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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이 삶의 전부이고 락인-리신자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6월4일 23시23분    조회: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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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은 저의 삶의 전부이자 또 유일한 락입니다. 저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저 제가 좋아하는 무용을 위해 혼신을 살라왔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리신자의 “수기”가운데서 옮겨온 한구절이다.그랬다. 60여년의 그의 인생행로를 펼쳐보면 무용이란 두글자를 빼고보면 정말 말그대로 바지저고리뿐이였다.

리신자(1946년 8월생. 1964년 연변예술학교 무용부 무용전공)는 1965년 5월 “선종”을 사회생활의 첫 작품으로 선보인 뒤를 이으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의 인생행로에 단조로운 무용그라프선이 그려진다.

무용 “민속혼례”,  “접시춤”, “민무”,  “원앙무”, “수건춤”, “캄춤” 등등… 부동한 사회력사적인 배경에서 세상에 고고성을 울린 무용작품들이지만 안무가의 고매한 덕성과 민족무용의 얼을 지켜 이 세상에 배달민족의 재치와 운치를 한껏 자랑하려는 리신자의 각골의 노력이 슴배인 작품들이 국내외의 무대에 쟁쟁히 떠올랐다. 그동안 그는 100여개의 무용을 수집정리창작하여 무대에 올렸는가 하면 동북 3성과 전국적인 조선족무용콩클에서 받은 국가급상만 하여도 72개, 성, 주의 금상, 은상은 그야말로 부지기수였다.

국내뿐이 아니였다. 한국, 미국, 조선, 로씨야, 카나다 등 나라에 가서도 10개 종목의 무용을 공연하여 대환영을 받은적도 한두번의 일이 아니였다.

단지 무용뿐만아니였다. 다년간의 무용안무실천과 해박한 무용리론지식은 또한 그의 수많은 저서와 론문에서도 그 향기를 물씬 풍기고있다. 《중국조선족무용창작의 오늘과 래일》,  《중국조선족무용창작의 형성과 그 특점》, 《중국의 소수민족과 조선족의 민간무용》 등 저서들과 《남이 입었던것은 싫다》, “민간무용창작실기” 등 론문들을 수십편 발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어쩐지 석연치 못한 그 무엇이 마음 한구석에 늘 앙금으로 남아있었다.국가1급 안무가의 명예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창작해낸 쟁 소리나는 무용작품들, 금후 민족무용사업의 창달에 밑거름이 될 저서와 론문들, 한 무용가의 생애에 있어서 이제 더 바랄것은 없는듯 하였다.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삶의 빈약함을 느꼈다.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해옴을 느꼈다.

“이제 내가 무얼 더 해야 하나?”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의문들이다.그것은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집착스레 마음에 와 닿았다. 변방의 이름없는 오지의 산골현소재지 훈춘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불러왔다. 각항 각업이 모두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새록새록 피여났다. 민족무용 역시 그러하였다.

당시 훈춘시가문단에서 예술실주임직을 담당하고있던 리신자에게는 이것이 바로 민족무용발전의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짚어졌다. 당해 연변예술계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리신자는 조선민족무용인재의 결핍이 너무나도 안타까왔다.  리신자에게는 진정한 민족의 무용인재를 양성해보려는 일념이 굴뚝같이 솟았다.

목표가 정해지고보니 이제 남은건 행동에 옮기는것이였다. 그러나 말이 쉽지 내밀면 맨주먹뿐인 그에게는 모든것이 시련으로 그의 앞에 들이닥쳤다. “10년 마일검(十年磨一分剑)” 이라는 고사가 바로 리신자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였다.건교자금, 학생입학, 경영관리, 학생진료 등은 리신자로 볼 때 하나하나가 모두 넘기 어려운 장벽들이였다.

남들의 경험을 배우기 위하여 그는 가녀린 몸을 추스리며 동북3성을 전전하면서 때로는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면서 눈 덮인 이름 모를 산길에서 무주고혼으로 될번할 일까지 겪으면서도 초심을 버리지 않고 학교설립에 집념하였다.

피타는 노력은 결국에는 꼭 결실을 맺게 되는 법, 10년 동안의 고심한 준비끝에 세계적인 무용예술가인 최승희선생님의 뜻을 계승한 3년제 무용전공중등전문학교인 훈춘시동아무용학교가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때는 바로 2003년 9월 3일 자치주창립 51돐을 맞는 경사스러운 날이였다. 경사에 경사가 겹치라고 택한 날이였다.

녀자 나이 57세이면 집에서 손군들이나 봐주고 남편과 자식들의 뒤치닥거리에도 겨운 나이였건만 리신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낱 사치한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13세로부터 17세 사이의 애된 소년소녀들이라 한창 심신발육의 고봉기에 처한 “햇강아지”들이였다.  학생 자체의 자질이 고르지 않았고 많은 애들은 부모가 곁에서 관리해주지 못하다보니 말그대로 “들강아지”이기도 하였다.

“무용을 배우기에 앞서 인간이 되라.” 리신자의 교수리념이였다. 고매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무용가는 그 재간이 아무리 뛰여난다 해도 결국 속된 춤쟁이로밖에 안된다는 그의 신념이였다.그는 교수의 중점을 학생들의 인격수양에 두고 여러가지 형식의 교양활동을 벌려 학교에 대한 응집력과 흡인력을 증강하고 내적감화를 받게 하였다. 하여 학생들은 점점 학교에 믿음을 붙이고 학교를 자기 집으로 여기고 수련에 고심하였다.

리신자는 학생들이 지식분야를 넓혀주고 민족무용사업을 뛰여나게 수행해나갈수 있도록 교수과목선택에도 특별이 신경을 썼다. 어학, 정치, 력사, 일본어, 컴퓨터, 음악리론, 피아노, 서예 등 과목을 설치하여 학생들의 다재능을 부추겼으며 제한된 시간에 보다 많은 지식을 장악하도록 배려를 돌렸다.

리신자는 세계 4대 무용가의 한 사람인 최승희가 창조한 “조선민족무용기본”과 발레기본을 전수하고 겸하여 라틴댄스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학생들이 직접 공연에 참가할 기회를 적극 창조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공연실천속에서 자기를 단련하게 하였다. 3년 동안 이 학교에서는 20여개 무용종목을 자체로 안무하고 공연하는 한편 국가 및 성, 주에서 조직하는 대형문예공연에 40여차례 참가하여 세인의 인기를 한몸에 끌기도 하였다.

2004년 두만강지구를 대표하여 광주중신대학 창립 40돐 경축활동에 참가하여 절찬을 받았다. 2005년 12월,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주최한 양력설문예야회에 참가하여 국가지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자치주력사상 처음으로 중앙텔레비죤방송국 문예야회공연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였다.

그들은 또 중국,   조선,  로씨야 3국 새봄맞이 친선공연임무를 원만히 수행했고 자치주 첫  “진달래절” 경축공연에 참가하여 지대한 절찬을 받았으며 연변가무단과 함께 막하비행장착공식 대형공연에 참가하였는데 경축행사에 참가하러 온 중앙지도자들은 그들의 무용표현에 절찬을 금치못하였다. 지난해에는 특별초청으로 조선평양 “4월의 봄” 국제예술축전에 참가하여 영예의 은상을 받아안았다.

수년간의 엄격한 학습훈련과 대형문예공연을 통하여 학생들의 사상문화자질과 무용수준은 현저한 향상을 가져왔다. 이 학교 첫기의 19명 졸업생은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는데 일본, 한국 류학,  연변가무단,  국가무용대학 등 좋은 진로가 트이였다. 이 학교는 련속 2년간 훈춘시우수민영학교로 평의되였으며 리신자 본인도 “10.5”로력모범으로 당선되였다.

학교의 지명도가 높아짐에 따라 운영규모도 날로 확대되여 지금은 일본, 로씨야에서도 류학하려는 지원서들이 날아들고있다. 이미 환갑나이를 넘긴 리신자건만 예술탐구의 길을 중단한적 없이 여전히 청춘의 본새로 뛰고있다.

“꽃이 곱다는것을 알기전에 꽃이 되기까지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바로 자기의 수기에  쓰다싶이 그는 시련과 고통의 몸부림속에서 피여난 봄의 천사-꽃으로 되여 백의민족의 무용이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지기를 축원하는 리신자, 그는 오늘도 민족무용의 창달에 혼신을 담고 억척스레 일해가고있다. 글/ 사진 박득룡기자

사진/채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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