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화룡시예술단 구연배우 허상권씨의 실적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7일 14시17분    조회:84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

누군가 예술의 최고경지는 미치는것이라고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일반사람들이 리해조차 하기 어려운 거동을 보일수 있겠는가? 그 미치는 경지속에는 꾸준한 탐구가 있고 끊임없는 노력이 슴배여있으며 그것은 결국 알찬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

1946년 10월 2일 화룡현 화룡진 동가촌(지금의 화룡시 룡성진 동가촌)의 한 농가에서 외독자로 태여난 허상권씨는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을 살아왔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오늘에도 그 예술의 끈을 부여잡고 석양빛갈을 화려하게 장식해가고있다.

1980년대 후반기 연변텔레비죤을 통해 《알이 터졌다》는 한마디로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3로인 《경로원의 기쁨》에서 김상옥선배, 석봉숙배우와 함께 등장해 폭소를 선물했던 《꺽다리령감》, 바로 그 《꺽다리령감》 허상권씨의 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종일관하게 웃음을 몰고다니며 우리 민족 구연무대의 한자리를 튼튼히 지키고서있다. 《경로원의 기쁨》을 비롯해 《로인축구대》, 《기자가 오던 날》, 《혼인광고》 등 소품과 3로인 400여편을 소화하며 지금까지 4000여차의 공연에 참가해온 허상권씨는 류수같이 흘러간 지난 반평생을 돌이켜보노라면 사뭇 그 감개가 무량하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남다른 흥취를 가졌던 허상권씨는 중학시절부터 크라네, 바이올린 등을 연주하며 학교악대에서 활약했고 진대회, 현대회, 주대회에 참가해 무용, 표연창, 악사 등 여러가지 장끼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장차 예술인이 되려는 꿈으로 가슴을 부풀리던 그는 어디에서 예술단이 공연한다고 하면 빼놓지 않고 죄다 달려가 구경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내보군 하였다. 바로 허상권씨가 20세때였다. 당시 그는 이불짐을 메고 두만강지역에 가서 길닦기일을 하고있는데 연변연극단이 장막극 《산촌의 소나기》를 화룡에서 공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맹랑하게 큰눈이 내려 허벅지까지 빠지는 바람에 며칠째 뻐스가 통하지 못할줄이야. 바로 그 장막극을 구경하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던 허상권씨는 공연 마지막날 드디여 마음을 먹고 도보를 단행, 200리 산길에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대골령, 소골령을 넘어 화룡시가지에까지 도착했는데 이미 공연이 시작되여 극장 앞문을 닫아버렸었다. 너무도 맹랑해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행여나 하고 뒤문에 달려가 두드렸더니 마침 리영근선생이 문?열어주어서 허상권씨는 오매에도 보고싶던 장막극을 구경하게 되였고 따라서 오늘까지도 당시 문을 열어주신 리영근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금할수 없어하고있다. 이처럼 《연극이라면 미친것 같다》는 뒤소리까지 들어가며 공연구경을 다니고 자신 또한 농촌무대에서 활약하며 장끼를 발휘한데서 마침내 그의 꿈은 현실로 이어지게 되였다. 

1980년도에 화룡예술단에서 대형가극 《흥부전》을 무대에 올리게 되였는데 당시 예술단에는 배우가 부족한 상황이라 마당쇠역을 맡을 배우가 없었다. 하여 대외에서 배우를 초빙하게 되였는데 각종 농촌대회에 참가해 장끼를 보여주었던 허상권씨가 예술단 책임자들의 눈에 들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구연무대에 발을 붙인 허상권씨는 김상옥, 량균 등 로선배들의 연기를 본받아 학습하는 한편 조선에서 처음으로 《춘향전》의 변학도역을 맡았던 조선인민배우 황철선생이 저술한 저서 《화술과 분장》을 열심히 탐독하며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예술의 길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화룡예술단은 농촌마을들을 돌며 많은 공연을 했는데 도구는 소수레에 싣고 배우들은 도보로 이 마을 저 마을 걸어다니며 공연하다보니 너나없이 지칠대로 지쳐 공연이 끝나자마자 굳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당시까지만도 문화생활이 결핍했던 농촌관중들이 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즐거워할 때면 허상권씨는 마음이 뿌듯해났고 따라서 피로도 가신듯 사라지군 하였다. 그러던 1984년도에 중앙문화부 정교부부장이 문화사업차로 연변에 왔다가 화룡에 가서 화룡예술단의 공연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드는것이였다. 따라서 정교부부장의 배치에 따라 그해 화룡예술단은 인솔자까지 20명 배우진이 4개월간 전국순회공연을 펼치는 영광을 가지게 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룡예술단이 해마다 농촌마을을 돌며 수백차씩 온돌공연을 펼쳐온 까닭에 모든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허상권씨 역시 가정일에는 손댈 여가조차 없었고 따라서 집안의 모든 일은 그의 안해 유채순씨의 몫으로 떨어졌다. 예술단에 발들여놓기전 현기관지식청년공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유채순씨와 소개로 만나 사랑을 맺은 허상권씨는 한평생 안해에게 빚지고 사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슬하에 아들딸 3남매를 키우며 80고령의 시부모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집안의 기둥인 남편이 늘 공연때문에 밖에서 떠돌다보니 가정의 중임을 떠멘 유채순씨의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수 없을 정도였다. 한때 재정경제의 불황으로 화룡시에서 로임을 제때에 내주지 못하게 되자 유채순씨는 심양, 장춘 등지로 다니며 그릇장사를 하여 집살림에 보탬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안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면서도 허상권씨는 언제든 공연하러 나갈 일이 있다고 하면 모든것을 제쳐놓고 달려나가군 했다. 그처럼 가정을 버릴 정도로 예술에 《미쳐》버린 허상권씨를 두고 현재 화룡예술단에서 구연배우로 활약하고있는 최중철씨와 홍미옥양은 《예술에 대해서 허상권선배는 하냥 깨끗한 마음이며 언제나 정식이고 진심》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모든것을 다 버릴수 있어도 예술만은 버릴수 없다는것이 허상권씨의 페부에서 우러러나온 말이다.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을 살아온 허상권씨, 그는 자신만 예술에 《미친》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그 《미치는 경지》에 열심히 끌어들이고있다. 다시 말해 허상권씨가 양성해낸 제자는 선후로 근 20명에 달한다. 그중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공부하고있는 김미령양은 올해 음력설야회에 소품 《선물》로 관중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 김미령양에 대해 허상권씨는 기자의 취재를 접수하는 앞에서도 《앞으로 졸업후 어디에 배치받든 열심히 하여 반드시 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되여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퇴직한 몸임에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대신 예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언제 어디에서 부르든 서슴없이 달려가는 허상권씨, 지난해 8월에 설립된 화룡시민간예술단 업무단장을 맡고 오늘도 열심히 뛰고있는 허상권씨에게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바로 1980년대 《알이 터졌다》는 대명사의 《경로원의 기쁨》이후로 연변의 구연무대에서 사라졌던 3로인을 재생시키는것, 한때 연변조선족 특유의 구연종목으로 자리매김했던 3로인이 사라져가는데 대해 허상권씨는 가슴아픈 심정을 토로하면서 《이는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 물려준 문화유산중의 하나로서 절대 없어져서는 안된다. 반드시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하여 그 자신이 솔선수범으로 올해 연변텔레비죤음력설야회에 선을 보이게 될 구연종목이 바로 《고백》이라는 제목의 3로인이다.

화룡시예술단의 구연배우 최중철, 홍미옥과 함께 허상권씨가 올해 음력설야회에서 선을 보이게 될 3로인 《고백》, 과연 20년만에 다시 시청자들과 만나게 될 3로인이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명절의 한때가 될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전일봉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저에게 있어서 무자년인 2008년은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사진전과 수상 그리고 촬영가협회 사업 등 여러 면에서 모두 결실을 이루었지요.” 남개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사진작가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쌓았고 또 성촬영가협회 부주석의 자리에 오른 리종걸씨이지만 지난해 거둔 성과들은 의미...
  • 2009-01-22
  • 흑룡강성 (黑龙江省) 닝안(宁安) 출신으로 한국에서 12년을 생활한 박춘근 씨(57). 껑충한 키에 길쭉한 얼굴이 인상적인 그에게서는 타향살이로 지친 기색은커녕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눈빛만이 반짝인다. 꿈을 가진 그는 재한 조선족들에게는 귀감이 될만한 '성공한 인물'임에 틀림없다.'외래어사전' ...
  • 2009-01-21
  • 함순녀 그녀가 선택한 무용인생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후에도 출중한 무용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독차지하던 이름난 무용배우 함순녀-연변의 첫 국가1급무용배우로 활약을 펼쳐가던 그녀는 지금 연변가무단의 단장조리로 사업하는 한편 전국인대 대표, 길림성인대 대표로 나라를 위한 사업에서 한몫을 톡톡히 담당해가고있...
  • 2009-01-21
  • 평범한 회사일군이 외화벌이 능수로●년간 수출액 600만딸라 ●550호 농가에 치부기회 제공● <<회사+기지+농호>> 경영모식 형성 불경기로 파산의 변두리에 처했던 민영기업을 왕청현에서 외화벌이 중점기업으로 부상시킨 녀강자가 있다.그녀가 바로 올해 51세에 나는 허춘희씨이다. 30년전 왕청현 토산과일회사...
  • 2009-01-19
  • 중국인민은행 연변주중심지행의 조사통계과에 근무하는 리선자씨가 중국 유수의 금융잡지 -《중국금융》2009년도 제2호 표지인물로 나왔다. 《중국금융》잡지는 1950년에 설립된 잡지로서 중국인민은행,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중국보험감독관리위원회의 관리감독하에 중국금융출판사가...
  • 2009-01-17
  • 우리 학계에서 《신문학》 하면 금방 떠오르는 한분이 계신다. 바로 연변대학의 신문학교수이며 우리 《신문학교육의 개척자》인 최상철교수(70세)이다. 청춘시절에는 작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연변대학 조문학부만을 선택해 연변에로 왔고 졸업후에는 15년간 문학교수와 창작 및 평론에 전념, 왕성기를 맞다가 돌연 신문학...
  • 2009-01-16
  • 14일,중국국가체육총국 남용을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으로 정식 임명조선족 사나이 남용, 과연 중국축구를 낭떠러지에서 구해낼수 있을가?1월 14일, 중국국가축구대표팀이 2011년까타르아세아컵축구대회 예선 제1륜경기에서 D조중 가장 약팀이라 불리는 수리아에 2:3으로 무릎을 꿇어 팬들의 비난이 빛발쳤다.2009년 들...
  • 2009-01-15
  • 중국 저명한 조선족 시인이며 길림일보신문업그룹 길림조선문신문사, 장백산잡지사 사장 겸 총편집인 남영전씨는 줄곧 토템문화연구와 토템시가작품창작성과로 문단에서 이름을 크게 떨치고있다. 최근년래 남영전씨는 새로운 연구와 창작성과로 갈수록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2008년 10월, 그의 론문 "토템문화가 현대...
  • 2009-01-15
  • 산재법 몰라 불이익 당한 재한중국동포 위한 킬러“한국에 입국하는 80%이상의 중국동포들이 한국의 산업재해법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고 또 회사측은 형사,법률책임을 지지않기 위해 협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더욱이는 산재로 인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달에 서울에...
  • 2009-01-15
  •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 조선족 강 연 양학비 부족 중국 명문 연변 제1고 자퇴민족사관고 특례입학 학업의지 다져“한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고 중국을 이끌어 나가는 조선족이 되고 싶습니다.”동해시와 자매 도시인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의 조선족으로 민족사관고로 유학온 강 연(18·사진)학생. 강 양...
  • 2009-01-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