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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화술의 매력에 빠진 사나이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2월17일 12시44분    조회:1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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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방송예술단 단장 정광 어제 그리고 오늘

연변은 물론 해내외 동인들과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연변라디오TV방송예술단 단장 정광, 연변인민은 그의 굵직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고 그의 목소리에 습관되였다. 특히 라디오련속극과 연변TV 번역련속극중의 귀맛당기는 주인공배음은 더없이 익숙하다. 지금은 연변TV위성채널의 유일한 번역특집 《신주 어제 그리고 오늘》프로의 진행으로 인기를 맡고있다. 방송생애 27년차 그의 어릴 때 꿈도 방송인이였을가?

축구를 즐겼던 학생시절

정광은 1963년 연길시 한 지식인가정의 막내둥이로 태여나 가정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지식인을 농촌에 내려보내는 바람이 불 때여서 그가 태여나던해 의사였던 아버지는 연길시 소영공사 소영대대로 내려가게 되였고 가정도 따라서 이사를 하였으며 어머니는 소영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하여 정광은 농촌에서 아름다운 동년시절을 보내게 되였다. 지금도 소영에 가면 모두들 정의사의 아들이라고 정답게 불러준다
.
소학교 3학년때 이미 대대장이 된 정광은 공부뿐만아니라 다방면으로 발전한 모범생이였다. 학교문예콩클이 있을 때마다 시랑송을 하여 상을 탔고 또 운동을 잘하고 체격이 좋았기에 업간체조시간에는 본보기체조를 맡아하여 전교사생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가 열살나던 해 가정은 정책락실을 받아 다시 연길로 올라가게 되였고 그는 어머니가 교편을 잡은 중앙소학교로 전학하였다. 1975년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한 정광은 연길시2중에서 초중을 다녔다. 초중시절 그는 학교축구대에 가입하면서 축구에 미쳤다. 그때는 앞으로 꼭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리라는 꿈을 키우면서 열심히 축구를 찼다. 원래 랑독을 잘했던 정광은 문예콩클이 있을 때마다 시랑송의 주송을 맡아하군 하였다.

초중2학년 하학기에 연변1중으로 전학한 정광은 거기서 고중까지 마쳤다. 연변1중에서도 축구대선수였던 정광은 가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변대학 체육학부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문화과성적이 1점 모자라서 랑방의 고배를 맛보게 되였다. 당시 가정의 경제형편이 좋지 못하였던탓으로 재학하지 못한 정광에게 운명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세계를 펼쳐주었다.

성우로서의 첫걸음

1981년 정광이가 고중을 졸업해서 두달후 연변방송예술단에서 학원을 모집하였다. 소식을 접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주월선아나운서를 찾아가 아들한테 소질이 있는가고 알아보고 지도를 부탁하였다. 기본조건이 좋았던 정광은 결국 4백명도 넘는 응시생들을 물리치고 방송예술단의 성우로 되였다.

자신이 키워온 리상과 너무나 다른 화술에 대해 정광은 너무나 낯설고 힘들었다. 갓 입사해서는 라디오련속극에서 한마디 대사를 배음하는것도 너무나 벅찼다. 당시 방송이 전성기인때라 성우들의 인기도 대단했다. 정광은 차츰 화술에 재미를 느꼈고 부지런히 자신을 련마했다. 어려서부터 랑송에 재질이 있었던지라 그의 화술은 눈에 띄게 진보하였다. 그래서 입사한 이듬해부터는 주요인물역의 배음을 맡아하기도 하였다.

정광은 여러가지 배역의 배음을 맡아하면서 차츰 전업지식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마침 십년에 한번씩 모집하는 연변예술학교 연극반에서 제3기 학생모집을 하였다. 단위의 선배님들의 충고로 시험에 참가한 정광은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서 그는 학생회주석으로 활약했고 반급에서 제일 어렸지만 반장직을 맡아하였다.

무대에서의 연기

1985년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한후 정광은 연변연극단에 배치받았다. 연변연극단에서 그는 무대극에 참가하면서 소중한 무대경험을 쌓았다. 당시 개혁개방의 사회현실을 반영한 4쌍의 남녀가 호텔개체호로 손님쟁탈로 싸우다가 정이 드는 이야기를 그려낸 무대극 《청춘소야곡》에서는 4쌍의 남녀중의 한 주인공역을 맡았고 《9번 새각시》에서는 신랑역, 《우리 학교 철남이》에서는 철남이역을 맡았다.

연극단에서 단서기로 활약하면서 중시를 받았지만 정광은 화술에 더 큰 매력을 느꼈고 자신에게 더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극단의 만류도 물리치고 단연히 연변방송예술단으로 전근하였다.

천여부의 방송극에서 배음

1987년 연변방송예술단에 전근한 정광은 더는 81년도 학원으로 있을 때의 애숭이가 아니였다. 당시 라디오련속극은 청취률이 아주 높은 흥행시기였다. 정광은 라디오련속극 《청춘극장》,등 많은 작품에서 주역의 배음을 맡아하였다. 그중에서 《밤중에 울린 전화벨소리》, 《13호 뜰안의 비밀》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1기부터 7기가지 련속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 그가 해설한 라디오련속극 《연변사과배》는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배음뿐만아니라 감독까지 맡아하고있는 그가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쪽박아리랑》, 《연변방송인》 등은 서울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큰 영예를 안았다.

정광은 라디오뿐만아니라 TV번역련속극 《갈망》, 《뉴욕에서의 북경사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등에서 대부분 주요배음을 맡아하였고 연변TV방송국 《토요무대》, 《너와 나의 인생》등 프로를 사회하여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너와 나의 인생》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거나 고생하고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잘 그려내여 사회적으로 큰반향을 일으켰다. 또 연변TV방송국에서 제작한 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에서 극무주임을 맡아하였다.

최근에는 TV번역련속극 《家有九凤》에서는 일곱번째 딸의 남편역, 《乔家大院》에서는 주인공 교자용역, 《我主沉浮》에서는 조안방성장역을 배음하였고 라디오련속극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는 주인공역의 배음과 동시에 해설, 감독까지 맡아하였다. 작년 12월 28일에 끝난 《광야의 아리랑》의 감독을 맡은 정광은 이번주부터 방송될 《황진이》에서 해설을 하게 된다.

지금가지 천여부의 방송극에서 배음을 맡아한 정광은 1년에 라디오련속극 100여부, TV번역련속극 100여집에 출연할뿐만아니라 감독까지 맡아하기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에 하루에 한시간이 안될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화술이기에 언제 한번 싫을 때가 없었다.

후배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

2005년 연변방송예술단 부단장으로 1년간 있은 정광은 2006년 단장으로 임명받은후 두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는 행정을 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을 소홀히 하지 않고 감독으로서 성우로서 1선에서 부지런히 뛰고있다.

단장을 맡은 3년간 많은 후배들을 받아들이고 배양시켜 업무면에서 큰 진보를 가져오게 하였다. 재작년에는 16명의 직원들을 몽골어번역중심에 보내여 학습시켰고 작년에는 10명을 직원들을 데리고 한국 KBS방송국과 아리랑국제방송국에 가서 견학시켰다. 한편 KBS방송국 라디오련속극의 전반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한국의 선진적인 설비, 사업방법과 태도 등 면에서 많이 배우도록 하였다.

그가 단장을 맡은후 서로 많이 해탈되던 기악부와 극부가 많이 융합되고 조화로와졌고 단의 경제형편도 많이 좋아졌다. 그는 연변방송예술단산하에 《연변라디오TV방송예술단이벤트회사》를 내왔는데 각종 활동이거나 생일, 결혼, 환갑 등 기념일에 기획부터 시작하여 전반 촬영, 사회, 공연 등 종합적인 복무를 해줌으로써 많은 호평을 받고있다.

정광은 위성방송이 선후 방송임무량이 늘어난것에 비추어 후배들의 업무수준을 틀어쥐여  질적인 제고를 가져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가족이 모일기러기아빠

정광이 사업에 모든 정력을 기울일수 있게 된데는 안해의 진심어린 배려와 갈라놓을수 없었다. 예술학교 동창이였던 안해는 그가 연극단에 배치받을 때 연변방송예술단에 배치받았다. 남편이 한 단위에 전근한후 불편해하는 점을 눈치챈 안해는 남편이 마음 편히 사업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단연히 자신의 전업을 포기하고 연신소학교 교원으로 전근해갔다. 그러다 딸애를 낳은후 학교를 그만두고 전직주부로 있으면서 가정을 돌보았다. 안해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된 정광은 안해를 도와 료리도 곧잘했다.

1999년 안해가 미국으로 떠난후 딸도 미국류학준비한다면서 초중부터 청도에 있는  《녀자전업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정광은 기러기아빠로 되였다. 어린 딸애를 청도에 데려다주면서 그는 가슴을 칼로 에이는듯 아프다는 뜻을 가슴깊이 느끼에 되였다. 딸애는 작년부터 북경외국어학교에 다니는데 오라지 않아 방학한다면서 정광은 언녕부터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리고있다. 안해를 대신해 맛있는  해준다면서…

안해가 정광이한테 미국에 오라고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정광은 지금까지 해온 방송일이 너무 좋아서 또 지금이야말로 한창 잘할수 있을 때인데 미련이 많이 남아서 그만둘수 없다며 안해한테 량해를 구했다.

비록 안해가 곁에 없지만 하루 방송을 위해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기본상 없다는 정광은 아침부터 저녁가지 바삐 헤매다보니 어쩌면 시름놓고 가족을 그리워할 사이도 없는듯싶다.

정광은 《가고싶었던 연변대학 체육학부에 붙지 못해 인생의 길이 바뀌였으나 지금보니 참 잘된것 같다. 화술이 내 적성이 더 맞는듯싶다》면서 《지금가지 방송예술단에 온것을 한번도 후회한적이 없다》고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사업해오면서 자기가 맡은 역의 배음이 성공적으로 되였을 때 가장 기쁘다는 정광은 행정면에서는 욕심이 없다면서 단장직보다는 화술면에서의 애착이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말프로가 연변사람들이 기다림이 되는 좋은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광의 목표가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천여부의 방송극의 배음을 맡아온 정광, 그의 얼굴보다는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더 익숙히 알려지고 친근함을 안겨준다. 지금은 성우뿐이 아닌 연변방송예술단의 단장으로 감독으로 더 분망히 보내고있다. 록음하고 합성을 마친후 완성품을 볼 때면 그보다 더 멋진 예술이 없다는 정광은 화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최설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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