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영빈씨의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스토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4월17일 08시39분    조회:765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길인사복무유한회사 명인영업부를 운영하고있는 리영빈﹙43살﹚씨는 돈을 벌줄도 알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돈을 쓸줄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태여나서부터 어려운 생활을 해보지 못한 쌍둥이를 키우는 리영빈씨는 얼마전 쌍둥이를 데리고 화룡시에 있는 “사랑의 집”에 찾아가 부모곁을 떠나 살아가는 자기 또래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모사랑, 경제적어려움, 불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쌍둥이아이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뉘우침을 주려고 한 일에서 자신도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1000원을 내놓고 "사랑의 집"을 떠났다는 그이다.

2000년부터 연길시에 들어와 안정된 사업을 차린 리영빈씨는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과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창업인생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섰다 한다.

지난해 11월, 연길시 의란진 평안촌에 살고있는 한 부부가 한국으로 나가려고 하였지만 경제적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리영빈씨는 자신의 회사를 통해 이들에게 자금을 선대해준후 빠른 시일내에 출국수속을 마치고 한국에 나갈수 있게 했다.

또 한번은 왕청의 박씨성을 가진 로인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있는 아들이 안타까와 한국에 보내려 하고있지만 믿음직한 회사를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있는것을 료해한후 자신이 책임지고 모든 수속을 밟아주었으며 출국할 날자가 되자 자신의 차로 비행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남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알고 항상 도와나서는 리영빈씨가 위인이나 부자여서가 아니다. 그 역시 눈물나는 어려움과 역경 그리고 고통을 이겨가면서 남의 도움이 그립던 나날을 살아왔기때문이다.  

왕청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갖은 생활고를 겪었던 리영빈씨는 어려운 생활에서 해탈하기 위해 1993년에 로씨야장사길에 올랐다.

로씨야장사는 처음부터 걸림돌이 많았다. 할빈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이고 지고 고생스레 로씨야측 해관에 이르렀으나 퇴근시간이 되였다면서 물품을 넘겨주지 않아 이틀이고 사흘이고 해관의 차디찬 땅바닥에서 묵어야 했고 어렵게 로씨야에 넘어가서도 말을 몰라 합당한 영업지점을 찾지 못해 억울함도 많이 당했다.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당지인들의 행패에 목숨을 잃을번한 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같은 역경속에서도 억척스레 로씨야땅에 발을 붙이고 자리를 잡고 돈을 벌게 되였다.

하지만 로씨야에서의 장사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릴수도 있다. 리영빈씨는 한번의 장사로 수년간 아글타글 벌어놓은 돈을 깡그리 밀어넣고 빈털터리신세로 쓰고 살 집 한채도 없는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우선 세집부터 마련해야 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남의 우사를 한달에 40원씩 주고 세를 들었다. 세상물정모르는 쌍둥이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보챘고 이들에게 변변한 간식거리도 사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처절하여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 한다.

리영빈씨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사처에서 돈을 꿔 장사길에 올랐다. 지금까지 도전과 분투를 한시도 멈춘적이 없다. 그래서 현재  연길에서 차린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있는것이다.

지금까지 불철주야로 열심히 장사를 하여 목돈을 벌었지만 그는 뇨독증에 걸리고말았다. 2003년, 북경에 가 신장이식수술을 받았지만 거부반응이 일어나 약을 달고 살아가는 형편이다. 일이 번거롭고 몸은 고달프지만 그의 불우이웃을 돕는 열정은 식을줄 모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것이다.

글/사진 김광석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그는 평범한 소방관이였다. 하지만 화재현장에서는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식 인물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한 조선족젊은이다. 하지만 긴급구원현장에서 뜨거운 손길로 65명이나 되는 생명을 구출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량친의 사랑을 잃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하지만 장장 8년간 독거로인들을...
  • 2007-08-27
  •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한박사를 만날수 있었다. 박사이고 군병원...
  • 2007-08-16
  • 17차 당대회 대표로 선거된 조선족 리명성 ◈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글로벌화, 다국적산업합작 등에서 중요한 성과◈ 25만자에 달하는 《중국의 경제전략》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 총화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전망 제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 안아 중국기업련합...
  • 2007-08-14
  • 조선족유치원들이 어린이류실로 고심하고있는 최근년간 해림시조선족유치원은 오히려 해마다 어린이수가 늘어나 금년들어 어린이수가 240여명(올해 졸업한 70여명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1000평방미터의  새 교수청사에 갖가지 대형 놀이기구 등을 구전히 갖춘 규모화한 유치원으로, 민족의 꽃봉오리들의 요람으로 ...
  • 2007-08-14
  • 그의 매일 일과는 축구 관련사항들로 꽉 차있다.  푸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5시 반이면 벌써 애들을 이끌고 아침훈련에 나서고 오전이면 체력훈련, 기전술훈련에 그도 함께 땀동이를 쏟는다. 애들이 문화과 수업을 하는 날에는 훈련계획을 짜고 경기총화도 짓는다. 이토록 축구에 푹 빠진 사나이―그가 바로 연길시제2고...
  • 2007-08-09
  • 아르헨띠나 최대 민영방송인 《텔레페 TV》의 뉴스 앵커를 지낸 황진이(30) 씨는 동양인 녀성으로 아르헨띠나 언론계에서 쉽지 않게 성공을 거두어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있다.미국, 카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아시아계 앵커들이 주목받는것과는 달리 남미언론계에서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수 없다. 황씨는 1998년 대학졸업직...
  • 2007-08-07
  • 연변성보국제상무빌딩유한회사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연변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가로서가 아니라 우리 연변 사람으로서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잘 안다고 자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정영채회장에 대한 필자의 인상도 워낙 연변에 와 사업에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벌고 여러가지 사...
  • 2007-08-06
  •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
  • 2007-08-02
  •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재인것이다.애득백화점에는 그런 인재가 많기에 애득의 오늘과 같은 발전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며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인재인것이...
  • 2007-08-02
  • 군대는 하나의 특수집단이다. 군대는 사람을 양성하고 사람을 단련시키며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다. 군인이란 이 특수직업은 곤난을 이겨내도록 의지력을 키워주고 인생을 더 보람있고 더 알차게 보낼수 있는 토대를 닦아준다. 1969년 19세 나이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37년간 부대생활을 해온 박성진은 《군영은 강한...
  • 2007-08-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