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명옥-RDO프로진행 생기와 순발력으로 인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3일 05시59분    조회:920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생기발랄한 신진아나운서 최명옥

연변인민방송국의 《이 밤을 함께 합니다》, 《살롱토크쇼》, 《건강 365》, 《도전퀴즈》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는 아나운서 최명옥은 대학교를 졸업한지 4년밖에 안되는 신출내기아나운서이지만 특유의 생기와 순발력으로 맡은바 프로그램들을 능란하게 이끌어가면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는 우수한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해가고있다.

아나운서직업을 선택하기까지

1981년 훈춘시에서 태여난 최명옥은 어려서부터 체육과 미술은 흥취도 없고 성적도 별로였지만 어문이나 한어만은 성적이 줄곧 우수했다. 특히 작문을 쓰고 말을 하는데 흥취가 있어서 소학교시절부터 학교소선대 대대부의 문오위원직을 맡고 노래나 무용에서 한몫 담당하는건 물론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전담하였다.    
  
그 시절 영업을 하는 어머니가 매일 장사를 나가고 아버지가 출근하다보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책을 읽지 않으면 라지오나 텔레비죤을 켜놓고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뉴스가 방송되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모방하면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고중때까지 작문을 유난히 잘 써서 여러 급별의 작문콩클에서 1등을 따내면서도 행사를 사회하고 랑독을 하는것이 너무 좋아 장차 말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속다짐하던 그는 삼촌이 억울함을 당하며 고생하는것을 보고는 한시기 변호사가 되여보겠다고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숨은 재능을 보아낸 어문선생님과 한어선생님이 장차 화술을 배우면 우수한 아나운서로 될수 있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발전해볼것을 건의했다. 이렇게 최명옥은 고중2학년때부터 연변대학 예술학원 방송전업(본과)에 응시할 꿈을 안고 공부에 전념, 마침내는 소원성취하였다.

학습성적이 차해서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기 힘든 학생들만이 예술학교를 선택하는걸로 오해하면서 《그집 딸은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왜 예술학교에 갈가?》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명옥이는 자기의 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것이 너무너무 기뻤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공부하는 기간 최명옥은 부반장에 학생회 간부로 활약하면서도 서방흥선생님의 지도하에 화술을 배울랴, 피수일선생님의 지도하에 연극을 배울랴 퍼그나 분주히 보냈다. 그런데 화술강의를 맡은 서방흥선생님이 웬일인지 강의시간이면 언제나 지명랑독을 시키고는 좀만 잘못 읽어도 여러번 다시 시키면서 숱한 동학들앞에서 무안을 주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별로 생각이 없이 시키는대로 했는데 이런 일이 자꾸만 반복되니 최명옥은 어쩐지 서방흥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는것 같아 마음이 울적해났다. 그래서 한번은 선생님앞에서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생각밖으로 《너를 크라고 그러는거야!》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제야 고운 자식 매 하나 더 때리듯이 제자를 아끼고 배려해주시는 선생님의 진심을 알게 된 그는 무엇이든 더 배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서 서책지식만 배울것이 아니라 방송실천가운데서 배운 지식을 광범위하게 응용해야 우수한 아나운서로 성장될수 있다는데 모를 박은 최명옥은 또 대학교시절 꼬박 2년간이나 연길《아리랑방송》에서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방송되는 《출발 21세기》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윤련월아나운서의 지도를 받으며 선배인 최국권아나운서와 함께 마이크앞에 나선 최명옥은 처음에 좀 떨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또래를 상대로 한 프로그램이여서인지 인차 프로의 내용에 융합될수 있었고 나름대로 프로를 잘 이끌어가느라 머리를 쓰게 되였다. 이러다보니 자연 자신심이 생기면서 웃을 때가 많아졌고 성격이 활달해졌다. 그리고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이면 방송을 하느라 팽이처럼 돌아치면서 노력한 보람으로 사회,편집능력도 부쩍 제고되여 최국권아나운서가 연변TV로 전근한후의 1년간은 독립적으로 편집임무까지 수행하면서도 방송을 원만히 진행할수 있었다고 한다. 

실천속에서 배우며

2004년 여름철에 대학을 졸업하고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로 배치받은 최명옥은 《일기예보》나 《방송프로안내》를 진행하는 한편 김계월아나운서를 스승으로 모시고 모르는것들을 하나하나 배우다가 그해 년말부터 《이 밤을 함께 합니다》프로의 진행을 맡게 되였다. 

그런데 《아리랑방송》에서 실습할 때와는 달리 사상부담이 생기면서 절대다수의 청취자가 중로년층인 이 프로를 제대로 이끌어나갈수 있을가 하는 근심부터 앞섰다. 아니나다를가 나이가 어리고 사회경험이 부족한탓으로 중로년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서 때론 실수를 빚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사업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경쟁이 치렬한 방송무대에서 밀려나게 되지는 않을가?)

자기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를 느낀 그는 혼자서 속을 끙끙 앓다가 선배인 김계월아나운서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에 김계월아나운서는 《네가 인제야 크기 시작하는구나.》라고 한마디 하고나서 누구나 실수를 반복하는 가운데서 성숙되는만큼 자기의 부족점을 인식할줄 아는 자체가 한층 높은 차원에로 도약할수 있는 계기로 된다고 하면서 잘해보라고 고무격려해주었다.

그즈음 최명옥에게 용기를 안겨주는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아닌 《이 밤을 함께 합니다》프로그램의 애청자들이였다. 전날밤의 실수때문에 우울해하고있을 때 일부러 전화를 걸어와 처음 하는 일인데 그만하면 대단히 잘했다고 긍정해주면서 실수도 아량있게 받아주시고 친손녀처럼 다독여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두고 최명옥은 저도몰래 마음이 따뜻해지고 애청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최명옥은 프로내용을 깊이있게 연구하면서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많은 심혈을 몰부었다. 그랬더니 청취자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지고 호흡을 함께 하면서 프로를 보다 활발하게 이끌어갈수 있게 되였다. 날이 가면서 어떤 청취자들은 최명옥에게 정이 들어 방송이 끝난후에도 전화를 걸어와 감정교류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떡이며 반찬, 김치따위를 정성껏 만들어가지고 방송국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성숙에로 달리는 길

현재 연변인민방송국 문예생활편집부에서 주임직을 맡고있는 김계월아나운서는 후배인 최명옥에 대해 《발랄하고 순발력이 있으며 나이는 어려도 로련한 표현을 하고 분위기를 파악할줄 아는 우수한 아나운서》로서 선배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최근에 와서 최명옥아나운서가 품을 제일 많이 넣는 프로그램은 그래도 《살롱토크쇼》이다. 한가지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꼭 정답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청취자들이 부담없이 참여해서 웃음속에서 그 무엇인가 느낄수 있도록 하는데 취지를 둔 이 프로그램을 편집, 진행하면서 최명옥은 될수록 참여범위를 확대할수 있는 화제를 발굴하는 한편 유모아, 고향소식, 우리말 성구속담, 퀴즈(알아맞추기) 등을 곁들이면서 프로를 보다 다채롭게, 재미있게 조직하기에 노력을 많이 하고있다. 따라서 흥미있는 화제들이 자주 거론되면서 애청자군체가 부쩍 늘어나서 지금에 와서는 젊은 세대들은 물론 중로년들도 이 프로그램을 시간맞춰 시청하고 화제토론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있다.

 《우리 아버지의 뒤모습이 작아보일 때는 언제였는가?》라는 주제를 내놓았을 때 엄마가 가출하고 삼륜차부 아버지와 함께 살고있다는 한 녀학생은 동학들보기가 창피해서 어쩌다 학교에 찾아온 아버지를 마구 밀어보내려 했는데 아버지가 아침에 주지 못한 학비라면서 돈을 꺼내주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1원짜리, 5원짜리 돈을 한웅큼 받아쥐고 아버지가 돈액수를 채우느라 그날 하루도 얼마나 고생했을가 라는 생각을 하노라니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뒤모습이 그렇게 초라해보일수가 없더라고 고백하면서 장차 효도하는 좋은 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가정에서의 돈관리는 누가 하면 더 좋은가?》, 《내 안해에게서 가장 섭섭했던것과 내 남편에게서 가장 부족했던것》 등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릴 때는 년세가 있는 청취자들도 많이 참여하였는데 남편 혹은 안해를 피해 다른 방에 가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최명옥아나운서는 《살롱토크쇼》와 《이 밤을 함께 합니다》외에도 일주일에 한번꼴로 아침 7시 20분부터 8시사이에 방송되는 《건강 365일》, 《도전퀴즈》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라지오소설》의 록음에도 참여하고있으며 제 3차 전국조선족과외가수민요콩클 등 행사의 사회도 맡고있다. 언제나 고도의 책임감으로 맡은바 사업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해가는 그는 올해에만도 성,주 방송사회자작품평의에서 2등상을 따내고 전국라지오방송협회 방송작품평의에서  3등상을 쟁취하였으며 연변방송에서 조직한 아나운서실력측험에서 제2위를 차지하고 련속 2년째 우수아나운서로 평의되였다.

신출내기아나운서 최명옥에게 있어서 올해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KBS방송국에 가서 16일간 연수를 받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된것이다. 언젠가는 한번 꼭 받고싶었던 연수과정이라 그는 그번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보다 많은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기에 최선을 다했다.

실생활에서의 최명옥은 3개월전에 결혼한 새색시이다. 정부기관에서 사업하는 신랑은 2006년초에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여러 단위와 공동으로 조직한 활동에 참가하였을 때 최명옥에게 호감을 가졌고 둘은 2년 반동안의 련애를 거쳐 지난 9월말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시부모님들과 함께 살지는 않지만 시댁어른들이 며느리를 어찌나 이뻐해주시는지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아기는 언제 가질 타산이냐고 물었더니 최명옥은 자기가 밤프로때문에 친구들의 모임에도 참여하지 못하며 바삐 보내는데다 신랑까지 출장나가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잠시는 둘다 사업에만 전념할 의향을 터놓았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농촌교육기적》 만든 리석채조선족소학교 교장 김죽화 만나 《리석채조선족소학교는 리론과 실천을 결합한 중국농촌교육의 모범이고 중국농촌교육의 기적이며 중국민족교육의 기치이고 중국기초교육의 시범이다.》 - 유네스코련합회 부주석 저명한 교육가인 도서평에서김죽화 프로필: 1948년 12월 10일, 료녕성 신빈...
  • 2009-11-01
  •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사회자와의 대담 ▲ 중국 흑룡강신문 김범송 론설위원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한민족 하나로” 사회자와의 대담    1. 얼마 전 김범송 논설위원께서 서울에서 열린 ‘한인정치인포럼’ 행사에 참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련 행사...
  • 2009-10-30
  • 진가촌의 한송이 진달래 33년 한족농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전국우수향촌의사 림민화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태산 윤선미 기자 = 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에 뿌리를 내리기란 기실 조련치 않은 일이다. 그럴진대 한 조선족처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물설고 낯선 타향의 한족촌에 와서 장장 33년간을 향촌의료사업에 바...
  • 2009-10-30
  •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전국일주를 한 연변작가이고 야외낚시애호가인 리근호가 28일 오후 3시에 연길로 돌아왔습니다. 리근호는 지난 5월 8일 연길에서 출발해 174일동안 전국 21개성, 자치구, 직할시와 특별행정구를 거쳐 전국을 일주했는데 그 거리는 4만4천키로메터에 달합니다.  이번에 리근호는 내몽골고원,&nb...
  • 2009-10-29
  • 포스코를 유치한 항천전문가 김민달선생 만나 ○ 《동방홍》인공위성 풍운1호연구에 참석한 항천전문가○ 문화혁명시기 조선특무로 몰려 두번 감옥행○ 12억딸라 포스코를 비롯  20억딸라 유치한 상해개방의 공신○ 조선족기업가들의 상해진출 징검다리 되여준 고문 김민달 프로필 1941년 길림성 룡정시 덕신향 출생.1...
  • 2009-10-29
  •   내가 남희철씨를 우연히 알게 된것은 연변TV 《문화광장》프로를 시청하면서부터였다. 재작년 6월인가 어느 토요일 아침,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연변TV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문화광장》프로가 눈길을 당겨  대관절 어떤 프로인가고 궁금해 보게 되였다. 그래도 낯설기는 하지만 프로는 볼...
  • 2009-10-28
  • 중국 최초 굴삭기 핵심부품 유압실린더 취급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 허지환 사장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영철 기자 = 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는 중국에서 최초로 굴삭기 핵심부품인 유압실린더를 한국에서 수입하여 중국의 三一중공업, 상하이龙工, 中联重科 등 중국의 유명한 굴삭기업체를 포함한 50여 곳에...
  • 2009-10-26
  • 공화국이 키워낸 저명한 조선족의학박사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윤종주교수 만나본다 ● 로기순박사의 제자 국내외 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한 회장 ● 장백산자원 개발로 민족의약업 이끄는 사람 윤종주프로필: 1935년 1월 25일 연길현 조양천 출생 1957년 ...
  • 2009-10-26
  • 박영애 회장은 중국 길림성 공주령시태생으로 미국 이민생활은 올해로17년째에 접어든다.박영애 회장 일가족은 1990년초 미국유학 왔을 때만 해도 조선족족 출신들이 손꼽을 정도였던 데다 박회장이 일찍 자리잡아 설날 등 명절때는 늘 뉴욕, 워싱턴,등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까지 불러 고향이야기 등을 나누며...
  • 2009-10-25
  • 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김경택사장의 야심찬 꿈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농민들의 한국행이나 대도시진출은 우리 민족사회에 거대한 물질적재부를 가져온것은 사실이지만 실존공동체의 해체위기를 자초한 커다란 아픔도 낳고있다. 조선족농민들의 근본적인 출로는 한국행이 아니라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조선족...
  • 2009-10-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