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TV 간판아나운서 김춘희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6월8일 16시01분    조회:70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엄마로 된 김춘희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사업과 가정 두마리 토끼 다 잡아야죠》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안겨주는 아나운서 김춘희가 6월 2일 3.4킬로그람되는
 딸을 보아 행복한 엄마로 되였다.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후 고통이 몰려올 때
마다 아기를 들여다보면 그 아픔이 가신듯 사라진다는 김춘희는 엄마로 된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너무 행복하다. 아직은 이른 욕심일지라도 앞으로 나의 일
을 계승했으면 좋겠고 나아가서 더욱 훌륭한 아나운서로 되였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 소중한 딸

2003년, 26살나던 해 김춘희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호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우연히 신랑의 친구로 결혼식에 참석한 김호씨와
면목을 익히여 2년간 사랑을 키워온 김춘희는 《김호씨의 남자답게 시원시원
한 성격이 내마음을 사로잡았다》면서 《고향이 같은 화룡이지만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게 연분이 아닌가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갓 결혼했을 때에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하고싶은 사업을 하는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여 2세계획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일욕심이 많은 김춘희를 두고
남편 또한 아이에 대한 말을 입밖에 꺼낸적이 없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자연
스럽게 임신을 하게 되여 그들 부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런데 2개
월만에 검진을 받던중 태아에게 태심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부득이
실패의 고배를 맛볼수밖에 없었던 김춘희는 작년 재차 임신되였을 때에는 각
별히 몸관리에 신경을 썼다. 건강뿐만아니라 음악, 독서, 산책, 십자수 등
태교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남편 김호씨 또한 날마다 아침운동후이면 안해
가 즐겨먹는 남새를 사다가 손수 아침상을 보아주면서 극진히 돌봐주었다.
귀여운 딸애는 행복한 가정에 더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사업때문에 늘
 바삐 보내는 김호씨지만은 날마다 짬만 나면 병실에 딸애보러 달려오군 한
다. 그래서 김춘희는 《딸애한테만 관심을 보이고 산모에게는 문안도 없어
한쪽으로 밀려난것 같다》며 롱담을 하고나서 《이전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아기를 바랐는지 이제야 알것 같다. 남편의 깊은 마음이 헤아려진다
》고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였다.
아기한테 모유를 먹이며 엄마사랑을 다 쏟는 김춘희는 사업과 함께 가정도
중시하는 가정형이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나운서들이 사회생활
이 많을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실 아나운서들은 집을
떠난 대부분 시간을 방송실, 스튜디오에서 보낸다》며 《아나운서들도 일반
출근족과 마찬가지이다》고 밝혔다. 또  《주부로 되여 살림을 하는것도 신
나는 일》이라면서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내비치였다. 

   어릴 때 꿈은 바이올린수

이쁜 얼굴, 화사한 웃음, 맛갈스러운 사회로 연변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안
고있는 김춘희의 아나운서경력도 어언 15년이 다가온다. 천진한 고중1학년생
 풋내기아나운서로부터 이젠 어엿한 인기아나운서로 훌쩍 성장해온 김춘희아
나운서, 그의 동년시절 꿈은 무엇이였을가?
1978년 화룡에서 3남매중 막내둥이로 태여난 김춘희에게는 우로 각각 10년,
8년 년상인 오빠와 언니가 있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응석받이 김춘
희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처음에는 유치원의 바이올린으로 시작했
는데 소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께서 바이올린을 선물해주셨다. 당시 화룡시
TV방송국 기술과에 근무중인 아버지는 한달에 50원의 로임을 받았다. 적은
로임으로 세 자녀를 키우면서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막내딸에
게 바이올린을 사주고싶었던 아버지는 차비가 아까와서 자전거를 타고 화룡
 투도로부터 연길에 와서 48원을 주고 바이올린을 샀다. 바이올린을 사고나
니 2원이 딸랑 남은 아버지는 점심을 거른채 다시 자전거를 타고 화룡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지만 바이올린을 안고 좋
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딸애를 보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던 아버지이다.
그때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던 김춘희의 꿈은 당연히 최
고의 바이올린수가 되는것이였다.

풋내기아나운서가 인기아나운서로

줄곧 하나의 꿈을 향해 달리던 김춘희한테서 아나운서꿈이 싹튼것은 바로 고
중입학을 앞둔 여름방학때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초중을 졸업한 딸에게 방학
간 아나운서양성학원에 다닐것을 권유했고 서방흥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
으면서 그녀한테는 새로운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튼 싹에 단비가 내렸다. 그해 12월 화룡TV방송국에서 아나운서
공개모집을 하였고 김춘희는 온 가족의 지지하에 시험을 보았는데 우수한 성
적으로 합격되여 아나운서삶을 시작하게 되였다.
김춘희는 《처음에는 꼭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했지만 일을 하면서 무한한 매력을 느꼈다》고 회상하였다.
1994년 12월 고중 1학년 재교생이였던 김춘희는 그토록 흠모해오던 아나운서
로 되였다. 학생으로부터 직장인으로 된 그녀는 새로운 환경속에서 힘들기도
 하였지만 부푸는 가슴을 안고 하늘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희망을 향해 부지
런히 노력의 돛대를 저었다.
《나는 실로 행운아인것 같다. 화룡시TV방송국에 출근한지 4년만에 뜻하지
않게 연변TV방송국의 아나운서로 발탁되는 기회가 왔다.》
김춘희는 자신의 타고난 재질과 피타는 노력의 성과로 의례히 이루어진 사업
전근을 겸손하게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1998년에 연변TV방송국으로 전근하여 김춘희는 청소년제작부에서 선후로  《
우리네 동산》, 《황금렬차》프로그램의 사회에 이어  《청춘스타트》프로그
램사회를 맡았다.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대상하는 넓은 무대로 옮긴만큼 곤
난도 많았다. 화룡TV방송국에 있을 때에는 자신한테 신심도 많고 만족도 되
였지만 연변TV방송국에 와서야 자신이 청소년부의 기대치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자기절로 보아도 남들한테 한창 뒤진 느낌이여서
 눈물을 흘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더구나 처음으로 집을 떠난 그녀는 아
무도 의지할데 없다는 생각에 설음이 북받치군 하였다. 그러나 아나운서사업
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사랑한 김춘희는 난관을 하나하나 이겨나가면서 허심
히 배우고 부지런히 뛰였고 여가시간에는 독서에 몰두하면서 자기를 충실히
 하였다. 1999년도에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5년이란 본과과정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차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수 있었고 프로사회현장의 분위기도 조화
롭게 조절할수 있었다.
김춘희는 선후로 북경방송학원, 한국KBS방송국에 가서 연수도 하고 대학본과
 과정까지 마치면서 부단히 자신을 가꾸어온 보람으로 《청춘스타트》프로그
램사회에 이어 뉴스, 《종합문예》, 《문예광장》, 연변위성방송의 《세상은
 요지경》, 《사랑으로 가는 길》  등 여러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으며 당당
한 인기스타로 부상하였다.

기억에 남는 방송뒤이야기

그동안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중 청소년 법
제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만났던 연길로동교양소의 한 청소년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방송을 계기로 알게 됐지만 오래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편지덕분에
그가 모범수로 수감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니 무척 보람있는 일이였다.》
또 8년째 진행하고있는 《사랑으로 가는 길》때문에 많이 울기도 했다. 그녀
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장학
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인데 가슴아픈 사연이 많아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
》고 털어놓고나서 《그러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당당히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첫 로임을 〈사랑으로 가는 길〉제작진에 부쳐와 감사
함을 전달하고 불우학생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면 일한 보람이 느껴진다
》며 자랑스레 말하였다.
그렇다. 거의 해마다 성 아나운서, 사회자 프로평의에서 1등상을 받은것은
물론 전주10대아나운서 사회자, 전주최우수사회자 등 크고작은 영예를 수없
이 받았지만 영예보다는 자신이 진행한 프로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
거나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춘희는 《
일하면 일할수록 부족점이 더 느껴지기에 보다 발전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춘희는 《15년간 프로진행을 해왔기에 시청자들은 내가 해온 프로가 많다
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더없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 지금 해온것
보다 앞으로 해야 할 프로가 참 많다. 뉴스는 물론 토크쇼(   目)같은 프
로도 진행하고싶다》며 앞으로의 타산을 밝혔다.
그녀가 앞으로도 매력적인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편안한 방송을 전하는 모습
을 기대하며 꾸준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 
최설화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하원의원직 포함 주의원 3선 기록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주(州) 상원의원에 오른 입양인 출신 신호범(71.미국명 폴 신)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재선에 사실상 성공했다. 13일 미주 한국일보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인 신 의원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후보등록 1차 마감이었던 지난달 28일에 이어 2차 마감시한인 지난 ...
  • 2006-08-14
  • 미국 오리건주에서도 한국계 여성 판사가 탄생했다. 미주 한국일보는 13일 테드 쿨롱가스키 오리건주 주지사의 발표를 인용해 유율리(42.미국명 율리 임 유) 현 오리건주 법무부 수석검사를 공석중인 멀트노마 카운티 지법 판사로 임명했다고 전했다. 한국계 어머니와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유 판사는 보스턴의 ...
  • 2006-08-14
  • 길림시 고신개발구 박화병원 김숙원장은 1983년 연변의학원 약학부를 졸업하고 2000년 10월, 건축면적 1068평방메터, 2층건물로된 길림시 유일한 조선족병원을 설립하였다. 초창기 병원은 직원 18명, 환자침대 18개, 내과, 외과, 산부인과로 개설되였지만 수술실이 없었다. 12월 병원의 규모에 따라 면적을 746평방메터를 증...
  • 2006-08-14
  • 해외서적 배달해주는 사이트, 조용한 재즈바 열어 어엿한 ‘사장님’ “좋은 아이템, 꾸준한 노력, 폭넓은 인간관계가 성공의 열쇠” “한국에서는 4000원 하는 책을 운송업체를 통해서 받아보니 2만 4000원을 내야 하던데요?” 지난주 중국 북경에서 만난 대외경제무역대학(경무대) 졸업생 한국석 씨와 같은 대학 경영학과...
  • 2006-08-14
  • 웰링턴 경찰청 정혜인씨 "영어 못해 억울한 일 당하는 교민 도울 터" 지난달 22일 월링턴 인근의 경찰대학(Royal New Zealand Police College)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정혜인씨가 경찰에 지원할 것을 권유한 친구 어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가 기사 거리가 되나요? 전 그냥 지극히 평범한 한 명의 경찰일 뿐인데...
  • 2006-08-11
  • ——— -목단강시 '새서울불고기'음식점 계렬업체 총경리 채옥씨의 경영담 여기에 농촌처녀가 도시총각과 결혼하여 무직장의 압력에 못이겨 경영에 손을 댔다가 재미를 붙이고 무도장, 음식점, 노래방, 다방, 민박,미용원 등에 손을 대며 성공일로를 내달아온 이야기가 있다. 채옥(44세), 고중을 마치고 고향...
  • 2006-08-11
  • 암세포 발생원인 연구 논문 제1저자 윤상철씨 최근 한인 2세 대학생이 주도한 연구팀의 논문이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돼 화제가 되고 있다. 필라 다운타운에 소재한 토마스 제퍼슨 의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윤철상 씨(24세, 영어명 앤드류 윤)가 그 주인공. 그가 제1저자로 참여한 연구 논문 'Impaired Control of IRE...
  • 2006-08-10
  • 《나의 조국방문은 불의에 대한 저항》 조국을 방문한 로목사는 십자가를 짊어진 구도자의 모습이였다. 조선이 자위적국방력의 강화를 위한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미싸일을 발사한 7월5일, 니이가다항으로는 《만경봉-92》호가 들어와있었다. 이날 일본당국은 일련의 대북조선제재조치를 발동, 《만경봉-92》호의 입항이 금지...
  • 2006-08-09
  • ― 《카리스마》 황정혜경리를 만나서 《장사를 함에 있어서 성실함이 밑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에서 항상 이를 고집한다는 《카리스마》 넘치는 한 녀인을 만났다. 황정혜녀사이다. 신발전문가게를 운영하는 녀사장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얻는다는것이 바로 잃는다는것이라고. 신발소재에 대하여서는 절대 ...
  • 2006-08-09
  • ——— 중화로인문화교류협회 리성순 부비서장의 사적 7월하순 흑룡강성 목단강시 로동자문화궁에서 진행된 중국 최초 조선족민속타악기 초청경연에는 흑룡강성은 물론 연변, 길림, 료녕 천진, 북경 등 조선족집거지역들에서 대표팀들이 다채로운 종목을 무대에 올려 관중들을 매료했다.북경에서는 문화부 소...
  • 2006-08-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