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영빈씨의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스토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4월17일 08시39분    조회:776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길인사복무유한회사 명인영업부를 운영하고있는 리영빈﹙43살﹚씨는 돈을 벌줄도 알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돈을 쓸줄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태여나서부터 어려운 생활을 해보지 못한 쌍둥이를 키우는 리영빈씨는 얼마전 쌍둥이를 데리고 화룡시에 있는 “사랑의 집”에 찾아가 부모곁을 떠나 살아가는 자기 또래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모사랑, 경제적어려움, 불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쌍둥이아이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뉘우침을 주려고 한 일에서 자신도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1000원을 내놓고 "사랑의 집"을 떠났다는 그이다.

2000년부터 연길시에 들어와 안정된 사업을 차린 리영빈씨는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과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창업인생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한다.

지난해 11월, 연길시 의란진 평안촌에 살고있는 한 부부가 한국으로 나가려고 하였지만 경제적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리영빈씨는 자신의 회사를 통해 이들에게 자금을 선대해준후 빠른 시일내에 출국수속을 마치고 한국에 나갈수 있게 했다.

또 한번은 왕청의 박씨성을 가진 로인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있는 아들이 안타까와 한국에 보내려 하고있지만 믿음직한 회사를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있는것을 료해한후 자신이 책임지고 모든 수속을 밟아주었으며 출국할 날자가 되자 자신의 차로 비행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남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알고 항상 도와나서는 리영빈씨가 위인이나 부자여서가 아니다. 그 역시 눈물나는 어려움과 역경 그리고 고통을 이겨가면서 남의 도움이 그립던 나날을 살아왔기때문이다.  

왕청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갖은 생활고를 겪었던 리영빈씨는 어려운 생활에서 해탈하기 위해 1993년에 로씨야장사길에 올랐다.

로씨야장사는 처음부터 걸림돌이 많았다. 할빈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이고 지고 고생스레 로씨야측 해관에 이르렀으나 퇴근시간이 되였다면서 물품을 넘겨주지 않아 이틀이고 사흘이고 해관의 차디찬 땅바닥에서 묵어야 했고 어렵게 로씨야에 넘어가서도 말을 몰라 합당한 영업지점을 찾지 못해 억울함도 많이 당했다.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당지인들의 행패에 목숨을 잃을번한 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같은 역경속에서도 억척스레 로씨야땅에 발을 붙이고 자리를 잡고 돈을 벌게 되였다.

하지만 로씨야에서의 장사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릴수도 있다. 리영빈씨는 한번의 장사로 수년간 아글타글 벌어놓은 돈을 깡그리 밀어넣고 빈털터리신세로 쓰고 살 집 한채도 없는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우선 세집부터 마련해야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남의 우사를 한달에 40원씩 주고 세를 들었다. 세상물정모르는 쌍둥이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보챘고 이들에게 변변한 간식거리도 사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처절하여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 한다.

리영빈씨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사처에서 돈을 꿔 장사길에 올랐다. 지금까지 도전과 분투를 한시도 멈춘적이 없다. 그래서 현재  연길에서 차린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있는것이다.

지금까지 불철주야로 열심히 장사를 하여 목돈을 벌었지만 그는 뇨독증에 걸리고말았다. 2003년, 북경에 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았지만 거부반응이 일어나 약을 달고 살아가는 형편이다. 일이 번거롭고 몸은 고달프지만 그의 불우이웃을 돕는 열정은 식을줄 모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것이다.

글/사진 김광석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1-22 특약기자 김경덕]  무순시제3병원 흉부외과 보통외과 리석현주임의사 무순의료계통에는 중국의 21명 의료골간사업단 일원으로 예멘공화국에 가서 의료사업을 충실히 완성한 한 나젊은 조선족의료일군이 있다. 그가 바로 무순시제3병원 흉부외과 보통외과 리석현주임의사(43세)이다.  ...
  • 2011-11-22
  • 10월중순의 하루 한 낯선 녀성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연변문공단에서 농악무를 배워줬고 연변예술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농악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변의 농악무에 관한 보도나 론문에는 우리 아버지의 업적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전화를 받은...
  • 2011-11-17
  • 올해 34세에 나는 김성규는 고객과 함께 커온 무역인이다. 길림성영길현 태생인 김성규씨는 청도에 갓 진출했을때만해도 50원으로 일주일을 살았을만큼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자존심보다 자신심이 특별히 강했던 그는 꼭 성공하고야만다는 일념으로 시장을 답사하고 대상을 선택, 그러던중 플라스틱첨가제, 캐미칼(精细化...
  • 2011-11-17
  •  [길림신문 20211-11-15 김룡 기자] —연변축구평론계 거장 최동섭부교수 소년시절부터 의 꿈을 키워 최동섭은 1933년 9월 17일(음력)에 룡정 조양천의 한 농민가정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여났다. 너나없이 가난에 실달렸던 그 시절, 최동섭가정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였다. 《가난한 집 자식이 일찍 셈이 든...
  • 2011-11-15
  • [연변일보 2011-11-14 리련화 기자 ]원 연변대학 조문학부 최상철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가한 《중국소수민족신문전파통사》가 올해 2월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인문사회과학성과상 저작류 2등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늦...
  • 2011-11-14
  • 협회경영의 새 모식을 연 김국성 회장, 협회주식제형식으로 전갈오공양식장 오픈,년 순수입 50만원을 예상 많은 협회가 회비와 협찬금에 의지해 운영되고 있을 때 협회를 산업화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 화제다. 바로 청도시성양구로인협회 김국성회장(1952년생)이다. 부대에서는 군관으로, 제대후에는 무장부...
  • 2011-11-11
  •   차철,최향란이 꾸리는 청향관 전통음식으로 청도에서  큰 인기   청도시성양구에 가면 청향관이 있다. 청향관은 연변전통음식으로 미식가들을 정복한 연변 청향관의 가맹점으로서 차철(72년생), 최향란(73년생)부부가 오픈 한 이래 솔화분 랭면 등 다양한 메뉴로 고객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을 졸...
  • 2011-11-11
  •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김시자 이사장을 만나   김시자(金時子) 프로필   1956년생   1972년 9월ㅡ1979년 영길현 삼가자향 화평초등학교 교원   1980년ㅡ1985년 창춘경제개발구 락동촌 6사 사장   1986년ㅡ1995년 창춘시춘진식품공장 공장장   1996년ㅡ2001년 창춘경제기술개발구 민속촌개장집 경리  ...
  • 2011-11-11
  •  중•한 교류 20년, 한국통 조선족 숫자 점차 증가   한국 최대 건축종합회사 동일건축에 건축사로 입사 심봉학   (흑룡강신문=선양 2011-11-10)초기 중국인의 한국 진출이 쉽지 않았던 시기에 중국에 밀려왔던 한국인 중 '중국 '이 되기를 꿈꾸던 많은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한국인의 중국 러시가...
  • 2011-11-11
  • 청도서원장학교 허룡교장 책임, 질량 봉사로 학교 운영   허룡교장은 길림성교하시실험소학교, 교하시 조선족중학교에 옹근 20년 교장 사업을 해온  길림성에서 인정해주는 교육계의 풍운인물이며 교하조선족교육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년 4월 서원장조선족학교 교장으로 부임돼 온 허룡교장은 사립...
  • 2011-1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