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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연변가무단 차세대 성악배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4일 21시30분    조회:1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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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으로 인기를 창조해가는 박연


아리랑 노래 함께 전해온 토장
녀성들의 손으로 깨끗이 전해왔네
민들레씨앗처럼 세상에 날려
민족의 슬기로 대를 이어가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우리 민족 토장
세월과 더불어 영원히 전해갈
민족의 자랑

2008년 8월 22일에 펼쳐진 제4회 연변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에서 연변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 회가로 선정된 《민족향기 토장향기》(김계월 작사, 동희철 작곡)를 불러 문예공연의 첫막을 아름답게 장식한 청춘파가수 박연. 10여년전 연변대학 예술학원 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할 때부터 최려나, 현성해, 김선희, 변영화 등과 어깨나란히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청춘스타트》, 《주말극장》, 《음력설야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서 노래실력을 자랑하면서 연변조선족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현재 연변가무단의 성악배우로 되여 보람찬 무대인생을 살아가고있다.
   
강신자선생님과의 인연

노래인생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해 문의하자 박연은 “제가 노래로 초보적인 성공을 안아올수 있게 된것은 강신자선생님의 가르침덕분이랍니다.”라고 말하면서 계몽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치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흥취가 있은 박연은 소학교시절 도문철도자녀소학교 무용대에 들어가 춤을 추면서 장차 무용가가 될 꿈을 키웠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그로서는 춤으로 성공할수 없는것이 문제였다. 뒤늦게야 이를 알게 된 부모님들은 귀여운 외동딸을 꼭 예술가로 키우고싶은 욕심에 나어린 박연이 연길로 오르내리며 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학부의 강신자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노래를 배울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여 소질이 있는 무용 대신 노래를 배우게 된 박연은 처음에 음악기초가 없는건 물론 다른 애들보다 소리가 연하고 질기지 못하며 노래통이 두텁지 못해 성공여부를 장담할수 없었다. 고맙게도 경험이 풍부한 강신자선생님이 얼굴이 이쁘장하게 생긴데다 감정표현을 척척 드러낼줄 아는 박연이 성대를 잘 다스리고 꾸준한 노력을 경주한다면 무대에서 인기를 누릴수 있겠다고 믿어주면서 가르침에 정성을 쏟았다. 박연 또한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주일에 한두번씩은 꼭꼭 연길행차를 하면서 부지런히 배우고 련습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보람으로 박연의 노래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제고를 가져왔고 2년후인 1992년에는 마침내 연변대학 예술학원 소학반에 입학하는 행운을 잡았다.

박연이 예술학원에 입학한후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모로 왼심을 써주면서 성악기초, 음질 등 면에서 조건이 비교적 우월한 동학들과의 거리를 줄일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해주기에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의 지도아래 자기의 부족점을 미봉하느라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 박연은 얼마후부터는 최려나와의 2인창, 최려나, 현성해와의 3인창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청춘스타트》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라지오방송을 위해 연변에서 창작된 아동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6년제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할 때 박연은 최려나, 현성해와 함께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전국청년가수대상콩클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때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날이나 이들 셋을 집에 데려다 표정이나 손동작 하나 실수없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게끔 지도해주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신자선생님이 매일 점심까지 해먹이며 정성껏 지도해준 덕분에 이들 셋은 그번 콩클에서 3인창으로 길림지구 1 등의 영예를 따내였다. 비록 결승단계에서 미역국을 마시기는 했지만 그번의 실천은 그후의 노래인생에 도움이 컸다고 한다.

박연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에 취직한후에도 강신자선생님은 여러모로 관심해주면서 텔레비죤화면을 통해서라도 노래를 듣게 되면 꼭 전화를 걸어와 “소리는 좋아졌더라. 그런데 좀 더 웃어야겠다”라는 식으로 조언을 주는것을 잊지 않고있다. 
            
짝궁이 좋아

지금까지 독창보다는 최려나와의 2인창, 최려나, 현성해, 김선희, 변영화와의 합작으로 된 3인창으로 인기를 많이 누린 박연은 십여년의 노래인생에서 가장 큰 수확은 최려나와 같은 짝궁을 만나게 된것이라고 고백했다.

강신자선생님의 지도아래 백지에 그림을 그리며 노래공부를 시작한 박연이 소녀시절부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청춘파가수의 하나로 알려지게 된것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하던 시절인 1997년에 연변TV 뉴스종합채널의《주말극장》프로그램에서 최려나, 현성해와 더불어 3인창을 선보이면서부터였다.

이따금 청소년프로그램인 《청춘스타트》에 출연하다가 처음으로 《주말극장》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이들 셋은 이날 한국가요 《즐거운 아리랑》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때로부터 그들의 3인창이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는 인기종목으로 지목되여  《음력설야회》, 《아리랑극장》, 《연변창작가요제》, 《사랑으로 가는 길》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학교의 각종 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였으며 라지오나 텔레비죤방송의 《매주일가》프로에 나가게 될  창작가요를 불러달라고 청을 드는 작곡가들이 하나둘 찾아들게 되였다. 

이렇게 3인조 성원으로 소문을 놓게 된 박연은 《할빈의 여름》예술제에서 최려나, 변영화와의 3인창으로 1등을 따내였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매주일가총결산》에서는 현성해와 함께 2인창 《샘물골처녀》로 1등상을 받아안았으며 2003년에는 최려나와 함께 당시의 연변가무단 단장인 박세성을 따라 한국 남원시에서 열린 《춘향제》에 참가, 남원국립국악원 가수들과 더불어 정채로운 공연을 펼치여 환영을 받았다.

1992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소학반에 입학해서부터 줄곧 최려나와 한학급에서 공부하고 졸업후 함께 연변가무단에 배치받아 계속해서 2인창을 하게 된 박연은 최려나와 둘도 없는 단짝으로 가까이 보내고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쁨을 같이 나누고 고민이 있으면 힘을 모아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는 둘은 인젠 어머니들까지 친하게 지내면서 절친한 사이로 되였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

사회에 진출한후의 감수에 대해 물었더니 박연은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서 자기는 언제나 행운아라고 속심을 터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연변가무단지도부와 합창부의 선배님들이라고 한다.

연변가무단에 취직한후 공연에 참가하는것을 주업으로 삼게 된 박연은 텔레비죤프로에 많이 출연하던 학창시절에 비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텔레비죤프로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몇번이고 다시 촬영할수 있지만 무대공연은 련습이 없기때문이였다. 평소에 많이 듣고 배우고 공연이 있을 때면 선배들의 출연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장점을 배워두기는 했지만 무대에 올라서면 어쩐지 생각대로 되지 않아 큰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어느 한번 순회공연을 나가서는 반주테프에 맞추어 《새타령》을 부른다는것이 그만 《남원산성》을 불렀다. 잠간후에 틀린것을 발견했지만 중도에서 다시 부를수도 없어서 눈을 감고 야웅하는식으로 끝까지 불러내려갔는데 우연한 일치라 할가 반주가 맞아떨어져서 관중들은 가수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난생 처음 그렇게 큰 실수를 저지른 박연은 퇴장하자마자 울먹이면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자리에 있던 선배들은 야단을 치거나 책임을 추궁할 대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지도부에서 활동공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준 덕분에 박연은 연변가무단의 《천년아리랑》 등 가무공연에서 최려나와 함께 《제비타령》을 부르기도 하고 연변가문단을 대표하여 한국에 가서 《세계한민족아리랑축제》에 참가, 서울국립국악단 가수들과 함께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연변가무단이 2008년 북경올림픽개막식전의 공연에 참가할 때에는 최려나, 김선희와 셋이서 무용쏠로( 唱)를 담당하기도 했다. 

소분대공연을 나가서는 독창도 하고 대학교 3학년때 자비로 예술양성쎈터의 조선예술가를 모시고 가야금연주를 배운 밑천으로 가야금방창에도 참여한다는 박연은 2008년에 본직사업임무를 출중하게 완수하여 선진사업일군으로 평의되기도 했다.     

가정에서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라난 박연은 그래도 제일 고마운 사람은 어머니라고 말했다. 원래 도문시의 량식부문에서 사업한 어머니는 시장경제시대에 들어선후 단위가 해체되면서 로임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형편이였지만 딸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작심, 도문철도에서 전공으로 일하는 남편의 얼마 되지 않는 로임으로 투자가 많이 드는 노래공부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왔다.

소학교 2년에 중등전문반 6년까지 8년간 노래를 전공한 박연은 크고작은 행사들에 불러주는 사람이 많고 돈도 어지간히 벌게 되자 “중등전문학교학력을 가지고서도 밥을 벌어먹을수 있는데 꼭 본과학력을 따내겠다고  4년이란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생각하면서 가정생활도 그닥 유족하지 못한데 부모님들께 효도하는셈치고 공부를 그만하고 사회에 진출한 타산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학만은 꼭 다녀야 한다고 하면서 억지다짐으로라도 공부를 계속 시킬 잡도리를 했다. 당년에 어머니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대학본과에 진학하고 자기의 힘으로 학비를 마련하면서 공부를 견지한 박연은 사회에 진출한 지금에 와서야 딸을 좀더 큰 재목으로 키우려고 로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것 같다고 실토정하였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박연은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가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더욱 많은 지식을 배우고싶다고 대답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의 하나인 판소리가 연변에서 공간을 잃어가는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박연은 이제 한국의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나서 연변대학 예술학원시절 강신자선생님한테서 배운 판소리와 한국판소리의 장점을 받아들인 연변대중들도 접수할수 있는 독특한 창법을 모색하기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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