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순희-우리 가락에 모든 삶과 혼을 담아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2월19일 22시47분    조회:1027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대학예술학원 김순희씨의 민요인생

큰무대에서 우리 민요를 만방에 알려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순희씨는 학생들에게 우리 민요창법을 가르치는 한편 우리 민요의 참맛과 멋을 전국에 널리 알리면서 국가급의 묵직한 상을 여러 차나 수상했다.

김순희씨는 2004년 8월, 국가문화부민족민간문화활동중심에서 주최한 제2회남북원성태민가콩클에서 김순희씨는 최우수상에 최우수풍경상을 수상했다. 국가문화부민족민간문화활동중심의 리송주임은 김순희씨한테 처음으로 조선족 《원생태》의 민요를 들었다면서 그를 치하해주었다. 그해 12월부터 2006년까지 근 2년간 국가문화부민족민간문화활동중심에서는 한족을 포함한 각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천상의 소리》민요공연단을 조직, 북경, 소주, 주산 등 도시들에서 공연하였다. 우리 민요는  김순희씨가 불렀다. 사회자는 조선족민요는 예술적감성이 뛰여나고 세련미가 넘친다고 주최측의 평가를 전달했다. 12회에 걸친 그번 공연은 우리 민요를 만방에 널리 알리는 무대였고 김순희씨가 우리 나라의 정상급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기 시작한 무대였다. 미국과 유럽공연은 무산되였지만 그번 공연이후 《원생태》라는 신조어가 류행되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 국가문화부 주최로 된 중국원생태민가콩클이 서안에서 열렸다. 대학교조시합에 참가한 김순희씨는 빼여난 목소리와 능란한 기교로 단연 은상을 수상했다.

2007년 5월 12일, 중앙TV음악채널은 《민가세계-조선족처녀 김순희》프로를 방송했다. 28분에 걸친 이 프로에서 김순희는 《경기민요》 등 우리 민요 9곡을 불렀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 채널에서 우리 민족 민요가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방송되기는 드문 일이다.

2008년 10월 1일부터 6일까지 박춘희, 최성룡, 변영화, 김순희로 구성된 《아리랑정운》그룹은 2008년중국국제민요박람회기간 국가대극원에서 6회에 걸쳐 우리 민요특별공연을 하였다. 전세계 28개국에서 참가한 그번 국제민요박람회에 우리 나라에서는 9개 민족의 민요프로가 참가했는데 우리 민요특별공연은 특례이다. 그번 공연이 있기전 2008년 8월, 《아리랑정운》그룹은 국가대극원에서 북경올림픽축하공연을 펼쳐 절찬을 받았었다.

김순희씨가 이 몇년간 이렇듯 굵직굵직한 무대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칠수 있는데는 피나는 노력과 함께 쌓아온 실력과 빼여난 기교 그리고 《천상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민요를 향한 배움의 집념


김순희는 1992년 당시의 연변대학예술학원 민족성악전업 본과반에 입학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 인간문화재 57호 경기민요정승인 묵계월씨를 만나게 된 그는 학교의 파견을 받고 한국에 가서 우리 민요를 배울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김순희는 묵계월씨한테서 3년간 경기민요와 잡가 등을 배웠다. 묵계월씨의 창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우며 품위가 있다. 무계월씨한테서 열심히 배운 김순희는 단국대 석사시험에 입학하여 석사공부를 시작하였다. 김순희는 단국대에서 경기명창 리호연씨를 만났고 그와의 사제간민요인연이 시작되였다. 리호연씨는 목소리가 청아하고 기교가 높다.

김순희는 한국에서 주숙과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마운 분들의 소개로 서울 봉은사에서 종무원으로 일하는 한편 민요공부를 하였다. 그는 늘 사찰뒤산에 올라가 노래련습을 하였고 빈 법당을 찾아들어가 련습을 하였는데 밤중에도 련습할 때가 있었다. 비구스님들의 절인데 웬 녀자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 소란스럽게 군다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고 곱지않은 눈길을 보냈지만 우리 민요를 향한 그의 집념은 그를 배움의 끈을 더욱 단단히 쥐게 했다. 경기민요를 배우려면 서울말씨를 능란하게 구사해야 하기에 그는 서울말씨를 열심히 익혔고 종무원인 그가 찾아온 사람들과의 대화도 서울말씨공부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 학교와 주숙지사이의 먼길을 시계바늘처럼 준확히 오가면서 늦은적이 없었다. 이렇게 7년간 민요공부에 정진한 그는 마침내 석사과정을 마치게 되였고 단국대연주홀에서 졸업연주회를 가졌다. 평심원으로 참가한 교수들은 김순희씨의 노력에 감복되여 학생들에게 김순희씨처럼 열심히 민요공부를 하라고 당부하군 한다.

한국에서 김순희씨는 민요공부와 공연을 결합하였다. 그는 선후하여 부산, 대구, 김천, 서울 등지에서 민요를 부르면서 민요실력과 기량 그리고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민요의 보급과 대중화를 위해 혼신 다 할터


우리 민족 민요는 주로 경기, 서도, 남도, 동부 등 지역의 민요로 구분된다. 한국에서 민요를 공부하는 기간 김순희는 경기민요, 경기소리, 불가, 휘모리잡가, 선소리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연변에 돌아온후 김순희는 전국민요콩클에 참가하고 또 전국성적 공연에도 참가하는외 2006년 11월부터 연변위성방송 《오미란의 우리 가락 노래가락》민요교실에 출연하여 생방송으로 민요를 가르치고있다. 이미 20여곡을 소개하고 가르쳤는데 이 프로는 인기프로로 되였다. 김순희씨는 방송을 통해 많은 팬들이 생기고 민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날로 많아지고있다면서 민요의 맥을 다시 잇는다는데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각색된 민요가 아닌 원모습 그대로의 민요를 가르치고있는 그는 우리 민요의 보급과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있다. 그는 지금 여러 쟝르의 노래가 병존하면서 우리 민요가 충격을 받고는 있지만 전화자, 강신자로 이어지는 우리 민요는 그래도 중국조선족들가운데 깊은 뿌리를 내리고있다면서 민요열풍이 일 날도 오래지않을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경 등 국내공연을 가보면 우리 민요처럼 다양하고 예술성이 높은 민요가 많지않다면서 우리 민요는 벌써 격과 운치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공연때마다 국가문화부 등 주최측의 우리 민요에 대한 높은 평가를 직접 들었고 또 무대에서 우리 민요을 부를 때면 관중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와 중국조선족으로서의 민족자부심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그는 또 밝고 명랑한 중국조선족의 성격에 경기민요가 안성맞춤이라면서 앞으로 《오미란의 우리 가락 노래가락》민요교실생방송을 이어가고 또 과외시간을 리용해 강습반을 꾸리는 등 경기민요보급에 진력할것이라고 했다.

연변일보 김인선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무순시제3병원흉외과, 보통외과주임 리석현의 사적 [길림신문 2011-11-08 글 / 사진 김경덕 특약기자]  리석현(43세, 조선족)씨는 1991년에 중국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사업에 대한 만강의 열정을 품고 고향에 돌아와 무순시제3병원에 뿌리를 박았다. 그는 외과에서 급진급구(急诊急救)방면에 아주 능란했다. 환자의...
  • 2011-11-08
  • 남양공예품회사 신현호씨 그린월드 중국대표로 탈변 남양악세사리회사의 신현호(1974년생)씨가 상승가도를 달리던 악세사리업에서 서서히 손을 접고 대한영락물업관리서비스유한회사 청도그린월드의 대표로 탈변해 화제다. 신현호는 흑룡강성 해림시 구가향 태생으로1998년 청도에 진출 한 그는 한국회사에서 생산과장, 부...
  • 2011-11-08
  • —우리 민족 축구사에 간과할수 없는 족적 남겨 소시적부터 남다른 축구재질 뽐내 박만복원로는 1935년 11월 4일(음력) 왕청 하마탕(북하마탕) 일툰(해방후 녕안툰으로 개명)이라는 마을에서 4남2녀중 넷째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일가로 불리우는 아버지, 삼촌, 형님들의 영향으로 헝겊뽈(당시 고무뽈...
  • 2011-11-07
  • 단돈 천원으로 일궈 낸 성공 신화   선박제조의 꿈을 키워가는 박광석리사장   청도무학선박기계유한회사의 박광석리사장은 단돈 천원을 들고 청도에 진출해 8천여만원의 고정자산을 가진 성공을 한 기업인이다. 길림과학기술학원일본어전업을 졸업하고 고향인 돈화에서 4년간 교원생활을 하며 길림성우수교원을...
  • 2011-11-07
  • 원 매하구시제지공장 당위서기 서춘원로인 [길림신문 2011-11-05 리창근 기자] 매하구시에 거주하는 올해 81세나는 서춘원로인은 지난세기 60년대 연변 국영석현제지공장의 기관당총서기 겸 조직부 부부장으로 사업하였다. 1966년2월 중앙경공업부의 지방공업을 지원할데 관한 명령을 받고 매하구에 전근되여 와서 매...
  • 2011-11-07
  • 당신의 안전 내가 책임집니다  감시카메라시장이 당지인들의 개입으로 백열화되고있는 상황에서도 불패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젊은이가 있어 화제다. 바로 손영준(73년생)이다. 1997년도에 고향 화룡을 떠나 청도에 진출한 손영준은 2004년도부터 시작해 감시카메라를 경영하였다. 손영준의 청도우주통신기재유한회사...
  • 2011-11-04
  • 가격과 질량으로 승부한다  리가네둘째 자동차정비업체 리영파사장 청도에서 가장 싼 자동차정비업체를 만들터 청도시성양구흑룡강로와 중경북로를 잇는 조홍로(赵红路)에 위치한 리가네 자동차정비업소는 리영파씨(72년생)가 차린 자동차정비업소이다. 1998년도에 청도에 진출한 리영파씨는 자동차부품을 공급하는 회...
  • 2011-11-04
  • [연변인터넷방송 2011-11-03] 연변주내 유일의 기계화순대생산업체인 시골외할머니순대가공부를 찾아서   “순대는 가공이 번거롭고 까다로운 음식입니다. 연변에 김치나 떡을 만드는 공장은 수십개인데 비해 정규적인 순대공장이 없는 리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일, 기자가 연길시 조양천진에 자리...
  • 2011-11-03
  •  [인터넷료녕신문 2011-11-01 김창영 기자]  심양시 화평구 태원남가 88호는 새륭(賽隆)안경광장이다. 이 광장 1, 2층에는 크고작은 안경가게가 600여개나 되는데 그중 유일하게 조선족이 경영하는 점포가 있으니 바로 2층 29번 “시야안경”점이다. 사장은 올해 34세인 리정일씨.   고향이...
  • 2011-11-02
  • 흑룡강성밀산시련주산 태생인 정광모(64년생)는 목단강대학을 졸업후 흑태조중에서 교편을 잡다가 가난이 지겨워 청도에 진출해 성공한 기업인이다. 1994년에 청도에 진출한 그는 한국회사에서 출근하면서 변함없는 자세로 꾸준히 기술을 익혔고  1999년에 20만원을 투자해 독립의 길을 걸었다. 6명의 로동자와 함께 ...
  • 2011-11-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