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라치환-'동양인 첫 세계빙속 우승'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1월19일 10시39분    조회:1059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1963년 2월24일 일본 나가노(長野)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열린 제56회 세계빙속선수권대회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1천500m 종목에서 소련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쟁쟁한 유럽 선수들을 제치고 동양인이 우승을 차지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던 것.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빙속의 벽'을 무너뜨린 주인공은 바로 중국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재중동포 라치환(羅致煥.67)씨였다.

한민족으로서 세계무대를 첫 제패한 라씨의 존재는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일뿐이다. 배기태 선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87년 네덜란드 세계빙속선수권대회 500m종목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24년이나 먼저 세계 정상에 오른 라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하얼빈(哈爾賓)체육학원 구내의 낡은 아파트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라씨에게서 과거의 화려함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100㎡ 남짓한 그리 넓지 않은 아파트, 소박하게 장식된 응접실 벽면을 채운 상장과 상패, 사진만이 화려했던 그의 과거를 말해주는 물증들이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룬(海倫)에서 태어난 라씨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빙상에 입문했다. 1학년 학생이었지만 3학년 학생도 넘보지 못할 만큼 금방 천부적 소질을 나타냈다.

1957년 치치하얼(齊齊哈爾)체육학원에 입학, 빙상 선수로서 본격 훈련에 돌입한 그는 1959년 하얼빈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회 빙속 1천500m에서 2위를 차지, 이듬해 2월 오성홍기를 달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빙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19세였던 라씨에게 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500m 15위, 1천500m 29위, 5천m 22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혹독한 세계무대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그는 62년 2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00m 5위와 1천500m 4위 등을 기록, 48명 참가 선수 가운데 개인종합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세계 수준과 격차를 좁혔다.

63년은 빙상선수로서 화려한 전성기를 맞은 해였다. 그해 2월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노르웨이 선수를 따돌리고 1천500m에서 마침내 1위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같은 대회에서 500m와 5천m에서도 각각 2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어 일약 세계 빙상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유럽 선수들의 독무대였던 세계대회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게다가 조선인 출신의 라씨가 우승했다는 사실은 일본인에게도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줬다. 지금도 가루이자와에 가면 당시 우승자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라씨는 자신이 우승을 차지한 직후 축하선물로 사과상자를 들고 숙소까지 찾아왔던 재일동포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라씨는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신문에서 제 기사를 보고 찾아온 분들이 '왜 조선사람이 중국을 대표해서 나왔느냐'고 물었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중국 빙상계는 한때 재중동포들이 주도했다. 정홍도, 임세준, 박달화 등이 50년대 중국 빙상계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이었고, 60년대 들어서도 60년 대회에 자신과 함께 출전한 이태권씨(현재 작고), 61년 대회(노르웨이 오슬로)에 참가한 김미옥과 최순자 선수와 이창섭 코치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동양인 첫 세계빙상대회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문화대혁명의 광풍에서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핀란드 세계대회에서 한때 같은 빙상팀에서 활동하다 북한으로 건너간 뒤 북한 대표로 출전한 과거의 동료선수를 접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트집을 잡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들어선 후에야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1984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35주년을 맞아 '가장 걸출한 운동원'으로 선정됐고 1988년에는 '신중국체육개척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1994년에는 건국 45주년을 맞아 '45명의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라씨는 1997년에는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고비를 겪기도 했다.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금으로 된 세계대회 우승메달까지 팔려고 생각했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과거 동료와 체육계 인사 등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1998년 35년 만에 다시 나가노를 방문, 동계올림픽 성화주자로 참가했다.

그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던 기간 한국의 빙상코치 및 선수들과도 인연을 쌓았다. 국제대회에서 만난 한국 대표팀 코치 및 선수와 찍은 기념사진을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라씨는 비록 빙상선수 출신이었지만 이번 베이징(北京)올림픽 한국 대 쿠바의 야구 결승전 장면을 지켜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이겨야 된다는 생각에 내내 긴장 속에서 경기를 지켜봤는 데 마지막에 가서 이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너무나 반가워서 박수를 치고 그랬던 것은 내 몸에 흐르고 있는 피가 조선 사람의 피라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phillife@yna.co.kr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진수하녀성 어린 꿈나무를 키우면서 사회에 기여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사는 진수하(59세)녀성은 자학으로 서법을 익혀 끝내 성공하여 지금은 전국로년서예가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사회를 위하여 붓으로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하고있다.화룡시의 한 보통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
  • 2008-10-22
  • 독립운동가 후손 "전통음식은 문화유산"  "조선족 민족문화이자 유산인 전통음식을 보급하고 발전시켜 후세들이 뿌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습니다."  비영리단체인 중국연변조선족전통요리협회 김순옥(47) 회장은 1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앞으로 전통음식 관련 교재 출판과...
  • 2008-10-20
  • 우표와 특수한 인연을 맺은 전광하1981년부터 조양천지구문화소,룡정시문화관 등 단위에서 사업하면서 많은 작품을 창작보급하고 군중문화사업의 진흥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하기에 최선을 다해온 전광하선생은 우표수집에도 남다른 정성을 몰부어 창작과 우표수집 두가지 분야에서 쌍풍작을 따내고있다. 억울함에 시달리...
  • 2008-10-19
  • 재외동포재단 이달의 추천인물중국 13억인구에게 우리민족 음식문화 전파하는 김순옥 회장에게서 듣는다- 음식문화로 우리 민족을 지키고 뿌리를 지키자! 대한민국 건국60년을 기념하는 제63주년 광복절 기념식장(경복궁 및 광화문 일대)에는 수만 명의 축하군중들이 운집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띠는 사람들이 있...
  • 2008-10-13
  • 리영근선생의 연극인생-저명한 표연예술가 리영근선생의 연기생활을 뒤돌아본다 장장 60년간 표연예술의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 민족 연극소품의 대명사로 불리울만큼 대중들과 익숙해진 국가1급배우 리영근선생,1991년 리직휴양한후에도 연기생활을 멈추지 않은건 물론 주정협위원, 연변주문련 고문,연변연극가협...
  • 2008-10-12
  • 간질환예방에서 전파경로차단 최우선과제연변대학부속병원 부원장, 연변대학 림상의학원 부원장, 연변대학 운동의학연구소 소장직무를 력임한 경력이 있고 지금 연변대학부속병원 감염과주임을 담임하고있는 오룡인교수는 감염병 특히 각종 간질환에 대한 진찰이 능해 자타가 공인하는 주 및 길림성의 저명한 감염병학과 간...
  • 2008-10-10
  • 연변국제무역빌딩유한책임회사 리사장인 최정금은 치렬한 경쟁에서 이름도 없던 작은 상가를 오늘날의 상업, 가공업, 모아산민속관광 등을 일체화한 대형종합성상업기업으로, 경영품종이 10여만가지에 달하는 대형상가로 탈바꿈시켰다. 회사도 선후로 국가 "AAA급 기업", 성, 주 급 "소비자만족단위", ...
  • 2008-10-09
  • 최명세옹은 어떤 분? 현재 연변에 생존해있는 의용군출신의 항일로전사는 두분, 그중 한분이 올해 91세 고령인 최명세옹이다. 기자는 국경절을 계기로 연길시 하남가두 신광 33조에 거주하는 최명세옹을 찾아  그의  근황과 흘러간 발자취를  더듬어보았다. 최옹은 현재 부인 박경자(1934년 생)녀사와 ...
  • 2008-10-08
  • 연길시연세보건미용병원 원장1인 조미화는 23년간 경제효익과 사회효익을 모두 중시하면서 미용업계를 위해 5400여명의 미용 관련 학생을 양성했고 그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해주었다.그는 또 "고객을 중심으로 모든것은 고객을 위해 봉사한다"는 봉사원칙을 가지고 성실신용의 경영태도로 광범한 고객들의 신임을 ...
  • 2008-10-07
  • 올해 35살에 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과 교연실주임인 김영화는 다년간 무용리론, 교학, 창작, 표현 등 면에서 고심연찬하면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업적을 쌓았다. 2005년 그가 참여하여 연구한 "조선민족무용전업과정체계의 개혁과 실천"과제는 국가급교학성과 2등상을 수여받았다. 2002년 김영화가 창작...
  • 2008-09-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