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현덕- 중국 언론계를 빛낸 조선족 명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6일 06시58분    조회:2030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 언론계를 빛낸 조선족 명인
-중화전국언론인협회 원 서기처서기 리현덕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김호 기자 = 지난 2일 중화전국언론인협회 원 서기처서기,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리현덕(75세)선생이 조선족 혁명렬사 관련 사업건으로 고향인 할빈에 왔다. 또한  흑룡강신문사도 방문했다. 

리현덕선생은 50년대부터 60년대 초까지 할빈외국어학원( 현재의 흑룡강대학)(본과), 소련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학원(석사), 중국외교학원 등 3개의 중외 유명한 대학을 졸업했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선후로 중국외교부, 국제방송국, 신화사, 중화전국언론인협회서기처 등 단위에서 사업했다. 

신화사총사 고급편집, 신화사 안카라분사, 이스탄불분사 사장(수석기자), 중공14차대표대회보도중심 부주임,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량회 보도중심 부주임, 중화전국언론인협회서기처 서기 등 직무을 담임했었다.

현재는 과학평화촉진회 부회장, 련합국국제과학및평화주간 중국조직위원회 상무부주임,  '북경평화선언'활동조직위원회 부주임, 중국국제교류촉진회 부회장, 이밖에도 수두룩한 직무와 명예 회장, 고문직을 맡고 활약하고 있다.

리현덕선생은  '명기자', '번역가', '우호사자', '국제평화사자', '적극적인 사회활동가'로 불리운다.  

리현덕선생은  10여년간  각국 민간친선및 세계과학발전과 평화사업에 큰 기여를 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3년 11월  련합국국제평화주간 평화사자상을 수상했다. 

리현덕선생은 터키어, 로어, 일어, 영어, 볼가리아어, 중국어, 조선어 등 7개국 언어를 능통하게 할수 있다. 모주석어록과 단행본을 터기어로 번역도 했다.

강택민 전 주석과 리현덕선생이 악수하고 있다.

리현덕선생은 항일투사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항일투사인 부친 리원명이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여 갖은 고문을 당했다. 지하조직의 구출로 출옥하여 귀가했지만 혹형의 후유증으로 1934년 3월 19일 11시 할빈의 자택에서 순국했다. 그후 한시간이 지나  12시에 리현덕선생이 태여났다. 결국 리현덕선생은 부친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유복자로 이 세상에 태여났으며 어려서부터 인생의 갖은 쓰라림과 고생을 다 했다.

리현덕선생은 할빈조선족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흑룡강대학 전신인 할빈외국어학원 러시아어학부에 입학하여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리현덕선생은 1958년7월 중국 외교부에 배치되여 사업하다가 동년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에 가서 석사공부를 하게 되였다. 귀국후 다시 외교부에서 계속 사업했다. 

문화대혁명기간에는 모스크바에서 함께 류학했던 한 조선족이 팽덕회를 지지하는 삼반언론'(三反言论)으로 조사받는 바람에 리현덕선생도 련류되여 하남성  급현에 하향하여 로동개조를 했다.  

당시 급현에 도착하여 마구간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닥에는 벼짚이 널려있었고 똥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기도 없었다. 

리현덕선생은 간고한 환경속에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당과 인민의 돈으로 배운  터키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터키어 공부를  계속했다. 리현덕선생은  밤마다 석유등잔 밑에서 중국의 수호전처럼 유명한 세계와  터키의 명작  '인재 매매트'를 중국어로 번역했다. 

외잘 전 터키 대통령부부와 리현덕선생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터키어로 된  '인재 매매트'  장편소설은 1955년 출판된 후 세계를 놀래운 베스트셀러로 되였다. 또한 련합국교과문조직으로부터  '세계 우수산문 저작'으로 추천되였으며 30여종 문자로 번역되였는데  100여차례 재판되였다. 그리고 여러차례 국제대상을 받았다.

한편 '동방렬차 참안'영화를 찍은 유명한 감독 피드.우스지노부가 '인재 매매트'를 소재로  1천만달러가 투입된  영화를 찍었다.

70년대 초  등소평이 복귀하면서 리현덕선생의 억울한 루명도 시정되여 북경으로 돌아왔다. 후에 리현덕선생이 번역한 30만자에 달하는 이 책은 인민문학출판사에 의해 출판됐고 2년도 못지나 또 재판되였다.

리현덕선생은 '인재매매트' 외에도 30만자에 달하는 터키 장편소설 '이스탄불 처녀', 단편소설집 '나는 왜 자살했는가' 등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리현덕선생은 선후로 100만자에 달하는  터키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리현덕선생은 "터키문학을 중국에 소개하는 면에서 공백을 메우는데 개척성 공헌을 하였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리현덕선생은 1973년 신화사기자로 입사했다. 당시 신화사에서 터키어 기자가 수요됐다. 터키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1억3천만명에 달하며 터키는 미디어산업이 아주 발달된 곳이기때문에 터키어의 영향력을 무시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리현덕선생은 1982년말부터 1989년 10월까지 신화사 터키분사에서 수석기자로 일했다. 당시 터키에 두개의 신화사 분사가 있었는데 1986년부터는  2개 분사를 총괄하는 사장이 됐다. 

1983년 터키대선이 있었는데 기존의 군인정권과 야당 조국당이 치렬한 경쟁을 벌렸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군인정권이 권력을 계속 독점할것으로 전망했는데 리현덕선생은 기자의 예리한 눈으로 터키 국민들이 조국당을 지지함으로써 조국당이 승리할것이라는것을 보아냈다. 

리현덕선생은 조국당의 외잘 후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한 중국 령도기관에 분석 예측 자료도 보냈다. 결국 리현덕선생의 예측이 맞아 조국당이 대승했다. 당선자들이 신화사 터키분사를 찾아와  감사를 표시하고 축하까지 했다. 그때부터 리현덕선생은 외잘 터키대통령과도 아주 깊은 친분을 나누게 되면서 중국과 터키 량국간의 우호관계를 크게 추진했다.

당시 터키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이 일어나 터키대통령이 손에 부상을 입었다. 터키 대통령이 몇분후에 다시 연설을 시작했고 암살 용의자는 체포됐다. 

리현덕선생은 이 사건을  '천균일발'(千钧一发)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여 시리즈로 다루었는데  전국의  근  40개 신문에 게재되여 큰 반응이 일었다. 후에 이 기사가 신화사 1등상과  전국보도 1등상을 수상했다. 

한번은  한 서방통신이 조선의 김일성주석이 암살됐다는 기사를 내  서방과 터키 언론들이 너도나도 전재하면서 사실인듯 들끓었다. 후에 신화사 본부에서 김일성주석이 평양공항에 나가 몽골 국가령도자를  맞이하는 사진을 급송해왔다. 리현덕선생은 인차 터키어로  기사를 작성하여 사진과 함께 터기의 각 언론사에 송고했다. 이날 터키의 여러 신문에 게재됐다.

 결국  서방통신의 기사가 오보로 락점됐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여 터기 언론들이 신화사의 기사를 중요시하게 되였다. 

1989년 10월 리현덕선생이 터키를 떠난다고 하자 터키대통령, 터키부녀련합회주석으로 사업하는 대통령부인과 아들 국회의원이 가정 연회를 열어 리현덕선생의 귀국을 환송했다. 또한 터키국회는 리현덕선생의 공적을 인정하여 국회영예훈장을 수여했다.  

1991년 리현덕선생은 중화전국언론인협회 서기처서기로 당선되여 1997년초까지 서기처서기로 사업했다. 리현덕선생은 서기처서기로 사업하는 동안 중국정부언론인 대표단단장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했으며 아태언론조직 고급회의 및 국제언론포럼에도 여러차례 참석했다.

또한 리현덕선생은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의 전 대통령, 국회의장, 총리 등 정계인사들을 만나 중한교류에도  크게 기여했다.

리현덕선생은 현재 조선족 혁명렬사, 유명인사들의 사적을 발굴, 정리하여 책을 출판하기 위해  중앙의 비준으로 민정부에 등록하고 조직된 중국조선민족사학회(회장 황유복 교수)의 명예회장(조남기주석, 리덕수부장, 리영태 공군부사령 등도 명예회장 임)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리현덕선생은 끝으로 "흑룡강조선족들이 혁명렬사들의 정신을 따라배워  당의 령도하에 신심을 갖고 간고분투하여 자신의 고향을 잘 건설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subung@yahoo.co.kr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혜성처럼 나타난 중국조선족 영화인중국조선족 영화감독 장률 만나본다장률 프로필: 영화감독. 1962년 생중국 길림성 연변대학 중문학부 졸업주요 영화작품: 11세 (2000), 당시 (2004), 망종 (2005), 이리 (2007), 중경 (2008) 등 주요 수상: 부산국제영화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페사로영화제 베소울국제영화제 시네마누...
  • 2009-12-17
  • —연변대학부속병원 간담외과 주임 리철호"저의 치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은 모습을 보면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또한 의사라는 직업을 계속할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 연변대학부속병원 간담과 리철호주임의 말이다.연변대학부속병원에서 보통외과사업에 종사한 25년간 리철호교...
  • 2009-12-17
  • 주류문단 진입을 위해서는 온라인을 활용해야 기업인작가 정용호씨와의 대담정용호작가에게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기업인작가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문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조선족작가라는것, 또 하나는 온라인창작을 통해 등단한 작가라는것이다. 기자가 알기에 그는 온라인에서의 중문작품 창작을 통해 ...
  • 2009-12-16
  • 홍콩아태지역간병회의에 참석. 하얼빈시전염병병원 제7병구 주임 김정자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태산 기자 =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이라 하면 먼저 공포심리부터 갖는데 기실 전염병은 결코 무서운것이 아닙니다." 할빈시전염병병원 제7병구 주임 김정자(46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2003년 각종 급성, 만성...
  • 2009-12-15
  • 새시기 연변축구의 견증인 연변축구팀 김광주감독을 만나다김광주 프로필: 1968년 4월 길림성 화룡시  동성진 흥성촌 출생1979년 화룡시 동성향 흥성소학교 3학년, 축구 시작1980년 화룡시 건설소학교 축구팀 전학1983년 연변체육학교 입학1986년 연변체육공작대팀 길림성팀 합류1988년―1992년 길림성팀 (을급팀...
  • 2009-12-15
  • 아리랑식당 리동화사장서장 라싸의 아리랑식당 리동화사장의 이야기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운둔의 땅, 서장 라싸에 우리 민족이 꾸리는 아리랑식당이 있다. 유일한 조선족음식점이다. 고향이 매하구인 리동화사장이 운영하고있는 이 조선족음식점은 각종 불고기구이, 등심구이, 삼겹살구이 등 고기구이는 물론 찌개, 볶음...
  • 2009-12-14
  • 저 세상에 가더라도 붉은 넥타이만은 매고 가겠다 영원한 백발소년 오원호: 저 세상에 가더라도 붉은 넥타이만은 매고 가겠다내 나이 올해로 85세, 머리도 하얗게 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아직도 친절하게 《백발소년》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부름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한것은 이 부름속에서 붉은 넥타이사업...
  • 2009-12-12
  • 18세 이하 대표팀 주장 김경도, 그는 누구인가?연변축구팀의 미드필더 김경도가 이번 제주행에서 한국매체들에 자신의 향후 목표에 대해서 “외국에서 다른 경험을 많이 하고싶다. 박지성을 제일 좋아한다. 의지가 강하고 아프면서도 포기 안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다부진 꿈을 가진 주인공을...
  • 2009-12-11
  • 탁구 남녀로소 모두즐길수 있는 “건강료리”—연변 주 탁구협회 주석 방상흥내가 경험한바에 의하면 탁구는 좁은 공간에서도 탁구대, 탁구공, 라켓(球拍)만 있으면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모두 즐길수 있는 “건강료리”이다. 탁구는 칠 때도 그다지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탁구장에...
  • 2009-12-11
  • 마음속엔 언제나 고향 민족이 녀장부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고향 민족이 있었다ㅡ대련만기국제무역유한회사 대표 김미화씨  대련 앞바다를 근거지로 전 세계 해양을 누비며 한해 매출액 6억여원을 창출하는 녀장부, 대련만기국제무역유한회사 대표 김미화(42)씨, 그는 요즘 기업과 문화의 접목을 스스로 이루고저 ...
  • 2009-12-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