데 근본적인 수요이고 또 사회진보를 촉진하며 조화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럴뿐만아니라 문화를 추동함으로써 인민들의 자질을 제고하고 민족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도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혁개방이래 중국을 놓고 말하면 경제발전에 많은 신경을 써왔고 또 비약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30년간의 발전을 거쳐 현재는 경제대국이라고 말할수도 있는데 여기에 병존해야 할 부분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방금 끝난 17차 당대표대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강조하지 않았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회의에 참석하면서 말하고 싶은것은 물론 정부에서 결심을 내렸으니까 중시를 하다고 믿겠지만 우리는 변방소수민족 지역인것 만큼 정부에서 문화 사업에 대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특히는 우리 변방의 소수민족 문화건설에 대해서 더 많은 투입을 해주었으면 하는 제의를 갖고 왔습니다.

기: 정치 참여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경험을 쌓거나 필요한 지식을 축적한 적은 없는지요?

함: 그런건 없습니다.

기: 전국적으로 평가하면 현재 민족예술은 비약적인 발전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 내용과 형식은 물론 창작, 공연, 홍보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운남이나 티베트, 내몽골 등지의 소수민족 예술이 특히 전국적 또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조선족 민족예술의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면?

함: 최근 년간 조선족 민족 예술은 크게 발전을 못했습니다. 특히는 다른 소수민족들과 비할때 90년대까지는 그래도 우리 연변의 예술이 앞자리에 섰거든요. 여러가지 콩클에서 수상도 하고…제가 가무단에 몸담고 있으니까 가무단의 사례를 든다면 90년대 초에 무극 "춘향전"이 문화대상을 수상했고 그리고 오페라 "아리랑"도 좋고 무용서사시 "장백정"도 좋고 "장백정" 여러가지 상을 수상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놓고 말하면 하나의 예술단체가 전국적으로 가장 권위적인 상을 세번씩이나 탄다는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때 말하면 정말 휘황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새 세기에 들어와 90년대보다 발전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전폭이 별로 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경제발전과 관계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뒤받침이 없으면 문화건설도 영향을 받는것은 사실입니다. 정부의 투자가 없으면 저희들로서는 어쩔수가 없습니다.

기: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민족예술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면?

함: 이 국면을 돌려세우려면 정부로부터 투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관련종사자들은 여기에 맞춰 자신의 자질 제고와 기량을 닦아야 합니다. 그뿐만아니라 창작인원들은 새 시기에 맞는 훌륭한 정품들을 창작해 동시에 교사들은 훌륭한 후대들을 양성해 우수한 배우들을 키워내야 하고 또 작품만 있어 공연만 하는것이 아니라 시장을 개척해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우리 민족의 예술을 자랑해야 홍보가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기: 방금 후대양성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후대 양성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

함: 후대양성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재 연변같은 상화에서는 웬만하면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 예술학부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습니다. 예술학부는 다른 학부보다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농촌학생들은 학비를 지불할수 없어서 지원을 못하는 학생들도 있는 상황에서 나라적으로 이런 학생들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준다든지 어떤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사들도 북경이나 다른 우수한 학교들에 가서 많이 배워 좋은 후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 방금 민족예술의 세계화 진출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한국이나 혹시 조선과의 교류는 이루어 지고 있습니까? 예술단체의 교류도 좋고 행사 참여도 좋고…

함: 한국 춘향제에는 많이 참가합니다.

기: 그렇다면 앞으로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함: 저는 이 몸을 무용예술에 투입해 왔고 하니까 배우는 그만 뒀지만 후대양성에 종사하고 있는데요. 저 보다도 더 훌륭한 배우들을 양성하기 싶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중국무대, 나아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대들을 양성했으면 하는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기: 하시고 싶은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구요. 다시 한번 바쁘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함: 감사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침에 일어나면 수술환자가먼저 떠오릅니다놀라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또는 설레일 때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심장속의 마음이 뛰고있기때문에 느껴지는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희로애락과 함께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기관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한시도 쉬지 않으면서 심혈관외과 전문의로서의 역할을 ...
  • 2008-07-25
  • 《인류령혼의 공정사》로서 교원의 넋은 언제나 학생들을 위한  한길로 향하고있다.  길림성 룡정시룡정중학교의 리정남교원은 농촌교육봉사 지원의 일환으로 지난학기부터 지신진 명동련합학교에 파견되여 1년간 산골학교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명동련합학교에 몸을 담은지 얼마 안되여 그는 교수설비가 비교적 ...
  • 2008-07-22
  •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연변촬영가협회의 직원으로부터 부비서장,부주석,주석을 거쳐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직을 련임한 촬영가 남룡해씨가 연해지구인 청도시에 진출한후 우리 민족을 위한 사업에 적극 투신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하고있다.지난 주일에 휴가차로 청도에 잠간 다녀온 기자는 남룡해씨와 대화...
  • 2008-07-20
  • 중국의 소수민족 춤들을 정통한 조선족무용가 장미나(28세)씨, 그는 올해 한국류학 5년만에 성균관대에서 무용박사학위를 받음으로써 무용실력에 리론까지 겸비한, 중국에서 도합 9명밖에 안되는 무용박사중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일찍 1988년 연변조선족아동예술단 가입을 시작으로 이듬해 북경인민대회당 공연, 구쏘련에서...
  • 2008-07-13
  • 농민육종가 리수철씨가 20여년간 육성한‘룡도7호',‘중국 1등쌀’로 자리매김 조선족 농민육종가 리수철(44세)가 다년간 실험전을 꾸려 육성해낸 ‘룡도7호’ 입쌀이 전국입쌀평의에서 1등 쌀로 선정됐다. 리수철씨는 80년대 중반부터 벼육종에 전념했다. “벼육종에 큰 흥취를 갖게 된것은...
  • 2008-07-11
  • 일 막을 내린 제2회 대구국제 뮤지컬페스티벌(DIMF) 폐막작 '버터플라이즈'를 본 관객들은 뮤지컬 공연에는 이례적인 '오케스트라'를 보며 즐거워했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늘 함께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음반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뮤지컬 작품으로는 처음 한국에 진출한 '버터플라이즈'는 오케스트...
  • 2008-07-11
  • 문학예술인으로의 변신을 실현하기까지 -연변가무단 부단장 박춘선에 대한 이야기박춘선이라는 본명보다는 주룡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문학예술인, 《사랑의 푸른 하늘》 등 인기가요의 가사를 써서 소문을 놓은 우수한 작사자   현재 연변가무단 업무부단장의 중임을 떠메고 실무지도,공연조직,창작평론 등으로 팽이...
  • 2008-07-09
  • 어린이들의 심령에 동심을 심어온 45년—조선족 동요동시에 한획을 그은 김득만 시인     동요동시 다산작가로 불리우는 김득만씨라 하게 되면 아마 연변은 물론 중국내 조선족 소년아독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것이다. 하기야 김득만 시인은 45년이라는 기나긴 창작생애에서 또 23년간이나 연변...
  • 2008-07-06
  • 모든이들의 아낌없는 로고로“장백의 진달래”를 창조해냈다—“장백의 진달래”의 기획 창작 련습에 얽힌 이야기6월 28일, 2008년 중국북방관광교역회 및 중국연변조선족민속문화관광박람회개막식에 이어 펼쳐진 대형집단무용 “장백의 진달래”, 그 하나하나의 화려한 장면들은 우리...
  • 2008-07-04
  • 2002년 목단강시리과장원, 2003년 목단강시문과장원, 2004년 흑룡강성문과장원에 이어 해림시조선족중학교는 또 경사가 났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고중 3학년 2반의 남홍옥학생이 659점으로 목단강시문과장원을 따낸것이다.  홍옥이는 자신의 성공비결중 하나로 자립을 꼽았다. 초중 2학년때부터 부모님들이 한국나들이...
  • 2008-07-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