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TV 간판아나운서 김춘희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6월8일 16시01분    조회:696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엄마로 된 김춘희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사업과 가정 두마리 토끼 다 잡아야죠》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안겨주는 아나운서 김춘희가 6월 2일 3.4킬로그람되는
 딸을 보아 행복한 엄마로 되였다.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후 고통이 몰려올 때
마다 아기를 들여다보면 그 아픔이 가신듯 사라진다는 김춘희는 엄마로 된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너무 행복하다. 아직은 이른 욕심일지라도 앞으로 나의 일
을 계승했으면 좋겠고 나아가서 더욱 훌륭한 아나운서로 되였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 소중한 딸

2003년, 26살나던 해 김춘희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호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우연히 신랑의 친구로 결혼식에 참석한 김호씨와
면목을 익히여 2년간 사랑을 키워온 김춘희는 《김호씨의 남자답게 시원시원
한 성격이 내마음을 사로잡았다》면서 《고향이 같은 화룡이지만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게 연분이 아닌가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갓 결혼했을 때에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하고싶은 사업을 하는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여 2세계획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일욕심이 많은 김춘희를 두고
남편 또한 아이에 대한 말을 입밖에 꺼낸적이 없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자연
스럽게 임신을 하게 되여 그들 부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런데 2개
월만에 검진을 받던중 태아에게 태심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부득이
실패의 고배를 맛볼수밖에 없었던 김춘희는 작년 재차 임신되였을 때에는 각
별히 몸관리에 신경을 썼다. 건강뿐만아니라 음악, 독서, 산책, 십자수 등
태교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남편 김호씨 또한 날마다 아침운동후이면 안해
가 즐겨먹는 남새를 사다가 손수 아침상을 보아주면서 극진히 돌봐주었다.
귀여운 딸애는 행복한 가정에 더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사업때문에 늘
 바삐 보내는 김호씨지만은 날마다 짬만 나면 병실에 딸애보러 달려오군 한
다. 그래서 김춘희는 《딸애한테만 관심을 보이고 산모에게는 문안도 없어
한쪽으로 밀려난것 같다》며 롱담을 하고나서 《이전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아기를 바랐는지 이제야 알것 같다. 남편의 깊은 마음이 헤아려진다
》고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였다.
아기한테 모유를 먹이며 엄마사랑을 다 쏟는 김춘희는 사업과 함께 가정도
중시하는 가정형이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나운서들이 사회생활
이 많을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실 아나운서들은 집을
떠난 대부분 시간을 방송실, 스튜디오에서 보낸다》며 《아나운서들도 일반
출근족과 마찬가지이다》고 밝혔다. 또  《주부로 되여 살림을 하는것도 신
나는 일》이라면서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내비치였다. 

   어릴 때 꿈은 바이올린수

이쁜 얼굴, 화사한 웃음, 맛갈스러운 사회로 연변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안
고있는 김춘희의 아나운서경력도 어언 15년이 다가온다. 천진한 고중1학년생
 풋내기아나운서로부터 이젠 어엿한 인기아나운서로 훌쩍 성장해온 김춘희아
나운서, 그의 동년시절 꿈은 무엇이였을가?
1978년 화룡에서 3남매중 막내둥이로 태여난 김춘희에게는 우로 각각 10년,
8년 년상인 오빠와 언니가 있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응석받이 김춘
희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처음에는 유치원의 바이올린으로 시작했
는데 소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께서 바이올린을 선물해주셨다. 당시 화룡시
TV방송국 기술과에 근무중인 아버지는 한달에 50원의 로임을 받았다. 적은
로임으로 세 자녀를 키우면서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막내딸에
게 바이올린을 사주고싶었던 아버지는 차비가 아까와서 자전거를 타고 화룡
 투도로부터 연길에 와서 48원을 주고 바이올린을 샀다. 바이올린을 사고나
니 2원이 딸랑 남은 아버지는 점심을 거른채 다시 자전거를 타고 화룡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지만 바이올린을 안고 좋
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딸애를 보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던 아버지이다.
그때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던 김춘희의 꿈은 당연히 최
고의 바이올린수가 되는것이였다.

풋내기아나운서가 인기아나운서로

줄곧 하나의 꿈을 향해 달리던 김춘희한테서 아나운서꿈이 싹튼것은 바로 고
중입학을 앞둔 여름방학때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초중을 졸업한 딸에게 방학
간 아나운서양성학원에 다닐것을 권유했고 서방흥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
으면서 그녀한테는 새로운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튼 싹에 단비가 내렸다. 그해 12월 화룡TV방송국에서 아나운서
공개모집을 하였고 김춘희는 온 가족의 지지하에 시험을 보았는데 우수한 성
적으로 합격되여 아나운서삶을 시작하게 되였다.
김춘희는 《처음에는 꼭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했지만 일을 하면서 무한한 매력을 느꼈다》고 회상하였다.
1994년 12월 고중 1학년 재교생이였던 김춘희는 그토록 흠모해오던 아나운서
로 되였다. 학생으로부터 직장인으로 된 그녀는 새로운 환경속에서 힘들기도
 하였지만 부푸는 가슴을 안고 하늘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희망을 향해 부지
런히 노력의 돛대를 저었다.
《나는 실로 행운아인것 같다. 화룡시TV방송국에 출근한지 4년만에 뜻하지
않게 연변TV방송국의 아나운서로 발탁되는 기회가 왔다.》
김춘희는 자신의 타고난 재질과 피타는 노력의 성과로 의례히 이루어진 사업
전근을 겸손하게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1998년에 연변TV방송국으로 전근하여 김춘희는 청소년제작부에서 선후로  《
우리네 동산》, 《황금렬차》프로그램의 사회에 이어  《청춘스타트》프로그
램사회를 맡았다.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대상하는 넓은 무대로 옮긴만큼 곤
난도 많았다. 화룡TV방송국에 있을 때에는 자신한테 신심도 많고 만족도 되
였지만 연변TV방송국에 와서야 자신이 청소년부의 기대치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자기절로 보아도 남들한테 한창 뒤진 느낌이여서
 눈물을 흘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더구나 처음으로 집을 떠난 그녀는 아
무도 의지할데 없다는 생각에 설음이 북받치군 하였다. 그러나 아나운서사업
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사랑한 김춘희는 난관을 하나하나 이겨나가면서 허심
히 배우고 부지런히 뛰였고 여가시간에는 독서에 몰두하면서 자기를 충실히
 하였다. 1999년도에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5년이란 본과과정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차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수 있었고 프로사회현장의 분위기도 조화
롭게 조절할수 있었다.
김춘희는 선후로 북경방송학원, 한국KBS방송국에 가서 연수도 하고 대학본과
 과정까지 마치면서 부단히 자신을 가꾸어온 보람으로 《청춘스타트》프로그
램사회에 이어 뉴스, 《종합문예》, 《문예광장》, 연변위성방송의 《세상은
 요지경》, 《사랑으로 가는 길》  등 여러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으며 당당
한 인기스타로 부상하였다.

기억에 남는 방송뒤이야기

그동안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중 청소년 법
제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만났던 연길로동교양소의 한 청소년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방송을 계기로 알게 됐지만 오래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편지덕분에
그가 모범수로 수감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니 무척 보람있는 일이였다.》
또 8년째 진행하고있는 《사랑으로 가는 길》때문에 많이 울기도 했다. 그녀
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장학
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인데 가슴아픈 사연이 많아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고 털어놓고나서 《그러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당당히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첫 로임을 〈사랑으로 가는 길〉제작진에 부쳐와 감사
함을 전달하고 불우학생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면 일한 보람이 느껴진다
》며 자랑스레 말하였다.
그렇다. 거의 해마다 성 아나운서, 사회자 프로평의에서 1등상을 받은것은
물론 전주10대아나운서 사회자, 전주최우수사회자 등 크고작은 영예를 수없
이 받았지만 영예보다는 자신이 진행한 프로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
거나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춘희는 《
일하면 일할수록 부족점이 더 느껴지기에 보다 발전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춘희는 《15년간 프로진행을 해왔기에 시청자들은 내가 해온 프로가 많다
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더없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 지금 해온것
보다 앞으로 해야 할 프로가 참 많다. 뉴스는 물론 토크쇼(   目)같은 프
로도 진행하고싶다》며 앞으로의 타산을 밝혔다.
그녀가 앞으로도 매력적인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편안한 방송을 전하는 모습
을 기대하며 꾸준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 
최설화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그는 평범한 소방관이였다. 하지만 화재현장에서는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식 인물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한 조선족젊은이다. 하지만 긴급구원현장에서 뜨거운 손길로 65명이나 되는 생명을 구출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량친의 사랑을 잃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하지만 장장 8년간 독거로인들을...
  • 2007-08-27
  •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한박사를 만날수 있었다. 박사이고 군병원...
  • 2007-08-16
  • 17차 당대회 대표로 선거된 조선족 리명성 ◈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글로벌화, 다국적산업합작 등에서 중요한 성과◈ 25만자에 달하는 《중국의 경제전략》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 총화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전망 제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 안아 중국기업련합...
  • 2007-08-14
  • 조선족유치원들이 어린이류실로 고심하고있는 최근년간 해림시조선족유치원은 오히려 해마다 어린이수가 늘어나 금년들어 어린이수가 240여명(올해 졸업한 70여명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1000평방미터의  새 교수청사에 갖가지 대형 놀이기구 등을 구전히 갖춘 규모화한 유치원으로, 민족의 꽃봉오리들의 요람으로 ...
  • 2007-08-14
  • 그의 매일 일과는 축구 관련사항들로 꽉 차있다.  푸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5시 반이면 벌써 애들을 이끌고 아침훈련에 나서고 오전이면 체력훈련, 기전술훈련에 그도 함께 땀동이를 쏟는다. 애들이 문화과 수업을 하는 날에는 훈련계획을 짜고 경기총화도 짓는다. 이토록 축구에 푹 빠진 사나이―그가 바로 연길시제2고...
  • 2007-08-09
  • 아르헨띠나 최대 민영방송인 《텔레페 TV》의 뉴스 앵커를 지낸 황진이(30) 씨는 동양인 녀성으로 아르헨띠나 언론계에서 쉽지 않게 성공을 거두어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있다.미국, 카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아시아계 앵커들이 주목받는것과는 달리 남미언론계에서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수 없다. 황씨는 1998년 대학졸업직...
  • 2007-08-07
  • 연변성보국제상무빌딩유한회사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연변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가로서가 아니라 우리 연변 사람으로서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잘 안다고 자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정영채회장에 대한 필자의 인상도 워낙 연변에 와 사업에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벌고 여러가지 사...
  • 2007-08-06
  •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
  • 2007-08-02
  •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재인것이다.애득백화점에는 그런 인재가 많기에 애득의 오늘과 같은 발전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며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인재인것이...
  • 2007-08-02
  • 군대는 하나의 특수집단이다. 군대는 사람을 양성하고 사람을 단련시키며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다. 군인이란 이 특수직업은 곤난을 이겨내도록 의지력을 키워주고 인생을 더 보람있고 더 알차게 보낼수 있는 토대를 닦아준다. 1969년 19세 나이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37년간 부대생활을 해온 박성진은 《군영은 강한...
  • 2007-08-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