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남호-"퉁소가 중국에 뿌리내리기까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2월5일 11시03분    조회:87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민속악기 퉁소와 중국에서의 그 뿌리
—연변문화예술연구주임 연구원 김남호씨를 만나

《퉁소는 중국조선족 민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고 사랑을 받아온 대중악기로서 백여년간 중국조선족 이주민들에 의해 중국땅에 뿌리내렸습니다.》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에서 연구원으로 몸담고있으면서 퉁소의 력사를 추적하고 아울러 직접 퉁소애호자구락부 등을 꾸려온 김남호씨는 19세기말부터 조선반도의 함경도와 경상도지방의 이주민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와 연변지방이나 동북3성에 정착하면서부터 퉁소놀이활동이 벌어졌다고 했다. 

연변에서의 퉁소의 전파에 대해 김남호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연변의 퉁소연주가 김창룡(제1대, 90세)의 구술에 의하면 그의 선배 김창순(1870년-1954년)은 1946년 연길 공원촌에서 퉁소애호자들과 함께 퉁소연주활동을 벌렸다. 1947년 8월 15일, 연길시인민문화관이 설립되고 1951년 문화관의 령도하에 김천석을 조직자로 한 연길시민간예인조가 설립되였다.  그전까지는 자발적인 활동이였으나 그 뒤로는 조직적인 활동으로 되였다.김창순로인은 많은 퉁소를 제작하여 초학자들에게 퉁소연주법과 함께 퉁소곡을 배워주었다. 그 시기 민간예인조 성원에 18명이 있었는데 모두 김창순을 따라 퉁소를 불었다. 곡은 《긴영산》, 《꼭디영산》, 《령산도도리》, 《시나위》, 《라질가》, 《성주풀이》, 《새타령》, 《신방곡》, 《아스랑가》, 《애원성》, 《검무곡》, 《산념불》 등 민가방주곡까지 수십수에 달했다. 김창순의 퉁소연주는 힘차고 우렁찼는데 연변지방의 독특한 풍격을 나타냈다.

1920년대 군체를 이룬 왕청현 연통라자농악대의 퉁소놀이, 1930년대 훈춘 밀강촌의 퉁소놀이, 광복전 연길현 평안구 류신평의 황룡준이 주도한 퉁소놀이, 연길현 팔도구 농악대의 퉁소놀이, 1934년부터 활동을 개시한 안도현 장흥향 신촌의 농악대 퉁소놀이, 광복후 료녕성 단동시조선족문화관에서 조직한 퉁소놀이 등을 보아 중국조선족 특히는 연변지방에 퉁소의 뿌리가 깊다는것을 알수 있다.

건국후 1951년, 연변가무단의 이름난 퉁소수 백문순은 연길현 조양천 삼봉동의 민간예인 전복록을 찾아가 퉁소연주뿐만아니라 퉁소제작법도 배웠다. 이외에도 1953년 8월에 있은 연변조선족자치주과외무대콩클에서 우수상을 탄 화룡현 투도향 북산촌 맹경춘을 위수로 한 10명의 퉁소놀이팀, 1953년 전 주 제1차 민간예술회보공연에서 우수표현상을 수상한 조양천의 윤룡운 등 8명의 퉁소합주, 통소를 너무나도 잘 불어 북경에서 공연까지 한 리홍래 등 3명의 퉁소민간예인도 있다. 이들은 1955년 당시 주당위 선전부 부장이던 최채를 단장으로 한 전국소수민족참관단에 뽑혀 5.1절경축대회때 북경 천안문의 관례대에도 올랐고 북경 회인당에서 모택동주석 등 중앙령도동지들을 모시고 조선족의 퉁소가락을 성수나게 연주해 회인당안이 떠나갈듯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재청으로 한곡 더 연주하기까지 했다.

리홍래는 전라남도 장도에서 부친의 가르침으로 퉁소와 전통판소리의 여러 마당을 부를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고된 개척로동속에서도 그는고향에서 소중하게 품고 온 퉁소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광복후 리홍래는 마을 청장년들을 이끌고 북도 만들고 퉁소도 제작하여 농악놀이대를 조직했다. 국내해방전쟁시기 이 농악놀이대는 기실 당과 정부의 《생산을 발전시켜 후방을 공고히 하고 전선을 지원하라》는 정신을 선전하는 문예선전대역할을 하였다. 그들은장백산아래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은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한해 겨울 30여회의 민속놀이마당을 펼쳤다. 1953년 전 주 민간예술회보공연에 초청된 안도현 연경향퉁소민속놀이는 대뜸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리하여 1955년 5.1절을 맞아 리홍래와 그의 동료들은 퉁소를 가지고 북경으로 향했던것이다.

1957년, 연변예술학교가 설립되고 민족기악학과가 서면서부터 학교에서는 민간예인 리임룡을 퉁소교원으로 모시고 후계자 한원철을 양성하여 퉁소음악보급과 제고에 큰 기여를 하였다.

김광순은 밀강퉁소 제2대에 속하는데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11살때 50여세의 장년사나이 한시권이 강 건너 조선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건너와 밀강마을에 정착하였는데 그때 한시권은 남달리 보짐속에 구멍 뚫린 참대통(대퉁소를 말함) 하나에 북 하나를 넣어가지고 온것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밀강의 퉁소는 지금으로부터 그 뿌리가 근 70년이 된다.  밀강마을에서는 그를 한퉁소라고 불렀다. 한퉁소는 한풍기라는 로인을 북잡이로 모시고 이웃마을의 퉁소수 강재권씨와 함께 퉁소놀이를 자주 하였는데 동네방네의 생일, 결혼, 회갑잔치에 바가지장단, 북장단 그리고 퉁소소리가 어우러져 온 마을이 들썽하게 춤판으로 변하군 했다.

김광순은 그때 한시권의 퉁소를 빌어 열심히 배웠는데 그는 밀강의 제2대 퉁소수로 되였고 후대양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50년대초, 김광순은 물고기를 잡아서 판 돈을 한푼두푼 모아 연길시민족악기공장에 가서  9.80원을 주고 퉁소 한대를 샀다. 김광순이가 퉁소를 갖추는바람에 마을의 친구들도 겨끔내기로 퉁소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며칠사이에 마을에는 퉁소가 20여대나 늘었고 퉁소를 배우는 열조가 일어났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개혁개방의 물결이 대중문화생활에도 일었다. 날따라 높아가는 밀강의 퉁소소리는 마침내 정부와 해당 부문의 중시를 불러일으켜 2007년 밀강퉁소는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여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였다.

1998년에는 연길시민간예인조의 명맥과 뿌리를 이어받아 김남호가 주임을 맡고 김래억이 대장을 맡은 연길시퉁소애호자구락부가 세워졌고 2002년에는 연길시 북산가두판사처에서 《경제발전과 더부어 민족의 특색문화를 발전시키자》는 연길시당위의 지시에 따라 연길시퉁소애호자구락부의 성원들이 주축을 이루어 40여명의 퉁소연주대를 조직하여 활동을 견지하였는데 2008년 연길시의 퉁소도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였다.

김남호씨는 우리 민족의 전통민속악기인 퉁소가 오늘까지 발전해온것은 당과 정부 그리고 해당 부문의 지지와 중시가 있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연변에서 작년까지 3차의 퉁소예술절을 개최해 민족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큰 힘을 보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퉁소문화의 발전과 동원된 연주가의 폭이 고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퉁소놀이를 한층 더 높은 차원에로 발전시켜 인민대중들의 문화생활을 더욱 다채롭고도 풍부하게 하는 한편 퉁소를 우리 주의 관광문화상품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켰으면 더욱 큰 효과를 볼수 있을것이라고 일가견을 폈다.     

글/사진 연변일보 김인선 윤현균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 '얼짱' 가수 김미아가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연일 연예 화제인물로 크게 부상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중국에서 성공한 성광대도 프로그램에서도 "아리랑"을 불러 중국에서의 조선족이미지와 노래실력을 과시했고 한국 SBS스타킹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아리랑"을  부름으로써 조선족의 정체성을 ...
  • 2009-05-10
  • '황금씨앗'을 배육하는 사람 농민육종가 전영태씨에 대한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 농민 출신으로  40년간 벼품종 배육에 심혈을 몰부어왔고   고령이 돼서도 우량 벼품종 연구개발과 보급에  열심히 뛰는 분이 있다. 그 주인공이  흑룡강성 오상시 룡봉산...
  • 2009-05-09
  • 수고비? 피 값을 어떻게 받습니까!이주노동자 인권변호사 김종주천민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죄는 무전유죄(無錢有罪)다. 반대급부로 가장 큰 혜택은 유전무죄(有錢無罪)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가 아니라 전(錢)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 정신은 허위이며 법치(法治)에 의해...
  • 2009-05-08
  • "연변 10명 걸출청년" 연길시 "6.1"유치원 조미화 5.4청년절 90돐을 기념하여 우리 주에서 표창한 "연변 10명 걸출청년"명단에는 연길시 6.1유치원 원장 조미화가 일석을 차지했다. 이는 다년간 꽃봉오리양성사업에 무한한 애착심을 가지고 청춘의 정열과 지혜를 깡그리 바치며 꾸준한 ...
  • 2009-05-07
  •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 리창균연출의 실적국가1급연출인 리창균씨는1982년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예술단에 발을 들여놓아서부터 지금까지 성우,연출,업무단장 등 직무를 맡고 연변조선말라지오텔레비죤방송문예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 공로자의 한사람이다.타고난 예술기질1953년 연길시에서 태여난...
  • 2009-05-07
  • 연변인민방송국 사회교육부 김대용주임에 대한 이야기연변조선족자치주총공회에서 2008년 《5.1》절을 앞두고 진행한 표창대회에서 연변인민방송국 사회교육부의 김대용주임이 주급로력모범으로 메달을 수여받았다. 보도사업에 몸을 담근지 12년밖에 안되고30대중반에 금방 올라선 그가 성,주 정품프로인 《김대용열선》을 ...
  • 2009-05-06
  •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 학부장이고 교수이며 석사생 도사인 김성삼선생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조선족민족악단 단장,연변대학 예술학원 민족악기연구제작쎈터 주임 등 직무까지 맡고 우리 민족 음악사업의 진흥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다.           가야...
  • 2009-05-05
  • 18살때 벌써 연변TV방송 《청춘스타트》프로그램 사회를 맡으며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부상한 현호씨,풋내기사회자로부터 어느덧 프로를 매끄럽게 진행해나가는 로련한 사회자로 성장하였다. 근 10년간 《청춘스타트》를 사회해온 현호씨는 지금은 사회외에 담당PD도 맡아하면서 청소년들의 구미에 맞는 프로를 제작하기 위...
  • 2009-05-04
  • 1990년대에 국가문화부 신극목상을 수상한 무용 《마음의 가락(일명 〈심금〉)》을 출연하여 소문을 놓고 《장고춤》, 《선녀》 등 무용을 국내외 무대에 올리면서 우리 민족의 무용예술을 널리 자랑하던 나젊은 무용가 동옥선양이 지금은 전문예술단체인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코기러기가 되여 민족예술의 진흥과 발전을 위...
  • 2009-04-30
  • “어머니”의 형상창조에 몰부은 심혈제1대 중국조선족연극인의 한사람인 국가1급배우 정인덕 근 60년의 연극생애에서 어머니의 형상을 많이 창조하여 소문을 놓고 묵직한 영예도 여러차나 따낸 정인덕선생은 80고개를 바라보는 지금도 연극활동에 종사하면서 여생의 빛과 열을 우리 민족의 연극사업에 바쳐가고...
  • 2009-04-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