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차미자씨-한족학교서 명성 떨치는 조선족녀교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3월25일 09시59분    조회:1000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아성직업교육중심 차미자부교장 사업실적

할빈시 아성직업교육중심에는 '벽돌공장'교정을 '화원식'교정으로, 학생을 '못생긴 오리에서 '고니'로 변신하게한 공신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성직업교육중심(한족학교) 200여명 교원 가운데 '우뚝' 선 조선족 부교장 차미자씨(46세) 이다.

그가 학교건설과 학생 관리에서 거둔 성과는 전국 각지에 널리 알려졌으며 여기서기서 경험과 성공비결을 소개해달라는 초청장이 날아왔다.2006년 그는 인민대회당에서 개최한 전국덕육과학연구토론회에서 자기의 경험을 소개했다.

"조선민족의 영예 떨치겠다"

그는 어려서부터 역경속일수록 의지를 굳치고 더욱 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한 성격을 가진 녀자로 자라났다.

그는 1979년 아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성직업학교(합병후 아성직업교육중심)에서 사업했다. 1998년 부교장으로 된 그는 이듬해 동북사범대학 교육관리계 심리학전업 연구생으로 합격됐으며  2005년 심리자문사 2급 증서(심리학 분야에서 국내 현재의 최고증서)을 따냈다.현재 아성에서 심리자문실도 경영하고 있다.

현재 그는 아성직업교육중심 부교장,  '중국 덕육'잡지의 통신원, 흑룡강성 직업교육학회 리사 등 직을 맡고 있다.

'벽돌공장'을 '화원식'교정로 만든 1등 공신

1997년 교정을 옮겨 금방 건설된 아성직업교육중심은 아성시 서쪽의 페기된 벽돌공장의 자리에 위치했다.학교의 동쪽은 주민들이 무져놓은 쓰레기무지, 서쪽과 북쪽은 4층건물 높이의 높은 언덕, 남쪽은  벽돌공장의 가마터,  큰 굴뚝과 갈래갈래의 깊은 도랑이였다.

학교의 환경이 너무 '억망'이여서 1년도 안되는 사이에 10여명의 교원이 사업을 그만뒀으며  신입생이 겨우 백여명밖에 안됐다.한마디로 학교가 '비상시기'에 처했다.당시 학교 교장은 차미자씨를 찾았다.한 녀자로서 '문외한'으로서 그는 8만평방미터 교정의 록화와 미화를 책임졌다.

전공이 수학인 그는 우선 설계도를 그리는것부터 배웠다.낮에는 교정의 구석구석까지 다니며 측량하고 저녁에는 설계도, 시공도를 그렸다. 8만평방미터의 교정에 그의 손이 닿지않은 곳이 없었다. 시공도가 완성되자 그는 또 시공을 책임지고 매일 13~14시간 현장에서 일군들과 보내야 했다.

석달동안 가정과 딸을  '포기'하고 해빛에 타고 바람에 그슬면서 끝내 교정미화는 완성됐다.그러나 그의 하얀 얼굴은 몇층의 겁질이 볏겨지다 못해 얼룩 반이 생겼고 까만 머리는 '북데기'로 되였다.신발도 몇컬레나 다슬어서 버렸는지 모른다.

그는 "7살인 딸애가 작문에 '나는 엄마 사랑이 모자란 아이이다'고 쓴 대목을 읽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서 "그러나 학교를 위해서 학생들을 위해서는 꼭 이렇게 해야 했다.내부터 안하면 할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은 성과를 보았다.현재 아성직업교육중심은 련속 2년 아성구 중소학교 교정미화와 록화 시합에서 1등을 따냈으며 할빈시급 록화정원 ,'화원식'교정의 본보기으로 선정되였다.옛날의 벽돌공장이 현재는 매일마다 몇백명의 주민들이 찾아와 아침단련하는 '공원'으로 탈발꿈 했다.

"절대적인 렬등생은 없다"

1999년 학교에 등록한 학생중 6%가 시험에 합격하여 진학한 학생이고 나머지 94%는 모두 '말썽거리 학생' 혹은 초중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이였다."중점고중은 우수생들의 집합이고 직업교육중심은 렬등생들의 집합이다"이는 당시 아성시 주민들이 아성직업교육중심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그는 "절대적으로 나쁜 학생도 렬등생도 없다"고 믿었다.당시 학교에 성질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장림림이라는 녀학생이 있었다.학생들과 말도 안하고 친구도 없으며 집단성이 없었다.후에 알고보니 그의 부모는  불구자로 거의 로동능력이 없으며 그의 가정은 겨울이면 석탄을 사지못해서 세식구가 한이불에 뭉쳐서 체온을 유지할 할정로 빈곤했다.

이 사연을 알게된 그는 경제적으로 뿐만아니라 심리학의 리론과 실제를 결합하여 그가 '괴팍'한 근원을 찾고 '약'을 썼다 ."차선생님, 제가 학교의 1등 장학금, 곤난학생장학금, 성급 곤난학생장학금을 탔습니다.선생님이 아니면 저의 오늘이 있을수 없습니다.선생님,고맙습니다"이 편지가 바로 현재 할빈상업대학 4학년을 다니는 장림림학생이 보내온 편지이다. 차미자씨의 27년 교육사업과정에 장림림과 같이 '못생긴 오리'가 '고니'로 변신한 제자들이 헤아릴수도 없다.

차미자씨는 "당시 우리학교 학생들은 용기와 신심이 부족했다"면서 "'사랑 나누기', '페물 회수' 등 사소한 활동을 통해 우리학교 학생들도 '우리도 사회에 공헌할수 있다.우리도 우수생으로 될수 있다'는 신심을 주었다"고 말했다.

현재 '렬등생의 집합'으로 불리우던 아성직업교육중심은  할빈시 직업도덕 선진집체 본보기학교, 흑룡강성 중점학교, 전국 교육과학연구선진단위 등 영예를  따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 대학진학률 98%, 흑룡강성 단과성적 장원이 2명이 나왔다. 

/윤선미 견습기자, 정봉길기자, 리화실 특약기자

yinshanmei_2000@163.com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길림신문 2011-11-30 안상근 김영화 기자]   《우리말 겨루기》퀴즈프로그램에 출전하여 문제를 풀고있는 석기호씨(KBS화면 캡쳐) 지난 11월28일, 한국 KBS 1TV 《우리말 겨루기》퀴즈프로그램에서 중국조선족인 석기호(출연당시 쓰지후로 출연, 47살)씨가 한국 원어민 도전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당당히 달인에까지 ...
  • 2011-12-01
  • 뒤늦게 공개하는 축구운동건장의 인생발자취   [길림신문 2011-11-28 김룡 기자] 60년대 8.1팀의 주력 윙포드─박광철 소꿉시절부터 축구인의 꿈을 무르익혀 박광철은 1936년 11월 14일 도문시교의 농민가정에서 2남1녀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다. 집안은 째지게 가난한 빈농가정이였다. 박광철이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
  • 2011-11-28
  • 원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부회장 강효삼시인의 이야기       새끼손가락보다 더 짧은 시줄에       넋이 얽매여 평생을 살아온다       그 시 몇줄에 나의 옹근 꿈이 담겨있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
  • 2011-11-28
  • 연변의 발파명수 한명구          한명구(韩明久) 프로필   한명구(남) 1953년 7월생, 공산당원   연길시역통발파공정유한책임회사 총경리   연변주정협 11기 위원회 위원   중국공정발파협회 이사(유일한 조선족)   지린성발파협회 상무이사 왕청현빈관 발파철수현장.   연변...
  • 2011-11-28
  • [인터넷료녕신문 2011-11-25 리덕권 기자]  ㅡ심양천은건축재료유한회사 계옥근씨와 계은철씨 심양천은건축재료(天恩建筑材料)유한회사는 중국재정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함브르그대학에 류학가 20여년간 독일에서 체류하다 지난 2007년에 귀국한 심양출신 계옥근씨가 조카 계은철씨와 함께 만든 회사이다. 이들은 미국...
  • 2011-11-25
  • 현 연변대학예술학원 음악학전업 성악교연실 주임 라성도의 이야기       해란강 물소리 듣고싶었소/ 선경대 진달래 보고싶었소       산기슭에 언덕에 과일동산/구름같은 사과배꽃 보고싶었소       평강벌 칠십리 설레는 벼파도/황금의 물결...
  • 2011-11-25
  • 연변작가협회 창작련락부 주임 우광훈의 이야기       최근년에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하는 행사들에서 사회를 거의 전담하고있는 소설가 우광훈씨 1970년대말에 소설 《외로운 무덤》으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후 여러부의 인기소설로 굵직한 상들을 거머쥐면서 전도유망한 청춘파소설가로 자리...
  • 2011-11-24
  • 무서운 집념으로 고체물리학연구에 평생을 바쳐   자석은 왜 서로 붙을가, 지남침은 왜 항상 남쪽을 가리키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의문들…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의문들은 삶에 부대끼며 지나온 길에 하나 둘씩 잃어버린다. 하지만 한 소년은 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에도 그의 ...
  • 2011-11-24
  • 강광문(38·사진) 교수는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최초의 조선족 출신 교수다. 경북에 뿌리를 둔 그의 조상은 일제때 중국 요령성에 건너가 길림성 매하구에 정착했다. 민족학교를 다닌 그는 중국 명문인 베이징대를 졸업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올해 초 서울대 법대 교수로 ...
  • 2011-11-2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